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8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사도 바울은 1:18부터 3장까지 거의 세장에 걸쳐서 인류의 죄악들을 낱낱이 나열하여 왜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죄인들의 불의와 불 경건에 임하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라고 선언한다.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는 헬라인이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선민이라 자랑하며 율법으로 의롭다고 자고하는 유대인이나 모든 인간은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킴으로, 하나님의 의가 부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지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육체가 없음다고 선포한다. 인간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된 것임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바울은 하나님의 의와 대척되는 불의, 즉 인간에게서 나오는 모든 죄악성을 ‘불의’ ‘불경건’이라고 하고, 그것들이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를 막음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유대인 : 당시 초대교회 안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았다는 선민사상으로 여전히 율법적 행위를 주장하며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꺼려 하며 막으려 하는 유대주의와 율법주의가 편만하게 퍼져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직접 받았으며 조상 때부터 지켜온 율법을 고수하여 자기 의를 세우고 자랑하며, 오직 은혜로 말마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십자가 복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율법적 행위로 업적과 공로를 쌓아서 자신들의 의를 세워 사람들로부터 영광 받기를 추구하여 온 그들은 여전히 인간의 행위에 가치를 두고 자기들의 행위적 의를 자랑하며, 다른 이와 비교하는 우열과 소속 파를 만들어 파당과 분쟁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 기독교인들과 이방인 기독교인들 사이에는율법으로 인하여 할례와 절기 준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마찰과 분쟁과 분열의 소지를 안게 된 것이다.
이방인: 마찬가지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는 영적 자유가 아닌 육신의 방종에 관한 문제가 있었다. 그들은 비록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방 풍속과 우상숭배와 같은 육신의 구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등 끼리끼리 자신들의 소속 파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분쟁과 갈등에 대하여 교리적이며 신학적으로 성경 말씀으로 설명하고 증거함으로 로마 교회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복음 전파에 중심 기지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첫 시작에서부터 모든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죄의 문제를 다르고 있었다. 모든 인간은 본체가 죄악이기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절대로 죽음의 심판을 피면할 수 없으며, 그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게 되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하나님의 의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강력하게 피력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1:17).
불의와 불경건이란?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사도 바울이 말하는 '불의와 경건치 않음'은:
첫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지 못한 자에게서 나오는 언어와 행위를 말한다. 바로 그 당시 초대교회 안에 잔재하고 있었던 유대주의, 율법주의, 인본주의와 같은 진리의 복음을 왜곡하거나 거역하는 자들을 가리키며, 또한 우리 성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육신적 소욕을 말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갈 5:17-25). 이와 같은 육신의 탐심에서 나오는 온갖 불의와 불경건함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막는다는 말씀이다.
둘째, 사도 바울은 인간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는 ‘자아’에서 출발한 모든 것들, 그것이 선이든 악이든 할 것 없이 죄인의 몸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의를 욕되게 하는 ‘불의’, ‘불경건’임을 지적한다. 불의 와 불경건은 단순히 행위로 나타나는 도덕과 윤리적인 것들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사귐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관계성이 무너짐을 말한다. 만약 밖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경건함을 논한다면 바리새인보다 더 경건한 자는 없을 것이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5:20)라고 인간의 의에 대하여서는 그 누구도 그들을 쫓을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들처럼 율법적 의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더 낫은 의, 즉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만이 천국에 들어감을 확실하게 말씀하신 다.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그분의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바울은 거듭 반복하여 강조한다.
