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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9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 어떤 것은 육십 ,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3:18-30 그런즉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가에 뿌리운 자요  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21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넘어지는 자요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23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백배, 육십 ,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3)       가시떨기밭

  • 마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 13:  22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예수님은 가시떨기를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명확히 말씀하신다. 누가복음에서는 여기에 가지를 덧붙이신다.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라” ( 8:14). 가시 떨기밭의 특징은,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이생의 쾌락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씨가 뿌리내리는 것을 막고, 이미 자라기 시작한 생명까지 질식시켜 죽게 만든다.

가시떨기 신앙의 본질: 주인을 섬김

가시떨기 신앙은 하나님을 유일한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 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의지처와 주인을 함께 붙들고 살아가는 신앙이다. 예수님께서 가시떨기를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일락”( 13:22, 8:14)이라고 규정하신 것은,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주인으로 삼으려는 구조적 죄성을 정확히 드러낸 말씀이다. 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줄곧 주인을 섬겨온 우상숭배의 본질이다.

(1) 이스라엘의 이중 제단: 혼합 신앙의 구조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줄곧 이방신을 겸하여 제단 섬겼다. 하나는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제단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2:11). 이스라엘은 여호와 분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갈멜산 바알과의 전투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가 어느 때까지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라”(왕상 18:21)라고 외쳤다. 하나님은 그들의 우상숭배와 혼합 신앙에 대하여 미리 경고하셨다. “너희가 만일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가 남겨둔 자들이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것이요”( 33:55).  

(2)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제단: 하나님의 이름을 도구화한 우상숭배

금송아지 사건은 출애굽기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너희 신이라 ( 32:4)라고 거룩하신 여호와의 구원 주체를 금송아지에게 전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긴 것이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왕상 12:28-30).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제단은 여호와를 완전히 버린 우상숭배가 아니라, 여호와의 이름과 출애굽 구원의 역사를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유익을 확보하기 위해 도구화한 왜곡된 신앙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분명하게 너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20:7)라고 선포하셨다. 그럼에도 십계명에 전면 도전하여 하나님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가장 악질적인 형태의 우상숭배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들이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는 벌을 받을 것이라”( 10:2).  

(3)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없다

예수님은 가시떨기 신앙을 단호히 배제하신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느니라” ( 16:13). 이는 하나님과 맘몬이 절대로 양립할 없는 하나님 주권적 선언이다. 가시떨기 밭의 사람들은 신앙의 외형을 유지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을 듣고, 공동체 안에 머물며,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삶의 실제 동력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 자신의 안정, 쾌락에 있다. 한마디로, 가시떨기밭은 무신앙이 아니라 혼합된 신앙이며, 불신이 아니라 분열된 마음이고, 외적 배교가 아니라 내적 우상숭배이다.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없다”( 16:13)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이들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쾌락에 기운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13:22, 8:14)라고 말씀은 들으나 자라지 못하고 결실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신앙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유익이기 때문에 세상의 것들이 마음의 주인이 되어 말씀의 생명을 질식시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경고한다. “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5–17). 바울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모든 악의 뿌리다 단언한다(딤전 6:9–10).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 아래 염려와 재물과 쾌락을 함께 붙들어 말씀의 생명을 질식시키는 마음의 신앙이다.

  인간의 가시떨기 본성 

1) 타락한 인간의 근본 상태

인간은 무신론자가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신으로 삼는 존재이다. 인간은 전적 타락으로, 재물과 자기 유익의 노예가 되었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피조물을 섬기는 자가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경배하고 섬겼다”( 1:25). 인간의 삶은 돈과 쾌락, 성공과 자기 이름, 안전과 안락함을 향한 욕망에 사로 잡혀 있다. 여기에 종교가 결합될 , 하나님마저도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도 믿고 맘몬도 믿는다.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면 어떤 대상이든 붙잡고 섬기려 한다.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 패역함을 반복해서 폭로한다. 가시떨기밭의 비극은, 스스로는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는 있다. 육신의 쾌락은 결코 생명으로 인도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죽음의 길이기 때문이다.

