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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앞에서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곧 그의 기쁨이라고 말씀한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단순히 고통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그 고난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자신과 함께하시며, 일하고 계심을 보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았다. 바울은 자신이 받는 고난을 통하여 오직 그리스도만 나타나기를 원했고, 오직 그리스도만 전파되기를 원했고, 오직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하나님의 사명에 목숨을 다하여 충성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놀라운 고백을 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불완전하여 바울이 그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충만하심과 완전하심을 선포한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모든 것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골 1:15-16). 또한 교회의 머리이시며 모든 충만이 그 안에 거하시고,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어 만물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골 1:18-20).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에는 인간이 보태야 할 어떤 부족함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다 이루었다.”(요 19:30).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사역은 완전하고, 충분하며, 단번에 성취되었다. 인간의 공로나 선행이나 고난이 그리스도의 속죄에 더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무엇인가?

(1).  복음 사역에는 아직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인한 고난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구속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복음은 아직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하며, 그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져야 하며,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과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복음의 일꾼이 그 사명을 감당하며 겪게 되는 고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들, 사단의 세력에 갇혀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온갖 멸시와 조롱과 박해를 받는 고난을 겪게 된다. 마치 어미가 한 생명의 잉태를 위해 해산의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 것과 같이,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한 복음 사역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르게 됨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고난이 남아 있다고 말하며 바울이 먼저 그 복음 사역의 고난을 자신의 육체로 감당하고 있었음을 말한다. 바울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되는 새 생명의 탄생을 “해산의 고통”이라고 표현한다:

  •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 1:28-29).

바울의 고난은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순간의 고난만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고 성숙하도록 섬기는 과정에서 감당하는 고난까지 포함한다.

(2).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십자가 복음 사역에서 교회가 감당하는 고난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을 받았다.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굶주리고, 여러 번 죽음의 위험을 당했으며,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핍박을 받았다(고후 11:23-28). 그러나 바울은 복음 사역으로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온갖 멸시와 조롱과 매 맞음과 핍박의 길을 걸으셨고, 이제 그리스도의 종들도 그리스도를 따라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1:24).

바울이 받은 고난은 교회의 유익을 위한 고난이었기에, 그는 그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고난은 단순히 고통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 고난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며, 교회가 세워지는 하나님의 사역에 자신이 쓰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또한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역사하여 복음의 열매가 맺혀지고 있다는 복음의 능력 때문에 기뻐한 것이다.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3).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가운데서 바울은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바울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다. 감옥에 갇히고 육체적으로 쇠약해지고 죽음의 위험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을 붙드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말씀은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고, 아무것도 할수 없었으며, 하지만 모든 상황과 형편에서, 궁핍할 때나, 주릴 때나, 조롱과 멸시, 매 맞음과 생명의 위험 속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겪는 일이었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그것을 견디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 복음이 살아서 역사하는 능력을 바울은 친히 보고 체험하였기 때문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바울이 감당할 수 있었던 능력의 근원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있었음을 선언한다.

(4).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가운데서 끝까지 붙드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바울이 고난 가운데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고난보다 크신 그리스도께서 그와 함께 계시는 사랑과 한없는 은혜를 체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육체가 쇠약해지고 감옥에 갇히며 매를 맞고 죽음의 위험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에 참여하는 영광으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감당하는 고난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선언한다: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롬 8:35)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육체로 겪는 고난과 고통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과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고, 그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바라보았다. 또한 현재의 고난 너머에 있는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았다. 바울은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죄와 사망 가운데 있던 영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성령께서 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으로 바울은 기뻐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시고, 자신은 다만 그 복음 사역에 부르심을 받아 쓰임받는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사역은 자신의 의지나 능력이나 열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다만 조건 없이 자격 없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의 선택으로 복음을 맡은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은혜였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바울은 자신이 많이 수고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한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 사역을 위하여 자신의 육체로 고난을 당함을 기뻐한다는 고백에까지 이르게 된다:

  •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이 고백에는, 전에는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는 자였지만, 지금은 은혜로 구원받아 복음을 맡은 일꾼으로 자신을 부르시고 붙드시고,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그 거룩한 사역에 참여하게 하셨다는 바울의 깊은 감사와 사명감이 담겨 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성도의 삶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자신의 힘으로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모든 일을 신뢰하고 그분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자신을 기꺼이 도구로 내어드리는 순종이다. 우리의 생각과 지혜는 제한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시는 분이다.

