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완성과 페기 / 예수님은 왜 육신을 입으셨는가? / 다 이루셨다는 선포 / 십자가의 본질
이 세상을 토대로 한 그 어떤 종교도 신도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줄 수가 없다. 더더욱 죄로 죽은 인간을 다시 의인으로 잉태케 하여 영생을 입혀주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만이 생명을 잉태시키는 능력의 소유자이시다. 그분은 창조주이시며, 영생이시며 진리이시며 영광이시다.
기독교는 죄로 죽은 죄인을 다시 의인으로 살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부터 출발하는 종교이다. 이 세상의 토대를 벗어나 하늘나라에서 먼저 성취된 뜻이 이 땅에서 ‘사랑’을 토대로 전개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다. 즉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셔서 친히 인간을 찾아와 주셔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희생으로 성취하신 구원의 역사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0)고 말씀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 생명과 사랑을 줄 수 있는 신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한 분 뿐이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 12). 십자가 구원은 창세전에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놓으신 선한 뜻이며 섭리이다(엡 1:4 –11).
십자가는 죄와 죽음의 사형틀이다
십자가는 본래 죄인을 사형하는 저주와 죽음의 사형틀이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죗값으로 죄인을 처형하는 저주의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것이 공의의 심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경건치 않는 죄인을 대신하여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자신이 회생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저주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된 것은 바로 죄 없는 의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신데 있다. 이것이 십자가의 위력이다.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롬 5:12)라고 말한다. 즉 우리는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났으며(시 51: 5), 죄인으로 태어난 상태를 바꿀 수가 없다. 나의 죽고 사는 일은 나를 만드신 분만이 주관하신다. 우리가 할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친히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우리를 찾아와 주셔서 우리 죄의 문제를 자신의 육체의 죽음으로 해결하여 주셨다(갈 1:4), 우리는 그분의 ‘의’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엡 1:7). 즉 그분은 자신의 의로운 생명을 대속물로 바쳐 모든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공의와 모든 죄인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의를 십자가를 택하셔서 성취하셨다. 죄인을 죽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 없으신 의인의 죽음이 필요하다. 아울러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를 죽이는 십자가가 필요한 것이다. 십자가의 진리는 죄에 대한 심판의 공의와 죄인을 죽음에서 살리는 구원의 의로움, 이 두 가지 ‘의’의 성취를 뜻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주의 십자가를 선택하여 구원을 성취하신 비밀이다.
예수님은 왜 육신을 입으셔야 하셨는가?
성경에 아버지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함과 같이, 그분은 하늘나라에서 보장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창조주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의 영광으로부터 이 죄악된 세상에 인간의 육을 입으시고 죄인을 찾아와 주셔서 자신의 의로운 생명을 내어주셨다. 이는 그분이 자신의 신성을 초월하여 아버지의 유일한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해 자신을 인간의 수준으로 낮추시고 육을 입고 인간 속으로 들어오신 사랑의 열정이시다. 그분이 사람이 되어 ‘인자’로 오신 것은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요 1:14)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것은 아래와 같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우리 육의 죄를 영원히 멸하시고 율법에서 우리를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의 육신을 통하여 잉태하셨다.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성을 그대로 가지고 이 땅의 ‘인자’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육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육에 관한 죄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셨다. 그분이 육신으로 아브라함 자손의 대를 이어서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혈통으로 이어 주셨다. 바울이 이 비밀을 깨닫고 말하기를,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얼마나 정확한 말씀인가! 그분의 속죄 사역은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의로운 뜻이다(엡 1:4-5).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갈 1:4) 하심과 같이 그분은 우리의 육을 입으시고 ‘인자’로 오셔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담당”(사 53:6) 하여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셨다(롬 8:2). 이르기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둘째, 우리를 영으로 잉태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의인이시다. 그래서 죄인과 상관없이 하나님 본체인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으로 죄와 상관 없는 새로운 피조물로 잉태하게 하셨다. 즉 자신의 거룩하고 흠 없는 신성을 그대로 유지하시면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게 하심으로, 육으로는 인간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영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을 그대로 우리 심령에 새겨주셔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잉태시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 이르기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 4:13).
