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 14-15
14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15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에 스스로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빚을 졌다고 말한다. 지혜와 지식을 구비한 헬라 문화에 속한 자나, 그렇지 못한 어리석은 자로 불리는 야만인이나 상관없이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때문에 반드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의무와 책임을 가지고 있음으로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진 자라고 부른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즉 하나님의 복음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 없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시는 능력임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롬 10:12).
바울이 자신을 “빚진 자”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그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음 안에서 자신의 엄청난 빚이 탕감 받음으로 그의 모든 죄가 용서되고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탕감을 받은 것이며 그 대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은 은혜의 복음을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전하여야 하는 의무가 있으며 이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임을 강조하고 있다. 주님은 승천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모든 성도에게 유언과도 같은 지상 명령을 주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복음의 속성, 복음의 본질적 요소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전해진 구원에 관한 복된 소식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려 주심으로 우리를 이 세상 영원한 지옥의 죽음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품속에 끌어안아 당신과 함께 누리는 영생을 입혀주시는 복된 복음을 창세전에 계획하셨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시고 그 복된 복음이 이 세상 땅 끝까지 전파되어 생명이 잉태하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성령의 사역으로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여 가신다. 때문에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성령님의 내주와 사역으로 반드시 복음을 전하도록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여 놓으셨다. 즉 성도는 복음으로 구원받는 그 순간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통로로 운명되어 있다. 이는 우리의 의지와 열정에 근거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성령의 사역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구원받은 성도를 복음의 통로로 삼아 세상 끝까지 당신의 나라를 전파하고 확정하여 가심으로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는 가장 적합한 표현으로 복음의 속성과 기능을 제시한 것이다. 즉 이 세상에서 전개되는 모든 일들은 하늘에서 이루어 놓으신 뜻대로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운행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 11).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원시적 복음을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에게 별처럼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복음의 언약을 맺어 주시고, 그 후손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제사장 역할로 세우시고, 그 언약과 약속의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이 땅에 보내 주셨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대적하여 구원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이방인에게 입혀주셔서 땅 끝까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 즉 복음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차별이 없이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고 구원받는 기쁜 소식이기에 반드시 전파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주님은 복음의 전파를 지상명령으로 주셨고,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의무가 주어짐을 복음에 ‘빚진 자’로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듭나기 전 바울은 그 시대 최고의 율법 학자로 불리며 스스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라 자부했던 바리새파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예수님과 교회를 광적으로 핍박하는 하나님의 원수였다 (행 8:3). 그는 자신의 고백과 같이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딤전 1:13). 그런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구원에 이르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세워졌으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 그 자체의 능력이며, 그 복음의 능력이 바울을 뒤집어 놓았고, 지탱하고 있었고, 지배하고 있음으로 바울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바로 복음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복음은 생명을 잉태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위로부터 아래로 임하며,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전파력을 가지고 있기에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하게 됨으로 복음에 “빚진 자”라고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 그 자체가 바로 ‘생명의 태동, 생육과 번성’이기에, 그 생명의 씨는 가지고 있는 소유가 아니라 반드시 땅에 뿌려져야 만이 생명이 잉태하여 많은 열매를 맺어 온 땅에 생육하고 번성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강력하게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14), 즉 그리스도 안에서 탕감 받은 그 은혜의 복음은 샘물처럼 밖으로 흘러나가는 속성과 기능을 가지고 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즉 십자가 복음 전파는 영혼을 구원하는 본질적 요소이기에 성도의 의무이며 책임이며 지상명령임을 확실하게 제시한 것이다.
왜 ‘빚진 자’인가?
