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35~40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 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으로 떡을 배불리 먹고 그 떡이 그리워서 다시 찾아온 유대인 무리에게 너희는 영생을 주려고 온 나에게는 관심이 없고 오리지 육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열심을 내고 있으니 너희가 구하는 양식이 바로 썩은 양식이며,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6:27)고 책망하신다. 하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리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면서 모세가 준 만나와 같은 떡을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아무리 설명하여도 알아듣지 못하고 곡해하는 우매한 이들에게 예수님은 더는 설명이 아닌 선포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라고 놀라운 말씀을 제시하신다.
왜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인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으로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임을 계시하셨다. 그리고 반복하여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 영생하도록 있는 떡, 인자가 너희에게 주는 떡,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 살아 있는 떡, 등 여러 가지 떡으로 표현하시고 한마디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6:48)라고 확실하게 선포하신다. 그리면 예수님은 왜 자신을 떡과 연관하여 “생명의 떡”이라고 부르시며, 그 “떡”은 무엇을 의미하는 바를 구약에서 미리 상세하게 그려주고 주고 있다.
구약에서 그려진 생명의 떡이신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에서 잘 설명이 되어 있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 (레 2:14-15).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 2:13). 이와 같이 소제는 고운 가루로 만든 무교병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이며, 그 떡은 고운가루, 기름, 유향, 소금으로 만들어져야 했다.
고운 가루 (예수님의 육체):
밀알들이 고운 가루가 되기 위해서는 깨고 부수고 빻고 찧어져야 한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의미한다. 우리의 구원과 생명이 되시기 위해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그 과정과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당하신 온갖 핍박과 매 맞음으로 조롱과 살이 찢기고 피를 흘리는 진통과 죽음을 뜻한다. 그렇게 그분이 먼저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부서지고 찧기에 고운가루가 됨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떡이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의 몸이 십자가에 찢기에 이루어내신 구원을 “생명의 떡”이라고 부르신 것이다.
기름 (성령의 기름부음):
고운 가루가 아름다운 떡이 되기 위해서는 기름을 뿌려야 한다. 고운 가루에 기름을 붓는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뜻한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셨기에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의 구원사역 시작을 성령의 부으심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증거의 인침으로 시작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죄인의 육을 입고 인간으로 오셨기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구원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일으키시는 모든 일, 즉 십자가 구원은 아버지의 뜻이며, 삼위일체 하나님과 일치하게 동행하심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됨을 제시하셨다. 이는 창세기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인간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을 구원하심에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사역하심으로 온전히 성취됨을 나타내셨다. 그리하여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그분의 영으로 즉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롭게 거듭나게 된다.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성령의 거듭남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유향의 (십자가의 장례):
유향은 향기를 풍기는 값비싼 향품이다. 향기는 주님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의 신부에게 영원한 생명의 향기를 주시고 우리를 위한 천국의 혼인잔치로 초대하신다. 또한 향유는 하나님께서 죄인의 모든 죄를 다 태우시고 향유를 뿌리심으로 다시는 죄인의 죄와 허물을 보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향유의 냄새만 맡으시겠다는 죄 사함을 뜻한다. 그리하여 말씀하시기를, “제사장은 그 고운 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그 모든 유향을 가져다가 기념물로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2:2). 즉 향유 (그리스도의 피)를 뿌림으로 죄의 냄새를 없애고 오직 향기로운 아들의 냄새만 맡으시겠다는 말씀이다.
