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1-5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스라엘을 조성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부하는 불순종을 선으로 바꾸셔서 이방인 모든 족속들에게 차별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의 영광을 제시한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품은 항상 열려 있다고 10장을 마무리한다. “나를 찾지 않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 주고, 나를 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가 나타났다. 또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고 ‘복종하지 않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나는 온종일 내 손을 내밀었다’ 하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10:20-21 새번역).
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으며 버리지 않았음을 단호하게 증거한다.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1:1). 이스라엘이 아직 조성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셔서 창대한 민족으로 키우셨으며, 하나님은 자신이 낳은 자식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 자식이 아무리 패역하고 실망스럽고 전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당신이 낳은 자식은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인내와 온유와 신실하신 성품과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속성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조성하셨다. 그 뜻은 한 민족을 통하여 자신을 천하에 알리시며,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시며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하시며’(롬 10:11-12),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시는”(엡 1:6)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마지막으로, 율법을 주시고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완악함과 패역함을 허락하심으로, 인간의 육체적 본능과 죄의 실체를 철저히 드러냄으로,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는 존재가 될 수 없는 먼지에 불과한 “없음”이며,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절대적 의존자로 피조 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결론적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 이 땅에 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을 이루기 위함임을 바울은 확실히 제시한다.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다” (엡 1: 9-10).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발적이고 일방적인 사랑과 긍휼과 은혜로 이스라엘을 조성하셨으며, 때문에 죄인을 구원함에 있어서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공력도 필요치 않는 전적으로 그분의 주권적 행사임을 제시한다. 바울은 이를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예를 들어, 첫째는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며; 둘째는 엘리야를 예를 들어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 멸망 중에서 칠천 명을 남겨두셨다고 증거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시 94:1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자기의 소유를 외면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첫째로: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11:1)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던”, “죄인 괴수였던”(딤전 1:13,15), 그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이방인 사도로 세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임을 제시한다.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딤전 1:16). 즉 나도 너희와 다름이 없는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이며, 적 그리스도가 되어 복음을 대적하고 말살하는 데 열심을 부린 완악한 자였지만, 그런 나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 ‘본’이 되게 하셨다면, 너희들에게 향한 그 긍휼과 사랑은 얼마나 풍성하며, 너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는 얼마나 위대하시며, 너희를 통하여 땅 끝까지 만 백성이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너희는 어찌 알지 못하는가를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과 영광과 은총을 온 세상에 충만히 나타내시는 원대한 뜻으로 이스라엘을 조성하셨기에 절대로 이스라엘을 버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로,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다”(롬 11:2)는 두 번째 증거를 엘리야 시대의 남은 자를 예로 든다.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전체가 바알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가장 암담하고 참람한 모습을 지켜보고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패역함에 실망하여 이스라엘에 희망이 없다고 호소했다. “주여 저희가 주의 신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열상 19:10). 하나님은 실망으로 호소하는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왕상 19:18), 즉 이스라엘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타락하여 멸망과 심판을 자초한다 할지라도, 그 멸망에서 이스라엘을 살려 내어 반드시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이름을 천하에 알려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는’ 뜻을 이루심을 계시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일부를 택하셔서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도록 지켜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없는 이유:
(1).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백성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영광을 입혀주시는 일로 당신의 백성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로 정하셨다. 이르기를,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 43:7). 때문에, 인간이 아무리 악하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천하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약 1:17) 자신의 영원하신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자신이 낳은 자식을 버릴 수 없다는 확신이다. 이스라엘을 택하셔서 이 세상 땅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차별 없이 오직 은혜의 풍성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로 태초로부터 정하셨기 때문이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다”(딛 1:2). 그 “영원하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멸망 중에서도 항상 남은 자가 있게 하셨으며, 그 남은 자의 씨를 보존하시고 그 씨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회생 제물로 보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는”(10:12) 은혜를 입혀 주셨다. 