바울은 복음에 대한 깊은 깨달음과 일생의 많은 풍파를 겪으면서 자신과 같은 죄인 중의 괴수가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은 그 정체성과 자아인식이 너무나 뚜렷하였기에 자신을 ‘빚진 자’라고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여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 (고전 15:10)라고 고백한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삶 자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만을 전하는 복음이며, 그 복음의 능력이 바로 자아의 죽음으로 옛 ‘사울’이 죽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바울’로 새롭게 태어나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자신의 안에서 싹트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전파됨을 너무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오직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은 그 복음의 빚, 그리고 자신과 같은 죄인을 통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능력에 대하여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갚을 길이 없기에, 자신이 입은 그 은혜가 너무나 압도적이기에, 바울은 스스로 자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 자’라고 부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예수님에게 빚진 자이다. 예수님이 목숨을 받쳐 바울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가 흘린 보혈의 피가 모든 사람의 죄를 탕감하여 주셨기에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십자가 복음에 ‘빚진 자’임을 강력하게 피력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을 채무나 어떤 책임이나, 즉 하나님의 은혜에 묶여있는 자로, 아직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빚을 졌다고 말한 것이며, 그 빚이나 책임에 대하여 갚지 못하거나 소홀히 했을 경우에는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며 형벌을 받게 된다고 자신을 엄하게 견책한 것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 9:16). 복음을 전하는 일에 게으르게 되면 하나님의 화가 자신에게 임하며 그 화를 받아 마땅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방인 복음 전파에 자신의 전부를 받친 것이다. 즉 복음을 받은 자는 반드시 그것을 삶으로, 입으로, 몸으로 토해내야 하며, 그 삶이 나오지 않는다면 구원받은 증거가 없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강력하게 말씀해 주셨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겔3:17-19).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 상대가 죄악 죽에 죽었다면 그 피 값을 전하지 않는 우리에게 찾으시겠다는 두려운 말씀이다. 그래서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지상명령이며, 그것이 또한 성도가 그리스도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와 목적, 즉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도의 삶의 전부이기에 “빚진 자”라고 표현하고,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며 화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님은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는 그 삶 자체가 곧 복음을 전하는 필연적인 사명임을 제시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주님은 “내 증인이 되어라”가 아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주관하셔서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성취해 내시는 분이시기에 성도는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필연적으로 살아내게 됨을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을 입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올바로 인식한 자들이기에 그들의 삶 속에서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여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나타내고 전하는 증인의 삶을 필연적으로 살아가게 되며, 바울은 그 ‘증인의 삶’을 “빚진 자”로 표현한 것이다.
증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살아낸 십자가 삶을 그대로 답습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눅 9:23) 십자가 자기 부인의 삶과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그 삶이 바로 증인의 삶이며 빚진 자의 삶이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죽으나 사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갈 6:14).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성도의 신앙 여정에서 복음 전파는 필연적이며 필수적이다. 절대로 자신의 주체성이든가 가치를 내 세울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의 공로만을 믿고 의지하며, 자랑하고 전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이 살아내신 십자가 삶과 순교의 삶으로 증인의 삶을 살아낸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위해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함이라.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0-21). 즉 하나님의 복음은 내 자아가 기각되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으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나타나게 하시며 존귀하게 하시며 예수로 말미암아 사는 자로 완성하신다.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그렇게도 전하고 싶었던 복음은 어떠한 것인가?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한 가지 사명을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 그리면 복음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며, 어떻게 우리에게 계시되며, 복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최초의 원시 복음
사도바울은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라고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쁘신 뜻대로 사랑으로 택함을 받았다고 원시적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천지와 인간 창조와 그 창조한 인간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선한 뜻은 창세전에 묵시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이며,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심으로 당신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으며, 십자가 희생 제물로 성취하셨으며, 성령의 사역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끝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제시하신 것이다. 이르기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벧전 1:20).
사도 요한은 창조 기사의 복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 1-4). 천지창조 전부터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이 이미 정하져 있었으며, 그러므로 만물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 만물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복음’을 담고 있음으로 바울은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 1: 26)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내려온 비밀의 경륜이며,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짐을 미리 계시하셨다. 이 역사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이며,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약속들을 근거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과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오직 빛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아담에게 주신 최초 복음의 내용: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생육 번성과 땅 정복과 다스리는 복음을 언약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첫 인간 아담에게서 여자가 탄생하고,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어 새 생명이라는 씨, 즉 생육하고 번성하는 후손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그 새 생명의 탄생은 죽음을 전제로 하기에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아담의 죽음으로 여자를 탄생시킨 것이다. 성경에서 잠은 죽음을 상징한다. 이는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교회와 하나님이 백성들이 새롭게 탄생됨을 미리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합하여 한 몸이 되자 후손들이 탄생하는, 즉 생명의 씨가 탄생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생육과 번성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구원받아 그리스도의 영으로 진짜 하늘나라 존재로 탄생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을 이루어 수많은 당신의 백성들이 속속히 잉태하는 생육과 번성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됨을 계시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언약을 주신 것이다 (창 1:28). 생육과 번성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며, 신약에서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어지는 성취로 나타난 것이다.