마리아가 옥합을 깨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은 헌신에 대하여 예수님은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한 것이라”(요 12:7)고 하셨고, 이를 높이 평가하여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마 26:13)라고 말씀하셨다. 즉 옥합과 향유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계시하기에 십자가 복음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옥합이 깨져서 향유가 예수님의 발에 부어짐으로 온 방에 향유의 향기가 가득 채워진 것이다. 바로 예수님의 육체가 십자가에 깨짐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와 사망의 무덤에서 구원의 향기로 생명으로 살아올라 오게 되는 복음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옥합을 깨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어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 마리아가 자신을 깨고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그 진실 된 마음으로 행한 일을 복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누워계실 때 동방에서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수님 앞에 드리면서 이 세상에 구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기쁨으로 경배하며 맞이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그 몸이 찢기고 깨짐으로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이 임하게 되는 복음을 제시한 사건이 바로 마리아의 향유 옥합이다. 마지막으로 성령의 거듭남을 깨닫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니고데모가 자신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세례와 함께 부활하여 영의 사람으로 거듭남을 나타내기 위해 몰약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제사에 동참한 것이다. 이와 같이 향유는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그 복음의 향기가 온 세상에 전파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소금 (영원한 언약):
소금은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한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 2: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영한 응식(분깃)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니라” (민 18:19).
하나님은 소금을 들어서 당신의 언약은 필연적으로 성취될 것이며 반드시 온전하게 완성될 것임을 확증하여 주셨다. 그 언약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점도 흠도 없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의 제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소제를 먹게 함으로, 즉 예수그리스도를 생명의 떡으로 먹게 함으로 점도 흠도 없는 당신의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시겠다는 언약을 미리 주신 것이다. 소금이 뿌려진 떡은 그 자체로 부패와 무관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점도 흠도 없는 온전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과 동시에 패역하고 썩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예수라는 언약의 소금이 뿌려짐으로 온전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열남되는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이중적 상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빛과 소금이다”로 선포하셨지 ‘빛과 소금이 되라’가 아니다. 즉 너희는 이 썩어지는 세상과 분리된 썩지 않는 소금이며, 이 어두운 멸망의 세상에서 구원받은 영원한 빛의 자녀라는 선언이다. 즉 너희는 이 썩어져 가는 멸망의 세상으로부터 어둠의 지옥에서 구원받아 하늘나라로 입성하는 소금과 빛의 존재라는 선포이다.
이와 같이 소제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생명이 담겨 있다. 첫 이삭이 추수가 된다는 것은 첫 이삭의 죽음을 말하고, 그 추수된 곡식이 곱게 가루로 빻아져서 떡이 되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며,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가 되어 하나님께 바쳐짐으로 소금의 언약이 성취되어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과 영생의 떡이 되는 복음의 향기를 그려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제가 제시하는 ‘생명의 떡’이다. 소제의 떡은 정확하게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에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라고 자신을 ‘떡’으로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소제로 드려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한 알의 밀인 그분이 곱게 가루로 빻아져서 떡이 되는 십자가 죽으심과 다시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어 아버지에게 소제로 받쳐짐으로 그분 안에 있는 많은 열매가 하나님께 열남되어 짐을 사도바울은 이렇게 진술하고 있다.
고전 15:20-23 :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 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사도 바울은 유월절에 드려지는 어린 양과 첫 이삭 드리는 날에 드려지는 소제의 제물을 예수그리스도로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한 알의 밀이신 예수님이 고운 떡이 되기 위해 찧기고 부서지는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하나님께 소제로 드려진 것이다. 그리고 첫 이삭 드리는 날에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영, 성령을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어주심으로 예수와 같은 점도 흠도 없는 온전한 자녀로 신부로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은,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성취를 가리키고, 둘째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로 연합되는 혼인잔치의 완성을 계시하는 아름다운 복음의 향기를 뜻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을 먹은 자들이 예수와 하나가 되어 영원을 살게 됨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영생의 떡”이신 것이다.
