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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1:21–22에서 바울은 우리가 전에 어떠한 자들이었으며, 이제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전에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 악한 행실 가운데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를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이제는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셨다.
23절에서는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에게 그 복음 위에 굳게 서 있으라고 권면한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가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골 1:23). 여기서 바울은 단순히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받은 복음,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진 완전한 구원의 은혜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소망을 버리지 말고 그 믿음 안에 굳게 거하라는 말씀이다. 다른 것을 더하여 그리스도의 구원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며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충만이 있다는 복음의 진리에서 흔들리지 말라는 권면이다. 그 권면은 이것이다 :
- 다른 터를 찾지 말라.
다른 복음을 붙들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십자가의 구원을 의심하지 말라.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복음 위에 굳게 서라.
(1)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지 말라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믿고 그 복음에서 떠나지 말며,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라는 권면이다. 성도의 믿음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열심이나 행위나 종교적 공로를 의지하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드는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의지하는 삶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셨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완전한 구원의 터 위에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이다.바울은 고린도전서 3:11에서 신앙의 유일한 기초를 아주 단호하게 선언한다:
-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은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다”고 선언한다. 성도의 신앙과 교회의 기초는 사람의 지혜가 아니다. 철학도, 율법적 행위도, 종교적 선행도, 어떤 사람의 능력이나 명성도 아니다. 그리고 신비한 체험이나 기적이나 은사 자체가 신앙의 터가 될 수도 없다. 교회의 참된 터는 오직 그리스도이다! 교회가 아무리 훌륭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도, 아무리 능력을 행하는 유명한 지도자가 있어도, 그리스도가 참된 터가 아니라면, 그것들은 오히려 교회의 본질적인 기초를 무너뜨리는 해가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생명과 권위와 구원의 근거는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교회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즉, 우리 신앙의 유일한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1장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며, 왜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터인지를 성경 말씀을 토대로 확실하게 증언하고 선포하고 있다.
- 그리스도는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존재한다.
- 그리스도는 만물을 붙드시는 주권자이며, 교회의 머리이며,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
-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터이시다.
-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의 주인이시며 머리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무엇인가를 더해야 구원이 완전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하신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왜냐하면:
-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의 터이시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의 터이시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터이시며,
그리스도는 교회의 터이시다. - 그러므로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은 교회와 성도가 붙들어야 할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며, 성도가 의지해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무엇인가를 더하여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구원의 은혜를 믿고 그 복음 안에 거하며 그 복음의 터 위에 굳게 서는 것임을 권고한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다”는 한 번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예정은 그리스도를 날마다 의지하고 자신을 날마다 부인하는 내려놓음이며, 그리스도의 터 위에 굳게 서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반석으로 다져 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희가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권고한다. 성도가 굳게 서야 할 터는 사람이 만든 터가 아니라 그리스도이며, 그 터 위에서 붙들어야 할 것은 사람이 만든 소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복음의 소망이다.
(2)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 복음은 확실한 소망이다
“복음의 소망”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히 바라보는 소망이다. 성도의 소망의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확실한 소망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소망을 바라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근거한 확실한 소망이며, 성도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이 확실한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은 날로 타락하여 무너지고, 환경은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의 믿음도 때로는 시험에 들고 연약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복음의 소망의 근거이신 그리스도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빛이요, 생명이요, 영생이다"고 확실하게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들에게 십자가 복음에서 떠나지 말고,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터 위에 굳게 서서 그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한다. 히브리서도 이와 같은 소망을 말한다.
-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히6:19)
-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3)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 복음의 범위
23 …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바울은 이어서 이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라고 말씀한다. 복음은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이나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모든 민족을 향하여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다(롬 1:1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한 가지 사명을 주셨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28:19–20).
그러므로 복음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그 소망을 자기 안에만 간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통로의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복음은 우리가 만들어 낸 메시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이 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그 중심에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4)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 복음을 위한 종
23절 마지막에서 바울은 자신을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라고 확신에 찬 선언을 한다. 이는 바울이 자신의 직분이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누구에게 속한 사람이며,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누구를 전하는가를 분명하게 밝히는 선언이다. 바울은 자신을 항상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롬 1:1).
바울에게 사역은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수단이 아니었다. 그는 복음의 주인이 아니라 복음을 맡아 섬기는 종이었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람들의 시선과 충성을 돌리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하며, 자신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맡아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나타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종이다"고 단호하게 밝힌다: “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라.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밝힌다:
-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 1:13).
-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5-7).
-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그러므로 참된 복음의 일꾼은 사람을 자기에게 묶어 놓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안내자이다. 참된 “그리스도의 일꾼”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그리스도를 드러내며,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인다.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보다 십자가의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바울은 고린도서에서 자신의 사역을 확실하게 밝힌다:
- “우리는 너희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고후 1:24).
-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후 4:5).
바울은 아주 확실하게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전파하는 “종”이다'고 확실히 밝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종이며 복음의 일꾼이라는 말씀은, 오히려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복음을 성경대로 충실하게 전하는 통로가 된다는 뜻이다. 참된 복음의 일꾼에게는 자기 영광이 중심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거나, 사람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 묶어 두거나, 복음으로 얻은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챌 수가 없다.
복음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 복음을 맡은 종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울이 말한대로 “이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24절)라고 참된 복음의 일꾼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고난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결국 복음의 중심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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