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깊은 영적 의미

요한복음 (요 12:25-36)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18. 09:02

요 12:25-36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먼저 한 알의 밀이 되어 땅에 심어져 썩어서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생명의 법칙을 살아내시고 그 생명의 법칙이 또한 우리에게도 적용됨을 선포하신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12:25). 여기서 '자기 생명'은 육적 생명을 가리키며, ‘미워하다’는 의미는 육신의 완전한 죽음이다. 육의 죽음이 없이는 결코 영의 생명이 잉태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는 예수님의 죽으심이며, 그리고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죽음을 가리킨다. 육신의 목숨은 이 땅의 티끌로 만들어져 잠시 하나님의 영광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이 땅에 속한 목숨으로 살다가 다시 티끌로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다(창 3:19). 이 땅에 속한 육신은 타락으로 죄인으로 살다가 그 죄의 삯으로 반드시 죽게 됨을(롬 6:23) 선포하셨다. 즉 육신의 탐심대로 살면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 누구도 죄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며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영원한 사망이다.

하지만 온 인류가 죽음으로 던져진 이 세상 속에 하나님의 백성만이 죄에서 구원받아 죽음에서 살아올라 오게 된다는 놀라운 기적적 복음이 예수그리스도 한 분의 희생으로 성취됨을 한 알의 밀이 죽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는 이제 성령님의 인도와 주관으로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인으로 살던 옛사람을 미워하게 되며, 육을 따라 살지 않고 영을 따라 살아가며,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영의 새사람으로 잉태됨으로,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12:2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죄의 종으로 살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다시 태어나 영원을 사는 영생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라”(엡 4:22-24).

성도는 이제 하나님을 진정 알게 됨으로 하나님의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여 ‘자아’가 깨지는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됨으로 점차적으로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사는 자기 생명을 미워하게 되며 ‘배설물’로 여기게 되며, 하루속히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만을 소망하는 자로 이 세상에서 잠시 나그네의 인생을 사는 자들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도리어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의 진의이다.

인간은 육신의 본능을 따라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아’에만 집착함으로 주님은 이런 자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12:25)라고 부르고 이들의 결국은 “잃어버림”의 영원한 사망임을 지적하신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들이기에 절대로 자신의 삶을 간섭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나의 '주'로 선택할 수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는 것이며, 이 또한 인간의 타고난 육의 본능이다. 왜냐하면 육신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또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그 어떤 선한 성품과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은 어머니 뱃속에서 형성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죄를 떠날 수 없이 죄인으로 사는 존재로 처음부터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사 48:8),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라”(시 51:5)라고 죄인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고백하고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육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가 신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서 하려는 망상에 빠진 '첫 번째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향하여서는 그 영이 죽고, 세상을 향하여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아'가 살아난 '마귀의 후손'들이며, 절대로 스스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의 모든 간섭에 자신을 몽땅 맡기는 항복의 자리로 내려갈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오직 ‘자기만을 사랑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의 이러한 죄성을 뼈저리게 파악한 사도바울은 모든 인간은 한 가지로 무익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3-18)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즉 육은 마귀의 본능을 따라 자아 욕망과 탐심으로 악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욕심, 탐욕, 정욕, 시기 질투, 거짓, 무절제, 분쟁, 전쟁과 약탈, 폭행과 살인 등 육을 입은 인간은 이러한 본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를 두고 사도바울은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아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인간은 오직 육신의 쾌락과 물질적 향유와 자기를 나타내고 자랑하는 명예와 인기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기에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때문에 생명의 씨가 그 속에 떨어진다 할지라도 알아볼 수도 또한 받아들일 수도 없게 되며, 결국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12:2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이미 악한 마귀에게 빼앗겨 죄의 종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멸망하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절대로 구원과 생명으로 빛과 진리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일 필요성을 깨달을 수도 또한 영접할 수도 없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서두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생명으로 오셨음에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라고 이 세상 어둠에 속한 인간의 무지를 지적하고 있다. 이 세상 땅의 티끌로 태어나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갇혀있는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늘나라에서 빛으로 내려오신 메시아를 알아볼 수가 없다. 땅에 속한 육신으로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인식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도록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을 숨기시는 방법으로 십자가 구원을 성취하시고, 인간의 한계를 정해놓으셨으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다"(전 3:11). 즉 인간은 절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도, 인식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영접하는 일은 인간에게서 발휘되는 일이 아니며,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섭리와 뜻대로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로 역사를 사는 존재이다. 오직 택함을 받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의 은혜를 입혀서 당신의 나라로 이끌고 가신다. 하지만 선택에서 제외된 사단의 후손들은 자기들의 아비 마귀의 악한 본성을 따라 육신의 정욕과 탐심과 욕망으로 자기들의 욕구를 채우며, 하나님마저 자기들의 영광을 갈취하는 방패로 모셔놓고 열심히 종교 행위를 하는 외식과 불법을 일삼게 된다. 그래서 주님은 이러한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 마귀의 자식, 회칠한 무덤, 지옥의 자식이라고 저주하신 것이다.

