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3:1-8) [1] 질문: 율법과 할례가 구원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왜 유대인에게만 주셨는가? 말씀을 맡은 유익이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23. 22:20

롬 3:1-8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2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뇨 4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찌어다 기록된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5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내가 사람의 말하는대로 말하노니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6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7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8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어떤 이들이 이렇게 비방하여 우리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하니] 저희가 정죄 받는 것이 옳으니라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특권을 내세우며 율법 지킴과 할례의식으로 구원받은 선민이라고 자칭하는 유대인의 자부심에 대하여, ‘율법을 자랑하는 너희가 바로 율법을 범한 자들이며, 할레 당이라 자칭하는 너희가 바로 무할례 당이며, 유대인이라 자랑하는 너희는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으로 행하는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다’(롬 2:23-25)라고 못을 박는다. 이와 같은 폭격에, 유대인들이 반드시 반격적 질문들을 던질 것임을 바울은 미리 간파하였고, 그들의 질문들을 5가지로 종합하고 논쟁을 펼쳐나간 것이다

(1). 그러면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3:1)

(2).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겠습니까? (3:2)

(3).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겠습니까? (3:5)

(4).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3:7)

(5).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습니까? (3:8)

첫 번째 질문: 그렇다면 유대인의 나은 점이 무엇이며 할례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3:1 현대인 성경)

대답: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2)

율법과 할례가 구원을 주지 못하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왜 유대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굳이 아브라함 때부터 그렇게 기나긴 세월 동안 율법과 할례를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주셨는가? 라는 질문이다. 유대인들에게만 주셨다는 것은 유대인들만 택하셔서 구원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그러니 이는 하나님이 친히 주신 유대인들의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는 질문이다. 할례에 대하여 바울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리면 왜 할례를 주셨으며 그 유익은 무엇인가?

첫째,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외적 표식으로 할례를 명한 것은, 장차 영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는 당신의 백성에게 메시아에 대한 언약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시고 말씀하여 주심으로 그 언약을 따라 사는 당신의 백성에게 순결한 혈통을 지켜주시기 위함이었다. 즉 창세로부터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이 세상과 구별되고 성결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당신의 백성에게 표면적으로 인을 쳐 주시는 의식을 거행하게 하심으로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당신의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언약이며 그 언약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보증이다. 그리하여 그 많은 민족 중에 가장 작고 가장 약한 보잘것없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참 백성을 대표하는 기능적 역할로 택하시고 율법과 제사를 주시고 육신에 인을 치는 할례를 명하심으로, 장차 유대인들을 통하여 세상에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시며,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이 은혜를 입어 말씀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장차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쪼개지셔서 반드시 당신의 백성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겠다는 언약의 성취를 보장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의 표시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쪼갠 제물 사이로 아브라함을 남겨 두시고 홀로 지나가심으로, 장차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홀로 쪼개지는 할례로 구원의 언약을 성취하여 주실 것임을 할례의 언약으로 증거하여 주신 것이다. 이는 또한 내 옛사람 죄인이 예수와 함께 죽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살아나 새 생명을 얻게 되는 성령 거듭남의 표시였으며, 이 세상 부정한 자들로부터 즉 마귀의 자식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성에 들어감을 구별해 주시는 표시였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 육신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율법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심으로 수천 년 동안 계시하신 십자가의 모든 비밀과 모든 예언과 모든 언약과 모든 약속이 다 성취됨을 선언하신 것이다.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3:2)

바울은 왜 유대인의 유익이 율법과 할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말씀을 맡은 것이다"라고 ‘말씀’을 강조한 것인가?

‘당신의 말대로 유대인이라는 특권도 없고, 할례도 무익하다고 말하면, 하나님은 왜 그 많은 민족 중에 유대인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한 것이며, 왜 율법과 할례를 행하라고 명한 것이냐?’ 라는 질문에 바울은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3:2)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한 유익함을 하나로 묶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다”라고 제시한다. 사도 바울은 그들의 유익함이 그들의 자부심과 특권을 내세우는 율법이나, 제사나, 할례라고 말하지 않고, “말씀을 맡았다”라고 ‘말씀’을 강조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율법과 제사와 할례를 받았으며, 4천년 동안 목숨으로 지켜 왔으며, 구원받은 민족이라는 자랑과 자부심과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모든 것들을 그들 앞에서 부정하고, 오직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구원에 이르게 됨을 명확히 제시하기 위해 “말씀을 맡았다”라고 ‘말씀’을 강조하여 말한 것이다. 그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시기 위해 율법과 제사와 할례를 주셨음을 제시하기 위해 ‘말씀을 맡았다’고 말한 것이다. 성경은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그에게만 생명이 있다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그분은 말씀으로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며, 말씀으로 교통하시며, 말씀으로 가르치시며,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며, 말씀으로 그분을 믿게 하시며, 말씀으로 영접하여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 그 말씀이 곧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며,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어 믿게 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에게 율법과 제사와 할례를 주셨음을 제시하여 “말씀을 맡았다”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시기에 성경 말씀 전체가 자신에 대한 증언이라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 17:3).