2) 가시떨기 신앙의 본질:  하나님을 부르지만 주인은 여전히 세상과 신앙

가시떨기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 위에, 자신이 원하는 세상 것들을 끌어들이는 불가능한 결합을 시도한다. 신앙은 하나님도 믿고, 예배도 드리며, 기도도 하고 말씀도 듣는다. 그러나 삶의 실질적 주인은 여전히 자신세상이다. 결과 신앙의 목적은:

  • 하나님 나를 위한 수단
  • 하나님성공을 위한 도구
  • 기도문제 해결의 기술
  • 믿음형통을 얻기 위한 조건

이들이 사용하는 신앙 언어는 다음과 같다.

  •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형통한다
  •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어진다
  • 물질적 축복을 받으라, 축복의 통로가 되라

하나님을 부르면서도 동시에 다른 주인도 붙드는 신앙이다.

  • 여호와 + 바알
  • 하나님 + 세상 맘몬
  • 은혜 + 자기 안전과 자기 행복
  • 복음 + 세상 성공을 동시에 붙드는 신앙이다.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아니라, ‘만사 형통’ ‘ 물질 축복’, ‘기도 응답’, 머리가 되는 성공이다. 이와 같은 목적과 언어들의 중심에는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을 찾아 볼수가 없다.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 십자가를 드러내는 겸손과 순종의 믿음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욕망을 채우는데 있다. 

3) 열매 없는 풍성함: 잎은 무성하나 결실은 없는 신앙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신앙적이다. 헌금과 십일조를 지키고, 봉사와 교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직분과 역할도 있다. 권면의 말이 많고, 감정적 열심과 인기도 있으며, 교회 안에서 칭찬도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는 없다. 가시떨기는 가지와 잎은 무성하나, 온전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무화과나무의 저주: 열매 없는 종교의 종말

마태복음 21:18–20, 마가복음 11:12–21에서 예수님은 잎만 풍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왜냐하면 무화과나무의 특성은 열매와 잎이 거의 동시에 나타나거나 잎이 풍성하기 전에 먼저 열매가 맺힌다. 잎이 있음에도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열매가 없음에도 열매가 있는 것처럼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아예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말라버린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제사와 성전, 율법과 조상이라는 종교적 외형은 가지고 있었으나,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였음을 보여주며, 결국은 진노임을 보여준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서 열매가 맺히지 아니하리라”( 11:14)

(4)       옥토와 가라지

13: 8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13: 23 -3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백배, 육십 ,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옥토 무엇인가?

성경은 세상과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의 상태를 죄와 죽음으로 결론을 내린다.

  • 창 3:17–18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롬 3: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인간은 전적 타락으로,  돌짝과 가시 떨기로 가득한, 본질적으로 생명을 잉태할 없는 오히려 사망에 갇힌 상태이다. 그러므로 옥토 인간의 본성에서 나올 수가 없다. 옥토란,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가꾸심의 결과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옥토 선하고 거짓이 없는 타고난 성품이나 마음 상태가 아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은 생명이 있는 성소가 아니라, 회칠한 무덤처럼 죽음과 더러움이 가득한 상태이며, 죄는 밖에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고 지적하셨다.

  • 마 23:27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막 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마 23:25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인간의 마음은 본래 모두 길가, 돌짝, 가시떨기밭이다는 결론이다.

십자가와 옥토: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좋은

죄로 묵은 땅은 저절로 옥토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죄와 사망 아래 죽어 있는 이다( 5:12, 2:1). 마음에는 돌과 가시와 엉겅퀴 같은 죄악이 가득하며( 7:21–23), 스스로는 결코 좋은 밭이 없으며 생명을 잉태할 능력도 없다( 3:12).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돌과 가시와 같은 마음을 제거하여 주시고, 옥토와 같은 마음을 주신다( 36:26–27). 반드시 갈아 엎어짐, 깨짐, 뒤집힘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죄로 묵은 굳은 땅이 회개로 부셔지고,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난 마음이 바로 옥토이다.  