그럼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다"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2). 겔 16:4-15: 이스라엘이 어미 뱃속에서 나와 벌거벗은 피투성이 되어 있을 때, “내가 옷으로 너를 덮어 네 벗은 몸을 가리고, 너를 사랑할 것을 약속하며 너와 혼인 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네가 나의 것이 되었다”(겔 16:8 현대인의 성경)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거두어 키우시는 아버지가 되시며 남편이 되셨음을 언약으로 제시한다.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렘 7:23).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사 54:5).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을 지으셔서 당신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방적인 혼인 언약을 맺으셨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아들로, 하나가 되는 신부로 언약하셨기에, 한시도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불꽃같은 눈에 있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시 17:8);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4)라고 그분의 사랑과 지키심과 구원하심이 영원하시며 절대적임을 친히 말씀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그 자식이 아무리 패역하고 실망스럽고 전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낳은 자식이기에 죄는 멸하시지만 그 백성에게 향한 사랑과 구원은 변함이 없음을 강력히 증거한다.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무리 패역하여도 그들에게 향한 당신의 사랑은 변하지 않으시며,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패역한 이스라엘을 멸절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 어떤 것도 당신의 영광을 훼손할 수 없다고 친히 말씀하신다:
- 사 46:3-4: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 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이것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이다.
- 사 48:9 :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멸절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자신을 위하여 일부를 남겨 두심으로 메시아의 대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메시아 구원을 성취하여 주셨다.
- 렘 33:17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 사 48: 11: “나를 위하여 내가 너를 구원하겠다. 내가 어떻게 내 이름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신에게 넘겨 주지 않을 것이다”(사 48:11현대인의 성경).
인격적이신 하나님은 영광 그 자체이시기에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받으시되, 또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통로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믿는 자의 주가 되셔서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즉 우리에게 은혜를 입혀 주셔서 영화롭게 하시는 일로 당신의 백성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기로 정하셨으며 우리를 통해 영광 받기를 기뻐하신다. 이르기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시 104:31).
(4). 하나님은 인내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으로 당신의 자녀들이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독촉하시며, 심판을 늦추시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며 애원하신다. 동시에 하나님은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그 심판은 당신의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의로운 심판임을 말씀하신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7-8).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당신의 자녀들을 악의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사랑에서 출발한 의로운 심판이다. 그분은 본체가 사랑이시며, 거룩하시며, 공의로우시며, 정의로우시기에, 그 징계와 심판을 사랑에 근거하셨다. 인간이 측량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희생”의 대가를 치르셨다. 창조주 하나님이 스스로 죄인이 되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죄인에게 향한 심판을 자신에게 맹렬이 쏟아부으시는 희생으로 죄인을 그 악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다. 누가 그분의 그 위대하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이해할 수가 있으며 어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즉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5).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우리에게 희생 제물로 내 놓으신 그 피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기에,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고 롬 8:35-39 절에서 높이 외친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향한 심판을 자신에게 돌리셨다.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만물의 찌꺼기 같은 더러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이 되셔서 이 세상 모든 멸시와 조롱과 매 맞음과 찢김을 당하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매달려 아버지가 죄인에게 쏟아부으시는 모든 심판을 몽땅 받아 내셨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이길래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죄인에게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생명의 대가로 구원하여 주셨기에 그분은 우리를 절대로 버릴 수가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를 아버지의 사랑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로 묶어놓은 사랑에서, 성령님의 지키심에서 끊어낼 수가 없으며,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위대하신 아가페 사랑을 당할 자가 없다고 바울은 외친다 (롬 8:35-39).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이스라엘의 모든 경건치 않는 불신앙을 제거하시고 언약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되는”(롬 11:26) 확신을 주고 있다.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 함과 같이 그분의 영원히 변치 않으신 사랑의 본질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인애와 인내의 성품에 근거하여 불꽃같은 눈동자로 당신의 자녀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에 절대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으로 증거한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사랑의 본질 /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들"
“그런 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11:5)
“남은 자”는 조건이나, 자격이나, 공로가 있어 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 자신을 위하여 일부를 택하셔서 은혜로 “남은 자”가 되게 하셨음을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 10: 22-23).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권리이며, 하나님께서는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를 시행하시며, 그 중 당신 자신을 위해 남겨놓은 자들을 통하여 땅끝까지 당신의 영광과 은혜의 충만을 알리는 구원의 공의가 반드시 성취됨을 제시한다.
