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15-18) [1]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종의 삶이란?
롬 (6:15-18)
15 그런즉 어찌하리오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오 그럴 수 없느니라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오 그럴 수 없느니라 (15절)
바울은 로마서 시작부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는 주제로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에서 구원을 이루어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고 복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율법적 행위를 주장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이 외치는 은혜의 복음을 비방하며 방종으로 곡해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입니까?”(6: 1,15, 현대인 성경)라는 궤변으로 은혜의 복음 전파를 방해 놓고 있었다. 이에 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다”라고 단언하며, 이에 대한 답변으로, 첫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6:2), 즉 너희는 죄에 대하여 죽었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난 그리스도의 지체인데 어찌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릴 수”(6:13)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반박이다. 둘째,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6), 너희가 본래는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른 자였으나 죄와 율법에서 해방 받아 의에게 종이 되었으니(6:18) 어찌 계속 죄의 종으로 있어 스스로 멸망을 자초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반박이다.
바울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받아”(롬 8:2)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지체가 된(고전 12:27) 성도라면, 또한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거하시는(고전 3:16,23) 은혜의 복음을 깨달은 참된 성도라면, 절대로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다시 죄의 종으로 돌아가 죄 가운데 거하거나 자신을 죄에 내주는 그런 어리석은 일은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이제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며(6: 11-15),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기”(6:18)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에 부정과 불법을 위해 여러분의 몸을 죄의 종으로 드린 것처럼 이제는 여러분의 몸을 의의 종으로 드려 거룩하게 살도록 하십시오”(6:19 현대인 성경) 라고 권면한 것이다. 내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죄인이었던 내가 의인이 된 것은 그분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선한 뜻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행도 아니며 율법적 행함도 아니다. 바울은 율법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요 (갈 3: 10),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이라” (갈 2:16)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날 수가 있었다. 그분의 의로운 죽음이 나를 영화롭게 하였고 그분의 영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의인의 신분으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었으며, 그분이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심으로 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연합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가 있었다. 내가 의인이 된 것은 그분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아무 대가 없이 나에게 입혀 주신 은혜이다. 그런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 24). 이는 내 행위와 노력과 상관없이 내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하늘나라에서 이룬 뜻이기에 값없이 내려주시는 은혜와 영광의 구속이다. 즉 십자가의 사랑이 성취되는 순간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를 입어 당당한 의인이 되어 아버지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너희는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법에 묶여 종노릇 하기를 원한다면 그 결국은 사망이다(6:16)고 최종적으로 갈 곳이 지옥임을 확실하게 지적한다. 하지만 너희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은혜 아래 거한다면 ‘그 마지막은 영생이다’(6:22)라고 은혜 아래 거하기를 원한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종의 개념
그 당시 종이라는 개념은 배 밑에서 쇠사슬에 묶여 노를 젓는 배와 운명을 같이 하는 노예를 말한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고 배와 같은 어떤 것에 묶여서 그 묶인 것과 운명을 같이 함을 말한다. 만약 배가 파선하면 같이 파선하게 되고 배가 침몰하면 같이 침몰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임의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운명이다. 고대 시대 사람이 종이 되는 경우에는, 첫째는, 전쟁에서 패배하여 자유를 잃고 쇠사슬에 묶여 종이 된 선택권과 결정권을 박탈당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도구로 사는 인생으로 전환된 경우이다. 둘째는, 부모가 종이기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권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종이 된 경우이다. 셋째는, 빚을 갚지 못해 채권자에 의해 노예로 팔려 종이 되는 경우이다.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온 인류가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세 가지 경우에 해당되는 철저한 죄의 ‘종’이며, 그 결국이 ‘사망’임을 제시한다.
첫 인간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죄의 노예가 된 것이며, 죄와 한 몸이 되어 죄만을 쏟아내어 스스로 사망에 이르는 심판을 자초한 것임을 바울은 제시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죄와 사망이 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할 그 어떤 능력과 기능도 방법도 전혀 없는 ‘종’ 그 자체이다. 그렇게 죄의 노예로 사망에 놓인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은 우리가 그분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구원받은 것을 값으로 산 것이라고 말 한다(고전 6:20). 즉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속량하여’ 주시기 위해 그분이 희생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몽땅 지불하시고, 당신의 의로운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 즉 당신과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신부로 아버지의 아들로 탄생시켜 주셨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지체이다’(고후 6:19-20), 그러므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6:19)라고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살아낸 것과 같이, 모든 믿는 자들도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사는 종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7-8).
