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1-15 (마 14:13-21; 막 6:30-44; 눅 9:10-17)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일으키심으로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영원한 생명의 떡임을 선언하신다. 즉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하여 장차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죄와 사망에서 살아 올라와 하늘의 풍요를 누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보여주시기 위한 의도였다. 하지만 예수님을 좇는 무리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생명이 떡이 되는 말씀의 진의를 알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였다. 오히려 영생의 떡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 육식의 떡으로 인식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주는 떡은 이 세상에 속한 육신의 떡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신 영원을 사는 생명의 떡이며, 그 생명의 떡이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확실히 선언하신 것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48). 이와 같이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완성으로 끝을 맺게 되는 완전한 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오병이어의 배경과 의도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마14:15, 눅9:12)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무리가 예수님에게 모여 온 의도
사도 요한은 2절 서두에서부터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른 의도는 바로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6:2) 라고 밝히고 있다. 즉 큰 무리가 예수님을 좇아온 것은,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아보고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인 것이 아니라 또 다시 기적을 보기 위해, 육신의 필요를 구하려고 모였음을 먼저 제시함으로 이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과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이 극명히 대조됨을 암시하고 있다. 즉 예수님은 이 땅의 빵이 아닌 본질적인 생명 즉 영생을 주시기 위해 오셨고, 이 세상은 예수님을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이 세상 신으로 망상하고 있음을 요한은 미리 계시하여 주고 있다.
광야에서 표적을 일으킨 의도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곳이 바로 빈들, 즉 광야라고 밝히고 있다 (마 14:13 / 막 6:35 /눅 9:12). 이는 오병이어의 표적이 출애굽기의 광야 만나 사건과 연관되어 있음을 계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제사를 드리는 성전에서 행하지 아니하시고 광야에서 일으키셨다. 그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하늘에서 은혜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으며, 그 광야에서 세례요한이 ‘회개와 천국’을 외침으로 성전에서 여전히 제사 드리는 유대인들을 광야로 불러내어 회개의 세례를 주어 광야에서 천국이신 예수를 영접하는 준비를 시킨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 시험 중에서 마귀는 예수님에게 돌을 명하여 육신의 굶주림을 위한 육신의 떡을 만들라고 유혹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는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셨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하여 그 육신의 떡을 구하는 시험에서 이겨내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은 오직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떡을 먹음으로 영생을 얻게 됨을 계시하신 것이다.
오병이어와 유월절
오병이어의 표적은 유월절 성전으로 제사 드리러 가는 무리에게 행하여진 이적이다. 예수님은 바로 유월절 때와 그 유월절을 위해 성전으로 향하는 유대인 무리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심으로 자신이 바로 유월절 제물로 드려지는 희생양임을 계시하신 것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증거하신 것과 같이, 예수님 자신이 희생재물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그분이 십자가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즉 생명의 떡으로 오신 그분을 먹는 방법으로 죄와 사망에서 살아나게 됨을 나타내시기 위해 바로 유월절 절기의 때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제시하는 십자가 복음이다.
예수님의 긍휼
예수님은 자신을 향해 모여오는 무리를 목자 없이 방황하며 질병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양으로 보시고 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가르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 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마 14:14). 예수님은 자신이 희생양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들 앞에 나타났음에도 알아보지 못하고 여전히 제사를 드리려고 유월절 성전에 모여오는 그 큰 무리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셨다. 그리하여 오병이엉의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자신이 바로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영원한 목자이시며 진리의 빛이심을 나타내시고 선포하신 것이다.