셋째, 그럼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오래 참으심의 은혜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위와 노력과 열심으로 의를 쌓아서 구원에 도달하려고 하는 그 오만불손함이 바로 불의이며 불경건이며, 예수님은 그들의 행함을 마귀가 원하는 마귀적 행사라고 지적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라고 저주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마땅함을 선포하셨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양심으로 죄를 범하는 극악무도한 죄인으로 폭로된 것이다. 즉 유대인은 율법을 가지고 범죄하고, 이방인은 율법 없이 양심으로 범죄 함으로 율법이 있는 자들은 율법으로 망하고, 율법이 없는 자들은 율법 없이 망함을 지적한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 2:12). 인간의 불의함은 율법으로도 양심으로도 해결될 수 없기에,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놓여 있다. 그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지지 않으면 절대로 ‘의’의 상태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육체에서 나오는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그 어떤 것도 없으며, 인간은 열린 무덤과 같이 나오는 것은 오직 죄뿐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전 역사를 아울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이 세상 모든 인간은 불의한 자라고 못을 박는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불의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사 48:8),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으로”(시 51:5) 죄인으로 태어난 운명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자기가 신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서 하려는 망상에 빠진 '첫 번째 아담의 후손'들이기에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그 영이 죽고, 세상을 향하여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아'가 살아난 '마귀의 후손'들이며,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는 이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없음’의 존재이다. 그 없음의 존재가 ‘있음’으로 살아난 것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은혜를 입혀주셨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죄를 지어서 불의한 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이 땅의 비천한 티끌로 만들어진 “없음”의 존재이며, 그 없음의 존재에 하나님의 은혜가 입혀지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음’으로 살아난 것이다.
바울이 제시한 진리란? 죄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살리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진리를 막는 불의와 불경건함에 임함을 제시하고 있다. 즉 진리를 막는 것이 곧 불의이고 불경건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이다. 그리면 바울이 말하는 ‘진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은 일관적으로 진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증거하고 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진리의 실체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선포하셨다. 즉 우리가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도, 거룩함을 입은 것도, 오직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8-19).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진리로 거룩함을 얻는다고 확실하게 제시한다.
진리는 : 첫째, 이 땅에 속하지 아니하는 하늘나라에서 태초부터 우리를 위해 계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창세전에 삼위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입혀주실 의로운 뜻을 묵시로 이루시고, 하늘에서 이루신 ‘의’의 뜻을 이 세상에 나타내시기 위해 만물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창조하셨다. 그리고 구약의 역사를 통하여 십자가 구원의 의를 나타내시는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충실히 실행하셨으며, 신약에 와서 그 언약의 실체가 바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심을 확 드러내셨다. 우리에게 향한 구원과 영생은 창세전에 하늘나라에서 이미 묵시로 이루어 놓으신 뜻이 이 땅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절대적 진리이기에, 절대로 변경되거나 중단되는 일이 없다. 그리하여 진리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죄인의 속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죽음으로 구원을 성취하셨으며,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시켜 하나로 연합을 이루셨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영원한 구원자이시며 참 “진리”이시다. 그리하여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라고 예수님 자신이 바로 진리이심을 선포하셨다.
둘째, 진로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철저히 도말하시고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굳이 예수님을 인간 마리아의 육신을 빌어서 아기로 잉태하게 하셨다. 즉 인간의 모든 죄를 철저히 영원히 없애 주시기 위해 친히 죄인의 몸속 안에까지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뿌리박고 있는 모든 죄의 유전을 송두리째 뽑아서 자신에게 전가시켜 우리의 죄를 짊어진 몸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죄의 뿌리를 깡그리 철저히 도말하여 주셨다. 그렇게 그분이 죄인의 몸 안으로 들어오셨기에 죽음이 삭제되고 영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신부로 탄생할수가 있었다. 말하기를, “하나님께로써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써 났음이라”(요일 3:9). 그분은 죄인의 몸에 뚫고 들어오셨기에 도든 죄인의 죄를 철저히 도말하여 주심으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으며, 죄와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본체인 성령으로 잉태하셨기에, 우리도 그분의 영이신 성령으로 죄와 상관없는 의인으로 태어나 예수 안에서 하나로 연합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분은 자신을 절대적 진리이며 생명이며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믿는 예수는 고난과 수모와 죽임을 당한 십자가 예수이지,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영광을 취하려 오신 분이 아니며 또한 인간에게 이 세상 영광을 주기 위해 오신 세상 임금도 아니시다.