노아에게 주신 새 생명의 창조와 생육과 번성의 복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정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 6:5-7). 하나님은 오직 당신에게 속한 씨만 남겨두시고, 이 땅에 속한 자들은 이 땅과 함께 심판으로 끝나게 하심으로 장차 일어날 종말을 미리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물 심판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었으며 숨이 붙어있는 모든 혈육에 대한 심판이었다. 죄인들에게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옛 세상이 멸망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새 창조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첫 인간 아담에게 주셨던 생육과 번성의 복음을 언약으로 주셨다. 노아 홍수의 사건은 죽음과 새 생명의 창조를 모형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노아에게 정결한 짐승의 제물을 드릴 것을 요구하셨으며 그렇게 깨끗한 제물의 죽음이 드려지고 생육과 번성의 언약이 주어진 것이다.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창 8: 17).
아브라함과 아브라함 자손에게 주신 생육과 번성, 씨와 자손의 복음
하나님은 열방 중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노아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는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셔서 그의 씨로 인하여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17-18).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번성하는 언약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게 주어진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창 26:4-5). 이삭과의 언약이 이삭의 아들인 야곱에게 이어진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창 28:14-15) 라고 변함없는 언약을 맺으신다. 그리고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 야곱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사다리를 보여주신 것이다. 즉 야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하늘나라의 구원을 이 땅에서 이루시기 위해 장차 예수그리스도께서 사다리가 되어 인간을 찾아와 주셔서 십자가로 구원을 성취하실 온 인류의 구원에 관한 영적 축복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그의 옛사람을 죽게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시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어 그를 통하여 이스라엘 12지파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어진 번식과 창성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이라 부르는 야곱의 12 아들을 애급에 들어 보내어 생육하고 번성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창대케 하는 위대한 일을 하신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급 고센 땅에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 (창 47:2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 하나님은 야곱의 12 아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 세상을 상징하는 애급에서 창대케 하여 당신의 이루고자 하시는 선한 뜻을 이루어 가신 것이다.
이와 같이 창세전 계획하시고 묵시로 이루신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에서 시작되고, 생육과 번성으로 임함으로 생명의 씨와 자손을 주시는 언약이 주어지고, 그 언약을 충실히 실행하시는 구원의 복음이 역사로 펼쳐진 것이다. 인간과 맺으신 언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덮음과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실행하시고 성취하심을 나타내어 보여주시기 위해 점진적으로,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택함이라는 예정을 통하여 하나하나의 사건으로 설명하여 주신 것이다. 즉 창조, 구원, 택함의 예정은 전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홀로 행하시는 선한 사역이며, 하나님은 오직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에게만 은혜의 복음을 입혀주심을 보여 주셨다. 그 시작이 바로 아담의 첫 후손에서 아벨은 택하시고 가인은 버리셨다. 온 인류 중에 노아만 택하셔서 은혜를 입혀주어 인류의 홍수 심판에서 구원하셨으며, 열방 중에 아브라함 한 사람만 부르셔서 그 자손들이 별처럼 모래처럼 생육하고 번성하는 언약을 주셔서 모든 믿는 자의 조상으로 세워주셨다. 야곱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이삭에게 약속하신 생육과 번성의 언약이 성취되는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민족을 이루시는 통로로 택함을 받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그리고 점층적으로 좀 더 큰 화면으로 실재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시고 제시하셨다.