인간은 재물의 노예가 되어 일상이 돈과 쾌락을 좇는 욕망으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탐심으로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는 야망으로 자신만을 사랑하는 집착으로 사는 존재이다. 그렇게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종교가 개입되면 곧 하나님을 자신들의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방패로 삼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도 믿고 세상 맘몬도 믿는, 즉 하나님 외에 자신의 유익에 해당되는 신이라면 그 신이 어떤 신이든 복주는 신이면 서슴없이 쫓고 섬기는 세상 재리에 잡혀 노예로 살게 되어 있다. 좀 더 많은 재물을 모아서 이 세상에서 쾌락을 즐기기 위한 욕심에 끌려 고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그렇게 오직 자기의 행복과 유익만을 위해 사는 그 인생은 행복이 아니라, 염려와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과 고통으로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육신의 쾌락은 곧바로 멸망과 지옥으로 직행하는 길로 처음부터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러한 세상 육신을 위해 사는 자를 향하여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12:25)라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심판을 선고하신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는다는 말씀이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즉 한 알의 밀이 썩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삶을 말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12:26)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려놓으신 것과 같이, 진정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예수님이 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함께 가는 자들이기에 그들이 바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들이며, 자신의 목숨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며, 육신의 욕망과 정욕대로 살던 옛사람 죄인이 십자가에 죽었으며,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된 새 생명으로 사는 자들이며, 더는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3-14). 육신대로 살면 육신의 정욕으로 죄를 따라 살게 됨으로 결국은 영원한 죽음과 지옥이다. 그러나 새롭게 태어난 자는 예수의 영 곧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만을 섬기는 자로 이끌려가게 된다. 즉 성령이 성도의 삶을 주장하여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으로 인도하심으로 육신의 일을 미워하게 되며, 바울의 고백과 같이 이 세상 육신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며, 오직 하나님의 선과 의를 향하여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영의 새사람을 입고 영원한 영생으로 살게 됨으로 “영생하도록 그 생명을 보존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자가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이 바로 육신에서 나오는 정욕, 탐심, 욕망과 같은 마귀의 본능으로 행하는 악독한 마음과 생각과 계획들이 모두 십자가에 못 박는 옛사람의 죽음이기에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은 그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한 것이다(갈 5:24). 자기 생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의 욕심과 야망으로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탐심과 타락한 마귀의 본성대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자아’의 삶을 말하며 그 결국은 멸망과 지옥이다. 결국 한 알 그대로 있다가 소멸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으로 끌려가는 성도는 당연히 육신의 허무함과 공허와 죄악됨을 깨달은 자들이기에 육신을 벗고 영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잉태됨으로 당연히 아버지와 신랑과 영원히 함께하는 하늘나라를 소망하게 됨으로 자신의 육신적 생명을 미워하게 되며 영의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영생하도록 보존하여 주신다.’ 그 삶이 바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12:26)라는 자기 부인의 순종이다.

