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계시
“계시” 란 하나님께서 하늘의 비밀을 당신의 백성에게 나타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일이다. 즉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찾아와서 당신이 숨겨두었던 보배로운 사랑의 심장을 열어서 보여주고 소유하게 하시는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타락으로 영이 죽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은 친히 인간을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향한 사랑의 심장을 열어서 보여주시고 소유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영에 관한 일이다. 이는 인간이 배워서 취득한 지식과 추리로 알아가는 우리 쪽에서 노력하여 깨달아지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육을 입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육의 한정된 지성과 혼적인 이해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고전 2:11). 이 세상의 유한한 지식으로는 무한한 하늘나라와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없음으로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롬 3:11)고 말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성령의 계시를 주셨다. 성령님이 나에게 영성을 열어주심으로 내 영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며, 그분이 내 아버지가 되심을 인지하게 된다. 그분이 성령으로 내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하나님은 나를 낳으신 아버지이시며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고 내 마음에 확증해 주시고 인처 주신다. 이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영적 계시다. 그리하여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고전 2:10) 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세는 우주창조 때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영의 계시로 태초로부터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늘에서 이룬 뜻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는 천지창조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하늘나라의 실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모형과 그림자로 물질세계가 창조됨을 모세는 영감으로 읽고 기록하였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또 사도 요한은 성령의 계시를 받아 태초로부터 예수님은 ‘말씀’으로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천지가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증거하였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예수를 만난 후 영안이 열려 우주 창조 전에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자녀로 택하심을 보았고, 우리의 영적 생명이 창세전에 이미 예수 생명 안에 있음을 보았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엡 1:4) 얼마나 확실한 계시인가. 영의 사람은 육을 초월하여 영의 차원에서 영의 신령한 비밀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르기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7-19).
모든 계시는 아버지로부터 오기 때문에 예수님은 구원과 영생을 아는 지혜를 “천국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어떤 이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에 열려있지만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마 13: 11) 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천국에 관한 모든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다” (마 13: 34). 즉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과 참 사랑을 깨닫고 영생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 10-13)라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계시를 통하여서만 이 아버지의 진정한 뜻과 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며, 예수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을 얻게 됨을 말한다.
성경의 계시
성경은 아버지가 인간을 이처럼 사랑하사 창제 전부터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성취를 성령의 계시로 기록한 구원과 생명에 관한 구속사이다. 바로 아버지 사랑의 본체인 예수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죄인에게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기록한 특별계시이다. 이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 1:21). 이 계시의 참된 저자는 성령님이시기에 오직 성령의 계시로만이 아버지의 마음과 천국의 비밀을 알 수 있도록 다른 이들에게는 덮어놓으셨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성경은 다른 일반 서적과 동일시할 수가 없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성령의 계시로 성경을 읽어야 만이 그분의 사랑이 내 마음에 전달되며, 생명이 잉태되는 구원에 이르게 되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믿음을 얻게 된다. 이는 창세전부터 하늘나라에서 계획하신 아버지의 뜻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 7) 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참 사랑을 나타내어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해 인간 저자들을 통하여 우리의 언어로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택하셨다. 즉 모든 족속들이 자기 말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인간을 저자로 택하셔서 성령의 계시로 기록하게 하셨다. 우리들의 언어를 쓰심으로 각자 저자들의 성품에 따라 아버지의 마음을 자유롭게 여러 가지 측면으로 기록하는 가장 친근한 방법을 택하셨다. 성경의 참 저자는 성령님이시게 반드시 성령의 계시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만 보여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시고 영생을 소유하게 하신다. 오직 당신이 창세전 택하여 놓으신 자녀에게만 당신의 마음을 성령을 통하여 계시하여 주시며 보여주시며 은혜를 입혀 구원과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경 말씀이 지켜서 행하여 사망에 이르는 율법의 책으로 이해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과 생명이 선물로 입혀지는 복음의 책으로 진리를 소유하게 된다.