생육과 번성의 본체는 언약의 성취자로 오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묵시로 이루시고 이 땅에 만물의 창조로부터 시작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오직 하나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십자가로 구원을 성취하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그리하여 바울은 생육과 번성의 복음을 이와 같이 제시한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약속하신 생육과 번성, 씨와 자손들은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됨으로 그 본체는 한 분 의인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구약의 모든 모형과 약속과 언약과 예언들은 오직 한 분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눅 24: 44).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성취되고 확장되는 그 복음 전파의 핵심과 본질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를 소유하는 믿음이며 그분의 신부로 새롭게 탄생하여 그분과 하나로 함몰되는 연합이다. 그러므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되어 죽고, 다시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많은 생명들이 탄생하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 끝까지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즉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요 12:24) 십자가 죽음으로 헬라인들과 같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뜻이기에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이 영광의 때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3-24).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나라는 이미 우리 성도 안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심으로 우리가 먼저 그 완성된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우리의 복음 전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됨을 가르쳐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실제로 오순절 이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세상에 흩어져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과 순교의 삶으로 복음이 땅 끝까지 확산되어 우리 이방인들에게 임한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음은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자체로 임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세상 끝까지 흩어져 있는 모든 족속 중에 택함을 받은 이방인들이 오직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되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하셨다.
죽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복음을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계시하셨다. 아담이 잠들 때 곧 죽음으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 곧 교회가 탄생됨을 보여주심으로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창으로 옆구리가 찔릴 때 그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 나와 교회와 성도가 탄생됨을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담의 첫 후손 아벨이 마귀의 자식인 가인에게 죽임을 당함으로 ‘여자의 후손’은 이 세상 마귀에게 죽임을 당하는 십자가 죽음으로 생육하고 번성함을 나타내셨다. 더욱 선명한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우리 믿음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독자를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받친 획기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 22:16-18).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보고 함께하는 자연의 법칙에서도 모든 생물이 죽음을 통하여 생명이 산출됨을 보여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대로 오직 죽음으로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며 번성하여 창대케 됨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통하여, 즉 내 옛사람 죄인이 죽는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그리스도에게 속한 새 생명의 부활로 나에게 임하는 것이며,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한 알의 밀이 되어 썩어서 없어지는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으로 다른 이들이게 생명의 씨를 태동시키는 예수 생명의 원동력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확장되는 것임을 성경은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먼저 구원받은 성도가 제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드려짐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음은 제자들과 사도들과 믿음의 선배들의 피의 순교로 이루어지며,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 길은 우리 주님이 먼저 가셔서 열어놓은 길이며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세상 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길은 우리 주님이 먼저 열어주셨다
행 1: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루살렘 --> 유대 --> 사마리아 --> 땅 끝까지 --> 증인
예루살렘 성전: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부르고 반면에 이 세상을 어둠이라고 부른다. 어둠에 갇혀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 빛을 알아보고, 그 빛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깨닫고 천국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은혜의 복음 시대가 열린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희생 양으로 보내주심으로 주님은 자신을 ‘참 성전’이라고 부르신 것이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유대인들 앞에 나타나셨음에도,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희생 양으로 오셨음에도, 때문에 이제 더는 제사를 드리는 성전도 양도 필요 없게 되었음에도, 유대인들은 여전히 성전에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님은 유월절에 맞춰 참 성전과 참 제물로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나셔서 성전을 뒤엎으시며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라고 외치면서 구약 율법적 제사를 끝내시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이 임하는 복음의 새 시대를 열어주신 것이다. 율법 아래 묶여있는 구약시대가 저주와 죽음의 심판이 선고되는 피의 역사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롬 8:2-18)으로 구원과 생명을 잉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율법을 가리키는 ‘이스라엘 선생’으로 할례, 제사, 율법적으로 유대 전체를 대표하는 자로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둠’에 속한 자였기에 굳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직선적으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라고 단호하게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 너의 율법적 신앙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알아듣지 못하는 니고데모에게 두 번째로 확실한 답을 주신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5-6).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너는 육의 사람으로 영의 일을 알지 못하며 그것이 바로 율법의 한계임을 지적하신다. 주님은 육과 영은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이, 영으로 거듭난 자는 영생을 사는 자이며, 이 땅에 육으로 난 자는 어둠과 죽음에 속한 자이기에 이 둘은 본질적으로 다른 세상을 사는 존재임을 제시하셨다. 즉 하늘나라는 할례, 제사, 율법과 같은 종교 행위나 혈통이나 선행이나 성경 지식이나 신앙적 열심과 같은 것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 주셨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일은, 인간의 모든 노력과 열심과 행위를 배제하여 하나님 홀로 역사하시는 일이며,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없이 택함을 받은 자에게만 입혀지는 은혜의 선물임을 제시하셨다.
