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5)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동족의 구원 /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9 가지 특권
롬 9:1-5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2(1절에 포함되어 있음)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1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바울은 8:31-39 절에서, 그토록 감격과 확신에 찬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와 사랑의 띠로 하나로 묶여있는 성도는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떠한 환경과 상황과 역경과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다 하더라도, 절대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승리의 개가를 힘차게 외친 것이다. 그런 바울이 9장에 와서는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 근심과 고통이 바로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임을 제시한다.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8:2)라고 자신의 구원을 포기할 정도로 동족을 사랑하는 애절한 마음과 애끊는 심정을 토로함으로, 자기 동족이 자신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듣고, 깨닫고, 회개로 마음을 돌이켜, 복음을 받아들이고, 구원받기를 너무나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을 토로한다.
왜냐하면, 바울 자신도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기 전에 자기 동족 중에서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고”(빌 3:4-6),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가장 난폭한 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만, 존귀한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자 자신이 그동안 추구하고 가치라고 쌓은 그 모든 것들이 ‘배설물’임을 알아보게 된 것이며(빌 3:7-11),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을 너무나 뼈저리게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극과 극을 체험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동족들의 강퍅한 마음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헤아림으로 더 깊은 근심과 고통에 번민할 수밖에 없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 것이다. 아무리 전심을 다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도 듣지 않는 그들을 향해 그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은 거짓이 없는 진리임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한다"라고 변호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자신이 체험한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참 구원을 얻을 것을 필사적으로 구하고 원한 것이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3)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바울의 이와 같은 표현은 구약 모세에게서도 볼 수 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자녀로, 아내로 받아들이는 거룩한 언약을 맺으시는 그 성스러운 순간에 이스라엘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축제를 드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패역함에 분노하여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출32:9-10)라고 심판을 선고하였다. 그때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가 나서서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32:12)라고 그 백성의 죄를 속하여 달라는 간구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심판을 자신에게 내려줄 것을 호소한 것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으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1-32)라고 간절하게 탄원한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날 수도 없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는 일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점도 흠도 없는 의인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만이 성취되기 때문이다. 모세와 바울, 선자자들,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과 온유와 사랑의 성품을 지니고 있었기에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을 자기 생명보다도 더욱 사랑한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온전히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오직 복음만을 위해 사는 자가 된 것이다. 그의 고백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함과 같이 자신의 전부를 그리스도에게 드린 자이다. 그런 그의 깊은 마음속에는 항상 동족의 구원을 위한 근심과 고통이 그를 탄식하게 함으로 모세처럼 자기 구원을 포기할 만큼 자기 동족들이 바울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한 것이다. 자신의 동족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져 나가도 받아들일 만큼이나 자신의 동족들이 빨리 뉘우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원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러한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민족이 “죄와 사망의 법”(롬 8:2)을 붙들고 생명의 주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원수에서 돌이켜 속히 구원과 생명을 입혀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기를 필사적으로 원한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가슴을 치며 울부짖는 진실한 마음을 자기 동족들이 알아주기를 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마음이 더욱 강퍅하여 바울을 수없이 죽도록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돌로 쳐서 내던지며 조롱하고 멸시하는 온갖 악행들을 행한 것이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미워하거나 증오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며 끊임없는 슬픔과 근심과 탄식과 울부짖음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며 하루속히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구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들에게 또다시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과 맺은 언약과 약속과 제사와 율법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민족의 특권을 아홉 가지로 나열함으로 그들이 진정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소원한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스라엘 민족의 9가지 특권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1)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바울은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부름으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조상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야곱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혈통으로 