너희는 율법에 속한 죄의 종이냐 ? 아니면 은혜에 속한 의의 종이냐 ?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의 종이란? 과연 종은 선택권이 있는가?
바울은 ‘죄의 종’이라는 개념을 단순히 죄가 시키는 대로 죄를 짓는다는 의미보다는, 죄와 한 몸이 되어 죄로 존재하는 그 자체를 말함으로 ‘사망’이라고 선고한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라고 예수님도 죄와 종을 동일한 하나로 말씀하셨으며, 죄가 육신을 주관하는 한 덩어리로 인간 육신에서 나오는 모두가 죄일 수밖에 없으므로 인간 자체가 곧 죄이고 종이며 그 결국은 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6:16).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6)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의 이 말씀은 우리가 선택한 그 선택에 의해서 죄의 종이 될 수도 또한 의의 종이 될 수도 있다는 인간의 선택과 의지에 근거된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종”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격이 부인되고 주권과 자유가 박탈된 자로 주인의 소유로 살기 때문에 종은 자신의 의지를 내 세울 수도 선택과 결정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종’이다. 다만 주인이 나를 선택하였기에 나의 생명은 주인의 것이 되며, 주인이 시키는 대로 명하는 대로 따라서 순종하는 것이 곧 종의 본분이다.
바울이 특별하게 ‘종’이라는 어구를 사용한 의도는 무엇인가?
바울은 특별하게 율법적 행위로 의와 가치를 쌓아서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 자랑하며,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심을 얻어내는 상좌 앉기를 좋아하는 그들에게 ‘종으로 드려’라고 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 높아지기를 추구하는 상좌에서 내려와 은혜의 복음에 순종하는 ‘종’의 자세로 은혜 아래에 있기를 원한 것이다. 율법이 너희에게 주어진 것은, 열심히 지켜 행하여 인간의 의를 세워 하나님처럼 되라고 주신 의도가 아니라, 육체를 입은 인간은 ‘죄의 종’으로 태어났기에 죄만을 행하는 열린 무덤처럼 죄가 목구멍까지 차고 넘친 상태이며, 그 열린 무덤에서 쏘다 져 나오는 것은 오로지 추악한 죄뿐이라는 전신에 찬 죄의 실체를 깨닫고,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는 율법에서 벗어나라는 권면이다. 즉 율법적 행위로 의에 도달하여 높아지기를 추구하는 그들에게 반대로 낮아져서 자신을 부인하는 티끌의 자리로 내려가는 ‘종’이 되어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을 의지하고 순종하기를 권면한 다. 그리하여 바울은 “여러분은, 여러분이 복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까?”(새 번역)라고 너희는 지금 누구에게 속한 종인가를 질문한 것이다. 만약 너희가 율법 아래 있으면 그 율법이 죄에 대한 심판을 요구하기 때문에 죄의 종으로 사는 너희는 사망에 이르지만, 십자가 복음에 순종하면 은혜로 말미암아 의에 이른다고 말한 것이다.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6:16).
이와 같이 바울은 특별하게 ‘종’ 과 ‘순종’이라는 어구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선택권 없이 태어나면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 묶여 있는 철저한 ‘종’임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종이 어찌 주인 행세를 할 수가 있겠으며, 죄의 종이 된 너희에게서 어찌 의로운 것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절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죄의 종으로 사망에 놓여있는 너희가 어찌 율법적 행위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릴 수가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너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를 의롭게 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오직 은혜를 입어서 얻은 것이다! 라고 확실하게 복음을 선포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 (복음)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7-18).
왜냐하면, ‘종’ 그 자체는 자기의 주권과 선택과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의는 인간의 의지나 선택이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의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진리에 우뚝 서서 의에 이르게 된다. 때문에 율법적 행위로 의에 이르러 하는 자는 오히려 은혜에서 끊어져 나가 죄를 섬기는 종으로 그 결국은 사망임을 너희는 왜 깨닫지 못하는가! 깨달으라는 일갈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는 믿음만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16절),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17절)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8절),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19절). 오로지 십자가 복음에 순종하는 ‘종’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 영생에 이르는 복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2-23).