제자들에게 주시는 시험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제자들을 시험하는데서 부터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마음속에 이미 기적을 행하시려고 작정하셨기에 그냥 행하셔도 되지만, 오병이어의 표적을 통하여 제자들의 신앙 훈련과 더 확실한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해, 또한 우리에게 영적 가르침을 주시기 위해 빌립을 시험하기 위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5). 주님은 빕립에게 시험의 질문을 던질 때 ‘우리’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이 이 문제의 해결사로 나셨음을 계시하여 주신다.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제자들에게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관하심으로 이태까지 수많은 기적과 능력을 보여주신 것과 같이 이번 일도 주님께서 자신의 권능으로 이들의 양식을 해결하여 주실 것임을 암시하여 ‘우리’라고 제자들에게 제시하신 것이다. 하지만 빌립은 예수님이 묻는 의도를 전혀 몰랐기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산으로 적어도 200 데나리온 정도, 그것도 배를 채우는 수자가 아니라 조금씩 먹게 하더라도 부족하다고 대답한다(7). 즉 어디에 가서 그 많은 양의 떡을 살 수 있겠는가고 걱정함으로 불가능함을 제출한 것이다. 빌립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제자로서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시며 이성과 자연법칙을 초월하여 역사하심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였음에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많은 힌트를 주셨다. 문제 해결사는 언제나 주님이시기에 주님을 포함하여 ‘우리’라고 부르셨고, 제자들에게 떡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이성적인 생각을 내려놓고, “어디서” 그 떡이 올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는 힌트를 주셨다. 제자들은 출애굽 광야에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신 그 놀라운 기적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 해답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임을 계시하여 “어디서” 라고 물으신 것이다. 즉 세상으로 오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인가 하는 영적 시험이었다. 영에 속한 자는 당연히 하늘의 양식을 말하는 것이고, 육에 속한 자는 당연히 이 세상 양식을 목표로 할 것임을 구분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빌립은 예수님이 제시하는 영적 의미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 생각으로 이성적으로 계산함으로 그가 얻은 답은 ‘불가능’이었다. 즉 빌립은 불가능함을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예수님 능력 앞에 내 놓은 것이다.
빌립은 이 세상 육신의 배를 불리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떡을 구하기 위해 쫓아온 큰 무리의 대표로 등장한 것이다. 빌립을 포함하여 예수를 좇는 그 큰 무리가 바로 육신의 떡을 구하기 위해 예수를 찾아온 자들이지 하늘의 생명의 양식을 구하려 온 자들이 아니였음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으리라’ 라고 말씀하시자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내 예수를 떠나 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시험받고 있는 빌립의 모습 속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그렇게 불가능한 여전히 육신의 떡만을 구하고 찾는 자들에게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주실 십자가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 빌립을 시험에 실패한 자로 등장시킨 것이다.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으로 만물을 주관하시기에 그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시며, 이 세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이시며, 자연 법칙을 초월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그분의 역사하심을 믿는 것이 신앙의 기본임을 빌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역사를 주관하심으로 모든 기적은 그분에게 있어서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며, 하지만 꼭 필요하실 때에만 표적과 이적을 행하시고 그 표적이 무엇을 의미하며, 상징하며 예표 하는지를 가르쳐 주신다. 때문에 그분이 일으키시는 기적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계시되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진리의 말씀에 초점을 두어야 함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우리의 모든 삶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여 주심에 자신을 그분께 맡기며 그분이 우리 안에서 일하심을 지켜보는 믿음을 가지지 못할 때가 참 많다는 것을 빌립을 통해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이 나와 실제로 함께 있음에도 때로는 그분이 침목 하실때 ‘유령’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큰 기적을 체험하고도 풍랑에 일고 파도가 처서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가 유령으로 보임으로 예수를 향하여 ‘유령’이라고 부른 것이다. 바로 우리의 실존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빌립과 대조적인 안드레는 비록 이성적 판단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인간의 불가능에서 예수님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긍정적인 태도로 가능성을 찾아서 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도시락을 주님 앞에 내 놓은 것이다. 안드레는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 라고 말함으로 불가능하지만 주님은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키시는 분이시기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주님은 안드레의 그 겨자씨 같은 믿음을 보시고 이내 안드레에게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10) 라고 명하신다. 이제부터 너의 그 작은 믿음으로 능력을 행하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였다. 그렇게 오병 이어의 기적은 안드레의 겨자씨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소년의 보잘것없는 도시락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 기적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에게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는 십자가 구원과 생명을 나타내신 것이다.