이어진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상기시킨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 친히 지어준 이름이며, 그 이름을 창대케 하기 위해 야곱에게 12 지파를 주셨으며, 그 12 지파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늘의 별처럼 모래처럼 많은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일으켜 세우셨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민족이며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으로 거룩하게 구별된 민족이며,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통솔하시고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친히 먹이시고 입히시고 모든 일에 간섭하시는 아버지가 되시며 남편이 되시는 소유권을 언약으로 선포하셨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떠나 끊임없이 이방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앞에 온갖 악을 행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자녀로, 아내로 언약을 맺으셨기에 한시도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시며 언약에 충실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렘 3: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 7:14). 또 이르시기를,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겔 36:26) 함과 같이 이스라엘이 아무리 배역한 자식들로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멸시하고 거짓과 불의와 음행으로 언약을 짓밟는 온갖 악행들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그들의 ‘굳은 마음을 제하고 새 영을 주어’ 반드시 언약으로 보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앞에 영적 이스라엘로 끝을 맺을 것임을 이미 제시하여 주셨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여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핍박하는 마음이 강퍅한 동족을 바라보면서 바울의 마음은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양자 됨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며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확증하시고,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을 창대한 민족으로 키워주시고, 때가 되자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여 오직 당신만을 섬기며 바라보는 장자로 입양하시기로 약속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 4:22). 즉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족속들 중에서 특별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장자로 삼으신 양자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호 11:1).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아들로 입양하시고, 또한 당신의 아내로 삼기 위해 당신과 하나가 되는 결혼 언약을 시내산에서 돌에 새겨서 맺어주셨다. 그 언약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시며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겠다는 언약이다.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 32:6, 사 63:16).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백성을 향하여 '아들로' 입양하시며 그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언약하시며 선포하셨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4, 역대상 17:13).
(3) 영광이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이셨다. 이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 외에 영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영광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심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이 되는 은혜를 입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친히 택하시고 구별하시는 이름을 지어주셨으며, 창대한 민족으로 키우셨으며, 애굽 노예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영광으로 나타나셨다(출 24:16- 17). 그들이 광야의 길을 걸을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자신의 영광의 임재 안에 거하게 하셨으며,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지켜주시고 싸워주심으로 이스라엘은 한시도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의 임재를 영광으로 보여주심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 안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친히 보여주시고 확인시켜 주셨다. 시내산에서는 천둥과 번개와 구름, 그리고 나팔 소리로 임재하셨으며 불 가운데 영광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출 19:16-19). 또한 영광으로 임재하셔서 성막을 영광의 구름으로 덮으심으로(출 40:34-38),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영광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친히 눈으로 확증하도록 보여주셨으며; 지성소의 속죄소(시은좌)에 영광으로 나타나셔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영광(레 16:2) 이임을 계시하셨다. 또한 솔로몬의 성전에 영광으로 임재하셔서 성전에 가득 채워 주심으로, 당신을 믿고 따르는 모든 백성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는 구원자 이심을 보여주셨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왕상 8:11, 대하 7:1-2).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원한 하나님이 되시며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증표이며, 다른 민족이 누리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친히 경험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최고의 영광을 소유하고 있었다.
(4) + (5) 언약들 과 약속들이다
바울이 “언약들”; “약속들”이라고 복수를 쓴 것은, 어떤 한 시기에 어떤 한 언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성취자로 오실 메시아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나타내시기 위해, 처음 시작의 태초부터 언약으로 당신의 백성을 택하시고, 그 언약의 본질과 성취를 드러내시기 위해 점진적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뚜렷한 언약들을 주셨으며, 그 모든 언약들이 한 분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언약을 가리키고 있음을 제시한다. 첫 인간 아담에게 주신 구원의 약속들과 언약들이 한 번도 어김이 없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언급하신 족보 그대로 대대로 이어져서 언약의 성취자 예수그리스도까지 내려왔음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들은 아브라함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입혀주셔서 생명을 주시는 인류 구속을 목표로 하는 무조건적인 언약들임을 제시한다.