바울이 이와 같이 반복하여 죄의 종에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인으로 태어난 내 옛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죄의 노예로 저주와 형벌 아래 있었던 존재였으며, 그 옛 죄인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었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그 죗값이 치러졌으므로 이제는 율법의 정죄와 심판에서 벗어나 은혜 아래 거하는 새사람임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8). 우리는 이제 ‘율법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자가 되었음으로’(갈 2:19), 두 번 다시 옛사람 죄인으로 돌아가 죄의 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6:19). 즉 율법 아래 있었던 너희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영원히 죽었으므로, 다시는 율법으로 돌아가 죄의 종으로 사망을 자초할 수 없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된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거룩함에 이르는 새 생명 안에 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너희는 본래 죄의 종이었는데 은혜의 복음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죄로부터 해방 받아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선포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7-18). 이와 같이 바울은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의 종이 된 의로운 하늘나라 신분에 대하여 가르치며 죄의 권세를 이긴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고 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본래 우리 옛사람은 죄에 이끌려 죄만을 생산하는 죄의 종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교훈의 본인 복음에 순종하여 의의 종으로 거듭났다고 선포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7-18). 즉 너희에게 전하여진 복음의 말씀을 진리로 들어서 마음에 순종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의가 되었으니, 의가 너희를 주장함으로 ‘의에게 종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진리로 받아먹지 못하는 자는 죄인 그대로 육신의 탐심에 이끌려 그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하여 사망에 이르고, 어떤 이는 말씀을 진리와 생명으로 받아먹음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종으로 의에 이르렀다는 말씀이다. ‘의에게 종이 되었다’는 말은, 전적으로 주인이 입혀주시는 은혜의 옷을 입고 은혜 안에서 진리의 영,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살아가게 되며, 반드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은 의로운 ‘아들’로 완성되는 지향성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4:6-7)라고 아버지의 아들로 하늘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사는 자로 완성됨을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곧 죄이며 사망임을 경험하고 깨달은 자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을 붙들고 순종하며, 이제 다시는 손을 뻗어 선악과를 따 먹지 않게 되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점도 흠도 없는 진정한 아들로 새로운 창조를 일으키는 선한 일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주심을 제시한다.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죄의 종으로 법을 행하여 사는 자가 아니라, 그 법의 진리를 마음으로 갖고, 심비에 새겨서 진리에 서게 되면 그것이 곧 ‘순종’이다. 율법 속에 담아주신 진리는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성전과 제사와 율법, 모두가 예수라는 진리를 담아서 그 진리를 생명으로 가지라고 주었는데 진리는 버리고 껍데기만 붙들고 희생 제사만 지내다가 결국은 심판으로 끝나게 됨으로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른다’(6:16)라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이 가리키는 진리를 아는 일과 믿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율법에 묶어놓고 지키고 행하여 의를 쌓아서 하나님처럼의 행사를 추구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결국 율법에 묶여 죄의 종으로 살던 그들은 진리이신 예수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서, 그리스도를 살해한 살인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종의 삶이란?
구약 이스라엘이 살아낸 종의 삶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언약 속에 들어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땅의 것을 주셔서 하늘의 것을 깨달아 하늘의 존재가 되는 그 과정에서 먼저 ‘종’의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셨다. 그 시작이 바로 이스라엘이 세상 애급에서 살아낸 430년 종살이다.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행 7:6). 이스라엘은 야곱의 아들 요셉이 종살이로 애급에 팔려간 것에서 시작하여, 애급이라는 이방 땅에서 애급 사람들의 학대와 괴롭힘을 당하는 종살이로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종의 삶을 먼저 살아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왕 같은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 위에 군림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반대로 제일 낮은 자리에서 주인을 섬겨 드리는 종의 삶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연단과 훈련을 통과하게 된다는 것을 먼저 배운 것이다. 그 종의 삶에서 이스라엘은 쇠잔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날로 번창하고 왕성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되었고, 그렇게 천한 종에서 큰 민족으로 세워지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택하여 지도자로 세우시고 200만 명으로 창성한 이스라엘을 애급의 종에서 빼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괴롭힌 세상 애급은 심판을 받게 하셨다.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먼저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며 그렇게 죄의 종으로 사망에 놓인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성취로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옮겨졌음을 이스라엘의 종살이와 출애굽으로 보여주셨다.
