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 9-13)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된 이삭 / 야곱의 선택과 에서의 유기 /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
롬 9:9-13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된 이삭
바울은 9: 6-8절에서, 아브라함에게서 난 씨라 하여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자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라고 창세기 21장 12절 말씀을 인용한다. 즉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된 언약의 씨라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창 21: 1-3). 동일하게 바울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9-13)라고 은혜로 택함을 받아 약속의 말씀대로 영을 따라 잉태된 씨가 하나님의 자녀이다는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의 교리는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도 동일함을 제시한다.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9절)
첫째, 이삭은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된 언약의 아들로서 장차 오실 메시아의 혈통이며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모형한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보다 먼저 태어난 이스마엘이 있었고, 사라가 죽은 후 다른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이 6명이나 있었다(창 25:1-2).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이 육신적으로 잉태된 혈육의 자녀들뿐이다. 하지만 이삭은 언약의 말씀으로 잉태된 영적 혈통이다. 아브라함에게 99 세에 할레를 받게 함으로 이삭의 탄생은 육신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계시하며, 사라에게는 경수가 끊어져 90 세 늙은 나이에 아들을 가질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으시고, 말씀으로 이삭을 잉태하게 하셨는데 (창 21: 1-3), 약속을 받은 후 25년 후였다. 그러므로 이삭의 탄생은, 메시아의 탄생과 저회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한 구속의 언약이 성취되는 모든 믿는 자의 영적 혈통이다. 즉 하나님의 참 아들이 되는 것은 육신적 혈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혈통에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 구원과 생명을 얻는 것은 육에 있지 않고, 영에 있으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복음을 계시한다.
둘째, 하나님의 참 아들이 되는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혈통도, 할례도, 제사도, 율법도 아니며, 이삭처럼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되는 영적 거듭남이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씨로 태어났기 때문에 약속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을 말씀으로 언약하셨고, 그 언약의 말씀을 성취하여 주셨기에,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영적 혈통이다. 사도 요한이 증거하기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로 난 영적 아들임을 확실히 밝힌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육신으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영으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8-29). 이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은 오직 예수그리스를 영접하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혈통으로 유업을 얻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야곱과에서 / 선택과 유기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영적 혈통, “씨”에 관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경우에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똑같이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도 일어났으며,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임을 제시한다. 아브라함의 두 씨 중에서 이삭은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된 언약의 씨이지만, 이스마엘은 육신적으로 낳은 유기된 자였다. 똑같이 이삭으로 말미암아 한 사람 이브가에게서 잉태된 쌍둥이 두 아들 중 야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택함을 받았고, 에서는 미움을 받아 유기된 것인데 이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 태속에서부터 선택과 유기가 정하여 졌다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강조한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10-13).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첫 아담의 후손인 가인과 아벨에게서도, 노아의 셋 아들 중에서도 일어났으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났고, 그의 아들 야곱의 12 아들 중 유다를 택하셔서 다윗의 혈통으로 세워주셨다.이와 같이 하나님의 언약은 육신적 후손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그 주권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사랑받는 자가 있고, 유기되는 자가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7:13).
선택과 유기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
이삭은 처음부터 약속의 말씀을 따라 잉태된 언약의 씨이지만,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여 이방 여인 종 하갈을 첩으로 삼아 하나님의 약속과 상관없이 아브라함 육신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때문에 육체를 따라 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잉태된 영적 혈통인 이삭과 한 집에 함께 거할 수 없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을 내 좇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창 21: 10-12).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갈 4:30). 성경은 오직 성령으로 하나님께로 잉태된 자만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영적 후손이요, 육체를 따라 난 자는 성령으로 난 자와 함께 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갈 4:29)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7-8)라고 확실히 제시한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서: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는 한 어머니 이브가에게서 동일한 날 잉태되어 동일한 날 태어나게 되는 쌍둥이였다. 그런데 그들의 신분과 운명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달라진다. 한 아버지와 한 아내의 태속에서 잉태된 쌍둥이의 선택과 유기이다. 야곱은 약속의 씨요, 에서는 버림받은 선택에서 제외된 아들이다. 이르기를: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와 같은 선택은: 첫째,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선택’은 처음부터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천지’라는 공간 와 ‘태초’라는 시간을 창조하시고, 당신과 당신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시기로 정하시고, ‘흙’을 선택하셔서 인간의 육체를 만드심으로 인간은 본래부터 이 땅에 속한 자임을 제시하셨다. 그리고, 자녀에게 향한 아버지의 아가페 사랑,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영생을 사는 당신의 나라의 영광을 설명하여 보여주시기 위해, 온 인류 중에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택하셨고, 열방 나라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수가 적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셨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홀로 뜻을 정하시고, 홀로 선택하시고, 홀로 이루시고, 독립적인 주권으로 선택과 자유를 행사하시며,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신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선택과 자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역 안에서, 즉 이 땅에 국한되어 있으며, 육신이 사는 동안 육신을 위해 사용되기 때문에, 육체가 된 인간은 육신이 원하는 탐심과 욕망과 정욕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며, 그 선택이 바로 죄와 사망이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로 피조 되었다. 하지만 타락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객체가 된 순간부터 하나님의 생명력에서 끊어져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다. 즉 죄와 사망을 주관하는 사단의 노예가 되었으므로 그 본성은 더럽고 추악하고 강퍅하며,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아’에 굶주려 있다. 