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 5: 41, 44-47)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요 5:41, 44-47
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셨다. 반대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피조된 인간은 서로 자신의 영광을 취하는데 열렬되어 있음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를 목표로 삼아 경쟁하며 싸우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법까지도 이용하여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종교행위로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추구하고 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유전과 의식과 형식들을 하나님의 일로 또는 율법으로 규정해 놓고, 하나님을 섬겨드린다는 구실로 자신들의 이름을 높여 자랑하며, 자신의 의와 가치를 쌓아서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심을 얻어내는 교활하고 패역한 마귀 본성을 가지고 있다. 주님은 이러한 종교 열심과 의지적 행함이 바로 영광의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는 바리새인의 외식이며, 회칠한 무덤이며, 마귀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마귀의 행사라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이 영광을 추구하는 높아지기의 삶과 반대로 ‘낮아지기’의 삶과 ‘종’의 삶을 살아내신 분이 있으니 그가 바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통치자이시다. 하늘나라를 사는 하늘의 백성들은 우리 주님이 사신 하늘나라의 삶으로 자신을 부인하는 티끌의 자리로 내려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지하며 세상을 향하여는 십자가 삶을 지향하는 자들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41)
우리가 믿는 예수는 고난과 수모와 죽임을 당한 십자가 예수이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취하려 오신 분이 아니며 또한 인간에게 이 세상 영광을 주기 위해 오신 세상 임금도 아니시다.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하늘나라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이 죄악된 세상에 내려오셔서 굳이 어린 아기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탄생하셨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30년이나 시골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평범한 삶을 사셨으며,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굳이 로마군에게 붙들려가서 온갖 수모와 매를 맞는 고난과 조롱과 수치를 다 당하셔야 하셨으며, 저주의 사형들인 십자가에 못을 박아 피를 흘리는 죽음을 당하셔야 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분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았으며, 아픔과 고통을 많이 겪으셨으며’ (사 53:3),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으셨으며’ (사 53:7), 무력한 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하지만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짓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며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사 53:5)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도말하기 위하여 죄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핍박당하고 고난과 수모를 받으셨으며, 죄인에게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그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입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살아내신 하늘나라 영광의 삶이다.
그분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취하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순종의 삶으로 철저한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을 살아내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그 일이 바로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 23-24). 예수님께서는 이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실 것을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 12: 28).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향한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셨고, 또한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아들을 통해서 이루시는 영광의 성취이다.
우리 주님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죄인의 육신을 입고, 죄인으로 취급받았고, 죄인으로 정죄 당하시고, 죄인으로 극심한 고문을 당하시고, 죄인으로 저주의 십자가에 못을 박음으로 자신의 의로운 피로 우리를 깨끗게 하시고, 저주와 죽음에서 살려내어 자신의 생명 안에 거하게 함으로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셨다. 그래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놓고 성찬식에서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확증하여 주셨으며, 참으로 우리의 영원한 주가 되시며, 신랑이시며, 영생이심을 증거하신 것이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44)
인간은 처음부터 흙으로 육신을 입은 나약하고 비천한 존재임을 인식하라고 선악과를 주셨다. 흙으로 빚어진 무익한 육으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로 순종할 수 없음이 실상으로 드러난 것이다. 바울이 영성으로 깨닫고 말씀하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사실 그대로 아담은 사단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됨으로 비로소 죄란 바로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마음으로 거역하는 불순종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죄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라고 인간에게 율법을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의의 법을 통하여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또한 지킬 수도 없는 육의 무익함을 깨닫게 된다. 목적은 영의 영원한 실상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며, 오직 그리스도 한 분의 구원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한 의도였다 (엡 2:8).