-- 어린 양의 피로 맺으신 아담의 언약:
첫 언약은 첫 사람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타락하였을 때, ‘죽음’의 심판이 내려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들을 다시 살리시겠다는 구원과 생명을 약속하셔서, 희생제물을 모형하는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함으로 장차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언약을 일방적으로 세우시고, 은혜의 옷을 상징하는 양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혀주므로 장차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혀서 생명을 주실 것임을 미리 약속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여자 후손의 승리를 미리 선포하시고(창 3:15), 죽음이 선포된 하와를 ‘산자의 어미’라 이름하여 주셨다(창 3:20-21). 즉 하나님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죄와 사망에 빠진 아담의 후손을 살리시겠다고 일방적으로 양의 피로 첫 인간 아담과 언약을 맺으셨다.
-- 무지개로 맺으신 노아의 언약:
온 인류가 죄로 말미암아 멸종당하는 심판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노아 한 사람을 택하셔서 언약을 보존하셨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 6:17-18).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1-13). 창 3:15 절에서 아담에게 주신 언약이 이제 더욱 뚜렷하게 말씀의 선포로 맺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되는 언약임을 제시하셨다. 노아 언약은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인류 역사를 펼쳐가시는 모든 인류에게 향한 구원을 약속하시는 언약이며, 하나님의 독립적인 주권으로 성취하시는 언약임을 나타내셨다.
- – 하늘의 별처럼 많은 씨와 땅을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언약:
창세기 1: 28 절에서 시작하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사람의 종족의 번성에 관한 언약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는 씨에 관한 언약(창 15:5; 13:16)과 땅에 관한 언약(창 15:7)으로 발전한다. 즉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택하셔서 하늘의 별 만큼 바다의 모래만큼 큰 민족을 이루시는 ‘자손에 관한 언약이며(창15:9-18, 22:17), 그 언약은 아브라함, 야곱, 이삭, 다윗의 혈통인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반드시 성취되는 영원한 언약임을(창 17:7) 계시하셨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이전 언약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선포하시고 맺으신 은혜를 입혀주시는 언약들이다. 언약의 성취자는 하나님 자신이 시기 때문에, 창세기 15장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아브람은 깊은 잠에 빠졌었고, 하나님 홀로 쪼개 놓은 제물 사이로 지나가시는 일방적인 방법으로 언약을 맺으셨다.
-- 율법을 주셔서 맺은 모세와의 언약:
모세와의 언약은 은혜 언약인 아브라함 언약의 점진적 발전이며, 아브라함의 언약과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민족과의 언약은 조건적인 언약, 즉 율법 언약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너희가 ...을 하면, 내가 ...을 하겠다”라는 조건을 제시하신다. 이르기를, “너희가 참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나의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5-6). 이 언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하나님 나라 삶의 원칙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행해야 할 율법을 기본적으로 세 부분으로 주셨다. 계명: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을 나타내며(출 20:1-26); 명령: 이스라엘의 사회적 생활을 규제하며(출 21:1-24:11); 규례: 이스라엘의 종교적 생활을 규제하셨다(출 24:12-31:18).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 율법 안에서 살아갈 때 다른 종속들이 겪는 질병과 가난과 자연재앙과 전쟁과 같은 악에서 지키심과 보호하심을 받아 평화와 번영의 축복을 누릴 것임을 약속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불행하게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완강히 거부하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목이 굳고 고집 센 패역한 백성이 되어 결국 주위에 있는 이방 강국의 침략과 노략으로 전쟁의 포로, 노예가 되어 약속의 땅을 잃고 전 세계로 흩어져 유랑하는 민족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신 법은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담아 거룩하고 의로우시며 선하시다(롬 7:12). 때문에 죄인의 육적 본능에서 나오는 탐심과 욕망으로는 절대로 완전한 의의 법을 지킬 수도 또한 그분의 말씀에 순복할 수도 없음으로, 인간 자신들의 타락한 정체성을 인정하고 깨닫고,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참 희생 제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복음을 주시기 위한 의도로 주신 것이다. 즉 율법의 기능은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여”(롬 7:13), 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며,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함으로 그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실 구원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는 역할이다. 율법은 우리에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함으로 그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고자 간절한 소망을 가지게 하며, 그 갈망과 소망이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르기를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 3:24-26).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 율법의 요구를 몽땅 이루어 주셔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갈3 :11),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어 주심으로 (마 5:17-18),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율법의 총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새로운 실천 강력으로 주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바울도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 13:10)라고 말하고 있다.