성경의 단 한 가지 주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성취하신 십자가 구원의 의이며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에 관한 특벼계시이다. 오직 성경만이 직선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다. 즉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 시작에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역사가 펼쳐지지만, 계시록에 가서는 이 세상에 속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완전히 삭제되고, 오로지 영원한 빛과 생명으로 충만한 영원한 나라, 오직 하나의 통일체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의의 상태로 회복되는 미래를 미리 제시하여 주신다. 오직 성경만이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 죽음과 생명, 지옥과 영원한 하늘나라를 영적 실상과 역사적 현실로 정확하게 점진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서 모든 계시를 다 주셨고 성도의 전 인생의 답이 성경에 분명이 계시의 영으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일관성 있게 하나님 나라라는 하나의 주제로 아버지 자신을 계시하며, 끝없이 자기 백성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만을 그 주제로 점차적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주신다. 즉 성경은 유일한 생명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에 관해서만 기록된 구속사이며,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시작하셔서 하나님이 끝내신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권을 기록한 책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
우리는 성령님의 계시 없이는 예수를 내 구주라 시인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아들인 예수님은 아버지 사랑의 결정체다. 그분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새 생명으로 잉태하여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 됨을 확증하여 주시고 보증하여 주신다. 그분은 삼위일체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 (출 3:14), 시작과 끝이 없는 “태초”부터 영원하신 분이시다. 스스로 계시는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기에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계시하실 수밖에 없으시다.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시어 보여주시는 일이며, 인간 속에 침노해 들어오시는 사랑의 열정이다. 그분은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주시기 위하여 창조전에 이 세상의 실존을 “혼돈과 공허와 흑암”(창 1:2)으로 정하셨다. 이 세상에 죄와 타락, 그 죄로 인한 파괴와 멸망, 고통과 절망, 죽음을 허락하심으로, 이 세상의 것들을 통하여 당신과 당신의 나라를 설명하시는 방법을 택하셨다. 이 세상 죄와 사망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하심과 선하심과 의와 영광을 드러내시며, 구원과 생명을 설명하시며,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인내를 베풀어 주시며, 하늘나라의 소망을 마음에 부어주시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영생과 천국을 선물로 주시는 복음을 드러내신다. 즉 그분은 우리 존재의 근원과 원천이시며, 영원한 아버지가 되심을 깨닫게 하시며 소유하게 하셨다.
성자 예수님은 구속자이시며 사랑이시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신 것이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을 완전히 계시한 사랑의 결정체이시다. 그분은 한마디로 사랑이시다. 예수그리스도 없이 우주창조도 인간 창조도 있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3-4)라고 선포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창세 전부터 감취였던 비밀”인데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에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롬 16:25-26), “비밀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골 2:2-3) 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사랑과 “의”와 영광을 인간에게 나타내 주셨다. 인간은 아버지의 구원과 사랑의 대상이다. 심판도 아니요 벌도 아니요 오직 생명과 사랑이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여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7). 우리에게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어떤 대가도 조건도 없이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목숨을 우리에게 내어 주셨고,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신부로 아버지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여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셨다. 만약 예수님의 사랑을 다만 목숨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에만 국한한다면 그 사랑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분의 사랑은 함께 죽고 함께 영원히 사는 하나가 되는 연합의 사랑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을 초월하여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죽지만, 또한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영원히 함께 사는 하늘나라까지 이어지는 영생의 사랑이시다.
성령님은 영의 생명을 잉태시켜 주신다. 성령님은 영으로 새 생명의 창조, 즉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잉태시켜 주신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시기에 우리가 영의 아버지를 인지할 수 있는 유일한 인도자이시며, 예수그리스도의 참 사랑을 증거하는 증인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요 14:26; 요 16:13),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요 14:16) 라고 성령의 본질을 가르쳐 주셨다. 성령님의 본질은 만세전에 감추어두신 아버지의 비밀을 온 인류에게 알리고 전파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역할을 하신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 (고전 2:10). 또한 성령님은 아버지의 구원 비밀을 깨달은 자를 통하여 땅끝까지 당신의 택한 백성에게 영생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신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라고 우리에게 복음의 사명을 감당케 성령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성령이 우리 영을 열어주시는 목적은 우리에게 향한 아버지의 참 마음, 구원의 은혜와 참 사랑을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며, 영으로 새롭게 태여나는 영생을 입혀주신다. 하지만 성령의 계시와 체험이 없다면, 아무리 성경을 통달하고 외운다 할지라도, 아무리 내 몸을 던져 하나님을 섬긴다 할지라도, 그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할 수 없으며, 내 안에 예수 생명이 잉태될 수가 없으며, 나에게 향한 그분의 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다. 바울이 만약 성령님의 거듭남이 없었더라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바리새인으로 구원과 생명을 가로막음으로 심판을 자초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이 그에게 임하자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잉태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사명을 깨닫고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갈 1: 15-16)는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성령을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 부르고 그 계시의 영이 성도에게 임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하고 부르심의 소망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다고 말씀한다 (엡 1:18).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받아들여 영으로 새 생명을 잉태시키는 기적적인 일들을 하신다. 즉 성부와 성자의 주권에 반응하여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게 하시며, 능력을 입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들을 하신다.