처음부터 율법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열심히 ‘지켜 행하여’ 인간의 거짓된 의를 세워 하나님처럼 되라고 주신 의도가 아니라, 왜 육체를 입은 인간은 ‘지킬 수가 없는가?’ 하는 인간의 패역함과 불가능함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 5:20) 라고 말씀하심으로 율법을 통하여 너희들의 죄 된 상태가 바로 열린 무덤처럼 죄가 목구멍까지 차고 넘친 상태이며, 그 열린 무덤에서 쏘다 져 나오는 것은 오직 추악하고 썩어빠진 시체 냄새가 나는 죄뿐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사도바울은 정의하고 있다. 즉 모태에서부터 전신에 차 있는 그 죄의 실체를 바라보라는 기능으로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의 실체를 인정하고 자신의 존재가치가 바로 ‘없음’의 먼지임을 자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가난한 심령으로 내려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선한 법을 이용하여 악한 죄를 더하는 범법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의 율법 행위에 대하여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요 8:41) 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들의 율법적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율법적 행위가 바로 마귀의 행위이며, 그 마귀의 행위가 바로 죄의 본성인 ‘욕심’이라고 지적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요 8:44). 즉 이들이 행하는 율법 행위가 바로 ‘마귀의 욕심’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주님은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킨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새끼, 뱀, 외식하는 자, 회칠한 무덤, 토한 것을 도로 먹는 더러운 돼지와 다른 이들을 물어뜯는 개와 이리로 비유하신 것이다.
이들은 율법이 계시하는 진리는 저버리고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는 숨 막히는 외형적인 세부 규칙들을 우스꽝스러운 정도로 이상하게 규정해 놓고 율법을 지킨다는 구실로 자신들끼리 법에 묶어놓고 위선과 거짓 의와 교만을 자극하는 종교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유전들을 율법으로 정하여 놓고 율법을 지킨다는 명의로 목숨 걸고 매진하여 자신들의 지킴을 자랑하고, 사람들로부터 의인이라 칭함을 받아 존경과 높아지기를 추구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은 율법적 행위의 의를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위엄과 영광을 얻는 방패로 삼게 됨으로 그 마음이 더욱 교만하고 완악하고 패역함으로 하나님마저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자리까지 가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 반대로 ‘서로의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도’ (5: 44) 않았으며,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지키기 위해 이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예수를 더더욱 대적하고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에게 일곱 가지 화를 선포하심으로 이들이 자신들의 의 와 영광을 세우기 위해 어떠한 악행들을 저지른지를 천하에 공포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독사의 새끼들아’ 라는 아주 강한 어조로 책망하신다.
첫 번째 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 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 13)
이들의 신앙 초점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에 맞추어 있다는 선언이다. 이들의 행위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한 자기 의 이었으며 (마 6:1),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구제하는 일을 자랑하였으며 (마 6:2),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길거리에서 기도하고,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세리와 창녀와 같은 자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의로운 자로 나타내며,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 (눅18:11-12)다고 종교 열심을 자랑하며, 구제를 할 때도 나팔을 불며 (마 6:1-4),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경문을 넓게 하고 옷술을 크게 했으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했고,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며 (눅 23:5-7),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며 (눅 16:14),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막 12:40)라고 이들의 전형적인 ‘외식’을 책망하셨다. 이들이 즐겨 먹는 것들이 바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요일 2:16) 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이들의 외식을 폭로하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키는 율법이라는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천국의 문을 막아 나서서 자신도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율법으로 죄인이라 정죄하고 못 들어가게 막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전 ‘양문 한쪽에는 이들로부터 버림받은 죄인이라 정죄 받은 각종 질병에 걸린 소경, 귀머거리, 절름발이, 38년 된 병자들이 모여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바로 자신들만 들어가는 율법의 문을 지키기 위해 은혜로 오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박해하여 죽이려는 절도이며 강도들이다.
두 번째 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외식하는 이들이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다니는 의도는 자신들을 추앙하는 자들을 끌어모아 자신들의 가치와 자존감을 높여 자기세력을 키우며 확장하여 영광의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또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나누어주는 권위를 가진 자로 자칭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다른 이들을 죄인이라 정죄하고 판단하는 영혼을 죽이는 일들을 행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이 바로 ‘삯꾼’이며, 양을 물어가고 헤치며(요 10:12),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기에 (요 10:10)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화를 선포하신 것이다.
세 번째 화: 화 있을진저 소경 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 도다 (마 23:16)
이들은 스스로 구약성경에 능통한 박사로 선생으로 인도자로 자칭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즉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취하는 사람의 교훈으로 왜곡하고 해괴한 전통 규칙들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며 거짓된 교리들을 가르쳐 자신들에게 속박된 우매한 자로 만든 것임을 폭로하고 있다. 이들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라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물질주의 전통을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상한 규칙들을 정하는 이들의 무지하고 우매함을 “소경 된 인도자”라고 부르고 이들에게 “우맹자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마 23:17,19) 라고 반문하신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제물로 드려지는 금과 은에 욕심을 부리고 있었기에 양들의 돈을 뜯어내기 위한 규칙까지 정하는 ‘돈을 좋아하는’ 절도요 강도들임을 폭로하신 것이다.
