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 읽는 아버지의 마음

영으로는 죄를 지을 수 없다 / 영, 혼, 육의 상호 관계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30. 11:58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영적 생명

하나님의 형상’ 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유독 인간만 삼위 하나님께서 상의하여 만드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 의존하여 하나로 함몰되는 관계속에서만 생명을 유지하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미리 계시하여 주셨다. 이는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선하심과 영광을 나타내어 온 땅에 충만하시기를 원하는 의도였음을 제시하셨다(사 43:7). 처음부터 인간을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삼위 하나님으로 인간에게 나타내시며,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구속사를 성취하셨다. 사도바울은 이 영의 진리를 깨닫고 창세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 생명 안에서 이미 택함을 받은 자였다고 말씀한다.

엡 1: 4-6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엡 1:11-12 -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가 됨으로 비록 타락으로 그 영이 죽은 상태였지만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반을 주셨다. 그리하여 아담의 타락으로 죽어있던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체로 다시 살아난 것을 ‘새 피조물’이라고 말하며, 성령으로 거듭 혹은 중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특별한 영의 생명은 오직 아들로 선택된 자에게만 영을 열어주셔서 영으로 하나님을 인지하며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믿음을 선물로 주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 10:27).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고 반응하며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 이와 같이 영의 기능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반응하며, 교제하기를 기뻐한다. 성령님이 먼저 내 영의 눈과 귀를 열어주심으로 내 영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 혼과 육을 동원하여 즉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게 하신다 (눅 1: 46-50).

영의 특성

영은 창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있는 영원한 생명이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영의 실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다. 즉 영의 특성은 바람과 같다고 하셨다. 바람처럼 형체는 없으나 분명히 그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은 의지적인 움직임이 있다. 회오리바람으로 강하게 다가와 모든 것을 쓸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따스하게 부드럽게 온유한 느낌을 주기도 하며, 때로는 불처럼 뜨겁게 다가오기도 하며, 때로는 얼음장같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바람은 구속이나 얽매임이 없이 자유 자재하며,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불어올지 인간은 짐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바람은 온 우주에 차 있으며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일하고 있다. 영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3: 6-8). 육감으로 터득하는 인간은 영의 일을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그분이 주시는 계시 속에서 그분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고 깨달을 뿐이다. 그분은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기를 원하시기에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하시며 거듭남이라는 증거를 낳는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롬 8:16). 그분은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성품과 인격을 나타내신다. 그분은 빛과 생명이시며, 긍휼과 사랑, 자비와 용서와 인내, 온유와 화평, 공의와 의로움, 선과 영광으로 충만한 분이시다.

영, 혼, 육의 상호 관계

하나님은 마음 (감성), 지성, 의지를 가지고 계시는 인격체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자신의 성품을 따라 인간을 지, 정, 의라는 삼위 인격체로 만드시고, 영, 혼, 육으로 구분하셨으며 (살전 5:23), 영의 나라, 자아 세계, 물질세계라는 삼위 영역을 주셨다. 하나님에 대하여 의식하는 영의 나라는 영생을 의미하며; 자신에 대하여 의식하는 자아 세계는 자기 의지를 나타내는 혼의 인격 기관이며; 세상에 대하여 의식하는 물질세계는 심판과 종말로 정해져 있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육신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영은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으로 영으로 태어난 자는 본향인 아버지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이다. 즉 육의 생명은 육의 죽음과 같이 없어지지만, 아버지께 속한 영의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체는 영생이시기에 오직 아버지께로 난자, 성령으로 난자만이 영생을 얻게 되며 이 생명은 하나님의 속성이므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랑으로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성, 감성, 의지를 발휘하여 스스로 생각하고 인식하고 추론하여 사물을 판단하며, 도덕과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구별하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발적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즉 양심과 도덕성을 주셨다. 비록 죄로 훼손되기는 하였지만 선한 성품을 추구하기도 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끼기도 하며 도덕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육신은 전적 타락으로 죄를 떠나서는 살수 없음으로 육신이 죽어야만이 죄가 죽을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참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내려오셔서 모든 죄를 육신으로 짊어지시고 육신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몽땅 받아내셔서 당신의 자녀들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주셨다.

인간은 영과 육의 두 가지 지배를 받으며, 혼은 육 과 영 가운데를 평행한다. 혼은 육과 영의 가운데서 때로는 육에, 때로는 영에 혼합하는 중간 역할을 하면서 한 인간의 개성, 인격, 성품, 의지를 표현한다. 혼의 성품에는 영적인 요소와 육적인 요소가 함께 공존하기에 영이 강할 때는 영의 인도와 지배를 받으며, 육이 강할 때는 육의 지배를 받는다. 혼이 육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내 '자아'를 주장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육신의 탐심과 정욕대로 살아가게 된다. 즉 혼은 육적인 정욕과 욕망을 따라 온갖 악한 행실로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한다. 인간은 아담의 타락을 시점으로 하여 영이 죽어있는 상태에서 혼은 육을 도와 하나님의 영에 대적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한다. 타락한 인간은 사단의 종이 되어 육의 탐심과 정욕을 따라 죄악된 삶을 사는 육적 존재가 된 것이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육의 정욕을 따라 사는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 (고전 2:14), 혹은 “육신” (롬 8:6) 이라고 부른다. 육신에 속한 사람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갈 5: 16-21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반대로 혼이 영을 위해 봉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을 의식하고 갈망하며, 찬양하고 기뻐하며, 순종하며, 성령이 하시는 일을 도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 온유, 사랑, 인내, 양성, 충성, 용서, 감사와 기쁨 등 영의 성품을 나타낸다 (갈 5: 22-26). 즉 내 혼이 영의 지배를 받을 때 나는 영으로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며, 그분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게 되며, 내 육신의 자아를 내려놓는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을 지향하게 되며, 오직 순종으로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뜻만을 추구하게 된다.

