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1:21-25)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24. 04:54

롬 1: 21-25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만물을 통하여, 예수긔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통하여, 분명히 보이셨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인간은 타락으로 그 영이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하나님께서 영적 눈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 3:10-11). 그리하여 요한은 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유대인들마저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고 지적한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요 1:11-13). 인간은 타락으로 그 영이 죽어있기에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 나지 않으면, 즉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지 않으면, 육신으로는 절대로 영이신 하나님을 감지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욕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1-2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을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로 정하셨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다”(벧전1:20)고 말한다. 천지창조 전부터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된 만물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복음’을 담고 있다. 이 역사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이며,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약속들을 근거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과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오직 구원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만을 계시하고 있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엡 1:11). 그럼에도 이 땅의 존재들은 빛과 생명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하였다(요 1: 3-5).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과 약속과 율법과 제사가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다(요 1:11). 그들에게 핑계할 수 없는 수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음에도 끝까지 메시아를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이는 살인까지 저지른 것이다. 바로 이 상황을 바울은 ”그들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나님으로서 영광스럽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그들의 생각은 쓸모없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졌습니다"(1:21)라고 인간의 우매함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의 타락

이스라엘은 구약 역사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며, 이 세상 물질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바알신과 같은 이방 허수아비 신들을 줄기차게 섬겨왔다. 자신들의 육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떤 신도 마다하지 않고 산당을 짓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워 제사를 드리는 하나님과 이방 신을 혼합시키는 음란한 우상숭배로 수시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왔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지혜를 자랑하고 일천 번지 제사로 하나님만을 섬겼던 솔로몬의 말년에도 일천 명의 이방 여인과 간음하여 세상 온갖 잡신들을 다 끌어모아 산당을 짓게 하고 이방 신을 따르는 엄청난 우상숭배에 백성들을 빠지게 하였다. 바로 이스라엘 전체 민족의 우상숭배와 극도로 타락한 죄악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하나님은 수시로 그들의 끝없는 우상숭배에 진노하셨고 징벌과 심판을 내리셨으며 결국 나라를 잃고 유리 방랑하는 민족이 된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패역함이 곧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타락임을 지적하여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1-25)라고 인간의 죄악된 근본을 지적한다.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반항하고 대적하며 세상과 간음하는 우상숭배로 극도로 패역한 역사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여 보살펴 주시고 지켜 주시고 사랑으로 품어 주셨음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인의 악한 가지가 되어 버렸다는 말씀이다. 즉 하나님의 지키심과 은혜를 뿌리치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버러지 형상 앞에서 절하며 제사를 드리는 악행들을 행한 것이다. 그 음란과 교만과 배신과 불순종에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그 악에 대한 심판을 선고하셨다(겔 17:9, 18-21). 이스라엘의 기나긴 구약 역사는 모든 인간의 탐심과 욕망과 정욕으로 ‘자아’에 집착하는 집요함과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끈질긴 거머리 같은 패역한 죄성을 낱낱이 드러내어 인간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우매함과 무지함을 깨닫게하는 역사이며,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철저히 기각되는 역사이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도 여전히 저희 조상의 죄악된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그들의 조상보다 더욱 완악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멸시하고 박해하며, ‘나’라는 우상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죽여 버리는 살인까지 가게 되었음을 바울은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다”(1:26)고 말한다. 인간의 완전한 패역함을 철저히 드러내어 보여주시기 위해 저희를 내어 버려두셨다는 무서운 심판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4-45)라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이다고 저주하신다. 즉 너희는 “아비 마귀의 욕심대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악용하여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챙기는 자들이었으며; 살인자 마귀를 본받아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하는 악한 자들이며;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여 자기 것으로 말하는 거짓말 쟁임을 지적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시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라고 지적한 자들은 바로 언약과 약속을 받은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가리킨다. 즉 로마 교회 안에 침투하여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는 유대주의 율법주의를 부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에 묶여있어 스스로 자신들의 월등함을 자랑하며 기득권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는 거짓된 의와 이 세상 썩은 영광을 추구하는 데에 집착하여 자신들에게만 속한 집단적 종교 놀이를 학고 있었다. 그들의 영적 무지와 교만에 대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 즉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눈을 떴다고, 본다고 하고, 구원받은 자로 자처하는 그들이 바로 메시아를 알지 못함으로 죄와 어둠에 갇혀 있는 소경이며, 죄인 그대로 죄 속에서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선언하셨다.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요 8:21). 우준한 그들은 자신들이 죄와 사망에 묶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스스로 하나님을 안다고 열심히 제사로 섬기며 율법을 행하였지만, 사실은 이 세상 썩은 의와 영광을 추구하는 우상 숭배였으며,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 진리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법으로 악용한 목이 굳은 독사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차라리 맹인 됨을 인정하면 그래도 구원의 가망이 있으련만’, 맹인이면서도 본다고 고집하고 여전히 죄를 행하고 있으니 죄 사함이 없는 영원한 죽음임을 선언하셨다(요 8:24).