사마리아:
유대교 율법주의를 대표하는 니고데모와 대립되는 개로 취급받는 사마리아 땅에 부도덕적인 과부 여인을 통하여 복음이 어떻게 이방인에게 임하는지를 설명하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복음은 모세로부터 받은 율법과 제사와 안식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를 떠나서,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빈부귀천, 남녀노소 차이가 없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임하게 됨을 나타내셨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롬 10:12). 구원에는 혈통이나 인간의 그 어떤 조건과 자격과 노력과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 은혜의 덮음으로 인간의 죄가 용서되고 사하여 지는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구원의 길은 인간 측에서 찾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길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신부를 찾아와 주셔서 오직 은혜와 사랑으로 당신을 믿는 믿음을 선물하여 주심을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로 제시하셨다. 예수님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이 두 사람을 선택하심으로 하나님의 복음은 높고 낮은 지위와 조건과 공로와 혈통과 전혀 무관하며, 창녀로 살았던 세리로 살았던 강도로 살았던 상관없이 복음은 오직 불가항력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이 입혀짐을 제시하신 것이다.
땅 끝인 이방인:
예수님은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려내어 온 집안에 복음이 임하게 하셨다. 죽어 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는 사건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성취로 죽은 자가 다시 새롭게 살아나는 성도의 부활을 설명하는 사건이다. 둘째는, 신하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선물한 것이다.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고 기적을 행하여 달라고 간청한 신하에게 주님은 단 한마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요 4:50)라고 말씀만 던져주셨다. 예수님은 왕의 신하를 통하여 주위에 있는 갈릴리 모든 사람들에게 표적 행함이 없이 말씀에 근거한 믿음만이 능력과 구원이 임함을 나타내신 것이며, 또한 기적만을 믿고 온 왕의 신하에게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주심으로, 표적이 아니라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그 말씀이 곧 현실로 이루어지는 더 기적적인 능력을 온 가족에게 보여주어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셨다. 하나님이 나라는 기적과 표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임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보여주신 것이다. 믿음이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고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실현되지 않은 것을 실현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먼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자신 안에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생육과 번성을 이루시고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우리에게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증인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명하셨다. ‘땅 끝까지’는 지구상의 어떤 특정된 곳을 가리키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내 안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생육과 번성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시며 (마 4: 17),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 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게 내 안에서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으로 하나님이 나라가 온전히 생육하고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맺게 되는 번성으로 이웃에게, 이웃 족속과 나라, 그렇게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됨을 주님은 친히 하나하나의 사건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그 길을 열어놓으셨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깊고 오묘하며 진리와 생명으로 충만한 신령한 십자가 복음을 영적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과 나누기를 갈망한 것이다. 이르기를, “이처럼 내가 여러분을 간절히 만나려고 하는 것은 영적인 축복을 나눔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1:15).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여 주신 복음, 자신을 사도로 세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택하신 복음, 자신의 안에서 성령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정과 열심을 담은 복음,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과 생명이 많은 교회와 많은 사람들에게 입혀지는 복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죽음에서 생명으로 일으키시는 능력의 복음, 생육과 번성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확장되는 복음, 이 모든 것을 “신령한 복음”이라 부르고, 그 신령한 복음을 로마 교회 성도와 나누기를 간절히 소원한 것이다. 오직 십자가 복음만이 우리 믿음의 대상이요 그 믿음은 하나님이 친히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믿음이기에 신령한 복음을 알면 알수록 반석같이 견고케 됨으로 그 어떤 것으로도 부술 수가 없다는 바울의 의지를 담아 복음이 믿음을 견고케 한다고 말한 것이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1:11),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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