  •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8).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완전한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믿음은 모든 것을 내가 이해한 후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역사하시는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굳게 서는 것이다. 그 믿음은 환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감사와 기쁨과 평강으로 이끌어 간다.

  •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환난과 시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인내를 이루시며,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소망을 바라보게 하신다. 그래서 세상의 관점에서는 고난, 고통, 절망으로 보이는 것이, 믿음 안에서는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 기쁨이라는 거룩한 역전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때는 완전하며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만물을 자신의 뜻대로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인간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실수나 착오나 실패나 우연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한다.

  •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   “나의 생각이 서리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사 46:10).
  •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 14:27).

하나님의 계획은 영원 전부터 세워진 완전한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 그분은 시작하신 일을 자신의 정하신 때에 반드시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
  •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3).

하나님은 처음과 마지막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완전하게 계시되었다. 그리스도는 만물보다 먼저 계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 안에서 함께 서 있다(골 1:15-17). 그러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할 궁극적인 자세는 자기 의지와 자기 지혜를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과 순종이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다(롬 4:18). 상황이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로 보일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불려낸 구별된 자이며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삶 속에서 미움과 멸시와 환난을 겪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고난 가운데서 오히려 우리를 연단하시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가르치시며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하신다.

고난 너머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의 역사 :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은 세상의 눈만으로 고난을 바라보지 않는다. 믿음의 눈으로 고난 너머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선한 일을 바라본다. 한 영혼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으로 죄 가운데 죽었던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으며, 성도가 말씀 안에서 자라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은혜임을 적실히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복음의 일꾼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주인이시고, 자신은 그분의 종이며 도구이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 이끌려 간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였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내가 주인이 되는 삶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는 삶으로 옮겨 가는 삶이다. 자기중심적인 뜻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뜻을 구하며, 자신의 지혜를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를 원하는 삶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낮아지고, 교만과 자기중심성이 무너지고, 나의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선택하는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더욱 드러나게 된다. 바울은 이것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않았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으며, 자신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종"으로 드렸다.

그러므로 고난은 절망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고난의 과정에서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자신을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되는 거룩한 사명으로 기뻐하게 되는 자리까지 서게 된다. 그리고 그 고난에는 영광의 소망이 있다.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것이 바울이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그리스도를 향한 즐거운 헌신과 복음의 기쁨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께 속한 자로서 동일한 은혜 안에서 살아간다.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붙드시며,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다(롬 4:18):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약해지지 않으며, 소망을 바라보면서 인내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의 삶에는 때로 미움과 멸시와 환난과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그 고난 가운데서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도록 훈련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더욱 순전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자체만 바라보지 않는다. 실제적인 환난과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 육신의 반응은 하나님을 의심하고 오해하며 원망하고 불평하게 되며 믿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고난 가운데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우리의 약함만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의 약함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본다. 현재의 고난만 바라보지 않는다. 장차 나타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본다. 히브리서 11장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우리에게 증거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고,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신뢰했으며,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고난 너머를 바라보는 자들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에게 “참아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기뻐하고 뛰놀라”라고 말씀하신다. 육체가 받는 고통과 마음의 아픔이 사라진다는 뜻도 아니다. 그 기쁨은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며, 그 고난을 감당하도록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주님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성도는 자신의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을 바라보는 소망과 믿음에서 나오는 기쁨이다.복음의 일꾼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고 믿음의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섬기며, 서로를 세우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면서 모든 고난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 16-18)고 말씀한다. 우리의 삶 전체를 주님께 드리는 삶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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