셋째, 이와 같이 우리가 그분의 소유가 된 것과 같이 그분 또한 우리의 소유가 되는 연합을 이루셨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 20)고 말씀하셨다. 우리 주님은 친히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동고동락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공유하심을 (히 4:15) 제자들과의 삶에서 보여주셨다. 즉 그분은 감성, 지성, 의지를 가지고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격체로 우리 가운데 계신다. 즉 자신의 형상을 우리 마음속에 심으셨기 때문에 내 생각 속에 계시며, 내 마음속에 성전을 삼고 계시며, 나의 모든 말과 생각과 행동에 하나로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과 질병과 좌절감과 절망과 눈물겨운 인생살이를 이해하시고 공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원한 안위와 피난처가 되어 주시며, 우리를 모든 악에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시며 영원히 사랑하시는 신랑이시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그분은 우리를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로 당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로 사랑으로 영생을 누리게 하셨다. 인간이 어찌 창조주가 입혀주신 그 위대한 사랑과 은혜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분은 신실하시며,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오래 참으시며 긍휼과 자비 베풀어주시기를 멈치지 않으시는 사랑이시다. 때문에 오직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토대에서 그 어떤 조건도, 대가도, 행위도 원치 않고, 비천한 인간의 수준에 따라 믿음과 신뢰에 근거하는 불가항력적 일방적으로 입혀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의 언약을 맺으셨다. 그 언약에 따라 인간이 납득될 수 있고, 이해가 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주시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선택하셔서 4000년 넘는 기나긴 역사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보여주시고, 설명하여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신다. 그리고 성령으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설명하여 깨닫게 하시며,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롭게 잉태시켜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는 선한 일을 충실이 진행하심으로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섭리로 역사를 주관하신다.
이와 같이 인간을 사랑하는 그분의 열정이 이 세상을 초월하여 하늘 보좌를 떠나서 죄인인 우리를 찾아와서 우리 인간과 함께 동거동락하셨으며, 눈으로 보여주시고,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기적과 이적으로 당신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시며 진리이시며 우리의 영원히 함께 사는 신랑이심을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희생으로 역력히 보여주셨다. 이보다도 더 확실한 구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오직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사랑의 능력이시며 기적적인 은혜이다. 그분은 저 높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분이 아니시다. 지금 내 안에 성전 삼고 나와 함께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계셔서 모든 족속에서 당신이 선택하신 백석들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역사를 주관하시며 통치하시고 계신다.
십자가의 사랑
창세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생명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엡 1: 4), 때가 오매 “육을 입고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어”(고전 19:20) 우리 가운데 계셨으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입혀 주시기 위해 죄인이 당하는 모든 고난과 멸시와 조롱과 수모를 당하시고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다. 십자가는 만물을 초월하여 죄인에게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완전히 내어주시는 극지에 도달한 사랑이시다.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에게 가장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십자가의 형별을 받게 하셨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리그도가 패역하고 악하고 더러운 오만방자한 피조물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와 수치와 매 맞는 고난을 묵묵히 사랑으로 감당하셨다. 이르기를,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사 50:6). 예수님이 죄인들로부터 그토록 잔인한 채찍과 침 뱉음과 모욕과 수치를 모두 감수하실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분의 위대한 사랑이 그토록 잔인한 죄인을 품을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죄인에게 향한 그 사랑이 너무나 위대하시고 너무나 크기로 형용할수 없기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선포하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라고 복음의 진수를 선언한다. 인간의 생사(生死)를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피조한 죄인들로부터 당하셔야 하는 그 모든 고난과 수모들을 오직 사랑의 힘으로 묵묵히 받아들이셨다. 십자가를 져야 할 주님의 그 고통을 시편에서는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다”(시 22:14)고 처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시고 죄로 죽은 우리를 다시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시고 “다 이루었다”(요 19:28)는 선언으로 인간에 대한 극치의 사랑을 성취하시고 확증하셨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사랑은 바로 아버지께서 인간을 "이처럼 사랑하셔서"당신의 독생자를 죄인에게 내어주셔서 스스로 죄인들이 쏟아내는 모든 죄를 몽땅 짊어지시고, 온갖 고통과 수치와 수모를 모두 당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가장 쓰디쓴 대가를 지불하신 희생이다. 이 사랑의 절정은 우리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켜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로 부터 쏟아내는 모든 심판을 몽땅 받아내시고, 우리에게는 영원히 사는 의의 생명을 전가시켜 오직 은혜 안에서 자유와 평강을 누리게 하신 데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첫 마디로 한 말씀이 바로 “너회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였다. 이제부터 자신의 생명으로 성취하신 즉 피의 대가로 지불하신 그 영원한 구원으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다시 살려내어 영원한 은혜의 평강을 입혀주신다는 말씀이다. 즉 그분이 평강의 주로 내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동행하는 그 연합의 상태가 바로 평강과 자유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분께서 지불한 극심한 고통과 죽음의 대가로 인하여 죄에서 완전히 해방 받은 자유인이 된 것이고, 영원히 무죄 선고를 받아 의인으로 변신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가 되어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며” (갈 3:13),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은” (롬 5:7)자들이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사랑이 성취되는 순간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를 입은 아들이 되었고, 신부가 되었고, 의인이 되어 아버지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 (갈 4:4-7). 아버지께서 독생자의 피와 생명으로 잉태한 우리를 누가 감히 ‘죄인’이라 정죄하랴. 우리는 이제 당당한 ‘의인’이며, 그분의 자녀이며 신부이다.
