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6:1-5)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3. 11. 22. 02:59
 
롬 6:1-5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바울의 모든 서신 중 복음의 진수인 로마서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한 의로운 행동”, 즉 십자가에서 구원을 성취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만이 구원을 얻게 됨으로 구원은 선물이며, 때문에 구원을 얻어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것은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며, 차별 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2장에서 이방인들의 죄악들을 폭로하고, 3장에서는 율법적 행함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자칭하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과 거짓된 외식과 고집과 교만한 악행들을 적발한 후,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 아래 놓여있는 사망임을 선고한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9-12),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3:23). 그렇게 모든 사람이 저주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을 때,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3:21),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근거하여(3:22),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3:24)라고 은혜와 믿음의 복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4장에 와서는 율법이 있기 전에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여기심을 받아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음을 증거한다. 5장에 와서는 그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순종과 행함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혀주셨기에 의롭다 여기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십자가 복음을 선포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18-21). 이것이 바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5장까지의 복음의 핵심이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바울은 이와 같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가 우리에게 입혀짐으로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복음을 한결같이 반복하여 강조하고 또 강조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왜곡하는 무지와 방종 같은 질문들이 나올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또한 당시 로마 교회 안에는 은혜로 의롭게 된 사실을 오해하고 곡해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질문들을 하나로 묶어서 제출하고 그에 대한 반박을 펼쳐나간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1-2). 바울은 5장 20절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죄인에게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같은 사랑으로 은혜가 너무나 차고 넘쳐서 모든 죄를 간과하여 주시는 십자가 구원의 능력을 제시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라”(롬 3:25).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와 같은 역설로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 것은:

 

첫째, 비록 하늘에 사무치는 죄악으로 모든 인간들은 심판을 받아 죽어 마땅한 자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패역한 죄인들을 저희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으며, 온갖 오물 같은 죄악들을 몽땅 뒤집어 씌워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셨으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다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바울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온갖 사악함과 추악함과 끊임없는 불순종과 불신과 불의와 같은 죄악 때문에 손상이 되거나 지체되거나 불변성이 상실되거나 중도에서 멈추는 일은 절대로 없었으며, 오히려 당신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셔서 심히 죄 되게 하심으로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패역함을 철저히 폭로하셨음을 제시하여 ‘죄가 더하다’고 말한 것이다.

 

둘째, 오히려 그들의 극치에 달한 범죄로 말미암아 그런 죄인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자비와 긍휼하심과, 용서와 인내와 온유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이 온 천하에 알려지고 전파되었으며,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불가능한 죄인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다만 죄인이라는 그 이유 하나로 사랑으로 입혀주시는 선물임을 강력하게 제시한 것이다. 즉 인간의 모든 행위와 공력을 배제하여 오직 불가항력적 은혜가 죄인에게 차고 넘치게 덮여짐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제시하여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라고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에 묶여 죄의 종노릇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향하여 너희들이 율법을 고수하기 위해 은혜와 생명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에 죄를 더하는 극치에 도달한 악행을 저렀지만 너희가 죽인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셨고, 너희들이 거절한 복음이 온 세상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있으니 너희의 믿지 않음이 하나님의 미쁘심이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롬 3:3) 오히려 더욱 분명하여지고 온 천하에 은혜의 복음이 충만히 흘려나갔음을 제시하여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율법의 무거운 멍에와 짐을 풀어놓고 넘치게 쏟아부어주시는 은혜 안에 거할 것을 외치고 또 외쳤지만, 오리려 그들은 은혜를 곡해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운 부어진다면 은혜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더 많은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 함과 같은 망령된 무지한 질문들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외치는 은혜의 복음을 방종으로 자유로 곡해하여 ‘은혜를 더하기 위해 죄를 지어도 된다’라는 궤변으로 대항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전파를 방해 놓으려고 한 것이다. 바울은 은혜의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질 때, 그 은혜의 복음을 자신들의 유익과 이득에 이용하거나 방해 놓거나 혼란으로 선동하게 됨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이에 그들의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던져준 것이다. 즉 ‘은혜’가 무엇이며, ‘죄’가 무엇인지,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죄의 개념에 대해 무식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악용하며 복음의 진의를 곡해하는 자들에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다시 한번 이신칭의로 의롭게 되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죄와 상관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한 것이다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

