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깊은 영적 의미

로마서 (2: 12) 율법 없이 범죄한 자와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 차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진의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24. 04:35

롬 2:12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바울은 율법을 받지 못한 자나 율법을 받은 자나 차별 없이 똑같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선고한다. 즉 율법을 모르고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이 짓은 죗값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요, 율법을 알고 죄를 범한 자는 그 율법에 의해 정죄 당함으로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율법을 삶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유대인이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이나 구별 없이 모든 인간은 타락한 마귀의 본성으로 태어나 죄만을 행하는 불의한 자이며, ‘죄와 허물로 죽음’(엡 2:1)이라는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에”(롬 3:10)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는다고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하고

율법이란?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 망한다”라고 말한 “율법”은, 성경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계시된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모세 5경, 또는 구약성서 전체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 율법은 모두 613개조인데, '지켜라'라는 강제 조목이 248개가 있고, '하지 말라'라는 금계(禁戒)가 365개로 되어 있다. 모세가 받은 율법은 죄를 고소하고 폭로하고 정죄하는 기능과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바울은 로마서 와 갈라디아서에서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율법은 지키고 행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죄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며,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절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으며 도리어 대적하고 거역함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있음을 깨우쳐주고 인정하는 역할로 주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20).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롬 3:27-28).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으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한 의도로 주신 것이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영생의 진리이시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이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당신에게 속한 당신의 백성에게만 주신 것이다.