네 번째 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마 23:23)
이들은 박하, 회향, 근채의 십일조 곧 양념용 채소들의 십일조까지 꼬박꼬박 잘 드렸지만, 율법의 더 중요한 ‘의와 인과 신’은 모두 버렸다고 말씀하신다. 즉 외적으로 드러나는 세심한 조항들을 지키는 일에는 열심에 특심이지만, 신앙의 본질인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들의 영적 우매함에 대하여, ‘하루살이가 부정하다하여 걸러내면서도 부정한 짐승인 낙타는 꿀꺽 삼키는’(23:24) 자들이라고 이들의 탐욕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신 것이다.
다섯 번째 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5).
이들은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세리와 창녀’와 비교하여 자신들을 도덕과 윤리적으로 깨끗한 자로 자칭하였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의 내면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하신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8-9) 라고 이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는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과 영광 갈취에만 집착되어 있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부모에게 드려야 하는 고르반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다’(막 7:11)고 갈취하는 자들이라고 주님은 지적하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며”(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라“(마 15:11) 라고 지적하신 것이다.
여섯째 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7-28)
외식하는 이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기에’(25),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이 다 죽은 시체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이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들을 ‘회칠한 무덤’, 즉 겉으로는 칠하여 깨끗해 보이지만 무덤 안에 있는 것은 오로지 썩은 시체이며, 썩은 시체에서 나오는 것은 최악으로 더러운 것들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인간의 더러운 실체에 대하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롬 3:13-16)라고 폭로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불법을 일삼는 이들을 향하여 “소경 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6) 라고 책망하신 것이다.
일곱 번째 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29-30)
이들은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조상들의 살인죄를 덮어 감추기 위해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면서 자신들은 선지자의 피에 참예하지 않았다고 변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선지자를 죽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메시아를 대적하여 죽인 자로 결국 가게 된다. 주님은 이들이 곧 자신을 죽일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이 최악으로 가게 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핑계치 못함을 마지막 화로 선포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의와 영관을 나타내는 일에 마음이 꽂혀 있었다. 때문에 이들은 성경 말씀을 오로지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읽었으며, 성경에 없는 수많은 규칙들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놓고 ‘율법’이라 부르면서 스스로 자신들을 가두는 틀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에게만 속한 집단적 종교 놀이에 도취되어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예수를 증오하는 이들의 광적인 기세가 예수님 앞에서 여지없이 드러났고, 그동안 하나님을 섬기며 제사와 율법에 몰두한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마귀의 본색임이 드러났고, 사사건건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기준으로 예수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야심과 질투로 하나님의 아들을 적대시하는 원수로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들의 목숨으로 대대로 지켜왔던 제사와 율법을 부정하시고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시며, 자신들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패역함과 사악함을 여지없이 지적하고 폭로하며, 이들의 자존심과 선민사상과 우월성을 깨고 부수고 들어오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도 이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며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였고 죽이려는 악독한 궤계를 꾸민 것이다(마 11:18).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지킨다는 그 율법으로 자신들이야말로 범법자임이 확실히 밝혀짐으로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쌓고 있었기에 모세가 이들을 고소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너희들이 바로 너희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숭배자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 자신들의 영광과 이름을 취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며;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생명을 죽이는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이며; 종교행위로 돈과 권력을 행사하는 세상과 간음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도용하여 너희들의 탐욕을 채우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절도와 강도이며; 약한 자와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업신여기고 죄인이라 정죄하고 배척하는 난폭한 폭군이며; 너희들의 영광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살인하는 살인강도라는 죄악이다.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47) 라고 한탄하신다. 이태까지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는 충분한 증거들을 제시하셨다. 하지만 이들은 세례요한의 증언도, 이들이 믿는 하나님의 증언도, 모세 오경도, 성경 전체가 증언하여도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직접 이들 앞에서 기적과 표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설명하여 들려주어도 예수님의 증언을 받지도 믿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신다.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가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주님의 결론적인 선언은 지옥은 자신들이 뿌린 씨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말씀이다. 