바울은 죄의 본질과 불가항력적 은혜의 필연성에 대하여 무식하고 무지한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선언한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 바울은 ‘은혜로 의롭게 되었으니까 이제 내 마음대로 살고 죄를 지으면서 자유롭게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라고 궤변 하는 자들을 향하여, ‘죄를 짓지 말라. 죄를 멀리하라. 거룩하게 의롭게 살아라!’ 이와 같은 경고로 죄를 멈추기를 권면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바로 죄이며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죄의 본질을 먼저 제시한다(엡 2:1). 그중 택함을 받은 "우리"와 같은 성도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십자가에서 옛 죄인이 못 박혀 영원히 철저히 죽었음을 믿으며, 지금 살아있는 그 생명은 십자기의 피로 산 생명이며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한 의인의 생명임을 믿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라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자’라는 망령된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힌트이다. 즉 그렇게 질문하는 자들은 은혜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아직 거듭나지 못한 예수 밖에 있는 자들임을 힌트하여 특별하게 “우리”라고 명시하고, 은혜의 복음을 아는 성도라면 어찌 불신자와 같은 망령된 질문들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라고 단언한다.

 

바울은 3장과 5장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라고 죄인의 실상을 선포한다. 즉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져 나가 하나님 밖에 있는 존재 그 자체가 바로 죄와 사망임을 제시한다. 인간이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에게 속한 피조물이며 오로지 하나님의 생명력으로만이 존재가 되고 생명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객체가 된 그 순간부터 죄가 인간을 주장함으로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자”임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중 선택받은 “우리”라는 성도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죄의 종으로 살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영원히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기 때문에, 십자기 피로 깨끗함을 받은 의인은 절대로 옛 죄인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하여 그리스도 안에 함몰되어 하나가 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죄와 전혀 상관없는 ‘의인’이 된 구원의 현실을 강력하게 제시하여,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6:6-7),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는 절대로 죄 속에서 사는 자가 아니요’ ‘은혜 안에서 사는 자’임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그 죄란, 인간들의 선악 체계가 구분해 놓은 악한 일 또는 착한 일에 근거하여 행위로 표면적으로 밖으로 나타나 보이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양심적으로 짓는 보편적 죄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바로 첫 인간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져 나가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신으로 군립 하는 모든 아담의 후손들, 즉 죄 속에서 잉태된(시 51:5) 모든 육체를 말하며,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고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함과 같이 인간 자체가 바로 죄라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력을 떠난 인간은 끊임없이 육신의 탐심과 욕망으로 죄를 쌓아서 사망을 달리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르기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를 바울은 모든 육체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죄와 허물로 죽은 자’인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한다면, 어찌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헛되게 하며 욕되게 하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선포이다. 그와 같은 망령된 말을 하는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죄인으로 끌어내리려는 망령된 자로서(롬 10:6-7) 거듭나지 못한 마귀의 자식임을 힌트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그 구원의 현실과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난 의인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다시 ‘죄인으로 돌아가자’ 라고 받은 은혜를 망령되게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힌트 하여 특별히 “우리”라고 명시하고, 은혜 안에 거하기를 거절하고 여전히 율법으로 죄의 종 노릇하기를 원하는 너희가 그런 망령된 질문들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질문이 아닌가 라고 은유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와 합하여 받은 세례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의 죽으심과 그의 부활하심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즉 내 옛사람 죄인이 예수와 합하여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 죽음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분에게 속한 새 사람으로 잉태하여 하나가 되는 연합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특별하게 “합하여”를 반복하여 강조함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 옛사람 죄인도 그와 함께 죽었고, 그분이 부활하실 때 그분의 영으로 나도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그분에게 함몰되어 하나가 되었음을 확실하게 밝혀 주심으로 죄에 대하여 죽은 성도는 다시 죄인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리면 바울이 말하는 세례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물세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세례요한이 행한 세례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홍해 세례는, 유월절 날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백성을 홍해를 건너가게 함으로서 세상 애급에서 400여 년 동안 죄의 종으로 살던 온갖 더러운 수치와 죄악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살아 올라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위한 세례였다.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는 에스겔에서 이미 제시하여 주셨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물세례)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성령세례)”(겔 36: 25-26). 이 세상 피조된 썩은 것들을 섬기며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항하는 육신에 속한 더러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당신의 영을 우리 마음에 두어 영원히 함께 거하는 처소를 우리 마음 안에 세워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대로 하나님은 세례 요한을 예수님 앞서 보내주셔서 성전에서 열심히 양을 잡아 제사드리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물세례와 회개를 행하게 하셨다. 이제 더는 양이 아닌 참 제물, 즉 너희들의 모든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가 너희 앞에 나타나셨으니 성전에서 광야로 나아와 회개의 세례를 받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외치면서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거행한 것이다. 물세례의 회개는, 이스라엘이 성전 제사와 율법의 종에서 풀려나는 해방과 자유의 상징이며,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생명이 임하는 성령의 법으로 옮겨지는 은혜의 상징이며, 예수그리스도 안에 속하여 옛사람 죄인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 올라오는 성령세례를 모형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요1:33) 이라고 증언한 것이다.