타락으로 그 영이 죽었기에 의로운 선택을 할 수가 없음으로 진리 안에서의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마귀와 한 몸이 된 인간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롬 1:28),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이 땅의 썩은 것을 섬기며’(롬 1:21-25), 진리를 대적하여 온갖 불의를 행하는 철저한 죄인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의’를 근거한 ‘선택’이란 인간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락한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어 육의 탐심과 정욕을 따라 악을 선택하고 추구하고 즐기기 때문에, 인간이 자유를 위해 행사하는 선택이란, 진리가 아닌 불의이며, 자신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반항하고 대적하며, 끝없는 탐심과 욕망으로 온갖 쓰레기 같은 죄악들을 쏟아내어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선택할 수도, 하나님의 의에 항복할 수가 없으며, 도리어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거역한다고 바울은 인간의 죄악된 본질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롬 10:3). 죄악으로 잉태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선택권을 행사하더라도 그들의 선택은 이 땅의 썩어짐이며, 바울은 이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이라고 표현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죄와 허물로 죽었다”(엡 2:1)라고 말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존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절대적 의존자로 피조 되었다. 하나님은 첫 인간 아담에게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동시에 주시면서, 유독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 먹지 말라고 하셨고, 그 외의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자유롭게 먹으며, 다른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창 1:28).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내려 주신 은혜의 축복을 뿌리치고 유독 죽음이 선포된, 즉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라고 명하신 선악과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이제 먹고 싶은 것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탐심의 종으로, 갖고 싶은 것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욕망과, 하고 싶은 것을 반드시 해야 하는 정욕으로 이 땅의 것을 위해 사는 사단의 종이 된 것이다.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 적이요, 정욕 적이요, 마귀 적이니 "(약 3:14~15).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즉 사단의 종, 죄의 종이 된 인간의 선택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며” “마귀적이기에” 오직 멸망과 죽음일 뿐 생명이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선택과 열심으로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지만 이 세상은 창조 전부터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었기에 영원한 행복과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부와 영화와 지혜를 누린 솔로몬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은 헛되고 헛되도다’, ‘인생은 먼지와 같다’ 라고 육을 위한 모든 물질은 순간적이며 허무하며 '없음'이다고 실상을 고백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 (벧전 1:24).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늘의 것을 구하는 영으로 사는 자만이 하나님처럼 살게 된다고 성경은 확실히 말한다.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 4:6). 하나님은 영이시며 태초로부터 영생 그 자체이시기에 그분이 주는 영적 생명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오직 평안과 기쁨과 영원한 행복이다. 육신은 이 세상에 속한 쾌락, 욕망, 탐욕을 따라 죄를 쫓는 자가 됨으로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라고 육의 허무함과 영의 영원함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부르심이다.
부르심의 구원은,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불러내어 구원으로 이끄시는 불가항력적 은혜이며, 새 생명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로 인 쳐주시고 하늘나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류를 물로 심판하시는 죽음의 멸망에서 하나님은 오직 노아 한 사람만 부르셔서 노아에게 속한 자 8 명만 살려내셔서 새 인류의 창조를 일으키셨다. 이 세상 열방 중에서 하나님은 오직 아브라함 한 사람만 부르셔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영적 아버지로 세워 주셨다.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를 이스라엘 지도자로 부르시고 모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스라엘 백성의 출 애굽을 떠 맡기셨다. 그리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불러내어 홍해에서 세례를 받게 하신 후, 가나안을 향해 새로운 이스라엘로 살아올라 오게 하셨다. 기생 라합을 멸망하는 가나안 족속에서 불려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다윗 혈통의 반열에 서게 하셨다. 이방인 룻도 기근으로 멸망하는 모압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불러내어 다윗의 증조모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셨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 모두가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불려낸 자들이며,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교회의 반석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로 세워 주셨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11절)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부르셔서 입혀주시는 구원과 생명은 죄로 타락한 피조물의 그 어떤 요소도 끼어들 수 없기 때문에,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는 행위와 전혀 상관없이, 또한 필요치 않기 때문에, 오직 턱 정함을 입은 자들에게만 입혀주시는 선물이다고 말씀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택하여 세웠나니”(요 5:16). 그래서 구원은 은혜이며 선물이다. 또 이르기를,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 2:5).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하늘나라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오셔서 죄인의 육을 입고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음으로 우리를 이 세상 죄악과 사망에서 불러내어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은혜와 사랑이시다. 이는 창세전에 하늘나라에서 이미 계획하셨고, 묵시로 이루신 뜻이 이 땅에서 펼쳐지는 그분 홀로 성취하신 구원이시다. 때문에 그분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그 어떤 노력도, 행위도, 의로움도, 조건도, 대가도 원치 않으시며, 오직 사랑으로 입혀주시는 구원이시기에 ‘은혜의 선물’이라고 부른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창 25:23)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하늘나라에서 정하신 묵시대로 펼쳐지는 일이기에 이를 금하거나 돌이킬 자가 없다고 말씀한다(사 14:26-27).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단 4:35).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엡 1: 9-11).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이루신 당신의 선한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시기 위해 만물을 상대적으로 창조하시고, 즉 선과 악을 공존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에 근거하여 역사를 당신의 주권으로 통치하심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즉 하나님은 시와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시기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미리 예정된 일이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과 주권으로 운행되고 있다. 이르기를,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나니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는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 45:7). 성경은 처음 시작부터 반복하여 하나님의 선택과 절대적 주권을 점층적으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 빛과 질서와 은혜의 충만과 생명을 설명하시기 위해, 천지 창조전에 먼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있게 하셨다.