  • 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 고후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 요일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인간의 결단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주어지는 거듭남으로 옥토가 것이며, 이는 은혜로 주시는 선물:

  •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단지 죄를 덮어두신 사건이 아니라, 그분의 피로 우리를 실제로 깨끗하게 하셨고(히 9:14), 성령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고후 5:17) 열매를 맺는 옥토가  것이다. 우리의 행위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하나님 앞에 의롭다 칭함을 받아 옥토가 되었다(롬 3:24, 5:19). 본래 돌과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하던 우리의 마음이 옥토로 변화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영을 우리 안에 두셨기 때문이다( 36:26–27).

옥토는완전한 아니라, 은혜를 붙드는 땅이다

첫째:  예수님은 마태복음 13:23–30절을 통해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을 분명히 말씀하여 주신다. 옥토 안에도 여전히 가라지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마 13: 25-30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는 성도의 속에서 '원수가 뿌린 가라지'로 인하여, 연약함과 , 시험과 절망, 사단의 유혹과 영적 싸움이 동반됨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 거듭난 성도라할지라도 안에 법이 공존함으로(롬 7:21), 치열한 영적 싸움을 겪게 되며, 죄와의 대결에서 육신이 죄의 법에 굴복하는 패배와 실망 경험하게 됨을 제시한다(롬 7:23-24). 하나님은 이를 즉각 제거하지 않으시고,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당신의 주권과 은혜와 사랑으로 성도를 끝까지 붙들어 가시며( 41:10). 결국 성도를 지키는 힘은 자기 의지나 영적 성취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이며 끝까지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체험하며 깨달게 하신다.

좋은 , 옥토는 가라지와 싸우는 현실 속에서, 말씀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은혜에 매달림으로 결국 믿음의 열매를 맺는 땅이다. 옥토의 생명은 지속적인 믿음으로 증명된다. 넘어져도 돌아오고, 흔들려도 다시 말씀으로 향한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알곡은 가라지와 함께 자라면서도 끝까지 생명을 붙든 자들이다. “인자가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18:8). 그리하여 예수님은 옥토의 결실을 백배에서 삼십 배로 점점 낮추어 말씀하신다(마 13:23)이는 인간의 열심이나 성취가 아니라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키는 자가 참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다. 한마디로 옥토는 죄가 없는 완전한 땅이 아니라, 날마다 은혜를 붙들며 말씀과 성령의 인도에 의해 살아가는 땅이다. 

둘째:  성도는 옥토로 가꾸어지는 과정 속에서 날마다 자기 부인의 십자가 길로 이끌림을 받는다( 9:23). 길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를 붙들고 이끌어 가시는 길이다. 성화는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성도를 감싸고 끝까지 당신의 나라로 데려가시는 하나님의 열심이다. 과정 속에서 성도는 점차 사도 바울의 고백 위에 정착하게 된다.

  • 고전 15: 9-10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빌 1: 20-21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이 자신을 “죄인의 괴수”(딤전 1:15), “만삭되지 못하여 자”(고전 15:8) 부른 것은, 은혜로만 존재하는 자신의 실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바울이 사도로 쓰임받을 있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주권적인 은혜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생과 사를 모두 내려놓고, 살든지 죽든지 오직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고 담대히 고백할 있었다( 1:2021). 그러므로 옥토로 살아간다는 것은 높은데로 올라가는 신앙인이 아니라, 날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은혜로만 사는 자리로 내려가는 것임을 바울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결론:

1). 인간의 본래 상태 : 인간은 돌과 가시와 엉겅퀴로 가득한 자체이며, 죄와 사망 아래 죽어 있는 존재이다( 5:12, 2:1). 마음은 악으로 가득 있고( 15:19), 스스로는 결코 옥토가 없다( 3:12).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 17:9).

2). 옥토가 이유 :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의 밀알로 죽으심으로, 돌과 가시와 엉겅퀴와 같은 죄의 저주가 제거되고 옥토로 화해되었다. 십자가와 성령의 창조로만 생명이 잉태된다( 36:26, 고전 15:3–4, 12:24).

3).  생명의 근원 : 생명은 밭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14:6). 성도는 무엇을 해내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열심을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가는 존재이다(고전 15:10, 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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