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깊은 영적 의미

요한복음 (요 7:1-2) 유월절과 초막절에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와 십자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21. 21:51

요 7:1-2

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향하신 구원을 나타내시기 위해 여러가지 절기에 예수그리스도를 내용으로 담아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지키도록 명하셨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가 바로 유월절과 오순절 (칠칠절, 맥추절)과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다. 유대 남성들은 이 세 절기 때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절기를 지키도록 되어 있었다 (신 16:16).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 10가지 재앙의 기적을 행하셨으며, 홍해를 갈라 마른 땅을 건느게 하셨으며, 광야에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으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광야의 햇빛을 막아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막아주셨으며,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절기를 매년 지킴으로 장차 보내주실 메시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소망하며 영접하도록 준비를 주시기 위한 의도였다. 그럼에도 왜 유대인들은 그 절기가 계시하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으며, 그 절기가 계시하는 내용이 우리의 신앙생활과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에서 알아볼 수 있다.

유월절 어린 양은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절기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에서 마지막 재앙은 사람의 장자와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죽이는 재앙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문에 피가 발라져 있는 이스라엘 집은 뛰어넘어서 장자를 지켜주시고 애굽의 장자는 몽땅 죽이셨다.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출 12:13). 이스라엘의 장자는 이와 같이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살아남은 것이며, 바로 유월절이 제시하는 구원이다.

유월절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점도 흠도 없는 양을 잡아서 머리와 내장까지 통째로 하나도 버림없이 전부 다 구워서 먹으라고 명하셨다. 이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점도 흠도 없는 온전한 희생제물을 먹음으로 구원받게 됨을 상징하여 버리는 것이 없이 다 먹으라고 명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유월절 어린 양이시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그 어린 양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탈출하는 구원을 성취하여 주실 것임을 계시하여 주신 것이다. 동시에 어린 양고기와 함께 무교병과 쓴 나물을 같이 먹으라고 명하셨다 (출 12:8~10).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이다. 유대인들의 주식은 누룩이 들어가 잘 부풀려진 유교병이었지만 유월절에는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먹으라고 하심으로 죄악된 세상 애굽에서 구원받은 백성은 이제 세상 애굽에서 먹던 양식을 끊고, 세상 죄가 섞어지지 않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령한 떡을 먹음으로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백성으로 지어져 갈 것임을 제시하셨다.

쓴 나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애굽에서 겪은 고통과 수치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돌아오는 유월절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양고기와 함께 먹으면서 애굽에서 겪었던 노예생활의 고통과 애굽의 수치를 떠 올리면서 그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게 하셨다.

이와 같이 유월절에 어린 양고기에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으라고 하신데는 깊은 영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기 백성들이 외치는 쓴 나물과 같은 죄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며, 그 쓴 나물의 고통 속에서 건지시기 위해 점도 흠도 없는 어린 양을 희생 제물로 보내 주실 것이며,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무교병과 같은 만나를 먹이셔서 죄 없는 순결한 백성으로 재 창조를 일으킬 것임을 내용으로 제시하여 주셨다. 그 어린 양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가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서 고통받는 그 쓰디쓴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그분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이 세상 죄에서 탈출하는 구원을 받을 것임을 제시하여 주셨다. 그리고 그렇게 어린 양의 살과 피로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에게 생명의 떡, 즉 진리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여주심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새 창조를 일으켜 당신의 아들로 신부로 태어나 하나의 연합을 이루실 것임을 제시하여 주셨다. 그리고 유월절을 지킴으로 그 유월절이 제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소망하며 영접할 준비를 하게 하셨다. 그리하여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유월절 희생양으로 증거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광야에서 외치며 회개하고 예수를 영접하는 물세례를 거행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바로 이 세상 쓰디쓴 죄의 고통에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기" (마 1:21) 위함이며,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6:48)라고 선포하시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54)라고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은 유월절에 대하여 이렇게 해설하여 주고 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 5:7-8). 즉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쓴 나물 같은 세상 죄에서 건지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누룩 없는 자로 새롭게 창조가 되었으므로 누룩 없는자 답게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자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같이 어린 양의 죽음으로 인해 쓴 나물과 같은 죄의 고통에서 건지심을 받아 생명의 떡인 무교병을 먹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남은 생애동안 죄 없는 순결한 참 무교병, 즉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양식으로 매일 먹음으로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됨을 유월절 안에 담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월절을 먹을 때 지팡이를 잡고 서서 급히 서둘러 먹으라고 명하셨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출 12:11). 이제 죄악된 애굽에서 지체없이 속히 빠져나와 가야 할 길이 있다는 말씀이다. 바로 홍해를 건너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긴 여정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사십 년 동안 통과하여 지나가야 했던 광야에서 유일하게 한 일이 바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어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일이었다. 애굽 세상에서 살던 옛사람 육십만 명이 광야에서 모두 시체가 되고, 하늘에서 내려주신 신령한 만나를 먹고 태어난 새사람 육십만 명만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셨다 (출 12:37, 민 1:45-46). 이는 장차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이 세상 쓴 나물과 같은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구원받아 허리에 성령의 띠를 띠고, 복음의 신발을 신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지팡이만 붙들고 의지하며, 세상 육신의 양식을 끊는 금식으로 옛사람이 굶주려 죽고,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먹음으로 새 생명으로 탄생되어 새사람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됨을 제시하여 주셨다.