-- 다윗의 언약, 다윗 언약의 성취자 예수그리스도
다윗의 언약은 모세에게 주신 한시적 조건적 언약과 달리, 영원한 왕위를 지속시켜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와 약속을 담은 언약이다. 다윗의 후손은 여호와의 아들이 되고, 여호와는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그 나라 왕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시겠다는 메시아 언약이다(삼하 8:11-12, 역대상 22:10). 다윗의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한 아들’ 곧 다윗의 자손에 대한 메시아 약속이다. ‘한 아들’이 나라의 위를 굳게 세워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약속은 궁극적으로 다윗 혈통을 통해 만왕의 왕 메시아가 오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에 대한 약속이었기에, 그 영원함은 결코 다윗 자손들의 신실 함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었다.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왕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고 끊임없이 이방나라의 우상을 섬기며 언약을 짓밟고 깨진 것 같이 보였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고 다윗 자손의 왕권은 끊어진 것 같이 보였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언약대로 다윗의 혈통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여 주셨다.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9: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여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함과 같이 언약의 당사자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우리를 성전 삼고 계시는 영광이시며 은혜이시며 진리이며 구원과 생명이시다.
(6) 율법을 주셨다.
천지를 창조주이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유독 이스라엘이라는 보잘것없는 민족에게만 자신의 영광의 임재를 보여주시고 피조물의 수준에까지 내려오셔서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자녀로 아내로 삼기 위해 자신을 계시하는 율법으로 언약을 맺으셨다. 세상에서 그 어느 민족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며 선하신 율법”(롬 8:2)을 받은 민족은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키심과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구원과 하늘나라 왕국을 약속하신 언약을 받은 민족은 없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네가 있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이런 큰 일이 있었느냐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4:13-14).
하나님께서는 오직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게만 당신의 법으로 당신에게 속한 자녀로 구별하시는 특권을 내려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특별하신 방법으로 마치 이스라엘을 당신의 마음에 새기는 방식으로 친히 손으로 돌에 십계명을 새겨주시는 율법 언약을 맺으셨다(신 4:32-36).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묶여 있는 죄 투성인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결혼 언약을 맺으시는 율법을 주셔서 하늘나라의 거룩한 법으로 당신의 백성으로 구별하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은혜이며, 오직 이스라엘에게만 내려진 특권이며 하늘나라 기업을 약속받은 위대한 보물이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당신의 자녀로 아내로 백성으로 이 세상 다른 민족과 구별하여 거룩함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더 나아가서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함으로 하나님의 의와 선과 영광을 천하에 나타내며 알리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율법을, 하나님에게 향한 제사 법과 이웃에게 향한 도덕법으로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통하여 아주 구체적으로 그렇게도 자상하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 어느 민족도 받아보지 못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가장 위대한 보물이며 축복임에도, 이스라엘은 그 거룩하고 의로운 율법 안에 구원과 생명을 약속받는 보물이 들어있다는 율법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였다.
(7) 예배가 있다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태어나면서 공허와 불안을 안고 있으며, 자신의 무력한 한계와 불완전함을 알기에 그것을 채우는 법을 신에게서 찾는다. 인간은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타락으로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이기에, 욕망과 탐심으로 ‘나’를 위해 존재하는 신들을 찾아 헤맨다. 때문에 그 신들은 내가 선택한 것들이며, 내 눈에 보여야 하므로 돌로 나무로 금과 같은 것들로 어떤 형상으로 만드는데, 그 형상은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이어야 하며, 고작 만들어낸 형상들이 바로 각양 곤충과 짐승과 버러지와 같은 것들이다.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라고 주신 인간 아래에서 지배를 받아야 하는 피조된 짐승들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며, 자신들이 정한 의식과 형식과 방식으로 신을 자극하기 위해 자식을 제물로 받치며, 자해하며, 심지어는 성적으로 또는 짐승과 교제하는 역겨운 구역질 나는 음란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이 이르기를,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롬 1:23-25).
