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과실 안에 '선과악'이 함께 들어 있는 비밀 / 선 과 악을 공존하게 하신 위대한 섭리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늘나라에서 정하신 묵시대로 펼쳐지는 일이기에 이를 금하거나 돌이킬 자가 없다(사 14:26-27; 단 4:35; 욥 14:5; 엡 1:11)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단 4:35).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악한 것들을 들어 쓰신다. 이는 미리 예정된 일이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나니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는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 45:7). 하나님에게 있어서 만물은 하나의 통일체로 오직 그분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창조되고 존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역할로 하나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선악과를 따 먹은 선악구조로 모든 사물을 둘로 쪼개서 선과 악으로 판단한다. 하나님은 둘로 쪼갤 수 없는 진리로 하나의 통일체로 만물을 주관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만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빛을 주시기 위해 어둠을 먼저 있게 하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음을 있게 하시며, 자신의 선과 의를 나타내시기 위해 타락과 죄를 허락하셨으며, 부강을 위해 쇠퇴하게도 하시며, 창성케하기 위해 멸망하게도 하신다. 그분의 관심은 창세전 택하신 자기 백성을 자신의 형상으로 복귀하여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는데 있다. 그분은 아주 섬세한 섭리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신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악한 것들을 들어 쓰심으로 행복뿐 아니라 불행도 섭리하시며 (욥의 불행), 성공과 실패도 주관하시며 (솔로몬의 성공과 실패), 더 순전하고 장성한 믿음을 주기 위하여 사단을 이용하시기도 하신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선이든 악이든 협력하여 그분의 원대한 하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즉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져가는 하나님이 제작하시고 감독하시고 창세기부터 시작하셔서 요한 계시록에서 완성시키는 드라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요 22:13). 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선과의, 사랑과 영생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섭리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타락 없이 구원이 설립될 수가 없으며, 아버지의 사랑이 나타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가 없으며, 죽음이 없이 생명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선악과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고 죽음의 저주가 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육의 본능을 따라 행사하였을 뿐이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과 의로 주관하신다.
예를 들면, 형제들이 요셉에게 악행을 저지른 일에 대하여 요셉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함임을 일고 말하기를,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장차 이스라엘의 창성을 위하여 하나님이 작정하신 계획이라고 말한 것이다 (창 45:8).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10가지 재앙들을 애급인과 그 땅에 내리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 주시는 하나님 자신의 계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만물의 창조주와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유일신이심을 알리기 위하여 바로 왕을 들어서 그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출 9:12). 이스라엘을 광야의 고생길에서 훈련시킨 것도 애급 종교에 젖어있던 그들에게 율법을 주어 죄가 무엇이며, 왜 하나님만이 구원과 생명인지를 알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며 그분만 의지하여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기 위한 훈련 과정이었다. 유다의 경우에도 비록 유다의 성품으로 인하여 악역으로 쓰임을 받았지만, 그의 자발적인 행동을 허락하신 것은 십자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주관하시는 드라마이다.
선악 과실 안에 선과 악이 함께 들어있게 한 비밀
한 나무, 한 과실 안에 선과 악을 공존하게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영적 비밀을 계시하고 있다.
첫째,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하나의 연합체를 의미한다. 즉 선한 그리스도와 악한 죄인을 상징한다. 우리는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생명 안에 있었기에 (엡 1:4), 비록 죄로 인하여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의 의의 생명으로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사는 영적 존재로 회복된 것이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함께 죽고, 하나님의 선에 대하여 함께 산자가 되었다.
롬 6:8-11: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둘째, 선과 악을 한 과실 안에 있게 한 것은, 선 (하나님의 공의) 과 악 (죄에 대한 심판)을 함께 지시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 때문에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다. 즉 우리 죄를 완전히 도말하시고 의의 생명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 십자가 구원은 창세전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안하시고 작정하신 지혜와 능력이다. 십자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분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나약한 육을 주고 육의 무익함과 영의 영원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선악과나무를 주셨다. 그리고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먹음으로 육으로는 죄로 죽었으나, 영으로는 새로운 피조물로 의인으로 거듭날수 있었다.
셋째, 우리 인간의 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몸은 하나다. 그 몸 안에는 서로 대립되는 선과 악이라는 두 인격체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인간은 육이 죽지 않는 한 매일 선과 악의 선택에서 공고하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선한 마음, 즉 영적인 것과 죄를 향한 악한 마음, 즉 육적인 것, 이 두 가지 선택에서 매일 고달픈 인생을 살아간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 속사람 영은 한없이 하나님의 의를 향하여 선을 쫓고 있지만, 내 겉 사람 육은 성령을 거슬러 끝없이 죄에 빠지게 한다(롬 7장). 선과 악의 싸움은 육을 벗어야 만이 완벽한 영으로 하나님에게 돌아갈 수가 있다.