요약하면, 구약에 그려진 생명의 떡이신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상징하는 누룩과 꿀이 섞이지 아니한 온전한 고운 가루로, 성령의 기름이 부어진 향기로운 제물로, 그리고 소금이 부어짐으로 이 세상 썩어짐과 구별되는 영원한 하늘의 떡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제물로 그려진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떡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주어짐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을 입게 되는 향기로운 복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선포하신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 하지만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앞서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4:14)로 말씀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떡 달라고 좇아온 무리에게는 '내가 곧 영원히 주리지 아니하는 생명의 떡이라’라고 선언하신다(6:35).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제일 증오하고 개처럼 멸시하는 사마리아 땅을 밟으시면서 천한 신분으로 창녀로 알려진 여인에게 영생의 생수를 주시기 위해 우물가까지 찾아가 주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마리아 전체 민족의 죄성과 버림과 멸시를 받는 대표로 등장한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 백성의 고통과 설움을 잊지 않으셨으며, 친히 찾아가 주셔서 당신을 그리스도로 계시하여 주시고, 한없는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 즉 성령을 부어주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임하며, 그가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택함을 받은 당신의 백성은 하나님이 친히 찾아가 주셔서 은혜를 입혀 생명을 주시는 복음을 제시하셨다. 반대로 유대인 무리들은 예수님의 기적 행하심을 좇아 예수님에게 모여온 자들이다. 이들은 표적으로 떡을 배불리 먹자 이내 예수님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내 제자들을 무리로부터 분리시키시고, 자신도 이들을 피하여 산으로 기도하려 가신 것이다. 이들에게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복음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사마리아 여인은 비록 예수님이 제시한 영원한 생수를 육적 갈증을 푸는 ‘물’로 오해하였지만, 예수님은 여인에게 ”내가 바로 네가 찾는 메시아 그리스도이다” 라고 자신을 먼저 계시하여 주셨다. 그리고 여인의 영적 눈을 뜨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것이다. 이에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눈과 귀가 열림으로 그 마음에 생수의 강이 넘칠 뜻 기쁨이 충만한 영적 갈증이 해결되자 육신의 목마름을 해소하는 물동이를 던져버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영접한 신랑 예수를 메시아 구원자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증언한(4:28-29) 것이다. 여인은 이제 영적인 생수를 받아 마시고 영생이 주는 시원한 해갈과 영생이 주는 풍성한 배부름을 맛보는 자가 된 것이다.
반대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부른 무리들은 영생의 떡을 설명하는 표적을 육신의 배를 채우는 떡으로 곡해하여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생의 양식으로 본 것이 아니라 탐심의 배를 채우는 육신의 떡으로 인식하고 떡을 달라고 다시 예수님을 좇아온 것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이적과 표적도 보여주고, 하나님의 증언, 성경의 증거, 세례요한과 모세의 증언들을 제시하여 주셨음에도 끝까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며 도리어 멸시하고 모욕하고 배척하고 거절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6:36) 라고 책망하시면서 이들에게는 증거만 제시할 뿐 그 증거들을 통하여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알아보는 눈과 귀를 열어주지 않으셨다. 반대로 예수님은 여인에게 아무런 기적도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말씀만 던져주시고 그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신부로 정해진 사마리아 여인은 친히 찾아가 주셔서 당신이 바로 그 여인이 찾는 신랑임을 계시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부어주어 영생을 입혀주신 것이다. 반면에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부른 까닭에 예수님을 좇아온 유대인 무리에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는 눈과 귀를 막음으로 영생하는 생명의 떡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6:44) 라고 말씀하신다. 즉 너희는 청함을 받았으나 스스로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5:40) 자들이며, 너희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자고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으며”(5:42), 너희는 ‘하나님의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고 서로 자신들의 영광을 취하는’(5:44) 패역한 자들이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5:44). 너희가 믿는 ‘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요 5:47) 라고 이들은 절대로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인정하지도 믿지도 않음을 지적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셔서 이들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패역함과 사악함을 여지없이 지적하고 폭로하고, 이들의 자존심과 선민사상과 우월성을 깨고 부수고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도 이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으며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였고 죽이려는 악독한 궤계를 꾸민 것이다(마 11:18). 