그리면 율법을 받지 못한 자는 율법이 없이 망한다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모세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이 범죄 했을 때 비록 모세의 율법과 같은 법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아담에게 한 계명을 율법으로 주셨으며 그 법이 곧 양심의 율법임을 바울은 제시하고 있다.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 2:14-15). 즉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도 율법을 지킬 수 없어 망한 것과 같이, 이방인들도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선악과’라는 양심의 법이 마음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양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알면서도 선은 행하지 않고 악만을 행하는 죄의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불순종’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저주와 죽음이라는 심판이 내려졌기 때문에, 아담의 씨로부터 잉태된 모든 인간은 아담이 행한 그대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주권에 맞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불순종’으로 범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아담의 혈통으로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확실히 밝히고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즉 인간은 처음부터 죄의 혈통을 따라 죄인으로 잉태되어 죄의 주체가 되었기에 절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이 나올 수가 없으며, 십자가 앞에서 죄인으로 드러나지 않는 자가 없으며,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놓여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이 처음부터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는 이 땅의 흙과 같이 비천하고 더러운 존재이며, 티끌같이 훅 불면 없어지는 ‘없음’의 존재이며,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완전해 지거나 보존할 수 있는 기능이 없으며, 그 결국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로 정해져 있다.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흙을 입은 육은 무익하고(요 6:63) 연약하기에 마귀로부터 유혹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여 타락하였으며, 마귀의 본성을 좇아 ‘자아’(自我), ‘자기애’(自愛),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같은 마귀의 본성을 따라 ‘나’(我)가 나를 주장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반대로 ‘나’가 주체가 되어 “나가 보기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여지는” 마귀가 주는 육신의 것들을 추구하는 죄의 종이 된 것이다. 이에 바울은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라고 죄에게 굴복한 자는 죄의 종이며 그 결국은 사망이라고 확실하게 제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마귀적 본성에 대하여 바울은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롬 1:28-31)라고 악한 죄의 본능에서 벗어 날수가 없는 인간의 실체를 폭로한 것이며, 이와 같은 육신적 탐심과 욕망에 대하여 바울은 “저회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롬3: 13-18) 라고 양심이 무감각하고 도덕이 부패하고 정신 면모 자체가 패역한 철두철미한 죄인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하는 자는 율법 없이 망한다"라는 이 세상 모든 육신에 해당되는 심판의 선고이다. 바울은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차별 없이 모든 육신을 입은 인간은 오로지 죄만을 생산해 내는 철두철미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똑같이 서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바울은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롬 2:12)라고 지적함으로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모든 육신을 입은 존재는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죄만을 생산해 냄으로 그 죄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 행위에 속한 자가 저주와 심판 아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 즉 그 누구도 율법을 지킬 수가 없음으로 율법을 범한 자로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 2:12). 즉 율법은 처음부터 지키라는 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음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알고 깨닫게 하기 위한 의도로 주셨으며 인간의 죄악을 드러내는 역할로 주셨기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다”(엡 2:15)라고 말하고 있다. “옛 계명은 약하고 쓸모가 없어서 폐지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히 7:18-19 현대인 성경). 그럼에도 인간들이 율법이 갖고 있는 진정한 구원의 의를 깨닫지 못하고 반대로 율법적 행위로 자신들의 악한 죄를 교묘하게 덮어 감추며 자신을 의로운 자로 위장하는 거짓과 위선으로 죄에 죄를 더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자신들의 악한 죄악들을 덮어 감추는 외식되고 거짓된 행함을 철저히 폭로한 것이다 (마23장).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사상으로 우월감을 챙기며 하나님을 섬김다는 명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극구 배척하고 멸시하고 대적하며, 자기들의 거짓 의와 기득권을 세우기 위해 예수님을 죽이는 데까지 간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의 극악무도한 악행과 외식을 마태복음 23장에서 일곱까지 화로 폭로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바로 우맹한 자요 불의한 자이며’;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며”(마 23:25);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마 23:27);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며’(눅23:5-7);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며(눅16:14);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며”(마 23:3); 자신들도 지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연약한 자들에게 지키도록 강요하며(마 23:4);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율법으로 다른 이들의 죄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심판관 노릇으로 영혼을 죽이는 악행들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이 바로 ‘삯꾼’이며, 양을 물어가고 헤치는 절도이며(10:12),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강도와 이리임을 (10:10) 지적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가장 비천한 이 땅의 티끌로 인간의 육신을 ‘없음’으로 만드셨기에 썩어져 가는 육체로는 하나님의 선하신 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선악과’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제시하시고 증명하셨다. 때문에 구약 전체가 율법으로 정죄당하고 심판받는 백성으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의 기능과 역할이다. 티끌로 육을 입은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즉 율법이 가리키는 진리를 알아들을 수도 또한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에 심판의 대상이며 또한 구원의 대상임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율법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인간을 죄 아래 죄인으로 가두어 두셨다(갈 3:22). 모든 인간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다는 것은, 인간은 처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 이 죄악의 세상에서 죄인으로 사는 존재로 정해져 있었다는 뜻이다. 즉 생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입어야만 이 구원과 생명이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와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으로 지음을 받았으며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선악과에 첫 계명을 붙여주셨고 이스라엘을 택하여 죄를 깨닫게 하는 구체적인 율법을 주신 것이다. 바울이 이 오묘한 진리를 깨닫고 이르기를,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네 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롬 11:32).

그럼에도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을 거슬러서 죄인에게서 의와 선이 나올 수 있다고 열심히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의인으로 자칭하며 거짓들을 행하여 의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그 자가 바로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거슬러 절대적 진리를 거역하는 망령된 마귀의 자식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그런데 깨닫는데 미련하고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 구원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집요하게 율법과 제사에 목숨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말라기에서 율법과 제사를 지킬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리는 목이 굳은 이스라엘에게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아 버리시고 400여 년 동안 침묵하심으로(말 1:10), 4000년이 넘도록 목숨으로 지켜온 율법과 제사를 상징하는 구약을 닫아 버리셨다.

이사야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인간이 드리는 제사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그 제사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셨다.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느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려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 1:11-13). 하나님께서 그들이 열심히 드리는 모든 제사와 예배를 거절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역겨워하셨으며, 그들을 향하여 멸망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소돔과 고모라 백성’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사 1:10).