9장 22-29절 토기장이 비유에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멸하기로 정하신 진노의 그릇’이라 할지라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셔서 심판을 늦추시고 회개할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시고 기다려 주시며, 또한 회개한 자를 기꺼이 용납하심을 제시한다. 예를 들면, 악하기로 소문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원수 아수르 이방 민족에게도 긍휼을 베풀어 요나 선지자를 니네웨에 보내셔서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주셔서 심판에서 구원하셨다면, 하물며 하나님이 친히 낳으시고 길러 주신 이스라엘을 어찌 버릴 수가 있겠는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이스라엘이 알기를 원하셨다. 너희들이 업신여기고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방 민족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떨어지자 이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회개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고 있건만, 너희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어찌하여 끝까지 완악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며 대적하며 말살하려고 하는가? 속히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바울의 안타까움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향한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동행하시면서 한시도 그들을 떠난 적이 없으시며 끊임없이 선지자들을 보내주셔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셨으며, 말씀을 주셔서 그들이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또 원하셨다. “내가 어떤 민족이나 나라의 뿌리를 뽑아내거나, 그들을 부수거나 멸망시키겠다고 말을 하였더라도, 그 민족이 내가 경고한 죄악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려고 생각한 재앙을 거둔다”(렘 18:7-8 새 번역).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 2:13).
하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영광 그 자체이시기에, 당신의 거룩하신 성품을 따라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를 행하신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뽑으시고, 부수시고, 멸하시고, 다시 살려 내신다고 말씀하신다.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거둔다”(렘 18:9-10).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28).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멸망의 웅덩이를 팠다고 한탄하신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1)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2)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 그렇게 모두가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명망의 웅덩이를 파서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중 일부를 택하셔서 언약을 보존하셨으며 그 남은 씨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언약을 이루셨음을 바울은 증거한다 (롬 9:27 / 11:5).
이방 민족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 또한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어진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악한 행실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름을 얻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9:25-26, 호 2: 2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딤전 2:4).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모든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 베푸시기를 그치지 않으시며, 오래 참으시며, 관용하시며, 하나님 앞에 나오기를 원하신다. 이르기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17). 이것이 죄인을 그토록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다.
남은 자에 대한 소망: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남은 자
하나님께서 일부를 택하셔서 긍휼과 은혜를 입혀 주셔서 구원하셨다면, 그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며 하나님의 절대적 권리이므로 멸망에서 구원받은 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으며, 또한 유기된 자도 불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토기장이 비유에서 말해주고 있다. 진노의 그릇들을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을 전파하기 위한 의도이며(롬 9:22); 그 그릇은 유대인 중에서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친히 택하여 부르셨다(롬 9:23-25)고 주장한다. 이는 행위나 혈통으로나 조건이나 대가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은혜로 멸망의 거름 더미에서 일부를 택하신(삼상 2:8)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임을 제시한다.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롬9:29). 모든 인간의 본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이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엡2:1~3).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된 남은 자가 있으며, 하나님은 그 남은 자를 통하여 메시아의 구원 언약을 이루셨음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증거해 주고 있다:
(1). 남은 자 셋: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던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두 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음으로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다시 나오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가인이 구원을 약속받은 여자의 후손을 죽임으로 동시에 두 아들을 다 잃게 되었다. 약속을 받은 아벨은 죽고, 살인자가 된 가인은 저주를 받아 쫓겨나 세상인이 되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절망 속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다른 씨” 셋을 남겨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그 셋의 후손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구원의 역사를 펼쳐 주심을 약속하여 셋의 후손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5-26)라고 제시한다.