그러나 이스라엘이 섬기는 신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모든 곳에 계시는 초월자이시며, 만물을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며 정의로 심판하시는 유일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시고, 당신의 임재와 당신과의 친밀한 교제와 장차 이루실 메시아 구원을 위해 성막과 성소와 예배 의식을 일방적으로 주셨다. 그 거룩하신 성전과 제사와 예배는 죄와 허물 투성인 인간 이스라엘이 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독립적으로 친히 설계하심으로 인간의 그 어떤 요소도 끼어들 수 없도록 하늘나라에서 먼저 지어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에게 지으신 모양대로 모세에게 명하셔서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친히 감독하셨다. 왜냐하면 성막과 성소와 제사와 예배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고 친히 임재하셔서 당신의 백성과 만나는 하나님 자신을 위한 자기 계시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출 25:8-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아주 상세한 제사 의식과 예배 방법과 절기를 정하여 주셨다. 특히 5가지 제사인: 번죄(레 1장, 4,9절), 소제(레 2장, 14-15절), 화목제(레 3장, 7: 11-36), 속제죄(레 4장, 2-13절, 6:30), 속건제(레 5:14-6:17)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인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 구별된 거룩한 의식과 형식으로 하나님을 거룩하게 예배하기를 요구하신 제사법이다.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시며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모든 죄를 속죄 받은 제사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은 그 희생 제물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속죄가 되어야만이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가 있음을 제시한다.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레 1:4). 성막의 제사의 희생제물은 인류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제물을 보여주시는 모형이다.
(8) 조상들도 저희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그 어떤 민족보다 뛰어난 민족이며 선택받아 구별된 민족이라는 우월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의 후손들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나열한 대로,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9:4-5) 함고같이 세상 그 어떤 민족도 나라도 이와 같은 구원의 언약을 맺은 백성은 이스라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창 22:18) 하신 언약의 백성이며, 다윗의 혈통으로 메시아가 오셔서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 7:12-13)는 언약을 가진 자들이다. 그 어떤 민족도 나라도 쳐다볼 수도 비교조차도 꿈도 꿀 수없는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은 특별한 민족이며, 그 특권은 그들 자신들의 노력과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셨다는 그 이유 하나로 무상으로 오직 은혜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특권이다.
(9)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다.
이보다 더 위대한 특권은 없다. 그들이 4000여 년 동안 그렇게도 갈망하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그들의 혈통에서 나왔다는 기쁜 소식이다. 즉 유대인은 그리스도와 같은 혈통이라는 말이다.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특권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그렇게도 기다리던 메시아가 진정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으며, 그들 앞에 나타나셔서 보여주심으로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특권을 누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메시아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메시아적 기적과 표적을 보고 경험하였음에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영접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그 어마어마한 축복을 자신들의 민족에만 국한시키고,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마음에 담고 예배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육신적 축복에 국한시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교만으로 온갖 외식과 불의와 거짓을 행하였다. 이와 같이 패역한 영적 상태로는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알아볼 수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왜곡된 특권을 지키기 위해 메시아를 배척하며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극구 거부하며, 결국은 십자가에 못을 박는 하나님 살해자로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말살하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 성도들을 핍박하며 옥에 가두며 때리며 죽이는 악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바울의 마음은 그야말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이었기에 참기가 너무나 고통스러워 차라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필사적으로 울부짖은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자신의 뼈저린 체험을 말하고 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벤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5-10). 바울은 자신이 가치로 가지고 있었던 특권과 우월감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여 메시아를 핍박하고 교회를 말살하려는 엄청난 죄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 있었으나, 부활의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는 눈이 열리자 그가 특권으로 행사하던 그 모든 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배설물’과 같은 오히려 자신을 멸망시키는 악으로 작동됨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동족도 민족적 특권이라는 껩떼기 안에 들어있는 예수그리스도가 진정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만큼 갈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