이와 같이 ‘종’의 삶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섭리이며, 반드시 이 세상에서 겪어가는 과정임을 계시하여 바울은 굳이 ‘종’이라는 익숙한 단어를 쓴 것이다. 모든 인간은 육신으로는 이 땅에 묶여 육의 탐심을 이루는 죄의 종으로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살다가 한 줌의 흙으로 ‘없음’이 되는 죽음으로 끝나는 사망이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하늘나라 백성으로 거듭나 하늘나라 영생을 살게 된다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2-23).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 묶인 종이 아니요 하늘나라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들에게만 영적 눈을 뜨게 하셔서 이 땅의 것으로 진리를 깨닫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오로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만을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모든 간섭과 주관하심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리는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의 의와 선과 영광을 나타내고 전파하는 삶으로 이끌려가기 때문에 ‘의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택함과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위대한 선지자들은 스스로 자신을 ‘종’이라고 부름으로 또는 종이라 불림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뜻과 말씀만을 전달하는 순종으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종의 삶을 살아낸 것이다. 종은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주인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사는 자이며, 주인에게 죽기까지 복종하는 자이며, 오로지 주인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전적으로 주인에게 의존하는 자임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종”이라고 불러주신(민 12:8) 모세의 삶은 애급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탈출시킨 지도자로 40년 광야에서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겨드리는 종으로 충성하였다(히 3:5). 메시아의 구원 성취를 선포한 대 선지자 이사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 여호수아, 다윗, 사무엘과 같은 많은 선지자들 모두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역할에 충성을 다한 충실한 종이었으며, 하나님이 하라는 말씀만 전하고 하라는 일만 수행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린 종의 삶을 살아냈다.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며 예수그리스도만을 드러낸 세례요한은 자신에 대하여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 1:23)라고 부른 것과 같이 실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율법의 마침과 복음의 은혜 시대를 여는 종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다.
‘예수그리스도의 종’ 바울이 제시한 ‘종’의 삶이란?
바울은 로마서 첫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롬 1:1)이라고 자신의 신분이 곧 ‘종’임을 확실히 밝힘으로, 큰 자 되기를 추구하며 오로지 자신의 의와 영광만을 추구하는 유대 율법주의와 육신에 속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으면 모두가 죄의 종이며 그 결국은 사망임을 확실하게 선포함으로, 모두가 십자가 복음에 순종하여 구원에 이르는 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바울의 간절한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6:16). 바울이 이와 같이 ‘종’이라는 단어로 십자가 복음을 설명하는 것은, ‘종’이 되기를 거부하고 율법적 행위로 높은 상좌에 앉으려고 하는 그 탐심이 바로 죄에게 자신을 드리는 죄의 종이며, 그 결국은 사망임을 지적함으로 율법에서 벗어나 ‘종’의 자세로 내려와 은혜 아래 있기를 원한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 복음과 운명을 함께 한 “예수그리스도의 종”의 삶이 가장 영광스러운 삶이며 자랑스러운 삶이며 고상한 삶임을 자신의 종의 삶으로 증거하고 확증함으로, 이 세상 육신의 의와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이 세상 썩어 없어질 ‘배설물’ 같은 것들을 버리고 은혜의 복음에 순종하는 ‘종’의 자세로 구원과 생명에 이르기를 원한 것이다. 죄인들이 끊임없이 토해내는 욕망의 배설물 같은 이 역사가 얼마나 추악하고 사악하고 더럽고 허황된 것이며,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지를 깨닫기를 원하였으며, 열심히 지키고 행하는 법으로 의롭게 되거나 완성의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저주와 사망으로 치닫고 있음을 깨닫기를 원한 것이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올리사으며”(삼상 2:8) 함과 같이, 우리가 바로 그런 쓰레기와 거름 더미와 같은 악인의 자리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며,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죄와 죽음의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어 주셨으며, 그분을 믿는 믿음을 주셨으며, 그분의 영으로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되어 의롭게 된 그 놀라운 은혜를 깨닫고 자신을 부인하는 ‘종’의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은혜 안에 거하기를 원한 것이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21).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라는 자랑과 담대함으로 자신이 살아 있는 의도와 살아가게 되는 목표를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신분으로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