바울은 이와 같이 율법으로는 박식하며 스스로 지혜 있다고 자랑하나 실상은 진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임을 가리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영적 구원과 영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예수님이 선포하신 생명의 말씀을 배척하며 대적하여 죽이는 일에 열심을 부린 것이다. 하나님의 선한 법마저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 방패로 삼고, 자신들의 율법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며,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진리를 말살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의 죄악을 폭로하는 십계명을 주어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며, 진리의 영을 죽이는 하나님마저 살해하는 ‘살인하는’ 자들임을 지적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 질하는’ 좀 먹는 벌레이며, 이 세상에서 으뜸이 되고자 ‘세상과 간음하는’ 자들이며, 군대 귀신들린 광인과 같이 쇠사슬로 묶여놔도 감당이 안 되는 목이 굳은 ‘독사의 새끼’들임을 마태복음 23장에서 철저하게 폭로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지옥의 판결을 어떻게 피하겠느냐”(마 23:33). 유대인들은 바로 우리 모든 죄인의 대표이다. 우리는 본래 마귀, 뱀의 유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타락함으로 마귀의 자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한 죄인들이다.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21-23) 섬기는 손색이 없는 ‘마귀의 자식’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다"(엡 2:1).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 세상에서 피조된 사람, 버러지. 금수, 모두가 이 땅의 산물이며 그들의 특징은 썩어지고, 변하며, 멸망으로 없어지는 것들로 정해 놓으셨다. 천지창조는 하늘나라의 계시와 모형이다. 그분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실상, 즉 창세전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을(마 6:10) 나타내시기 위해 물질세계를 창조하셨다. 이 세상은 태초로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나타내시며, 이루시며, 어떻게 그분이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입혀주시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드셨다. 처음부터 인간은 영원을 사는 하늘나라의 영적 존재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티끌로 만드셔서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없음’의 존재로 정하시고 죽음과 죄 아래에 가두어 두셨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은 하늘나라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잠시 존재하며 반드시 종말로 없어진다.

이 세상과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의’ 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또한 영원한 진리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나타내시기 위해 존재하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으키시는 모든 일들은 협력하여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나타내시며 이루시는 선한 뜻, 즉 하나님의 복음을 담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사람들이다(사 43:7,21). 즉 그분이 먼저 자신의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창세전 그리 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엡 1: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엡 2:10) 들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구속의 대상으로 지우심을 받았고, 때문에 우리를 이 세상에서 구원하여 은혜를 입혀주는 일이 그분의 행사이며, 영광의 성취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일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셨다(요 12:28 / 17: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아는 성도는 오직 그분을 드높이 찬양하며 감사하며 그분의 은혜안에서 기뻐하는 일이다(엡 1:6, 시 106:1).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1-25)라고 인간의 패역함을 지적한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죄악이다.