이것이 바로 유월절이 제시하는 구원과 생명이다. 그렇게 유월절 속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쓴 나물 같은 세상에서 건져져서 내 옛사람이 죽는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을 거쳐서 하나님의 아들로 신부로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 나라로 입성하게 되는 전체 구원의 완성을 그림처럼 제시하여 주신 것이다.

초막절: 성전과 성령과 생명의 빛

이스라엘의 세 번째 절기인 초막절은 가을 추수가 끝나고 알곡들을 창고에 저장해 놓고 그러한 수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다. 애급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광야에서 지내는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먹이시며 40년 동안 이끌어 주셔서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음을 추억하며, 장차 매사아를 보내주셔서 영원한 구원을 이루어 주심으로 영원한 천국에서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됨을 소망하며 즐기는 절기이다. 하나님은 일주일 동안 장막을 짓는 텐트 생활을 하면서 세 가지를 거행하라고 명하셨다 (레 23:39-43).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계 2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일주일 동안 장막에서 생활하게 하신것은, 애굽 땅의 쓰디쓴 고통에서 구원하여 광야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장막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품에 안으시고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셨음을 대대로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레 23:43).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심을 하늘의 장막이 이 세상에 내려온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말씀이 육신의 장막에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여 당신의 품 안에 품으시는 영원한 장막으로 오셨음을 뜻한다. 그리하여 오직 그분 안에서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천국이 왔다”라고 선포함으로 예수님이 바로 천국의 장막으로 오셔서 당신의 백성을 이 세상 쓴 나물에서 건져 내어 당신의 품에 품으시고 참 장막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임을 증거한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마 23:37)라고 탄식하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장막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온전히 감싸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3-4).

이와 같이 초막절 절기 속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희생양으로 오셔서 십자가 구원을 성취하여 당신의 백성을 품에 안는 영원한 장막이 되어 보호하여 주실 것이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시기 위해 그분이 이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함께 거할 장막을 우리 안에서 짓게 됨을 말씀하셨다.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즉 당신이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서 구원을 성취하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나를 성전, 장막으로 삼고 내 안에서 그분과 함께 거하는 천국의 장막을 결코 완성하실 것임을 제시하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부르신 것이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19).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1).

생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스라엘은 초막절 기간 동안 실로암 못에서 물을 떠다가 성전 제단에 물을 부어 제단으로부터 물이 흘려나가게 하였다. 이는 광야에서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신 하나님을 기념하라는 뜻이다 (출 17:5-7). 사도 바울은 그 생수를 뿜어내었던 반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 시라”(고전 10:4). 즉 천국을 사는 성도의 현실을 초막절이라는 절기에서 제시하여 주셨다. 만물을 소성케 하고 기갈로 죽어가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수를 공급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리하여 주님은 초막절에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떠다가 성전 제단에 뿌리고 있는 그 앞에 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37~39)라고 자신이 바로 그 초막절 완성자이시며, 그 생수가 바로 성령이심을 확실히 밝히셨다. 사도 요한도 계시록에서 증언하기를,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1-2).

생수의 유래: 에덴동산에서 흐르는 네 강의 상징적 의미

생수는 하나님이 첫 인간에게 주신 선물로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인간을 옮겨놓으신 후 에덴에 생수의 강을 주셨다. 그리고 그 강은 밖으로 네 강으로 흘러나가게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이름이 주어진다. 마찬가지로 태초에 계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출 3:14), 영원으로 계시는 하나님 그 자체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실 때 비로소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지며 그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다’ 이다. 마찬가지로 에덴동산 안에서 이름이 없었던 한 강이 사방으로 갈라져 밖으로 흘러나가게 될 때 이름을 붙여주심으로 그 이름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사면 팔방으로 세상 끝까지 임하게 되는가를 네 줄기의 강으로 설명하여 주셨다.