민수기 14장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음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게 된다. 하지만 나머지 10명은 가나안 땅의 장대한 거민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을 메뚜기처럼 보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불가능함을 내 놓음으로 자신들의 부정한 믿음과 같이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시체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는 것에서 나오는 믿음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리떡 5 개 와 물고기 2 마리
보리떡은 그 당시 가장 값이 싸고 또 경멸받았던 음식이었으며, 또한 부정하다고 정죄 받은 자들이 자신의 부정함을 나타내기 위해 속죄로 드리는 제물로 쓰였다. 즉 간음한 여인의 죄는 짐승들이 짓는 죄와 다름이 없다하여 흔히 짐승들이 먹는 보릿가루를 제물을 드리게 한 것이다. 물고기 역시 보리떡 못지않게 보잘 것 없는 음식이었다. 떡이 잘 넘어가지 않아 소금에 절인 적은 물고기를 빵을 먹기 위한 반찬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보리떡과 물고기는 바로 우리 죄인들을 상징한다. 주님은 천국과 물고기 비유에서 이 세상 모든 인간을 부정한 물고기로 묘사하고 모두가 예수님의 심판의 그물 안에 들어있으며, 그 중에서 당신의 택한 자만 골라내어 천국으로 들여보낸다고 말씀 하신다 (마13:47). 보리떡과 물고기는 성경에서 항상 천하고 소외당하고 가난하고 부정한 죄인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굳이 비천하고 멸시당하는 보잘것없는 짐승이나 가난한 자들이 먹는 누구도 원치 않는 보리떡과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합하여 7의 완전수를 이루는 5병 2어로 표적을 이루신 것은 깊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경에서 5라는 숫자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의 임재를 상징하며, 2라는 숫자는 항상 분리, 갈라짐을 상징한다. 즉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 죄인이(2의 숫자)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5의 숫자) 말미암아 하나님 품안으로 들어와 완전한 연합을(5+2=7) 이루게 되는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 완성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 땅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하늘에 축사하사” 완전한 생명의 떡이 하늘로부터 풍성하게 내려온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다음 기적에서 예수님은 떡 일곱 개로 축사하시고 4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제자들이 다시 완전한 7의 숫자로 칠병 이어의 이적을 체험하게 된다. 오병이어의 표적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여진 것이라면, 칠병이어의 표적은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행하여진 이적이다.
칠병 이어의 기적에서 일곱 개의 떡과 일곱 광주리 떡이 남아 돌아온 것은, 완전하신 “생명의 떡”이 땅 끝까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 완전한 은혜의 복음을 상징한다. 이 땅의 떡 7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입어 완전한 하늘의 7로 거듭남을 상징한다. 즉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완전한 죄인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한 것없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온전한 하늘나라 백성으로 거듭남을 나타내시기 위해 7의 떡을 하늘에 축사하시자 4천명을 먹이시고 7의 광주리로 남기는 표적을 행하신 것이다. 즉 7의 숫자는 하나님의 신적 완전성, 하나님 은혜의 완전성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4의 숫자는 이 땅의 숫자를 의미함으로 이 세상 죄인이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됨을 먹고 남은7의 광주리로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표적은 무리 중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도시락으로 일으킨 이적과 비교하여 칠병이어의 표적은 제자들이 준비한 7의 떡으로 일으킨 기적으로 (마 8:5) 이제 제자들을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제자들의 복음의 완전성을 나타내신 것이다.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한 복음이 땅 끝까지 이방인들에게 전파됨으로 그분은 세상 끝까지 당신의 백성의 생명의 떡이 되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짐을 이 두개의 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성경은 이와 같이 문자하나 숫자 하나가 도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계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는, 첫째는 보잘것없는 비천하고 부정한 우리 죄인의 모습이며, 둘째는 비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부정한 죄인의 육을 입으시고 죄인이 되어 우리의 모든 부정함을 가지고 가셔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는 예수님 자신을 상징한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멸시받는 그 초라한 보리떡의 모습으로 오셔서 당신 전부를 죄인에게 내어줌으로 죄인에게 차고도 넘치는 은혜가 부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분은 아무런 볼품이 없는 보리떡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이사야 53장의 묘사대로, “사람들에게 미움과 멸시를 받았으며, 아픔과 고통을 많이 겪었으며”(사 53:3),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으로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 53:7)라고 묘사한 그 보리떡과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다. 하지만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짓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아”(사 53:5)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영생의 떡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치는 모습은 바로 그렇게 멸시받고 천대받고 버림받는 초라한 보리떡의 모습이었다. 그분이 그렇게 보리떡의 모습으로 오셔서 부정한 죄인의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고 자신의 살을 먹게 하심으로 자신의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잉태하여 신부로 맞이하여 한 몸을 이루게 되는 연합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무리를 향하여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보잘것없는 멸시당하는 보리떡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가장 존귀하시며 가장 아름답고 의로우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영원한 우리의 신랑이시며, 하늘의 풍성한 은혜로 하늘의 영생을 우리 마음에 풍성히 채워주시는 우리의 영원한 ‘주’ 그리스도이시다. 그렇게 보리떡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천국과 영생임을 보여주시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리고 12 광주리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지만, 주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킨 일은 또한 제자들을 위함이기에 12제자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 성도를 상징한다. 장차 12제자와 우리를 통하여 땅 끝까지 하나님 백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함께 누리게 되는 천국 잔치의 모형이기도 하다. 그래서 배불리 먹은 후에 12 광주리가 더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2-13).