- 영적 생명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육을 이 땅의 티끌로 만드시고 흙으로 되돌림을 받게 하셨다
-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해, 에덴동산을 천국의 모형으로 잠시 동안 주셨다.
-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생명나무를 설명하여 영생을 주시기 위한 의도로 죄와 죽음을 상징하는 선악과나무를 먹도록 허락하셨다.
- 사단의 존재와 죄를 깨닫게 하는 의도로 선악과를 율법의 모형으로 첫 계명으로 주셨다.먹지 말라’는 법은 흙을 입은 연약한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 창세전 삼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셨다.
- 율법을 먼저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 즉 은혜의 복음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동일한 섭리와 방법으로, 첫 인간 아담의 후손에서부터 첫 것을 버리시고 둘째 것을 선택하셨다:
- 아담의 후손 가인과 아벨의 형제에서 하나님은 첫째인 가인을 버리시고, 둘째인 아벨을 택하셨다.
- 노아의 아들, 셈, 함, 야벳 중에서, 셈을 택하시고, 가나안(함의 아들)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게 하셨다(창 9:25,27).
- 아브라함의 아들 중 맏아들 이스마엘을 버리시고, 둘째 이삭을 언약의 씨로, 메시아의 혈통으로 주셨다.
- 이삭의 쌍둥의 아들 중 장자 에서는 버리시고, 차자 야곱을 택하셨다.
- 야곱의 12 아들 중, 유다를 택하셔서 다윗의 혈통으로 세우셨다.
- 첫 왕 사울을 페하시고 두 번째로 다윗을 왕으로 택하셔서 그리스도의 혈통으로 세우셨다.
- 택함을 받은 유대인이 넘어짐으로 이방인 우리가 구원의 반열에 들어서게 하셨다.
- 육신의 조상 아담을 먼저 주신 것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셔서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 고전 15: 45-47: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 히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엡 3:11) 영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처음부터 인간에게 천하고 천한 흙으로 육을 입혀주셨다. 그리고 그 육의 나약함과 무익함을 드러내시기 위해 선악과나무를 주셨으며, 죄를 드러내시기 위해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다. 즉 창세전 정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적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육의 타락을 허락하셨다. 그 타락을 통하여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어 둠으로’(갈 3:22),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으로’ (롬 3:23),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이루시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선물로 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엡 2:7-8). “의의 한 행동으로 많은 사림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함과 같이 목적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데”(롬 3:26) 있다고 바울은 하나님의 원대한 비밀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은 “죄와 사망의 법”(롬 8:2)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에는 정죄와 죽음일 뿐 구원이 없다는 말씀이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롬 3:10),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으로”(롬 3:11)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죄가 무엇이며 왜 죄의 삯은 사망인지를 설명하시기 위해, 그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의도로 몽학선생의 역할로 율법을 주셨다.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 3:24).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다”(히 10:1).
그래서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갈 3:22)라고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영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처음부터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주셨다. 지킬 수 없는 계명이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기 육체로 율법을 페하시는(엡 2:15-16) 방법으로 우리를 율법에서 영원히 속량하셨다(갈 3:13). 결론적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율법을 주신 것은 육체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갈 5:4)라고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깨닫고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2-35).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선이든 악이든 협력하여 그분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한 목적으로 역사를 주관하시며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즉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져가는 하나님이 제작하시고 감독하시고 창세부터 계시록으로 완성시키는 드라마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엡 3:9) 함과 같다. 그러므로 타락과 구원은 하나님이 자신의 선과의, 사랑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계획된 사건이다. 타락 없이 구원이 설립될 수가 없으며, 아버지의 사랑이 나타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수가 없으며, 죽음이 없이 생명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선악과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고 죽음의 저주가 임한 것이 아니다. 본질상 인간은 육의 본능을 따라 행사하였을 뿐이고, 하나님이 그 사건을 예정하셨고 선과 의로 주관하셔서 선을 이루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