율법의 완성과 페기
하나님께서는 완벽하시고 거룩하신 성품과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내신 법도 그분의 성품과 뜻을 담아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선하다고 말한다.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그래서 죄인의 육적 본능으로는 절대로 완전한 의의 법을 지킬 수도 또한 그분의 말씀에 순복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인은 하나님의 거룩한 의의 법을 지킬 수도 없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며, 인간의 육에서 나오는 죄란 무엇이며, 왜 인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되는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내신 법은 오직 법의 당사자인 그분만이 완성하실 수 있으며 또한 그분만이 페하실 수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함으로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는 지킬수 없는 율법을 페기하여 주셨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엡 2:15), 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이다. 즉 자신의 의로운 죽음으로 율법을 완성시킴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어 저주 아래에 있는 죄인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속량하여 주셨다. 이르기를,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함이라” (갈 2:19)함과 같이 옛 죄인은 율법의 정죄로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율법이 다시는 죽은 죄인을 정죄하지 못함으로 페하여 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부활하심으로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새 사람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가 된 것이다. 이르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임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 5). 그가 수모를 당함으로 우리는 영광을, 그가 죄인으로 정죄를 당함으로 우리는 의로운 의인이 된 것이다. 이것이 그분이 저주의 십자가를 택하셔서 모든 죄를 예수의 죽음으로 완전히 없애시기 위해 고안하신 의와 사랑과 영광을 나타내신 지혜이다. 이 존귀한 지혜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평화와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시고 또 원하시는 그분의 사랑이다.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참 의도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시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다. 이 선포는 모든 것이 완전히 성취됨을 알리는 복음의 선포이다.
(1). 이는 창세전 하늘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뜻이 이 땅에서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선포였다. 또한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천 년 동안 계시하신 십자가의 비밀과 모든 예언과 언약과 약속들을 다 이루었다는 선포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 18:31)고 말씀하셨다.
(2).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의문의 계명을 다 이루셨다는 선포였다.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엡 2:15). 즉 인간이 육신이 연약하여 지킬 수 없는 법을 이루시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 하사”(롬 8:3), 죄로 정한 몸이 율법에 대해 완전히 죽으므로(롬 7:4),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완전히 이루시는 동시에 우리에게는 율법이 페하시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완성과 폐함’의 선포였다.
(3).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죄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전히 철저히 도말하여 주심으로 죄 아래 갇혀 있던 죄인이 영원한 해방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기쁜 소식, 복음의 선포였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롬 4:25), 이는“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함과 같다.
(4), “다 이루었다” 함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 지성소의 휘장은 천국의 문을 상징한다. 이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그분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림으로 화평을 이루사,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 갈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하셨다. 이를 두고 바울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5),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7)고 정확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5),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고 선언하셨다. 바울은 그의 십자가 죽음 와 부활에 동참한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이며, 영광을 받은 자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엡 1:3)자이다. 경건치 않는 나에게 이 놀라운 영광을 입혀주신 그분의 은혜와 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오직 그분의 사랑으로 생명 안에서 그분의 은혜를 찬송하며 그분안에서 평강과 기쁨과 감사를 누리는 것뿐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 3-6).