 

이로 보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것이며,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세례란 곧 내 옛사람 죄인의 철저한 죽음이며, 반드시 내 옛 죄인이 십자가에서 죽어야만이 죄와 전혀 상관없는 새로운 피조물 즉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의인으로 탄생됨을 제시한다. 그 옛사람의 죽음은 나 홀로 또는 예수님 홀로 죽으시는 죽음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와 합하여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만이 내 죄가 영원히 죽고, 그리스도의 의로운 영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의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6: 3-4)라고 확실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가 예수와 합하여 함께 죽는 세례를 받아 죄가 영원히 도말되는 장사를 지냈다고 말하는 것은, 세례요한의 외침과 같이 율법 행위의 종말과 성령 생명의 법이 우리를 주장하는 은혜시대의 도래를 제시한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6: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이다.

 

성령 세례 :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바울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6:5).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6:8),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11)라고 예수와 합한 십자가의 죽으심은 육신에 속한 죄의 사망이요, 예수와 합한 부활은 영에 속한 새 생명, 성령의 법을 세우려 하심임을 제시한다.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 10:9).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6)이다. 즉 예수 부활은 죄로 죽은 나를 새로운 생명으로 살려내는 영으로 잉태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늘나라로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이기에 만약 부활이 없다면 나는 죄인으로 저주의 십자가에서 죽은 상태로 있을 뿐(갈 3:13) 영생하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6:9).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6“11).

 

바울은 십자가 죽으심의 목적이 부활에 있음을 제시한다. 만일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그 구원은 생명과 소망이 없는 죽은 구원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고전 15:17)라고 생명이 예수 부활에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구원이라는 진리도 믿음도 헛것이 되며,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으로 생명이라는 영생이 있을 수도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 20:38)라고 생명이 부활에 있는 진리를 선포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 죄로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는 부활의 영이 내 안에서 새 생명을 잉태 시켜야 만이 나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으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율법을 주신 것은 이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복음을 붙들라는 것이며, 십자가를 주신 것은 구원의 은혜를 깨닫고 부활의 영으로 거듭나라는 뜻이다. 복음이 왔으면 율법의 수건을 벗어던져야 하며, 예수와 합하여 부활하였음을 믿으면,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묶여있지 말고 부활한 예수 안에 함께 거하는 은혜 속에서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6:9-11)라고 확실한 은혜의 복음을 외친 것이다.

내 옛 죄인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늘나라 의인으로 탄생하는 성령세례는 구원에 이르는 완전한 길이다. 거듭나기 전 우리의 영은 죄로 인하여 죽은 상태였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성도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여 옛 죄인은 영원히 죽고,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는 의인이 된 것이며, 이는 하늘나라의 사건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입혀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성령으로 잉태한 영적 생명은 하나님의 속성이기에 영원히 죽지 않은 하늘나라에 속한 생명이며(엡 2:1,5),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피조 된 인간의 그 어떤 행위와 능력으로도 절대적으로 불가능함을 확실히 밝히는 진리이며, 이 땅에 속한 육신을 벗고,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하늘에 속한 자로 탄생되는 하나님만이 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이다. 바울의 말대로,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딛 3: 5)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롬 8:1-2).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외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