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 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복음 / 율법의 모형 / 육의 죽음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선악과 나무는 율법의 모형이다
'선악과’는 글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이다.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기에 죄를 알게 된 것과 같이 ‘선악과’는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의 모형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선악과’를 주시면서 ‘먹지 말라’는 첫 계명을 주셨다. 아직 사단의 존재와 죄를 모르는 상태에서 첫 인간 아담은 먼저 죄를 알게하는 ‘선악과’나무를 대면하게 되었고, ‘먹지 말라’는 첫 계명을 받았다.
인간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지식의 실과를 먹음으로 이 세상에는 선하신 하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을 괴롭히고 파괴하며 멸망시키는 살인자 사단이라는 악도 존재함을 알게 되었고 인간 자신의 정체를 깨닫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단은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요 8:44)함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거짓을 고하며, 인간을 멸망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한 본성을 가진 존재임을 인간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선이시며, 의로운 분이시며, 자비와 용서이시며, 빛과 생명이시며, 기쁨과 사랑이심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선악과나무는 인간이 불순종함으로 내린 저주와 죽음의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살리시는 분이시며, 목적은 물질적 육체를 벗고 영의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는데 있다. 그리하여 동시에 선악과 바로 옆에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계시하는 생명나무를 함께 주셨다. 그리고 죄로 죽음의 저주가 내려진 하와를 ‘죽은 자의 어미’라 하지 아니하시고, ‘산자의 어미’, 즉 첫 인간 하와의 후손을 다시 살리시겠다는 구원과 생명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이 장차 어떻게 이루어질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모형하는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구원받는 언약을 일방적으로 아담과 맺으셨다. 즉 하나님은 피로 물든 양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주심으로, 장차 그리스도의 ‘의’의 흰옷을 입혀서 영생을 누리게 됨을 계시록 7:13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선악과'에 숨겨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
선악과를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아담이 지키지 못한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인식하고 열심히 지키려고 몸부림치며 열심히 행함의 의로움과 공로를 쌓아서 구원을 인간 쪽에서 이루려고 은혜를 망령되게 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육신의 한계를 초월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노력과 힘으로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행위의 의로움으로 구원에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육신을 주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인간이 육신으로 할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육체의 모든 저주와 죄를 짊어지시고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는 방법으로 구원을 성취하셨다. 그리하여 말씀하시기를,
롬 8: 3-8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친히 감당해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죄로 말미암아 육신으로 겪는 모든 고난과 멸시와 수치를 당하시고, 자신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어 주셨고,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주시기로 정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이 선악과를 먹었기에 죄를 짓는 존재로 변모된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이 죄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저주와 죽음을 내리신 것도 아니며, 하나님 자신의 실수를 보상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신 것도 아니다. 이는 창세전 정하신 뜻대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심으로 구원과 생명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선악과를 주신 것은 육을 입은 인간의 연약한 모습과 허무함을 드러내기 위함이였으며, 영원한 구원과 생명이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게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고 나셔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가 티끌과 같이 연약하고 무가치하며 없음의 존재이며, 하나님의 생명력을 떠나서는 죽음과 지옥이라는 것을 적실히 깨닫게 됨으로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만이 존재할 수 있음을 처절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옆에 있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생명나무를 주시기 위한 허사이며 모형이다.
육을 초월하여 영의 계시를 따라 선악과나무 옆에 주신 생명나무를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인간은 죽음의 저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타락이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극치에 도달하는 긍휼과 사랑, 구원과 영생을 얻는 은혜에 은혜를 더한 축복이 되었음을 바라보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5:19-20).
육의 죽음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시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다. 이는 죄는 곧 멸망과 죽음이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생명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오직 영만이 영원한 실상임을 드러내시기 위해 흙으로 인간의 육을 만드시고 죄를 상징하는 선악과를 주시고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후 사단의 유혹을 허락하셨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자신이 입고 있는 육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깨닫게 되었고,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며 그 순종이 바로 인간이 살아 움직이는 유일한 근거임을 깨닫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본체가 생명이시기에 그분의 말씀이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순종으로 얻어지며 생명의 말씀을 떠나서는 죽은 흙, 티끌에 불과한 없음의 존재라는 것을 처음부터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죽음의 존재임을 깨닫게 되며, 죽음의 절망에서 아버지의 구원을 갈망하게 되며,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을 구하게 되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동시에 주셨다. 그리고 오직 선악과에만 ‘먹지 말라’ 는 계명을 붙여주셨다. 이 첫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 순종과 불순종을 시험하시기 위한 미끼가 아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는가 아니면 사단을 선택하는가를 시험하시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를 깨닫는 동시에 육의 무익함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옆에 있는 영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생명나무를 주시기 위한 원대한 사랑이 숨겨져 있었다.
하나님은 유독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만 먹지 말라는 법을 주셨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자유롭게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선악과나무 대신 생명나무를 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유독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나무에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육의 본능대로 결국 유혹을 받아 따먹게 된다. 하와는 그 나무의 실과를 “먹음직스러웠다” 고 할 만큼 육신의 탐욕에 자극을 받고 있었고, 그녀의 혼은 그 나무가 “보암직하여” 안목의 정욕이 자극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기에” 그녀의 지성을 나타내는 ‘이생의 자랑’이 자극을 받았다. 하와는 연약한 육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본능대로 행한 것이다. 이것이 육신을 입은 인간의 실제 모습이다. 흙을 입은 육으로는 영생을 주시려고 옆에 주신 생명나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영의 생명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육신으로 소유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생명나무를 알아보지 못한 하와는 오히려 죄와 죽음을 유발하는 선악과나무가 더욱 먹음직스러웠고, 먹고 싶을 만큼 탐스럽고, 하나님처럼 될 만큼 지혜롭게 보였다. 우리의 혼은 영의 인도와 말씀이 없이는 육의 정욕과 욕망의 요구에 굴함으로 사단의 종으로 사단이 원하는 일을 하게 됨을 보여주셨다.