결국 이들은 자신들이 지킨다는 그 율법으로 자신들이야말로 범법자임이 확실히 밝혀짐으로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쌓고 있었기에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모세가 너희를 고소한다(5:45)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오로지 육으로 사는 육적 존재이기에 절대로 영적인 것을 생각하거나 인식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알지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 것이 인간의 죄 된 본질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구원함에 있어서 처음부터 모든 인간을 죄에 가두어 두시고 하나님의 독립적 주권으로 구원을 이루시고 오로지 당신이 택하신 백성에게만 은혜를 입혀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로 정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신 선한 일이시기에 구원의 대상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시며, 오직 택한 자에게 그분을 알아보는 눈과 귀를 열어주심으로 영의 계시로 메시아를 알아보고 영접하여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주시는 선물임을 사마리아 여인과 유대인 무리의 극명한 대조로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즉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고 주님에게로 나오는 자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이기에 그들에게만 영원한 생명의 떡이 주어지게 됨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그분의 열심으로 이루어진 공로로 말미암아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자신을 아버지로 계시하시며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믿고 따라오라고 ‘믿음’이라는 방법을 주셨다. 그 믿음이 바로 구원과 생명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이며, 이를 ‘믿음’으로 정하셨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믿음으로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모른다면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그분과 함께 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라고 ‘믿음’이라는 것을 주셔서 당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알게함으로 그분을 믿고 의지하게 하시며 그분에게 속한 자로 거듭나게 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 영의 실체를 아는 자,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에게로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로 나올 수 있는 자는 모두가 아니다. 아무리 보여주고 들려주어도 영의 일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 무리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하고 배척하고 핍박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도다”(6:36).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자가 있으며, 그들은 반드시 예수님께로 나오게 되며, 주 예수만으로 배부르며, 오직 예수만을 행복의 근원으로 삼게 됨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예수라는 생명의 떡과 생수를 먹고 마신 자는 이제 예수가 그 인생의 목적이 된 자들이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세상 썩은 양식에 연연하지 않게 되며, 오로지 예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믿음으로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 삶을 지향하게 되며, 그리스도가 내 삶의 원천이 되었기에 더는 목마르거나 굶주리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6:35) 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아버지의 뜻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이 세상에 내려온 목적이 바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이며, 아버지의 뜻은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생을 입혀주는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38). 그분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철저한 순종으로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을 살아내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 참 아들이시며 참 메시아이시다. 그분은 이 세상 죄인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았으며, 아픔과 고통을 많이 겪으셨으며’ (사 53:3),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사 53:7), 무력한 양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하지만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짓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며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 (사
53:5).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도말하기 위하여 죄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핍박당하고 고난과 수모를 받으셨으며, 죄인에게 죽임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그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이 온전히 이루어내신 아버지의 뜻이었다.
두 번째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는 창세전 구원받기로 정하여진 자들이기에, 그들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입혀주는 일이 바로 아버지의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39). “아버지께서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라는 말씀은, 구원받기로 정하여진 자는 그가 이 세상 끝까지 어디에 숨겨져 있든, 그가 무엇을 했든,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전혀 상관없이 아무런 조건도 한 일도 없이 오로지 아버지께서 택하여 주셨다는 그 이유 하나로 불가항력적 은혜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모든 것을 초월하여 결코 구원하여 주신다는 예수님의 강력한 의지와 편애와 특권에 대한 말씀이다. 때문에 결단코 멸망치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려내어” 아름다운 신부 단장으로 하나가 되는 영원한 혼인잔치로 당신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 마지막을 제시하신 것이다. 즉 마지막 심판의 날에 당신의 백성은 부활체로 영원으로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까지 끝까지 보존하여 주신다는 언약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자신에게 떡 달라고 간청하는 유대인 무리에게 아주 놀라운 하나님의 주권과 절대적 예정을 선포하신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40).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7:12). 예수님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 자고하는 유대인 무리에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예정을 선포하심으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을 보고 믿지 않는 자는 곧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자임을 제시하신다. 