로마서 (5:18-21) [1] 한 사람 아담의 범죄와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순종
롬 5:18-21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 과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을 대조하여, 첫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와 사망이 이 세상에 들어온 것과 같이, 구원과 생명은 한분 의인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임하였다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고, 사망에 이르렀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자 아직 죄를 모르는 상태에서 죄와 죽음을 상징하는 선악과나무를 주시고 ‘먹지 말라’는 계명을 붙여주셨다. 계명을 주셨다는 것은, 그 법을 통하여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시고 나타내시고 가르치고 깨닫게 하여 그분이 의도하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계시한다. 처음부터 인간을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여있는 이 땅의 흙으로 육체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은, ‘육의 무익함과 영의 영원한 실상’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며, 육의 죽음을 통하여 영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은혜를 입혀주시기 위함이었음을 성경은 확실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다. 육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새번역). 영적 생명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분의 진리의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이르게 되며,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가 곧 생명이요 영생임을 제시하셨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첫 사람 아담은 육이 연약함으로 선악과 옆에 영생을 주시려고 함께 주신 생명나무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육으로는 영의 생명을 알아보지 못함으로 육적 본능을 따라 오히려 죄와 죽음을 유발하는 선악과나무가 더욱 먹음직 스러웠고 지혜로워 보였으며 따먹고 싶은 탐심으로 마귀의 유혹을 받은 것이며, 그 탐심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만든 것이다. 인간은 육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선 과악을 구분할 수도, 탐심을 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계명으로 영역이 보여주고 알게 하셨다. 즉 첫 인간에게 율법을 모형 하는 한 가지 계명: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라는 육신의 가장 연약한 생존 양식에 계명을 붙여주셨다. 아담은 육신의 탐심을 억제할 수 없었으며,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 먹고 싶고, 하고 싶고, 되고 싶은 ‘탐심’이 자신의 마음에 내주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 탐심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낳게 되며,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는 저주를 받은 것이다. 이를 바울은 법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탐심’이 죄가 되는지를 몰랐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롬 7:7). 그렇게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라고 아담이 죄의 통로가 되어 죄와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한 것이다.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는, 그 계명을 통하여 죄가 무엇이며, 왜 죄의 삯은 사망인지를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바울은 정확하게 정의해주고 있다.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7-11). 바울이 특별히 탐심을 죄의 대표로 표현한 것은 탐심은 인간의 본능이며 마음속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범법 행위가 아니면 그것을 죄로 깨닫지 못함을 말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마음에 잠재하고 있었던 탐심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 행위로 표출되어 죄를 낳은 것이며, 그 죄가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망에 이르게 한 육신의 탐심을 사도 요한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라고 말한 것이다. 즉 육신의 모든 죄는 탐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에게 ‘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이 땅의 티끌로 지음을 받은 육은 이 땅에 속하여 땅의 썩어짐을 추구하기 때문에 육은 무능하고 무익하며 무지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계명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탐심’이라는 죄의 불씨를 들추어냄으로, 인간의 육은 죄인으로 출생하여 죄만을 생산하여 멸망을 자초하기에 그 육이 죽어야만이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영원을 살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한 의도였음을 제시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다”(롬 7:12)라고 말한 것이다. 그 선하신 계명이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있는 모든 죄를 철저하게 들춰내고 지적하여 철저한 죄인임을 정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율법)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5:20),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라고 말한 것이다.
인간의 모든 죄악들을 철저하게 드러내어 심히 죄 되게 하여 철저한 죄인임을 인정케하는 역할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한, 즉 복음을 주시기 위한 예표이며 모형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육이 연약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음으로 선악과를 먹고 죽었기에 다시 살 수 있는 생명나무를 소유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었기에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주시는 은혜의 선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0-21)라고 복음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고 영생에 이르렀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고’(18절), ‘한사람의 순종으로 의인이 되었다’(19절)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죽음’이 바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의의 한 행동”이며, 그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고 영생에 이르렀다는 복음을 제시하기 위하여, 바울은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로 인하여 사망이 세상에 왔다고 대립적으로 말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아담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었다’는 말씀이다.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그리하여 바울은 아담은 오실 자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어 설명하기 위한 모형으로 통로로 쓰임을 받은 예수의 표상이라고 말한 것이다(5:14).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심에 있어서 우리의 됨됨이나 공로나 행위의 의로움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분 의인이신 당신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을 원하셨다. 바울은 예수님의 순종을 “죽기까지 순종하셨다”라고 표현한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순종이란, 내가 완전히 죽어서 상대방에게 함몰되는 연합을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 향하신 ‘죽기까지의 순종’으로 아버지와 하나임을 나타내셨다.