인간의 육은 타고난 본능을 따라 자아를 중심으로 세상물질을 추구하며, 죄로 인하여 사단의 종이 되어 사단이 원하는 악을 행하게 됨으로 육으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의로운 법에 굴복하지 아니하며,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롬 8:6-8)고 바울은 말씀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라고 예수님은 육의 무익함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비밀은 오직 영으로만이 깨닫게 된다. 반면 영이 아닌 육으로 판단하는 자는 선악과나무에 초점을 두고 율법 행위에 신앙을 걸게 됨으로 저주와 죽음 아래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롬 3:10-1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라고 하신 주님의 참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열심히 알기에 힘쓰며 그분이 입혀주시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과 평강과 사랑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아는 일에 힘쓰자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의 저주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타락이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극치에 도달하는 긍휼과 사랑, 구원과 영생을 얻는 은혜에 은혜를 더한 축복이 되었음을 기억하자.
선악과나무는 율법의 모형이다
‘선악과’는 글자 그대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나무’이다. 선과 악을 알기 위하여서는 먹어야 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죄를 알게 된 것과 같이 ‘선악과’는 죄를 알고 깨닫게 하는 율법의 모형이다. 이는 아래와 같은 영적 비밀을 계시하고 있다.
첫째, “먹지 말라”는 계명을 먼저 주심은, 그 법을 통하여 죄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계명에 대한 불순종이 죄가 되는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이 내신 계명은 그분의 거룩하신 속성과 성품을 따라 선하시며 의로우시며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절대적 진리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그분의 인격과 권위와 의와 영광에 대한 침해와 손상이 되며,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나가는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둘째로는, 그분의 말씀은 곧바로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고 다스림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구원과 생명이 없는 죽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하나님에게 향한 도전이며, 그 죄의 극지는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를 살해하는 악으로 나가게 됨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계명을 어긴 인간에게 곧바로 죽음을 선포하셨다. 실제로 그 역할을 담당한 유대인들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를 거부하고 하나님이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림으로 멸망의 심판을 피할수가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한 인간의 죄의 실체이다.
둘째, 하나님의 법은 ‘거룩하며 의로우시며 선하시다’(롬 7:12). 오직 점도 흠도 없으신 의인되신 그리스도 한분만이 그분의 완벽한 법을 완성 할 수 있다. 흙으로 빚어진 무익한 육으로는 하나님의 완벽한 법을 처음부터 지킬 수가 없는 것이 실상이다. 바울이 영성으로 깨닫고 말씀하시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롬 8:7)함과 같다. 사실 그대로 아담은 사단의 유혹을 이길 수가 없어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게 되었고 죄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역과 불순종임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첫 인간 아담의 불순종을 통하여 선과 악을 구분하는 율법 안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내리신 의의 법에 도달할 수도, 지킬 수도 없는 육의 무익함을 깨닫게 하셨다. 목적은 영의 영원한 실상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며, 오직 그리스도 한분의 구원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로 정하셨기 때문이다 (엡 2:7-8).
셋째, 하나님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엡 3:11) 영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처음부터 인간에게 천하고 천한 흙으로 육을 입혀주셧다. 그리고 그 육의 나약함과 무익함을 드러내시기 위해 선악과나무를 주셨으며, 죄를 드러내시기 위해 “먹지말라”는 계명을 주셨다. 즉 창세전 정하신 영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육의 타락을 허락하셨다. 그 타락을 통하여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어 둠으로’ (갈 3:22),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으로’ (롬 3:23), 오직 그리스도 한분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이루시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엡 2:7-8). “의의 한 행동으로 많은 사림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18)함과 같이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데”(롬 3:26) 있다고 바울은 하나님의 원대한 비밀을 말씀하고 있다.
넷째, 바울은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 (롬 8:2)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법에는 정죄와 죽음일뿐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다. “무릇 율법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롬 3:10),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라” (롬 3:11)고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죄가 무엇이며 왜 죄의 삯은 사망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하여, 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몽학선생의 역할로 율법을 주셨다. 바울이 영으로 이 비밀을 깨닫고 정확하게 밝히기를,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 3:24). 그래서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갈 3:22)고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고 있다. 영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셨다. 지킬 수 없는 계명이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 육체로 율법을 완성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는 율법을 페하시는(업 2:15-16)방법으로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하셨다(갈 3:13).
결론적으로 선악과는 육의 행위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준 율법의 모형이다. 바울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깨닫고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붙들라는데 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갈 3:24)이며,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히 10:1), 즉 복음의 그림자이며 참 형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치 못함은 장차 영생의 은혜를 주시려고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롬 11:32)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법은 그 법을 굳게 지켜 의롭게 되는 인간의 ‘의’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순종을 통하여 육의 본능을 드러냄으로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갈 2:16),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하여 구원이 선물로 임하게 됨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엡 2:7-8). 실상은 생명나무와 복음이지 선악과와 율법은 허상이며 모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