이스라엘은 줄곧 하나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며 증오하시는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를 보면, 열왕기하 21장에서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죽자 이내 우상의 산당을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쌓고 자기의 아들들을 우상의 제단에 불살라 바치기도 하고, 점을 치고,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끌어들이는 악들을 서슴없이 행하여(왕하 21:1-10)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였다.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를 버려 그 대적의 손에 붙인즉 저희가 모든 대적에게 노략과 겁탈이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 열조 때부터 오늘까지 나의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노를 격발하였음이니라”(왕하21:12-15). 그렇게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지키심과 은혜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다른데서 힘을 빌려 자신들을 세우려고 이방 우상 앞에서 절하며 제사를 드리는 악행들을 행하여 왔다. 신약에 와서 그들은 저회 조상들보다 더욱 패역하고 지독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친히 저회 앞에 나타나셔서 당신이 바로 메시아 이심을 수많은 증거들로 나타내어 보여주셨음에도 그들은 듣지도 않았고, 오히려 증오하고 핍박하는 광적인 기세로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멸시하였으며, 의로운 구원사역을 극구 대적하며, 자신들의 선악구조로 하나님의 아들을 ‘죄인’이라 판단하고 정죄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악독한 궤계를 꾸몄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데까지 간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진리를 대적하는 사악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1:24-25)라고 그들이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쌓아서 스스로 멸망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으며, 절대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제시한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율법을 지킨 자가 아니라 율법의 진의를 거슬러 율법을 범한 자들이다. 즉 자신을 신으로 섬기는 우상 숭배자이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영광과 이름을 갈취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자들이며; 안식일을 지킨다는 구실로 생명을 죽이는 외식하는 자들이며; 기득권을 행사하여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세상과 간음하는 자들이며; 진리의 말씀을 도용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절도와 강도이며; 약한 자와 가난한 자와 병자들을 업신여기고 죄인이라 정죄하고 배척하는 폭군이며; 자신들의 영광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살인하는 죄악이 천하에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는 무서운 심판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두 번째는, 이 세상 육신에 속한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죄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며 충만한 복과 자연과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제사장의 역할을 주셨다(창 1:28). 즉 그 풍성한 복과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유지될 수 있게 하셨다. 왜냐하면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주관하시며, 말씀이 곧 생명이시기에 그분의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죽음이며 그분의 영광에 대한 침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창조주이신 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나의 말에 순종할 때에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의미에서 ‘선악과’에 ‘먹지 말라’는 가시적 명령을 붙여주셨다. 하지만 인간은 이 땅의 티끌로 지음을 받은 이 땅에 속한 존재이기에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는 탐심으로 작동하여 스스로 생명을 파괴하기 시작하였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놓음으로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죄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자가 된 것이다. 축복과 번성이 아니라 죄가 범람하여 심판에 이르렀으며 (노아 홍수 심판), 저주받은 땅에서 노예로 살다가 멸망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된” 아담의 후손들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1:25)고 말한다.

세번째는, 인간의 우매와 무지이다.

우매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자신을 위한 오만가지의 신들을 만들어 마음에 모시고 있다. 인간의 마음은 무모와 어리석음과 무지와 우매함으로 허망한 것들을 하나님으로 상상하여 섬긴다. 하늘에 있는 태양과 별들을 신으로 형상화하여 숭배하며, 땅에 있는 짐승들을 신으로 섬기며, 인간의 형태로 만들어 놓고 섬기며, 그것이 괴물의 형태이든 상관없이 마구 끌어다가 신으로 둔갑한다. 인간은 타고나면서 ‘공허’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 공허에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채우려고 하는 욕망과 탐심이 작동함으로 천성이 자신을 위한 우상 숭배에 기울어져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각종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하나님을 결부시키며,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되기를 원하여 그 앞에 절하며 제사드리는 망령된 짓을 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편이 되어 자신들의 탐심과 욕망을 들어주고 채워주는 허탄한 신을 추구하며, 눈에 보이는 나무, 돌, 금조각과 같은 썩은 것으로 신들을 조형화하여 그 앞에 절하며, 소원을 빌며, 섬기는 우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첫 계명에서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하고 명하셨다. 즉 하나님을 너 자신에게만 국한시키는 우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3-5).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 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신 4:16-18)라고 분명하게 이 땅의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을 더럽히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엄에 대한 치욕적인 모독이며, 하나님의 신성을 더럽히는 불경건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는 스스로 진노를 자초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완전해지는 그 어떤 기능도 능력도 역할도 주지 않으셨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죄인의 역할을 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그분이 이루어주신 십자가 구원을 두 손을 들어서 받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엡 2:8),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고 고백한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성도는 이 세상 멸망 중에서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어 그리스도의 것으로 ‘불러내어진’ 하늘나라 존재이다.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당신의 자녀로 이미 택하여 놓으셨다는 말씀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5).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이것이 은혜를 입어 구원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현실이다. 이는 나의 선택, 나의 의지, 나의 노력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정하셨기에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으로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영화로운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육의 본능으로 죄만을 생산해 내는 패역한 자들이다.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바른길을 벗어나 제멋대로 뻗어나가 탐심의 배를 채우는 패역한 자로 열린 무덤과 같이 악취만 뿜어내는 송장과 같은 존재이다. 그중에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만이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와 주셔서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불려내어 은혜를 입혀주셔서 당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당신의 아들로 탄생시켜 주신다. 바울은 자신의 체험으로 그 한없는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갑자기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외친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 법으로도 하나님의 법으로도 철저한 죄인이기에 저주의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지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 멸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회생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하나님 홀로 성취하여 주셨기에, 아무 조건과 대가 없이 오직 사랑과 은혜로 입혀주시는 구원이며 하늘나라를 사는 영생이다. 우리의 자격이나 열심과 노력의 정도에 따라 얻어지거나 취소되거나 중도에서 탈락시키는 그런 조건적인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을 따라 우리에게 임한 구원은 영원한 것이며, 그 거룩에 합당한 자로 완성하신다. 그 풍성하신 은혜와 영광에 바울은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