성령의 계시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1) 유대인들에게 막힌 하나님의 계시
유대인들은 택함을 받은 민족으로 구약 말씀을 통하여 메시아의 출현을 증거로 알고 있었고,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이 약속한 구원자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성령의 계시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다리고 갈망하던 메시아가 정작 그들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들은 오히려 메시아를 사사건건 비판하고 핍박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섬기는 율법으로 메시아를 죄인이라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데까지 가게 되었다. 왜 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을까?
첫째, 메시아에 대한 그들의 인식과 기대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민족 독립을 위한, 이 세상을 지배하는 다윗 왕의 회복과 이 세상에서 생존하는 육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내가 원하는 세상 왕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강대국의 노예와 포로의 긴 세월 동안 억울하게 나라를 잃고 방황하며, 강국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잃은 눈물에 젖은 민족이었다. 430년 동안 애급의 노예로 종살이에 얽매어 살았으며; 하나님을 배신하고 거역하는 우상숭배로 바벨론과 앗수르의 포로가 되어 나라를 잃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난 세월을 보냈으며; 로마의 속국이 되어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온갖 수모와 설음에 붙받친 민족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민족 독립과 자유였다. 때문에 그들이 기다라는 메시아는 이 세상 왕으로 오셔서 그들을 위해 싸워주시며, 그들의 민족을 속국으로부터 해방시켜주며, 그들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능력과 축복을 내려주는 오직 이스라엘 민족에만 국한된 세상 왕이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패역한 민족으로 스스로 형벌을 자초하였으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심판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들은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왔기에 율법의 기준으로 메시아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사랑과 평화로, 구원과 생명으로 오신 메시아 복음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아울러 아무런 공로도 업적도 없이 율법을 지키는 대가도 없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가난하고 소외된 자에게는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벳푸시고, 상대적으로 열심히 율법과 제사로 하나님을 섬겨드리며, 율법 행위로 의인이라 자칭하는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 ‘회칠한 무덤’ ‘마귀의 자식’이라고 저주하시며, 그들의 율법적 행함을 위선과 가식적 행위로 지옥에 갈 근거를 쌓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비판하고 저주함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도저히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그들이 굳게 지키는 율법을 초월하여 아무런 대가도 조건도 공로도 업적도 없는 세리와 창녀와 같은 죄인들에게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며,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쫓아내시며,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는 등 율법을 어기는 분이셨다. 자신들의 신앙관과 완전히 빗나가는 예수님을 도저히 메시아로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육의 차원에서 육의 일을 이루어주시는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빗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성경의 예언대로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았으며, 또한 믿고 싶지 않았다. 메시아는 성경대로 유다 지파, 다윗의 자손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천문을 연구하는 동방박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를 따라 예물을 준비하여 구주의 왕 되시는 예수님께 경배 드리려 왔었다. 헤롯왕은 이 소문을 듣고, 모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불러서 성경을 확인하여 메시아가 어디에서 태어나는가를 찾아보게 하였다. 메시아의 출생지를 가르쳐준 자들은 바로 메시아의 탄생을 손곱아 기다리던 유대인들이었다(마 2: 2-6). 하지만 헤롯왕에게 메시아 탄생지를 알려준 그들은 한 사람도 믿지 않았고 메시아를 찾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성경을 모르는 헤롯왕은 이 땅에 유대인의 메시아가 탄생할 것을 믿고, 두려움에서 2세 이하의 유다 남아를 살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참살의 사건을 당한 자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메시아의 탄생이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요한이 말하기를,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 1: 11-12). 즉 예수님이 자기 백성인 유대 땅에 유대인에게 오셨지만 그들에게 거부당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닫는 성령의 계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는 세상을 뒤집어 업고,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 왕으로 오시는 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는 창세전에 계획하신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함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주는 아버지의 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한 메시아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2) 예수님의 제자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정하신 뜻,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이나 동고동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하여 확신이 서지 않았다. 비록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라고 고백은 하였지만 그에게 준 이 고백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고백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마 16:17). 베드로는 그 후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간청하여 만류하다가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물러가라”고 질책을 받기도 하였으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던 제자였다. 하지만 그 후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성령의 계시와 인도함으로 아버지의 참뜻을 알게 되자 담대히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가 되어 단 한 번의 설교에 3000 여 명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복음을 위하여 기쁘게 순교로 자신의 생명을 받칠 수가 있었다. 비록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실망하여 뿔뿔이 도망갔지만, 오순절 날, 성령님의 임재와 거듭남으로 진정한 아버지의 마음이 전달되자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다.