주님을 섬긴다는 말은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믿고 그분에게 자신의 전부를 맡겨드리며 그분의 뜻에 내 삶 전체를 맡기는 자기 부인을 의미한다. 즉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있는 것이 바로 그분을 섬기는 순종의 삶이다. 한 알의 밀이 썩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만이 구원과 생명의 길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길임을 제시하여 주신다. 주님이 이 땅에서 살아내신 영광의 삶은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당신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 끝까지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삶이었다. 따라서 주님은 우리도 그분의 삶을 본받아 오직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며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여 증인의 삶으로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전파하기를 원하신다. 그리하여 주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라고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신 것이다.

사도바울이 복음의 선구자로 수많은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이 죽는 십자가 삶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예수 믿는 길은 고난의 길이요 좁은 길이요 십자가의 길임을 제시하여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롬 8:36)라고 고백하였으며, 자신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백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기독교의 역사는 한 알의 밀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는 피 흘림의 역사이다. 아벨의 피 흘림으로부터 예수님의 피 흘리심, 제자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피 흘림으로 예수의 증인이 되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가 세워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십자가를 전파하며 십자가에 자신의 전부를 못 박는 십자가 삶으로 주님을 섬기는 진정한 생명의 삶이다.

한 알 밀의 죽음은 철저한 자기희생을 통해 다시 사는 생명의 길이며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가능성을 죽이는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로 존재의 소멸이 아니라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잉태되어 새사람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부로 영원을 사는 자로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삶이다. 성도는 이제 생명의 근원이시며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함몰하게 됨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자신 또한 한 알의 밀이 되어 십자가만을 드러내고 전파하는 도살당하는 양의 희생으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는 십자가 삶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헌신임을 깨닫게 되며 그 삶을 지향하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12:26)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27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우리 주님은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아버지의 때를 따라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아버지가 원하시는 삶을 살아내셨다. 한 알의 밀이 죽어야만이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생명의 법칙으로 자신의 십자가 죽으심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고 계셨기에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당하셔야 하실 그 육체적 고통과 죄인들로부터 받게 되는 매 맞음과 춤 뱉음의 멸시와 수모를 감당하셔야 하셨다. 한 번도 아버지와 떨어진 적 없는 주님이 이제 죄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그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에 자신의 죄 때문에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고 진노의 심판을 홀로 감당하셔야 하셨기에 더욱 고뇌하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12:27)라고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하신 것이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 26:38)라고 기도를 부탁하셨으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몸부림치셨다. 피를 흘리지 않고는 우리 죄를 사 할 수도 생명을 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우리와 똑같이 육을 입은 그분이 육체로 감당하셔야 하는 그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가를 알고 계셨기에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도에 매달린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12:27-28). 주님은 자신의 뜻을 꺾고 십자가를 지는 희생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를 기도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온전한 순종에 "네가 나를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12:28)라고 친히 응답하여 주셨다. 이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천둥소리라고도 하고 천사가 말했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음성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12:30)라고 말씀하심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제 고난과 고통을 당하셔야만 하셨지만 그분이 당하는 고난과 죽음의 고통으로 우리가 그 혜택을 받게 되는 은혜의 시대가 열리게 됨을 선언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죄와 죽음의 저주에서 다시 살려내어 아버지의 품에 안기게 하는 화평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이 먼저 몸이 찢기는 채찍 맞음과 춤 뱉음을 당하는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다 당하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셔야 하셨다. 이사야 53장의 묘사대로,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으셨으며, 아픔과 고통을 겪었으며,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잠잠한 양으로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아무 능력도 행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셨다.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짓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아”(사 53:5)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신 십자가 고난과 사랑이시다.