(2). 남은 자 노아: 하나님은 인간의 극지에 도달한 타락과 죄악의 결국을 노아 홍수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으로 멸종 당함을 보여주셨다(창 6:6-8). 인류 멸종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노아 한 사람만 남은 자로 은혜를 입혀 주셔서 새 인류의 창조를 열어 주셨다. 노아는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히 11:7)로 남은 자가 되어 장차 여자의 후손인 메시아가 탄생할 대를 친히 보존하셔서 끊어지지 않게 하셨다.
(3).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별과 같이 모래알같이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100세가 다 되도록 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의 힘으로 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고, 하나님께 축복받는 약속의 씨로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만들어 낸 씨를 부정하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준비하신 다른 씨, 이삭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씨이며, 다만 ‘이삭에게서 태어난 자만을 너의 자손이라고 부르겠다’(창 21:12)라고 말씀하신다.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오직 택하심과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당신께서 친히 언약의 자녀를 택하심으로 남은 자가 있고 버림을 받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야곱의 선택과 에서의 유기에서 확실히 보여주셨다(롬 9-13).
(4). 남은 자 여호수아와 갈렙: 민수가 14장에서, 하나님은 각지파에서 1명씩 12명을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낸다. 12명 가운데 10명은 가나안 사람들의 막강한 무기와 군사들을 보고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다’라고 모세를 원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남겨 주셔서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높여드리는 믿음을 보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워주시며,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민 14:9)라고 끝까지 하나님을 높여드리며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온 이스라엘에게 외치며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격려하였다.
(5). 남은 자 라합: 라합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인 가나안 여리고의 기생임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긍휼을 입어서 멸망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남은 자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족보에 오르는 은총을 입혀 주셨다. 하나님은 라합이라는 기생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먼저 정탐꾼을 들여보내셔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려 주었고, 라합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함을 받은 우리 이방인의 모형이기에, 하나님의 믿음이 기생 라합을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셨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히브리서 11:31).
(6). 그 땅의 그루터기 (사 6:8-13)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웃시야 왕 때 남 유다와 여로보암 2세 때 북 이스라엘은 역사상 최고로 부강해진 때였다. 백성들은 풍요를 누리면서 가장 많은 제사와 가장 비싼 제물을 드리며 3일에 한 번씩 십일조를 드리는 수많은 헌금과 제물들로 넘쳐났다(암 4: 4—5).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고, 가나안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며, 타락과 사치, 교만과 거짓, 가난한 자들에게 대한 억압과 잔인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켰다. 최고의 예배를 드리는 그들이 이방인들보다도 더욱 악하여 온갖 죄악들과 잔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였음을 선지자 아모스를 통하여 지적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들의 풍요와 화려함이 곧 사라질 것이며, 그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성전이 황폐하여 성읍에는 주민들이 없을 것이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됨을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는”비유로 말씀하셨다. 이제 그 화려하였던 나무와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거짓된 열매를 내었던 나무들을 몽땅 잘려내고, 그 남은 그루터기에서 거룩한 새 생명의 싹을 다시 틔울 것이다는 말씀이다(사 6:13). 그 남아 있는 그루터기는 바로 언약으로 이 땅에 오실 예수그리스도이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기에 이스라엘이 아무리 하나님의 언약을 짓밟고 멸망을 자초하여 황폐하여 질지라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남겨놓은 그루터기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 올라온다는 소망을 주신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사 11:10). 그러므로 그루터기는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과 그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거룩한 씨를 남겨두셨다는 회복과 소망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당 할 때마다 “남은 자”가 있게 하셔서 그 남은 줄기에서 “여자의 후손” 곧 다윗의 혈통을 보존하셔서 그리스도를 탄생케 하셨으며, 구원을 성취하여 주셨다. 바울이 이르기를,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 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롬 9:29).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