오병이어의 기적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3)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3)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막 6: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오병이어의 표적은 육신의 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생명, 하나님 나라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속과 섭리”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유월절 때로 맞추어서 행하심으로 당신이 바로 유월절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됨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는 이 세상 육신의 굶주림을 해결하는 ‘썩은 양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주님은 이 세상 육식의 양식을 “썩어 없어질 양식”(27) 이라고 부르고 그 ‘썩은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27) 라고 말씀하신다. 그리하여 주님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심”으로 무리에게 주신 떡이 바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양식이며,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확실히 밝혀 주신다. 예수님께서 축사하심으로 하늘로 내려온 떡을 무리에게 먹여주셨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을 떡으로 먹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무리를 향하여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4-55)라고 자신이 바로 무리에게 주신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거절: 육신의 떡
유대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후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6:14) 라고 열광하며 예수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15)한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그 선지자’는 바로 이스라엘이 기대하는 신명기 18장 15절에 나오는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있었기에 오병이어의 이적을 본 이들은 이내 광야에서 하나님이 만나를 먹이셨던 기적으로 연결시켜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본 것이다. 그리고 마침 유월절 시기에 일어난 기적이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배불리 먹고 12지파를 상징하는 12광주리가 남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유대인의 이러한 해석을 한층 더 강화시켜 주신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무리를 피하여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라고 도망치듯 가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을 예수님의 기적을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는 정치적 메시아로 물질을 채워주는 육신적 메시아로 망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는 절대로 유대인들이 기대하는 로마제국을 뒤엎고 이스라엘이 세계를 지배하는 왕국을 건립하여 주는 정치적 메시아도 아니며, 또한 이 세상 물질적 풍요를 채워주는 물질주의적 메시아도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그 많은 열방과 많은 민족 중에 오직 이스라엘만 택함을 받았기에 그 택함을 받은 선민으로 구원은 받은 것으로 믿고 있었고, 이제 모세와 같은 그 선지자가 오시면 이스라엘이 꿈꾸던 다윗왕국이 회복되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으로 다른 열방을 지배하는 제일 높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자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인식하고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15). 즉 모세가 이스라엘을 애급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것과 같이 유대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선지자, 그리고 모세가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하늘에서 만나를 공급해준 그 시절의 선지자로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 선지자라고 부르고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임금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이들은 구원과 생명에 관한 영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또한 영적 메시아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이미 택함을 받은 족속이기에 구원받은 민족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들에게는 현재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여 주는 선지자가 필요한 것이었다. 하루속히 로마로부터 해방 받아 자유한 민족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 세상에서 으뜸이 가는 복을 얻어내는 일에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예수님은 모세가 증거한 그 선지자이시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기대한 정치적 역할과 물질적 풍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시다. 그리하여 주님은 이들의 마음속을 완전히 꿰뚫어 보시고 책망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26-27). 너희들이 구하는 양식이 바로 눈에 보이는 썩어 없어질 양식이니 그런 썩은 떡을 나에게서 구하지 말라는 책망이다. 그러자 이들은 말씀이 어려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제자 중에서도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고 예수님의 버려짐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 자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떡임을 완전히 드러내어 밝히기 위하여 행하신 표적이다. 그리하여 그분은 내가 곧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5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54) 라고 자신을 영생으로 제시하신 것이다. 즉 우리는 그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존재이며, 그분의 살을 먹음으로 새 생명으로 잉태된 하늘나라의 존재임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 라고 그 빵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제시하여 주셨다.
'요한복음의 깊은 영적 의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한복음 (요 5:39, 40-4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 ;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0) | 2025.04.21 |
---|---|
요한복음 (요 5: 41, 44-47)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0) | 2025.04.21 |
요한복음 (요 6:15-21)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욕심 (0) | 2025.04.21 |
요한복음 (요 6: 22-35) 썩는 양식을 위한 일과 '하나님의 일' (1) | 2025.04.21 |
요한복음 (요 6:35-40)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이란? / 아버지의 뜻 (0) | 202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