그렇게 그분이 먼저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부서지고 찧기에 고운 가루가 됨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신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씻기에 없어지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4-56)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수 있으며, 그 구원의 성취가 바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아버지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순종과 희생으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셨으며,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천하에 나타나게 됨을 기뻐하신 것이다(12:27-28). 그리하여 아버지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사 만민의 구주가 되게 하셨으며,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으며, 심판하시는 권세를 주셨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마 11:27),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며”(마 28:16),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 5:22).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당신께서 말씀하신 밀알의 진리를 실천하셔서 만민을 위해 죽으셨으며, 만민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입혀주시는 만민의 주가 되셔서 만민의 경배와 섬김을 받는 영광의 주가 되신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바로 아버지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온갖 고통과 수치와 수모를 모두 당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가장 쓰디쓴 대가를 지불하신 희생이다. 이 사랑의 절정은 우리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죄의 고통과 죽음을 당하시고,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는 생명을 전가시켜 주시고 오직 은혜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게 하신데 있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12:30)라고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구원과 생명의 은혜를 제시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씀하셨다. 첫째, 이 세상 임금에 대한 심판, 즉 사단의 패배를 선언하신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31절), 둘째,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구원과 생명을 얻게 되는 은혜의 새 시대가 열리는 선포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32).

예수님은 자신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며, 이제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가는 심판이 내려질 것임을 선포하신다.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임금 노릇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죽도록 만드는 사단의 세력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쫓겨나가게 되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과 생명이 임하는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열린다는 증거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은 바로 이 세상 임금 사단의 세력에 대한 심판의 선포이며 사단의 머리를 부수는 승리의 선포이다. 즉 사단의 자녀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옮겨지는 대 전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를 사단이 더는 정죄하지 못하게 됨으로 죄의 문제로 우리를 결박할 수 없게 되는 자유와 승리의 선포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다. 이 선포는 모든 것이 완전히 성취됨을 알리는 복음의 선포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죄와 죽음이 영원히 없어지는 구원의 성취가 바로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가는’ 영원한 승리이다. 십자가에서 단번에 흘린 예수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0-14). 오직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것을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죄인과 상관없는 자요, 다시는 죄가 나를 주관치 못 하게 된 것이다(롬 6:14).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자신의 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림으로 영원히 우리 죄를 없애주셨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 지어다”(롬 6:10,11)라고 말씀하고 있다.

사단은 이제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신부인 나를 건드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십자가는 사탄의 패배와 멸망을 선고하는 위대한 승리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과 권능이다.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들은 사단의 권세가 그 생명만은 절대로 건드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내 옛사람이 세상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요, 이 세상 또한 심판으로 곧 멸망으로 치닫고 있기에 나에게는 죽은 세상이기에 나는 이제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의 신부로 영생을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6)라고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임을 밝히 말씀하여 주셨다.

둘째,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12:32)라는 말씀이 성취됨을 선포하셨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와 부활할 때를 가리킨다. 십자가는 비록 예수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이지만,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구원과 생명이 임하는 은혜에 은혜를 더한 생명의 충만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것이 바로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라고 말씀하신 복음의 핵심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음을 믿음으로,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고 심판의 주로 재림하실 것을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되는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되어 예수그리스도 안으로 함몰되는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열리게 됨을 제시한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분이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화평을 이루사,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 갈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하여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12:3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를 두고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5),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7)라고 은혜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입혀주시기 위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를 자신의 신부로 잉태케하여 의인이라 칭하여 주시고, 우리를 성전 삼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롬 8:1-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즉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기에 이제부터 나는 그분에게 완전히 속한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님은 무리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장차 일어날 하나님의 놀라운 일, 즉 은혜의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되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되는 새 시대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져야하는 십자가 구원의 뜻을 알지 못하였으며 십자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됨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12:32)라는 주님의 말씀에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신다고 하였는데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12:34)라고 반발한 것이다. 예수님은 불신에 가득 차서 죄와 사망의 어두움에 갇혀 있는 그들에게 빛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오도록 권면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36절).