넷째, 선과 악은 똑같이 죽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하셨다. 악도 죽음이었고 선도 죽음이었지만 완전히 구별되면서 반대되는 목적과 결과를 나타낸다. 먼저, 악은 죄이며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6: 23). 그러므로 모든 인간으 "허물과 죄로 죽었다"(엡 2:1).
동시에 인간은 선을 먹음으로 다시 살 수가 있었다. 선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구원을 상징한다.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나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 죽음에서 다시 살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첫째, 우리 죄를 죽이기 위한 죽음이었고, 둘째, 죽음에서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한 선한 의의 죽음이었다. 만약 인간이 악과 동시에 선을 먹지 않았더라면 영원한 죽음에서 다시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선과 악을 동시에 함께 먹었기에 육은 죄로 인하여 죽었지만, 영으로는 그리스도의 선한 구원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이 비밀을 깨달은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1). 얼마나 정확한 말씀인가!
예수님은 성찬식에서 제자들에게 내 피와 살을 먹으라고 하셨다. 그가 죽음으로 피를 흘리셨기에 그 피로 나는 죄에서 구속받았다. 그의 살은 부활을 상징한다. 그분의 살을 먹었기에 나는 다시 부활하여 영생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피는 구원이며 살은 부활의 생명이라는 것을 제시해 주셨다. 예수님 자신의 의로운 생명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동시에 의에 대한 부활을 함께 이루셨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선악과나무를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계시하시기 위한 데 있다. 즉 선 과 악 (생명과 죽음)을 함께 먹게 하심으로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믿는 자에게 죄에 대한 죽음과 영생에 대한 부활을 동시에 함께 이루어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죽음을 상징하는 선악과나무와 영생을 상징하는 생명나무로 십자가를 만드셔서 예수와 함께 우리의 육체도 거기에 못 박게 하심으로 죄에 대하여서는 영원히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서는 영원히 사는 영생을 소유하게 하셨다. 이렇게 십자가 안에는 죽음을 상징하는 선악과나무와 영생을 상징하는 생명나무가 동시에 들어 있기에 성경 전체는 바로 이 두 구루의 나무에 대한 설명이며 역사이며 드라마이다. 그 십자가 안에는 선악과를 따 먹어버린 주홍 같은 인간의 죄와 저주와 죽음이 들어있으며 동시에 그 죄에서 죽은 자들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받아먹음으로 다시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으로 잉태된 부활이 들어있다. 이것이 바로 두 구루의 나무에 들어있는 엄청난 복음의 메시지이다. 이와 같이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하며,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라는 생명의 복음을 계시하고 있다.
요약하여 말하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흙으로 만든 나약한 육을 주심으로 육은 실상이 아니라 죽음으로 없어지는 먼지와 티끌이며, 오직 영만이 영원히 사는 실상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선악과나무”를 율법의 모형으로 주셨다. 그리하여 선악과를 주시면서 ‘먹지 말라’는 계명을 함께 주심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계명에 대한 순종이 바로 생명임을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지는 죽음임을 첫 인간 아담을 통하여 보여주셨다. 즉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있는 그 상태가 바로 순종이며 그 순종이 바로 영생을 입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제시하셨다.
결론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은, 첫째는, 육의 무익한 실체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루시고 오직 인혜로 영생을 입혀 주시기 위하여 잠시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 (롬 11:32). 선악과 때문에 인간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 먹어야 육을 벗고 영으로 태여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먹지 않았어도 육으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하늘나라의 법칙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영으로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선악과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인간의 육의 본능인 죄를 드러내시고, 영원한 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동시에 옆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주시는 생명나무를 함께 주셨다. 실상은 육과 선악과 나무가 아니라, 영과 생명나무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롬 8:6)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 세상 허사와 모형을 통하여 영의 실상,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심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수 있다:
- - 빛과 생명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먼 먼저 우주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있게 하셨다.
- - 영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흙으로 물질적 육체를 만드셨다.
- - 인간을 흙으로 만든 뜻은 육은 무익하며 오직 영만이 영원함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 -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죽음을 있게 하셨다.
- - 영원한 천국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에덴동산을 모형으로 주셨다.
- - 영생의 생명나무를 드러내기 위하여 죽음의 선악과 나무를 주셨다.
- - 선과 악이 무엇이며 사단의 존재와 죄를 알게 하기 위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허락 하셨다.
- - 창세전 계획하신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셨다.
- - ‘먹지 말라’는 법은 육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 - 법을 먼저 주심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 즉 복음의 은혜를 계시하기 위함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