구원은 율법과 제사과 할례를 받았다는 특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게 됨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 ‘말씀’을 강조한 것이다. 이르기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갈 3: 10-11),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율법으로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육신의 할례로 율법을 페하시고(엡 2:15), 오직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은혜를 입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고 바울은 반복하여 강조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이라”(갈 2:16).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말씀으로 믿는 것이며, 이를 바울은 ‘율법을 맡았다’고 말하지 않고 “말씀을 맡았다”라고 말한 것이다. 즉 율법이 계시하는 모든 것이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타나 내시기 위함인데 너희는 율법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여 말씀이 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으로 읽어내지 못하고 반대로 지켜 행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챙겨 체면과 가치와 위상과 영광과 같은 이 세상에 속한 썩은 것들을 추구하고 있으니 ‘너희가 자랑하는 율법과 할례가 너희에게 무슨 유익이 되는 일이냐! 그러니 너희는 참 유대인이 아니요 할례가 무할례가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심판이 되었으니 어찌 유대인의 나음이 있다고 자랑할 수가 있으며 할례의 유익이 있다고 자부할 수가 있겠는가?’라는 일갈이다.

이와 같이 구원은 율법적 행위로가 아니며, 할례나 무할례나 상관없이 오직 말씀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말씀으로 믿는 믿음으로 은혜를 입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임을 제시하기 위해, 바울은 유대인들의 유익이 바로 ‘말씀’을 맡은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 암이라”(갈 2:16). 바울은 유대인의 죄악을 폭로하여 모든 인간들의 공통된 패역함을 지적하고 있다.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서도 지키지 못하여 선악과를 따 먹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한 원수가 된 것 같이, 제사를 지키기 위해 동생 아벨을 살해한 것 같이,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말씀을 악용하여 ‘나’에게 유익한 종교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며 자신들의 의와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 말씀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살해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어찌 유대인의 나음이 있다고 말하며, 할례의 유익이 있다고 말하며, 율법을 맡았다고 우길 수가 있겠는가! 라고 강력하게 반박한 것이다. 즉 율법과 할례와 제사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해서 너희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음이 역사가 증명하지 않는가! 오직 그 말씀이 제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자만이 진정한 유대인이요 마음의 할례로 새롭게 태어난 자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강력히 제시하고 있다.

그리면 유대인이 말씀을 맡은 ‘유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울이 말하는 “말씀을 맡은” 유익은, 이스라엘이 먼저 말씀을 받음으로 말씀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는 도구로 쓰임을 받아 온 세상에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즉 이스라엘의 실패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이요 생명이요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곧 영생의 진리임을 드러낸 것이며, 그 역할로 쓰임을 받은 것이 '유익이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너희는 말씀을 받아서 너희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탐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함으로 율법이 너희에게는 해가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모든 이방인에게 구원이 임하게 되는 유익이 되었으며, 신실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셨다는 주장이다. 즉 이스라엘이 말씀을 맡아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씀을 거역하고 대적하는 패역한 민족으로 살아냄으로, 인간들이 얼마나 불가능한 존재이며,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임을 받았으니 그것이 말씀을 맡은 유익이라는 것이다.

말씀을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신 의도는, 열심히 지켜 행하여 자신의 가치와 의를 세워 특권을 누리며 영광을 갈취하라는 역할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은 얼마나 패역하고 추악하고 악독이 가득하며, 거짓되고 미련하며, 무지하고 어리석으며, 하나님마저 대적하고 죽이는 독사들이며, 반드시 심판을 받아 마땅함을 드러내는 역할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율법을 주신 의도는 인간의 죄를 드러내어 철저한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시키기 위함이며, 죄인으로 태어난 육신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음으로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를 구하며, 값없이 내려 주시는 은혜에 굴복하는 순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자신들의 위상과 자부심과 체면을 세우기 위해,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 자신들의 의를 나타내는 행위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바벨탑 쌓는 사건이며, 아브라함의 계보를 따르는 구약 이스라엘의 패역한 역사이다. 율법을 받은 그들은 4천 년 동안 한결같이 말씀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적하여 수시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체험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낱낱이 폭로하며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을 때려죽였으며(마 23:33-35), 자신들의 율법적 행함을 고수하기 위해 메시아를 대망한 그들이 오히려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율법주의자들을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셨으며 지옥의 심판을 선포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 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마 23:33-35). 아담의 첫 후손 가인이 자신의 제사를 지키기 위해 동생을 살인한 것과 같이, 너희는 줄곧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들을 때려죽였음을 역대하 사가랴의 외침을 인용하여 폭로하신 것이다(역하 24:20-21).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제사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다윗 혈통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임을 미리 제시하신 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의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혈통도 하나님도 죽이는 사악한 죄인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부정하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이 임하는 복음을 목숨으로 외친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이 세상에 주어진 것은, 인간들의 불순종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며(3:3), 인간들의 거짓을 드러내어 하나님만이 의로우시며 참되심을 증거하기 위함이며(3:4), 인간의 불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임을(3:5) 바울은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의 거짓됨과 불의함과 완악함을 드러냄으로써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참되심과 신실하심과 구원의 의를 세우기 위함이다. 인간의 거짓과 불의가 드러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구원의 의가 드러내어 증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은 인간의 거짓됨과 불의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며 그것이 유익이라고 말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3:4)함을 나타내어 증명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먼저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만을 붙들고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창세전에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며, 그 뜻이 온 천하에 나타내어 이루어짐으로 당신의 택한 모든 백성을 당신의 품으로 끌어모으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사용하셨음을 바울은 유대인들의 말씀을 맡은 유익이라고 말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의 계시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맡기신 목적임을 제시한 것이다.