요한복음 첫 시작에서부터 사도 요한은, 참 빛이시며 참 생명이신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되어 이 세상 어둠에 갇혀있는 죄인을 구원하여 하늘나라의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음에도, 이 세상뿐만 아니라 그렇게 목숨 걸고 율법과 제사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자고한 유대인들마저 메시아이신 예수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반대로 대적하고 멸시하고 죽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그들의 외식된 패역한 종교행위를 줄곧 폭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구원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3)라는 결론으로 혈통적 유대인의 선민사상을 부시는 선포를 한 것이다. 즉 구원은 혈통으로나 인간의 의지나 행위나 노력이나, 그 어떤 것으로도 절대로 불가능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12:35)라고 말씀하심으로 빛으로 오신 메시아가 지금 바로 너희 앞에 있으니 빛이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 빛을 영접하여 빛 안에 거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어둠에 갇힌 자, 즉 어두움의 세력에 지배당하는 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며, 악한 죄를 지으면서도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심판이며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됨을 알지 못함으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이 바로 멸망과 지옥’임을 알지 못한다는 경고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즉 너희 앞에 서 계시는 예수님 자신이 바로 구원과 생명의 빛이니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니 빛을 영접하여 빛 안에 거하라고 구원의 길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 ‘빛’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확실히 밝히고 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빛과 생명은 하나님의 본체이며 속성이기에 오직 그분 안에만 ‘생명이 있으며’ 이 생명이 바로 각 사람의 어둠을 비추는 빛이라(요 1:4)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다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어둠과 공허와 혼돈’이며, 그러한 어둠 속에 사는 모든 인간은 눈뜬 소경이기에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으로 오셨음에도 빛을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한 것이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라고 요한은 이 세상 죄인들의 실존을 지적하고 있다. 어둠에 속한 인간은 태생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에’ 절대로 생명의 빛을 찾거나 구하지도 않으며, 오리려 빛을 배척하고 대적하며, 꺼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빛이 이 세상에 내려와 어두움을 비추고 있음에도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도리어 빛을 싫어하며 꺼버리는 형국으로 악이 드러나며 심판의 근거를 스스로 쌓더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수많은 증거와 예언과 언약과 말씀을 받았으며 표적과 이적의 능력을 보았음에도 믿지 않았으며 반대로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대적하고 죽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결국 자신들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까지 죽이게 된다.

세상은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볼 수가 없다.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으로 열심히 율법과 제사로 메시아를 그렇게 갈망하고 기다리던 유대인들도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 중에 빛을 예수그리스도로, 구원과 생명의 진리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며, 오직 이들에게만 생명이 임하는 은혜가 입혀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들은 본래 ‘아버지의 것이었으며, 아버지께로소 온 자들’이라고 주님은 확인하여 주신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요 17: 6-7). 그리하여 요한은 이들을 가리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요 1:13)고 확신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직 창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만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나라로 영접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 로소이다”(요 17:9). 예수님의 구원은 이 세상 모두를 위함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만 구원하시며, 때문에 아버지께로 온 자는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으며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씀하신다. 성도는 창세전부터 택함을 받은 하나님에게 속한 자녀이기에 당연히 우리를 데리려 오신 신랑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분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말씀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 1:4-5).

그러므로 그 빛을 ‘영접하는 자’, 즉 빛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과 행위의 의지로 또는 혈통이라는 조건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주님은 자신의 뜻과 노력으로 행위의 열매를 내놓고 구원받았다고 선지자 노릇 하는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은, 행함의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버지께로 난 자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알고 깨닫게 됨으로 빛과 말씀으로 오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즉 신랑으로 믿고 영접하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믿음을 가리킨다.

천지의 창조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진리와 생명이며 빛과 영생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며,십자가 구원성취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때문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피조물은 구원과 영생으로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며, 오직 당신이 택한 백성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주시고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천국의 비밀을 알아듣고 믿게 하시며 당신을 진심으로 소유하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요한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배제하여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니라”라고 선포하심으로 인간의 선택과 의지와 노력으로 예수를 영접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 진리와 영생으로 알아보고 영접하는 믿음이 주어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분이 나를 낳아주셨기 때문에 태어났고, 그분이 나를 낳아주셨기에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된 것이며,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그분의 믿음으로 당신의 자녀에 합당한 가르침으로 기르시며 하늘나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천국 복음은 오직 선택받은 자에게만 해당되는 기쁜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