즉 이들이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이들 자신이 선택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깊이 탄식하시는 어조로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마 23:37). 여기서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라는 말씀은 스스로 선택한 죄의 대가라는 말씀이다. 선지자들을 죽이는 이들을 끊임없이 당신의 품에 품으시고자 애쓰셨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럼에도 이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이려고 음모를 꾸민 도저히 가망이 없는 자들임이 드러난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도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인 내가 직접 와서 증거하여 주어도 믿지 않고 죽이려고 하니 당연히 너희는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너희를 하나님에게 고소할 자가 있으니 바로 너희가 믿고 선생이라 존경하는 모세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모세의 제자로 부른 것이다. 하여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향하여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요9:28-29)라고 자신들을 모세의 제자로 부르면서도 모세가 가리키는 메시아는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주님은 ‘너희는 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너희가 좋아하는 모세의 율법은 너희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나를 믿으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너희는 반대로 죄를 자백하지도 않고 구원자를 앞에 두고도 그의 행하심과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죽이려고 하니 너희는 모세의 제자가 아니라 독사의 새끼이며 때문에 모세가 율법으로 너희를 고소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 아비는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라고 아주 치명적인 말씀을 던져 주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 (요 8:44-45). 이들은 “이들 아비 마귀에게서 났기에” 진리를 말씀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음으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지적하신다. 왜냐하면: 첫째, 이들은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이용하여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추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둘째,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로서 가인을 통해 그 본색을 드러낸 것과 같이, 지금 너희는 나를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결국 나를 살해한 살인자로 드러나게 됨으로 너희가 바로 ‘독사의 새끼’라는 것이다. 셋째, 마귀는 진리를 거짓으로 말하는 것과 같이 너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왜곡하고 도둑질하여 자신의 것으로 말하고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갈취하는 방패로 이용하고 있으니 진리에 설수 없기 때문이다. 즉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 것으로 만드는 거짓의 아비인 것과 같이 너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영광을 갈취하는 사람의 말로 바꾸어 자기 것으로 말함으로 너희가 바로 거짓말쟁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이들을 가리켜 “너희 아비는 마귀이며” “너희는 독사의 새끼”라고 저주하심으로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임을 확증하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선언을 하셨다.
우리는 유대인들의 완악함과 패역함을 보면서 우리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끈질고 추악한 마귀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와 명예와 부와 영광을 추구하는 욕망과 탐심으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자신을 부인하는, 즉 자신의 존재가치가 부정당하는 십자가 죽음과 죄에 대한 심판과 회개와 은혜의 복음을 거부하고 배척하며,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들의 거짓된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거역한다고 바울은 인간의 죄악된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롬 10:3).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서 이 세상 것들이 차압당하는 자기 부인의 십자가 삶이 복된 삶이며, ‘예수를 인하여’ 가난과 굶주림과 애통과 멸시와 핍박과 죽임을 당하는 삶이 복된 삶이라는 복음이 가시처럼 불편하며 듣기 싫기에, 전하는 자도, 듣고 깨닫는 자도 없다. 이 세상 어둠에 속한 자들은 빛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대적하며, 자신들의 어둠을 지키기 위해 빛을 꺼버리게 된다.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항복하는 자기 부인과 자아가 죽는 십자가 삶을 이해할 수도 또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오직 열린 무덤과 같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의를 거역하는 불순종을 택하게 되어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7).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 10-18). 이와 같이 인간의 의는 하나님 앞에서는 열린 무덤이며, 파멸과 고생이며, 더러운 걸레이며, 먼지이며, 배설물임을 저들 유대인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끈질고 악질적이며 무덤과 같이 더럽고 파멸인 죄를 인식하라고 유대인들을 택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하나님 구원 사역을 극구 반대하고 대적하고 하나님을 살해하는 이 세상 마귀의 후손을 대표하는 악역으로 쓰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들을 아예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다” (요 8:44)고 마귀의 자식으로 부른 것이다. 예수님은 항상 당신에게 속한 자를 ‘우리’라고 부르시고,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저희’라고 철저히 분리시키시며, 저들에게는 구원이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그 귀와 눈을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세상 끝까지 흩어져 있는 각 족속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예수의 품에 끌어모으시기 위해 이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고, 구약 역사가 이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게 하시느니라”(롬 9:18).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롬 11:25). 죄인에게 아버지의 마음, 즉 도저히 가망이 없는 패역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과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의 의와 선과 은혜를 알고 믿으라고 유대인 일부를 악역으로 사용하셨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