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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2:6-7)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교훈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6. 10. 9. 23:51골 2:6-7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1–5에서, 바울은 자신이 골로새 성도들을 향하여 얼마나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위해 얼마나 힘써 수고하고 있는지를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다(2:1). 직접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며,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도록 영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힘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2:2)라고 말씀한다.
6-7절 —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바울은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있다”(2:3)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교묘한 말에 속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6절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계속 자라 가라”는 삶 속에서의 열매를 말씀한다.
(1)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바울은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나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받았다. “주”라는 말씀은 이제 나의 삶의 주권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나는 그분에게 속한 자라는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는 그분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의미한다. 이제부터 나의 삶의 주권과 방향을 그리스도께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의 뜻을 추구하며 옛사람의 풍속과 습성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의 새로운 삶을 주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은 나의 주인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제 그분과 하나로 “더불어 먹는” 삶을 살아가게 됨을 "그 안에서 행하라"고 말하며, 이에 대하여 주님은 친히 말씀하여 주신다:
-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성도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과 고통의 가운데서, 선택의 순간에까지,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그분이 간섭하시고 주관하시는 통치속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받는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세움을 받아 말씀을 통하여 믿음에 굳게 서라"(2:6-7)고 그리스도와 지속적인 교제를 말씀한다.
(2) “그 안에서 행하라”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가 되시는 분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즉, 삶의 중심과 방향이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졌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가 주관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삶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살며,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리스도의 뜻을 구하는 그분께 순종하는 삶이다. 성도의 삶의 중심은 더 이상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가 아니다. 그분의 은혜와 사랑 안에 거하며 그분이 인도하는 삶에 나 자신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자기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다윗은 여호와께 오직 한 가지 일만을 구한다고 고백하였다:
-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 27:4). ▶ 성도의 가장 깊은 소망은 세상의 무엇을 더 많이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동행을 구하는 것이다.
(3)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바울은 계속해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말씀한다. 뿌리는 식물의 생명을 붙들어 주는 근원이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믿음과 소망의 근거를 그리스도께 두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공급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며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떠나지 말고, 그리스도 밖에서 다른 거짓된 가르침과 속이는 말에 넘어가지 말며, 오직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풍성하고 충만하신 그리스도 안에 너의 신앙의 뿌리를 내려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면한다. 그 이유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다”(2:3)이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과 의존관계를 설명하여 주신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5-6).
가지는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가지의 생명과 열매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성도 역시 자기 자신 안에서 생명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다. 성도의 생명은 그리스도께 근거하며,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 유지되고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여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 붙어 있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붙들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갈라디아서 2:20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 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다”는 삶의 실제적인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보여준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 받은 자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그리스도께 속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나의 원함으로 살아가던 옛 삶의 지배가 끝나고,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께 속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므로 현재의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분께 속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여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라”는 성도의 새 삶의 방향이다.
7절 —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한 후, 7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의 믿음이 무엇을 기준으로 세워져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 기준은 사람의 생각이나 인간의 지혜가 아니다. 막연한 영적 체험이나 특별한 경험도 아니며, 은사나 기적이나 인간의 행위나 노력이나 열심도 아니다.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즉,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미 받은 진리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말씀이다.
7절 — "교훈을 받은 대로" — 성도가 "받은 교훈"은 무엇인가?
이는 골로새 성도들이 사도들을 통하여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가르침이다. 바울은 이미 1장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일꾼이며(1:25), 복음을 전하는 자라고 밝힌다. 그리고 2장에서는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선포한다(2:3).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교훈을 받은 대로”란, 그리스도에 관하여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진리이며, 그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아 믿음을 굳게 세우라고 말씀한다: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오늘 우리에게 이 사도적 복음의 가르침은 성경을 통하여 기록되고 보존되어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듣고, 배우며, 깨닫고, 그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아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신다:
-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1).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요 1:1–4에서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생명이심을 증거한다: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 14:6)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영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시는 능력임을 성경은 증거한다:
-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시 119:50)
-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시 119:93)
(2). 말씀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한 양식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신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육체의 생명을 위해 날마다 음식이 필요하듯이, 성도의 참된 생명과 믿음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어야함을 주기도문에서도 확실하게 말씀하여 주신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성도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고,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말씀으로 구원 받고, 말씀으로 복음을 깨닫아 믿음이 세워지고,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말씀으로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일어나고, 말씀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순종을 배우며,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세움을 받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하신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그 말씀 앞에 서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고 드러내며,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진리 앞에 세우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점검 받게 하심을 증언한다.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세워감을 증거한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4). 믿음은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세워진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즉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계시하셨고,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믿으며,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굳게 서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계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믿음은 다시 말씀을 매일 일용할 양심으로 먹음으로 그리스도를 더욱 깊이 알고,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더욱 굳게 세워진다.