십자가의 본질
첫째, 십자가의 본질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죄와 죽음이 영원히 없어진 완성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시기 위해 단번에 흘린 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려 우리의 모든 죄를 없애주셔서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0-14). 그분이 흘린 피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완전하며 영원하다는 말씀이다. 오직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사실을 믿는 자는 죄인과 상관없는 자요, 다시는 죄가 나를 주관치 못 한다(롬 6: 14)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 지어다” (롬 6:10,11)고 권하고 있다.
둘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인간에게 내려진 모든 저주와 죽음을 완전히 깨뜨리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다. 즉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 21-22)이다. 이를 증거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영으로 내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잉태시켜 나를 의인이라 칭하여 주시고, 나를 성전 삼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롬 8: 1-2). 바울은 고백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즉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기에 이제부터 나는 그분에게 완전히 속한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셋째, 생명과 영생이 십자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에게 있다. 나를 죄인으로 처형한 저주의 십자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는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갈 3:13), 즉 십자가에 죄인 그대로 달려있는 자라는 말씀이다. 예수 십자가의 구원을 믿었으면, 저주의 십자가에서 해방받아 부활하신 예수 생명 안에 거하여만이 아버지의 자녀로 잉태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권세와 능력을 행사하시면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다. 십자가를 붙들고 십자가 아래에서 죄인으로 있으면 저주와 멸망이다. 반드시 부활하신 그리스도 생명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잉태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그분이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하나로 동행하시고 있다.
예수님과 나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
십자가의 사건은 예수께서 혼자 죽으시고 혼자 부활하신 사건이 아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갈 2:20)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내 안에 임하는 순간, 나의 모든 죄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영원히 없어지고 옛 죄인은 완전히 죽었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죄인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롬 7;4).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롬 6:6). 지금의 나는 새 생명으로 잉태된 의인이요, 아버지의 영화로운 자녀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롬 6:8),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 12).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자 (벧전 2:24)가 된 것이다. 즉 옛사람 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죄를 짓을 수 없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하늘나라의 의인으로 태어난 자를 다시 율법으로 정죄할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난 사건은(롬 6:1-11), 주님과 함께 죄의 영원한 사망과 생명의 영원한 부활을 공유한다는 말씀이다. 즉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지 않는 자는 주님과 상관이 없는 자며 구원이 없는 죄인 그대로 남아 있는 자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죄를 영원히 죽이기 위하여 자신의 의로운 생명을 내어주시는 십자가였다. 하지만 내가 지는 ‘자기 십자가’는 나의 옛사람 죄인이 죄의 대가로 죽는 죄인을 매다는 저주의 사형틀이다. 죄인인 나는 반드시 죄를 처형하는 저주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내가 지는 ‘자기 십자가’는 옛 죄인을 죽음으로 못 박지만, 주님과 함께 진 십자가는 죄인은 죽고 다시 의인으로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생을 얻는 영광의 십자가이다. 즉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 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 6-7) 함과 같다. 죄인은 반드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아야 만이 다시는 나를 심판하는 법 아래 매이지 않고, 의의 생명으로 태어나 은혜 아래 있게 된다 (롬 6: 14).
십자가는 오직 예수그리스도가 진 십자가만이 구원과 생명을 줄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를 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이 지신 십자가를 내가 지고 그분이 당한 수모와 고통과 찔림을 나도 예수님처럼 당하여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아왔다.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무지한 짓이다. 구원의 십자가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바울이 이를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고전 1:13)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속죄와 부활의 십자가를 질 자가 없다. 즉 내가 지는 십자가는 예수님처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고통과 형벌과 수치를 당하여야 하는 예수님과 동등한 십자가가 아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한 평화와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다시는 죄로 인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해, 우리가 당해야 할 죄의 고통과 수모와 고난을 우리를 대신하여 모두 당하여 주셨다(사 53:4-6). 그럼에도 당신의 십자가 죽음에 우리를 동참시킨 것은, 우리 육신의 죄, 즉 죄인이 죽는 십자가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의인으로 부활하여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