먼저는, 예수님은 태초부터 천지가 있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신 스스로 계신 분이었으며, 그리하여 항상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 10:30)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신 분으로서 본체가 하나이심을 순종으로 증거하셨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39). 점도 흠도 없으신 오직 의와 선과 생명의 근본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의 한 행동’은 아버지에게 향한 철저한 순종과 철저한 자기 부인으로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추구하며 오직 아버지의 영광만을 나타내는 십자가의 삶이었고 십자가 죽음의 희생이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즉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 것은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순종”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린 그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성취하시고 그 구속적 의를 당신의 백성에게 전가시켜 주셨기 때문에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아 의인이 된 것임을 제시한다.
두 번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순종으로 화평을 이루어주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셨다. 죄와 사망에 빠진 당신의 자녀들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순종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며, 영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새로운 창조를 일으켜주심으로 죄인이 의롭다함을 받아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탄생하여 함몰되어 들어감으로 하나가 된 것이다. 이를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순종이란 바로 내가 완전히 죽어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그분 안에 함몰되어 들어가는 연합을 말한다.
이와 같이 순종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의 불가능함과 무력함의 정체성이 폭로되고, 죄인임이 확증되고, 인정됨으로 ‘나’라는 존재가 삭제되어 하나님 안으로 함몰되어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그분의 생명력으로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하며, 그분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믿음을 말한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요 3:36). 이 세상과 인생의 역사는 하나님과 하늘나라의 영생을 증명하게 위해 각기 자기자리에서 쓰임을 받는 모형이며 허사이기에 삭제로 끝남을 제시하고 있다. 이르기를,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세상은 멸망으로, 인생은 죽음으로 정하셨다는 것은, 그것이 실체가 아니라 허사이며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 멸망에서 오직 당신에게 속한 자만 끄집어내어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신다.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17:12).
주님은 십자가 죽으심으로 성취하신 구원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는 반드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구원을 얻게 되지만, 마귀에게 속한 이 땅의 자식은 벌써 이 세상과 함께 멸망과 심판으로 정해졌다고 선고하신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예수님의 의로운 죽으심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을 위한 죽음이 아니라 오로지 아버지께서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의의 죽음’이심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이를 바울은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라고 말한 것이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율법의 기능: 첫 사람에게 ‘죽음’을 계명으로 주신 의도는 무엇인가?
율법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며”,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라고 확실히 제시하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며 선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내신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시다”(롬 7:12). 그 선하신 율법을 죄인에게 주신 것은, 이 땅에 속한 육체적 본능으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이 내신 의의 법을 지킬 수도 순복할 수도 없는 인간의 죄를 심히 죄 되게 함으로, 즉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으로”(롬 7:13), 온 세상이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여 깨닫게하기 위한 의도라고 바울은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갈 3:10),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함이라”(롬 3:19), 모두가 “사형에 해당되는”(롬1:32) 심판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도로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 육체에서 나오는 죄란 어떠한 것이며, 그 죄의 삯은 곧 사망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다는 것을 깨닫게 함으로 죄인은 오로지 십자가 보혈의 피로만 은혜를 입어 율법의 심판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게 되는 은혜의 복음을 나타내시기 위한 의도로 주셨다고 바울은 주장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그 누구도 자신이 바로 죄인으로 태어난 철저한 죄인임을 알지도 또한 인정하지도 않는다. 즉 인간 자체가 바로 죄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인 이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육 안에는 처음부터 인간 스스로 의로워지거나 선을 추구하는 그 어떤 요소도 기능도 주지 않으셨다. 