이와 같이 성도의 믿음은 그리스도와 말씀에서 분리될 수 없다. 말씀을 떠나면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믿음이 인간의 생각이나 경험에 의해 왜곡됨으로, 바울은 이어지는 8절에서 엄중하게 경고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8).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거짓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에서 멀어지면, 그럴듯하고 지혜롭게 들리는 사람의 말에 미혹되어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어려워진다. 즉 말씀은 우리를 가르치고, 잘못된 것을 책망하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며, 바른 길로 세우고, 분별력을 주시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교육한다.
7절 —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7)고 말씀한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말씀의 교훈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의 삶에서는 감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다. 왜냐하면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 15:10), 즉 감사와 기쁨의 근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정확히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셔서 나와 함께하시며, 그분 안에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는 사실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을 자기 힘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다.이를 깊이 체험한 바울은 자신의 여러 서신에서 성도들에게 감사와 기쁨을 반복하여 권면한다.
- “항상 기뻐하라.”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바울의 삶에서 이 원리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경에서 가장 험난한 환난과 고난의 삶을 살아낸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수많은 고난과 핍박을 경험했다. 그는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받은 수고와 매맞음과 감옥과 위험과 굶주림과 수고를 매우 구체적으로 증언한다(고후 11:23–28).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 8:36).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런 삶을 살아낸 바울이 성도들에게 계속하여 권면한 말씀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이다.
바울에게 기쁨과 감사는,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붙드시고 계신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고백이었다. 고난이 없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그 고난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붙드심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그러므로 감사와 기쁨의 근원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이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한 성도에게서만 나오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감사이다.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의 모든 것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감사와 기쁨의 근거는 환경이나 조건이나 세상적인 형통함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가 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영광의 소망을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편)
다윗의 고백은 평안과 형통한 환경과 상황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위에 오르기까지 무려 십 년이 넘는 오랜 세월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다. 광야에서 생명의 위협을 겪었으며, 수많은 전쟁을 치렀고,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다니는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비록 그의 삶에는 두려움과 고난과 눈물이 끊이지 않았지만, 다윗의 시편에는 고난을 토로하는 탄식보다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와 신뢰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다윗의 시편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구절이 무려 77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함께하시며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기”때문이다. 그리하여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다윗에게 하나님 자신이 그의 힘이시고, 피난처이시며, 생명의 근원이셨기 때문에, 환경이 흔들려도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과 소망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윗이 하나님을 자신의 반석과 피난처로 고백한 것처럼,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낼수 없다고(롬 8:35-39)고 확신으로 선언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서신에서 48번이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에게 반복하여 "감사하라"고 권면했다. 이처럼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근거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내 환경은 변할 수 있고, 내가 의지하던 것들은 사라질 수 있으며, 내 삶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의 감사와 기쁨은 환경이 주는 일시적인 만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은혜와 영원한 소망에서 흘러나온다. 이것이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이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주님이시다.” 이 고백이 성도의 감사와 기쁨의 근원이다.
둘째: 나는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서 건져 주셨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며, 하나님을 몰랐고 찾지도 않았고, 저주와 사망에 놓여 있던 자들이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거름더미, 진토, 티끌, 메뚜기, 짐승, 초개와 같은 패역한 존재(삼상 2:8, 말 4:1, 사 40:15-17, 22-24;시 49:20, 시 113:7)임을 말씀한다. 흙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전적 타락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무익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적 실체에 대하여 확실히 말해준다:
-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이다”(사 48:8).
인간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이 부패하며”(렘 17:9), 무지하고 이기적이며, 오로지 탐심의 배를 채우기 위해 온갖 악을 도모하며 찾고 행하고 즐기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임을 성경은 끊임없이 보여준다. 인간의 죄성을 뼈저리게 파악한 바울은 모든 인간은 근본 마음의 뿌리가 심히 거짓되고 부패하고 악함으로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행위는 하나도 없다고 선언한다:
-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롬 3:13-16, 사 59:3-7)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 10-12).
인간의 본성은 더럽고 강퍅하며 자아에 굶주려 있다. 진리를 거슬러 반항하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에 대적하며,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마저 살해하는 죄성을 가지고 있다. 패역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란 오직 죄악뿐이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거름더미”라 부르고, 그 거름더미에서 일부만 구원하시기로 택하셨다고(삼상 2:8)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모든 인간의 본질적 실체이다. 자신의 실체를 참으로 알고 깨닫는 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일 뿐이다. 자신의 실체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더는 자신을 내세울 수도 의지할 수도 없다. 오직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화답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참으로 알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참으로 깨달은 성도는 자신이 어디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감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으로 굳세게 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친밀한 관계로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얼마나 우리를 감싸고 있는지를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한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이와 같이 감사는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가 되시며,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흘러나옴으로, 바울은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2:7)고 말씀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은혜를 알고, 은혜를 아는 만큼 감사하며, 감사하는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며, 사랑하는 만큼 그리스도를 더욱 신뢰하는 감사가 넘치게 터져 나온다. 바울의 고백과 같이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내가 받은 모든 것이 은혜이다”(엡 2:8).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깊은 의미임을 바울의 삶에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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