(3) 사도 바울의 고백
사울은 바울이 되기 전에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 즉 율법 신학박사였다. 그는 율법적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흠이 없다고 자고 하고 최고의 열심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그가 고수하고 굳게 지켜온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알리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데 걸림돌이 되었고 메시아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망령된 자가 되었다. 왜냐하면 성령의 계시와 거듭남의 체험이 없었기 때문에 영의 아버지를 진정 알 수도 그분의 뜻을 헤아릴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거듭나 영의 사람으로 사도된 바울은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6), 율법을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법아다’ (롬 8:2)고 자신의 뼈저린 체험을 고백하였다.
(4) 우리에게 막혀진 아버지의 마음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아버지의 마음, 그분이 나를 택하신 사랑, 나를 구원하신 뜻, 생명의 후사를 낳는 복음 전파에 영성을 열어가기보다는 이론과 교리, 형식과 전통과 규례, 행위와 섬김, 업적과 공로 등 인간이 주도가 되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일을 만들어 내어 추진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시기 위해 ‘공의’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는 자신의 육체로 율법을 페하여 주셨다(엡 2:15). 그럼에도, 죽은 율법을 다시 일으켜 세워 스스로 자신들을 종으로 묶어놓고 굳게 지켜 행하는 행위의 의로움을 추구하며, 그 율법 지킴의 행위로 거짓된 의를 쌓아서 이 세상 복을 추구하며 이름을 높이는 가치관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유대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율법을 지켜 자신의 의를 세워 하나님의 의를 대적하는 망령된 종교적 신앙이 교회마다 보편화되어 있다.
성령의 계시로 아버지가 우리에게 향한 구원의 사랑을 깨닫고 생명을 구하기보다는 오히려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는 훈계로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아내는 성공의 비결로 성경 말씀을 왜곡하여 가르치고 따르고 있다. 성경은 오직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예수그리사도와 하늘나라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이게 전달하여 주시는 진리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와 신학, 경력과 전통, 의식과 문화적 관습 등의 걸림돌로 인하여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진정한 마음과 사랑은 왜곡되어 있다. 성경은 오직 아버지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사 값없이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사랑의 마음을 기록한 구속사이지, 도덕과 윤리, 이 세상복과 인간 성공을 가르치는 철학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힘써 알기를 원하시며, 그분과 교제하는 관계를 원하시며,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울의 열심이 예수와 교회를 핍박한 것과 같이, 내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과 하나님의 참뜻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모든 일은 그분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우리를 움직이고 있으며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종과 믿음이며, 찬송과 감사임을 깨닫는 것이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
내가 그분의 일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오히려 나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기 위해 열심히 당신의 의를 나타내시는 선한 일을 하고 계신다. 나를 통한 그분의 선한 일을 깨닫게 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분을 신뢰하게 되며 그분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나의 상상으로 판단하는 시각에서 하나님을 헤아려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내려놓고, 나를 낳으신 (시 2:7) 아버지의 시각으로 전환하여 영의 계시를 따라 ‘나’를 조성하신 그분의 뜻이 어떻게 펼쳐져 가는가를 알기 위하여 다음 장에서 인간 창조로부터 시작되는 드라마, 에덴동산과 선악과 나무에 대하여 함께 성경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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