육은 죽음으로 삭제되는 흙으로 되돌림 받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사는 피조물이며, 육의 죽음을 통과하여 영의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시기 위한 의도로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계명을 주심과 동시에 생명나무를 함께 주셨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자연과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워주셨다. 그러나 그 풍성한 복은 오직 하나님의 의존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게 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이 곧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만물을 생명의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주관하신다. 그분의 말씀이 곧 생명이시기에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죽음임을 나타내시기 위해 ‘선악과’에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계명을 붙여서 동산 중앙에 따 먹고 깨닫게 하는 의도로 심어 놓으시고 사단의 유혹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계명을 주신 진정한 의도는,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흙으로 지음을 받은 육의 실체와 무익함을 깨닫고, 위의 것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선악과를 따먹고 죄인이 된 육을 벗어버리고 영으로 새롭게 거듭나서 영원히 하늘나라 왕국을 누리는 은혜를 입혀주시기 위한 선한 뜻이었다. 육은 허사요 영이 실상임을 깨닫게 하는 의도였음을 제시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이 땅에 속한 흙을 입은 육신으로는 하늘나라 영원을 살수가 없기에 반드시 죽음으로 ‘없음’이 되어야만이 영으로 새 사람을 입기 때문이다. 영만이 영원한 실상이며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만이 신랑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영원한 나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악과와 계명은 생명나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뿐이다. 육은 허사이며 실상이 아니었기에 아담은 아직 죄를 모르는 상태에서 육신의 탐심과 창조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한 욕망이 본능적으로 작동하여 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으며, 결국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거역하여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바울이 정확하게 이르기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6-8), 즉 흙을 입은 육은 이 땅의 권세자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것이 흙으로 피조 된 육의 실상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죄를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게하는 율법의 모형이다. 이를 바울은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5:18-19)라고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로보아 율법은 죄를 금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은 죄를 금할 수 없는 악한 존재임을 증명하여 보여주시기 위함임을 제시한다. 실제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아직 죄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유독 “먹지 말라. 먹으면 죽는다.”는 사망으로 주신 선악과나무에만 자극을 받은 것이다. 그 나무의 실과를 “바라본즉 먹음직스러웠다”라고 할 만큼 육신의 탐욕에 자극을 받고 있었고, 그녀의 혼은 그 나무가 “보암직하여” 안목의 정욕이 자극을 받은 것이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에” 그녀의 지성을 나타내는 ‘이생의 자랑’이 자극을 받은 것이다(요일 2:16). 이것이 이 땅의 흙, 티끌로 육신을 입은 인간의 실제 모습이다. 흙을 입은 육으로는 영생을 주시려고 옆에 주신 생명나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영의 생명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거나 육신의 노력과 의지로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히 증명된 것이다.
우리의 혼은 주인 되시는 영의 인도와 말씀이 없이는 육신의 탐심과 정욕과 욕망에 굴함으로 사단이 원하는 죄악들을 추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선한 율법을 받는 그 순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섬겼던 풍요의 신을 금송아지로 만들어 놓고 ‘이는 우리를 애급 땅에서 인도해낸 신이로다’(출 32:4)라고 부르면서 축제로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는 하나님에게 향한 치욕적인 모독이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친히 새겨주신 율법 돌판이 우상숭배 현장에서 깨지면서 죄에 대한 심판이 내려지고 삼천 여명이 도륙당하는 피의 사건이 얼어난 것이다(출 32:19).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이 내려주신 선한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하나님이 내리신 법은 오직 하나님만이 완성하실 수 있음을 나타내시기 위해, 두 번째로 주신 율법 돌판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법궤 속으로 넣으라고 하셨다. 첫 번째로 주신 십계명의 돌판은 죄인을 정죄하는 심판을 상징함으로 율법이 깨짐과 동시에 3천여 명이 도륙당하는 형벌로 보여주셨다. 두 번째 돌판은 속죄를 상징함으로 장차 십자가에서 깨진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하여짐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됨을 제시하셨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성령님은 생명을 주십니다”(고후 3:6 현대인 성경)라고 율법은 죄인의 죄를 폭로하여 죄인으로 정죄되어 죽음이 선포되는 심판의 법이라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롬 2:12 / 8:2).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율법으로는 옛사람 죄인이 죽고, 성령의 법으로,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탄생하여 의롭다함을 얻어 영생을 사는 것임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죽음의 저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타락이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극치에 도달하는 긍휼과 사랑, 구원과 영생을 얻는 은혜에 은혜를 더한 축복이 된 것이다. 이를 바울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19-20)라고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