말씀을 맡은 우리의 유익

첫째,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낼 수 없는 무력함과 죄악을 드러내어 오직 하나님만이 신실하시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됨을 알게 하고 소유하게 하심이다. 말씀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죄악들을 드러내어 책망하시며 우리를 죄인으로 풀어내어 하나님의 은혜에 항복하게 하신다. 그래서 말씀이 좌우에 낱선 예리한 검과 같이 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히 4:12)고 말한 것이며, 말씀의 해부를 통하여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더러운 집착과 고집과 위선과 교만과 같은 악한 본성들을 끄집어내어 그 죄가 얼마나 추하고 더럽고 교활하고 음모적인지를 보여주고 이 죄악된 세상에서 분리시키는 징계와 환난을 겪게 하신다. 오직 나만을 사랑하는 육적 욕망과 탐심으로 살던 ‘자아’가 깨지고 부서지고 악한 습성들이 해체되어 결국 내 옛 죄인이 십자가에 못 박는 죽음으로 끌고 가신다.

이 세상 것들이 이미 내 몸속에 깊이 침투하여 살이 되고 피가 되어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올 틈이 없이 죄에 정복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주님은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9)라고 사정없는 매몰찬 말씀을 하신 것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 노력과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그분은 죄인으로 태어난 내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죽음으로 인도하시며, 새로운 피조물로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 그리스도에게 속한 온전한 신부로 탄생시켜 주신다. 비록 손발이 잘려 나가고 눈이 빼어지는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되지만 주님은 오히려 나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것들이 나에게서 반드시 잘려나가야 새로운 피조물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 그분의 나라에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말씀을 받은 것은, 지켜 행하여 공로와 업적으로 의를 세워 구원받을 자격을 얻으라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 말씀을 받기 전에 우리에게 향한 구원의 의는 하늘나라에서 먼저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과 생명을 이미 얻었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알고 깨닫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그리스도의 신부의 삶을 이 세상에서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살아내라는 의도임을 성경은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게 성경 말씀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임을 역사와 인생 속에서 그려내시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이다. 절대로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성취와 확장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행위나 도덕이나 윤리나 교훈서와 같은 지침서가 아니다.

셋째, ​하나님은 이 세상 죄와 사망에 빠져있는 자들 중에서 오직 당신이 선택하신 자들만 그 멀어있는 눈과 귀를 열어 주셔서 자신의 처음 자라가 티끌이며 ‘없음’임을 깨닫게 하시며, 오직 택함을 받아 말씀을 맡았다는 그 이유 하나로 은혜를 입혀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예수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순종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에 집어넣어 하나를 이루신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성도가 말씀을 맡은 유익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처음 자리를 온전하게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당신의 백성들을 모형하는 이스라엘을 택하여 율법과 할례를 주셨다고 바울은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유죄로 드러내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 3:19-20 새번역).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의 처음 자리가 바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엡 2:5) 였음을 확인시켜 은혜에 항복시키시며,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과 생명에 이르게 되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의도로 말씀을 주신 것이다. 육신의 노력과 열심으로 말씀을 지켜 행하여 (지켜 행할 수도 없음에도) 인간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오라고, 또는 인간들의 죄 된 업적과 공로를 이루어 하나님을 감동시켜 복을 받아내라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음으로 말씀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넣어 주심으로 귀중함을 받는 것과 같이, 흙에 불과한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담는 그릇으로, 즉 예수그리스도를 담은 그릇으로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말씀을 맡은 목적이다. 우리는 말씀이 제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우리의 전 인생을 거쳐 우리의 삶으로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택함을 받은 저들에게 전파하는 증인으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역사와 인간의 인생 속에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그려내시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진리요 구원이요 생명임을 드러내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창세기에서부터 인간의 죄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땅의 티끌로 ‘없음’의 존재로 죽음을 정해 놓으시고, 잠시 죄 아래에 가두어 두심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영생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이 세상과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의’ 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영원한 진리이신 주 예수그리스도를 설명하고 나타내어 당신의 택한 백성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잠시 존재하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으키시는 모든 일들은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뜻을 담고 있으며,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 주셨으며, 그리고 십자가로 성취하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는 그릇으로 우리를 사용하신다.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구원이라는 엄청난 하늘의 묵시를 말씀으로 당신의 백성에게 주셔서 구원과 생명에 이르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