그럼에도 여전히 구약 모세의 율법을 굳게 붙잡고 율법을 지키는 제사 행위와 육신적 행함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모세의 상좌와 상석을 차지하는 영광을 쟁취하는 데에 목숨을 건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율법 지킴의 핑계로 율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죄인’이라 판단하고 죽이는데 악용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율법을 받은 선민으로 율법의 의를 행하여 구원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자신들의 의를 과시하며, 이방인들이 멸망당하고 저주받는 것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이방인들을 극토록 멸시한 것이다(요 7:49).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으로 여전히 율법적 행위로 업적과 공로를 쌓아서 자신들의 의를 세워 사람들로부터 영광 받기를 추구하며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멸시하는 그들의 율법주의 사상을 부수기 위해 율법을 받은 너희는 그 율법으로 심판을 받는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 2: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과 제사를 주신 것은, 인간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이 내어놓는 그 어떤 것도 받을 수가 없으며, 인간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야만 이 살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구원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라는 역할로 주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인간 모세를 통하여 주셨다는 것은, 인간은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거나 지킬 수 없음을 드러내어 알게 하고 깨닫게 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붙들라는 의도였다. 그리하여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율법의 구약시대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더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이스라엘의 패역과 타락을 폭로하는 선고로 막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율법과 제사의 완성자로 보내주셔서 그리스도의 의로 율법을 완성하여 공의를 이루시고, 우리에게는 율법을 페하여 주심으로(엡2:15),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여 주심으로’(갈 3:13),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의인으로 만들어 주셨다. 그분 자신이 영원한 희생 제물로 하나님에게 받쳐짐으로 십자가의 구원 성취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얻게 하셨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성취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편입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성취되는 발판으로 잠시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하늘나라와 완전히 반대되는 구조로 처음부터 이 세상을 어둠과 죄악으로 사망과 지옥으로 정해 놓으시고, 하늘나라의 영원한 빛과의, 영원한 구원과 생명을 설명하는 구조로 역사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계신다. 즉 처음부터 이 세상을 멸망으로 정해 놓으셨고, 죄인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받지 않기로 정하셨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 죄만 생산해 내는 생리적 본능을 가지고 있기에 육신으로는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 육신이 죽는 날까지 죄만 쏟아내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육신을 변화시키는 어떤 행함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난 육신은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음으로 끝나게 하시고, 당신의 영으로 점도 흠도 없는 새사람으로 새롭게 잉태하는 ‘성령의 거듭남’으로 생명을 입혀 주시기로 정하셨다.

그럼에도 율법적 행위로 의롭게 할 수 있다고 또한 성화할 수 있다고 열심을 부리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치욕적인 모독이며,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원대한 뜻을 거역하는 망령된 짓이며, 값없이 죄인에게 임하게 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적극 대적하는 패역한 죄악이다. 왜냐하면 죄인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다 더러운 걸레이며 거름 더미이기에 절대로 하나님에게 용납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이사야 64:6).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들의 행위를 스스로 의롭다고 너스레를 떠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 배나 더 되는 지옥의 자식이라고 부르시고, 그렇게 영의 하나님을 육의 신으로 끌어내리려는 그들을 향하여 영원히 사함을 얻지 못하는 ‘성령 훼방죄’로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들은 하늘에서 이루어 놓으신 뜻이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한 하나님의 원대한 뜻이며 하나님의 열심으로 성취된다. 그분은 독립적으로 구원의 의를 이루시고, 강권적으로 창세전 택한 자기 백성에게만 은혜를 입혀 당신의 나라로 들어 올리신다. 은혜는 창세전 정하신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십자가의 희생으로 성취하신 구원이며, 그 구원의 의는 오직 창세전 택하심을 받은 성도에게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어 오직 은혜로 입혀주신다. 그러므로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른 것과 같이, 또한 차별 없이 율법으로도 아니고 양심의 법으로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으로 당신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 창조를 입게 되는 존재로 예정되어 있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이다. 그러므로 구원받기로 예정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때 먼저 자신의 죄의 상태, 죽음의 상태를 인식하게 되고 인정하게 되며, 아무런 조건도 대가도 없이 값없이 쏟아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집요하게 붙들게 되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생명을 입혀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되며, 그분의 모든 선한 일에 순종과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는 자기 부인의 삶을 지향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르기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옙 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