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하늘나라의 왕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럼에도 인간의 육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굳이 어린 아기로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탄생하셨다. 인간과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나셔야만 인간의 죄를 자신에게 전가시킬 수가 있었으며, 죄를 짊어지신 육신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십자가에 처형 당하셔야만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구원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 3-4). 예수님은 육신으로는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당하시고, 죄인으로 취급받으셔서 온갖 수모와 매를 맞는 고난과 조롱과 수치를 다 당하셔야 하셨으며, 저주의 사형들인 십자가에 못을 박아 피를 흘리는 죽음을 당하셔야 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가 상처 입은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짓밟힌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며 그가 맞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얻었고 그가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다”(사 53:5)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도말하기 위하여 아무 죄 없이 당하신 고난과 죽음이다.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피의 공로를 입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진리를 막는 불의에 임한다
우리 죄인에게 향한 그분의 사랑은 바다를 먹물로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오직 그분 안에서만 가능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이 세상에 나타내시기 위해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께서는 오직 사랑 하나로 죄인이 희생제물이 되어 피 값으로 우리를 이 세상과 율법의 저주와 심판에서 영원히 속량하셨다(갈 3:13). 즉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독생자 예수에게 전가 시키시고, 그를 저주와 죽음의 사형 틀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시는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셨기에 그분만이 진리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은 아무 대가도 조건도 행위의 노력도 없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십자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죄인에게 임하는 선물이다.
그럼에도 은혜와 진리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극구 반대하며 대적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한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선언한다. 이르기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예수님도 이와 같은 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마귀의 자식이라고 아주 치명적인 말씀을 던져 주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요 8:44-45). 진리의 말씀을 받았음에도 진리를 따른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진리를 말살하는 일에 열심을 부림으로, 주님은 그들을 가리켜 “너희 아비는 마귀이며” “너희는 독사의 새끼”이며 진노의 심판을 피할수 없다고 선언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우리는 유대인들의 완악함과 패역함을 보면서 우리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끈질고 더럽고 패역한 마귀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와 명예와 부와 영광을 추구하는 탐심과 욕망으로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사는 철저한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절대로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 삶을 원치 않으며, 죄에 대한 회개를 거부하며, 진리를 거스르며,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배척하며 대적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인간은 자신들의 거짓된 의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순종치 아니한다(롬 10:3)고 인간의 죄의 본질을 지적한다. 이 세상 어둠에 속한 자들은 죄와 죽음에서 해방 받는 참 자유를 알지 못함으로, 진리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자신들의 어둠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거슬러 빛을 꺼버리며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절대로 하나님의 의에 항복하는 자기 부인과 자아가 죽는 십자가 삶을 이해할 수도 또한 받아들일 수도 없다.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오직 열린 무덤과 같은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의를 거역하며 진리를 거스르는 불순종을 택하게 되어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 10-18).
이와 같이 인간이 추구하는 '의'란, 하나님 앞에서는 열린 무덤이요, 파멸과 고생이며, 더러운 걸레이며, 먼지이며, 배설물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의 강퍅한 패역함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끈질고 악질적이고 무덤과 같이 더럽고 파멸로 치닫고 있는 죄악을 인식하고 깨닫고 은혜의 복음을 붙들라는 의도로, 유대인들을 택하여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한 민족으로 모든 아담 후손들을 대표하는 모형으로 쓰신 것이다. 그리고 세상 끝까지 모든 족속들중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이 세상 끝까지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예수의 품에 끌어모으시기 위해 저희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해 주고 구약 역사가 이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게 하시느니라”(롬 9:18).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롬 11:25). 죄인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 즉 도저히 가망이 없는 패역한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오래 참으심과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그분의 의와 선과 은혜를 알고 믿으라고 유대인 일부를 진리를 거역하는 악역으로 사용하여 불의와 불 경건이란 무엇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불의와 불경건한 자에게 임하는지를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