첫째 강의 이름: ‘비손’ 그 뜻은 ‘풍성하다’    둘째 강의 이름: ‘기혼’ 그 의미는 ‘터져 나가다’

셋째 강의 이름: ‘힛데겔’ 그 의미는 ‘화살처럼 빠르다’  넷째 강의 이름: ‘유브라데’ 그 의미는 ‘달콤하다’

그 네 강의 이름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을 계시한다: 풍성하고, 달콤한 것이 온 세상을 향해 화살처럼, 터져 나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에스겔이 성령의 감동으로 강물을 보는데 그 강물은 성전의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와 그 강물이 지나가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나고 만물이 소성하며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남을 기록하고 있다 (겔 47:1‐12). 그리고 그 에덴동산의 네 강물이 무엇을 상징하며 무엇을 뜻하는지를 조금 더 밝게 구체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설명하여 주고 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1‐2). 요한은 그 강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보좌로부터 나와 만국을 소성케 하는 생명수의 강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창세기의 에덴동산에서 발원하여 사면팔방으로 흘러나가는 은혜의 강, 에스겔서의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 수, 그리고 계시록의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수의 강은 정확하게 하나같이 생명을 소성케 하는 예수그리스도와 성령을 상징하고 있다. 즉 그 생수는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나와 온 세상 사방으로 보내심을 받아 풍성함과 달콤함을 화살처럼 터뜨려서 새 생명을 입혀주시는 성령 하나님이심을 제시하고 있다. 주님은 그 샘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셨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3‐14).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7:38‐39). 그러므로 에덴동산에서 발원한 네 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생수의 강이 온 세상으로 흘러나가 생명을 소성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었고 그 강이 흐르는 곳에 보석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아름답고 화려한 신분을 상징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구속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징하는 생수의 강이 에덴동산 중앙에서 발원하여 사면팔방으로 갈라져 흐름으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져 방방곡곡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의 장막으로 모여들어 생명의 떡을 먹으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마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부로 하나가 되어 영원히 함께 살게되는 완전한 구원과 천국의 그림을 절기를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촛불: 생명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

이스라엘에게 초막절 기간 동안 성전에 큰 촛대를 세우고 항상 불을 켜 두게 하셨다. 이는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비추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지키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 의식이었다(출 13:21-22). 촛불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라고 그 빛이 예수님 자신이라고 선포하신다. 사도 요한은 그 빛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1:9-10)고증언하고 있으며, 그분이 바로 영원한 천국의 빛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계 21:22~23),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계 22:5).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는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임재로 말미암아 시작된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 이었던 무질서 위에 하나님의 영이 우주를 덮는 ‘은혜’의 장막으로 말미암아 죽어 있던 우주는 비로소 생명을 가지게 되고, 그 생명이 빛으로 임재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빛이며 생명이라는 진리를 드러내어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상대적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있게 하셨다. 그리고 빛이 임하자 어두움이 드러나고 그 어두움을 ‘밤’, 즉 세상이라 칭하시고; 빛을 ‘낮’, 즉 하늘나라로 분리시키셨다. 그리고 그 빛이 하시는 선한 일을 나타내시기 위해 빛을 어둠과 공존하게 하셨다. 요한은 그 빛이 곧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어둠을 이 세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1: 3-5).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라고 선포하신다.

이와 같이 천지창조는 빛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임재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의 대척점에 있는 어둠의 세상은 이제 그 빛에 의해 심판의 과정을 겪게 되며, 결국은 다시는 어둠이 없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빛만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계시록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계 21: 23-25).

그러므로 초막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으로 담고 있다. 초막절은 창세기 시작에서 이미 계시하여 주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2~3). 하나님의 신이 먼저 이 우주에 장막으로 내려오셔서 우주 전체를 덮는 운행으로 창조를 시작하시며, 그 창조를 빛으로부터 시작하신다. 그분이 이 천지에 장막으로 내려오셔서 빛으로 만물을 소생케하시는 창조이다. 하지만 그 장막에는 오직 당신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만 들어가게 할 것임을 계시하여 동산에 에덴이라는 장막을 따로 창설하시고 당신이 창조한 인간을 옮겨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에덴동산에서 강이 벌원하여 네 줄기의 강물로 뻗어져나가 사면팔방으로 온 세상을 향해 흐르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됨을 창세기에서 이미 계시하여 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의 강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 7: 37-39).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영적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출애굽에서 행하신 모든것을 되 새기며, 이제 참 메시아가 오셔서 영원한 출애굽, 즉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영원한 천국 장막으로 옮겨주셔서 영원한 생명의 떡과 영원한 생수를 먹이실 것임을 소망하며 준비하라고 주신 절기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절기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생명을 읽어내지 못하고 형식적인 지킴으로 자신들의 선민적 사상과 월등함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세우는 일에 초점을 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들의 행위를 근거로 하여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율법과 제사를 지킨 대가로 이 세상의 복을 내려 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유월절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떡을 먹이시는 것으로 시작하여 유월절의 참 의미를 설명하시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에게 나오라고 초막절을 맞이하면서 자신이 바로 그 풍성한 생명의 은혜를 주시는 당 사장이시며, 빛과 생수의 근원이심을 밝히신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고 지키게 하신 절기 속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담고 있으며 그분이 바로 이 모든 것을 이루어주시는 참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시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