갈 5:22-26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영과 육은 혼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상호 간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 반대로 역사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 17);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사도바울이 지적한 봐와 같이 이 두 소욕은 우리가 육신의 몸을 벗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대적하게 된다. 그리하여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2-24) 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적으로 제아무리 성장하였다고 해서 육체의 소욕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어느 정도 육체의 소욕을 절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육신의 노력과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스스로 제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육의 소욕은 더욱 강하게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우리의 내면은 끊임없는 갈등으로 곤고함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육신의 노력과 열심으로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자기 의를 세우는 일에 너무나 익숙하게 습관화 되어왔다. 열심히 지키고 행하는 일로 자신도 모르게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갇힌바 되어 (갈 3:23) 율법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다” (갈 3:10) 라고 바울은 뼈저리게 말씀하고 있음에도. “육신 속에서 선한 것이 없이 열린 무덤과 같이 패역하였기 때문이다”(롬 7:18 –21).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7:18; 8:7). 이것이 육신의 실존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거듭났을 때 성령님이 내 육과 혼을 주관하시며,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다듬어 가신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회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 19-20) 라고 그리스도인의 지향성을 밝혀주고 있다. 즉 우리의 영이 충만함을 받을 때 영의 주관으로 표출되는 혼적인 감동과 육의 일련의 표현은 하나님께 대하여서는 신령한 예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우리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으며,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게 하셨다. 이와 같이 인간은 영, 혼, 육이 함께하는 삼위 성을 가지고 지, 정, 의. 삼위 인격체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으심을 받았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지성으로 그분에 대한 지식을 배워 그분을 알아가며 말씀을 깨닫게 하며, 감성으로 마음을 통하여 그분이 바로 우리의 ‘아바 아버지’가 되심을 알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의지를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데 있다. 그리하여 그분은 한 인격체로 인간의 육을 입고 ‘인자’ 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을 성취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자신의 영으로 새 생명을 잉태하여 주셔서 그분에게 속한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어 주셨다.

오직 영만이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지배하는 종의 형태로 만드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혼적 기능을 주셔서 인간 스스로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도록 하셨다. 아울러 하나님이 주신 자연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모든 것을 자기 임의대로 먹고 향유할 수 있는 주권을 주셨다 (창 2:16).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분은 인간을 다스리고 통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어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영원한 생명 되신 하나님을 택하기보다는 육의 본능에 따라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물질의 향유, 죄를 택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달콤한 음식을 먹거나 멋있는 옷을 입고 사람들의 대우를 받을 때 자부심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 호화로운 옷도 진수성찬도 한 시간도 못되어 금방 싫증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물질로는 만족과 행복을 얻을 수가 없다. 육을 위한 모든 물질은 순간적이며 허무하며 '없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벧전 1:24),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인생은 먼지와 같다’ 고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함과 무익함을 자신의 인생 경험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반면 영은 태초로부터 영원하시기에 영이 주는 생명은 없어지지 아니하며 오직 평안과 기쁨과 영원한 행복이다.

우리의 육은 비록 이 세상의 죄와 죽음, 수고와 고통,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가 없지만, 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참된 자유와 평강과 기쁨과 하늘나라의 소망을 체험하게 하신다. 말씀하시기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벧전 3:18 ; 4:6) 함과 같다. 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망과 믿음으로 입혀주신다. 영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여 빛과 생명 안에 거하게 한다. 반면, 육신은 이 세상에 속한 쾌락, 욕망, 탐욕을 따라 죄를 쫓는 자가 됨으로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 이 진리를 깨달은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 4:18) 라고 육의 허무함과 영의 영원함을 제시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안식과 생명과 평안과 행복이다. 진정한 행복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바라볼 때 소유되는 영원한 생명의 진리이며 오직 영으로 이루어지는 은혜와 사랑이다. 육으로는 이 오묘한 영의 일을 알 수도 없거니와 하나님의 영적 구원에 도달할 수도 없다.

영으로는 죄를 짓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요일 3:9) 하심과 같이 우리는 의로우시며 선하시며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에게로서 난 자들이다’. 즉 죄와 상관없이 그분의 의로운 영으로 태어난 의인이다. 그래서 영으로는 죄를 짓을 수가 없다(롬 6:1-7)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으로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요" (롬 6:11), 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 (롬 6:11)가 되었기 때문에 거룩한 영은 죄가 있을 수도 죄를 짓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죄와 함께 죽은 자는 다시는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분 안에 있는 자는 영으로 죄를 짓을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롬 8:13). 그리하여 누구든지 그분의 영을 훼방하면 사함 받을 길이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속죄하는 권세와 (요 20:23) 중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요 3:5). 그러므로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결국 삼위일체 하나님과 생명을 부인하기에 이 세상과 오는 세상까지 구제불능하다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요 3: 29).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는 생명으로 우리를 잉태시키기 위하여, 그분은 자신의 본체인 성령으로 잉태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영으로 태어난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 죄와 무관하며, 그분의 의의 생명으로 의인으로 태어났기에 영으로는 죄를 짓을 수도 죄인이 될 수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로서 난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요일 3: 9). 얼마나 정확한 말씀인가. 하나님의 영으로 새 피조물이 된 자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거하므로 영으로 죄를 짓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의인은 오직 하나님의 의로 살아가며, 다시는 죄인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즉 우리의 영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분의 속성을 따라 의로운 자가 된 것이다. 우리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영으로 태어난 당당한 의인이며 사랑하는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 3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