즉 내가 이 세상에 내려온 것은 너희들이 원하는 다윗 왕국을 회복하는 정치적 메시아도 아니고, 너희들의 배를 채워주는 물질적 메시아도 아니며, 나는 오로지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자만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이다. 때문에 아버지가 나에게 주시는 자는 나를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알아보고 나의 음성을 듣고 나를 믿고 나에게로 나와 내가 주는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 영생을 얻게 된다는 선포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라”(6:37)라고 말씀하심으로 영생의 떡은 나를 열심히 좇아와 달라고 간청하여 얻어지는 것이 이니라, 아버지의 주권으로 나에게 주신 자들에게만 주실 것이며, 그들만 내게로 올 것이며, 그들만 아들을 알아보고 믿게 됨으로 그들에게만 허락된 생명의 떡이며, 너희는 내 아버지께서 보낸 자가 아니기에 줄 수 없다는 거절을 의미하는 선포이다. 생명의 떡을 먹을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여야 하며, 그들은 ‘아버지께로 온 자들’이기에 아들을 알아보게 될 것이고, 아들을 믿는 믿음이 주어질 것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아들을 믿고 영접하게 됨으로 선물로 영생이 주어진다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절대적 예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예수께로 나오는 자는 이미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보내시기로 예정된 자들임을 분명히 밝혀주는 선포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 중에 있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17:6),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7:9).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17:12).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보내주신 자만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구원할 것이며, 그 나머지는 하나님의 선택에서 배제된 ‘멸망의 자식’뿐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좇는 무리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절대적 주권이며, 나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아버지기 나에게 주신 자만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39)라고 확실한 선포를 하신다. 즉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에게만 생명의 떡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또한 아들을 믿는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3: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예정된 자들임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다 ‘자기 백성’이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신다. 이 세상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이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 첫 인간의 후손에서 가인을 버리고 아벨을 택하였으며, 노아 8식구만 구원하고 온 인류는 물로 심판하여 멸종하게 하셨으며, 열방 중에 아브라함만 택하셨으며,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야곱은 택하고 에서는 버리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10:26)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8:45) 라고 선언하셨다.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지만 그 온 세상 중에 택함을 받은 자만 그 복음을 알아듣도록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그 나머지는 비밀로 감추어 두심으로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막 4:12라)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부른 무리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들에게 수많은 이적과 표적, 이들이 믿는 모세와 세례요한, 하나님의 증언과 성경 말씀을 주었음에도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거절하고 배척하고 핍박하여 하나님을 죽이는 악행으로 끝까지 간 것이다.
그러나 택함을 받은 예정된 자는 한 명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하시며 그 선택에서 제외된 자는 멸망의 자식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요 17:12).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 (39). 아버지가 택하신 자는, 예수님이 이방 땅 사마리아에 있는 창녀로 불리는 여인을 찾아 우물가까지 가셔서 친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계시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신 것과 같이, 한 명도 빠짐없이 주님이 친히 찾아가 주시며, 영원히 굶주리지 아니하는 영생의 떡을 먹이신다. 즉 택함을 받은 자는 그 행위가 아무리 의롭지 않아도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그 어떤 상황과 경우에라도 절대로 버려짐이 없이 끝까지 당신의 자녀에 합당한 자로 만드신다는 절대적인 구원의 보증을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예를 들면, 야곱이 아무리 비겁하고 허물투성이라도 하나님은 환도뼈를 꺾어서라도 하나님 앞에 항복시켜 이스라엘로 거듭나게 하신다. 창녀 고멜과 같은 음녀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결혼까지 이끌고 가신다. 사도바울이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여도 다시 돌이켜 복음을 전파하는 위대한 사도로 오직 십자가 예수를 위해 죽는 자로 만드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절대로 포기하는 일이 없으시다. 그분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이시기에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은 그분의 성품을 따라 영원한 것이며, 중도에 변하거나 포기하는 일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중 열심히 예수님을 좇다가 중도에 떨어져 나가는 자들은 처음부터 무리들과 같이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좇는 자들이기에 이들은 십자가 예수를 전하게 되면 스스로 포기하여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는 처음부터 알곡에 붙어 다니는 가라지이지 알곡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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