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저의 블로그를 방문하여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최근 저는 토론토 성경 학습반 모임에서 창세기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을 힘써 알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성경 말씀 시작이 창세기이기에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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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는 복음의 축소판이다.
창세기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사역의 시작이며, 복음의 축소판이다. 그리하여 창세기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고 설명하기 위해 모형으로 쓰임을 받은 구별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아담과 하와, 아벨, 에녹, 노아이며, 이야기는 4 족장으로 집중되어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필연성을 설명하거나,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창세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과 관련된 사건만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성령의 계시로 읽지 않는다면, 창세기가 계시하는 무궁무진한 복음을 깨달을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 시작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그리스도를 빛으로 보내셔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필연성과 필요성, 즉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4 가지 사건을 통하여 죄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구원과 은혜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탄의 등장과 인간의 타락, 죄에 대한 홍수 심판, 바벨탑 쌓기와 흩으심.
영으로 읽는 창세기
하나님은 영이시다. 때문에 그분이 주신 성경말씀은 영에 관한 생명의 말씀이며, 인간이 배워서 취득한 혼의 지식과 추리로 육적 의지와 노력으로 알아가고 이해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고 하였다. 인간은 육을 입은 피조물이기에 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육의 한정된 지성과 혼적인 이해로서는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의 사정은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리라”(고전 2:11). 이 세상 땅의 유한한 지식으로는 무한한 창조주 하나님과 하늘나라를 온전히 알 수가 없다. 오직 성령님이 나에게 영성을 열어주심으로 내 영이 하나님을 알며, 그분이 내 아버지가 되심을 인지하게 되며, ‘하나님은 나를 낳으신 아버지이시다’ 라고 성령님이 친히 내 마음에 확증해 주시고 인처 주신다. 이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영적 계시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 하시느니라”(고전 2:10) 라고 말씀한다. 예를 들면:
모세는 우주창조 때 태어난 것도, 하나님의 창조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계시로 5000 여년 전에 영원으로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태초로부터 시작되는 천지창조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하늘나라의 영원한 실상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모형과 그림자로(히 8:5) 물질세계가 창조됨을 모세는 영으로 보았고, 그 물질세계의 태초와 창조를 한마디로 요약하여 선언한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사도 요한은 성령의 계시를 받아 영원으로부터(태초로부터) 예수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영원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음을 보았고, ‘말씀’으로 말미암아 천지가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심을 증거한다. 창 1:1-3, 10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사도 바울은 성령의 계시로 우주 창조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자녀로 택하심을 보았고, 우리의 영이 창세전에 이미 예수그리스도 생명 안에 있었음을 보았다. 엡 1:4-5 :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영의 계시를 받은 영의 사람은 육을 초월하여 영의 차원에서 복음의 신령한 비밀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라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를 읽을 때, 우리의 차원에서 인식하는 주관적 의식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시각에서 영의 계시와 말씀 속에서 그분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여 주시는 속성과 본질과 성품과 인격을 알아가며, 우리에게 향하신 사랑의 마음을 깨닫는 동시에 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고 왜 나는 그분을 떠나서는 한줌의 흙에 불과한 ‘없음’의 존재인가를 깨닫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서 계시되는 분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계시하면서도 자신의 존귀한 영의 신성을 감추시며,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기에 만물을 독립적으로 창조하시고 주관하신다. 동시에 그분은 또한 인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분의 마음을 알고 체험할 수 있도록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시며, 성령의 계시를 우리 마음에 두셨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5).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고전 2: 11,13).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신다
창세기는 모든 성경의 시작이며, 하나님은 천지창조를 통하여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성을 선포하신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라는 시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며, "천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선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여 주심으로 인간은 비로소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점진적으로 알아가게 되며 그 시작이 바로 창세기이다. 창세기에서 계시하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우리에게 향한 섭리와 뜻을 구체적으로 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1). 하나님은 영이시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고전 2:10-11: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딤전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여 주신 것과 같이,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실체는 영이시며, 어떤 종류의 육체를 가지셨거나,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4)라고 명하셨다. 이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의 형상을 이 땅의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꾸거나’(롬 1:23) 만든다는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신 속성에 대한 침해이며, 하나님의 영의 형상에 대한 모독과 왜곡이며, 영이신 하나님을 물질적 형상으로 끌어내리려는 망령된 짓이며, 교만이며, 어리석음이며, 무지함이며, 거짓이며, 악이다.
(2). 하나님은 무한히 영원하시며 완전하시다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무한한 완전성으로 영광과 존귀로 모든 피조물들과 구분되시는 창조주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이 가능하신 만물의 근원이시며 생명 자체이시기에 자신 안에서 자신의 존재의 기반을 가지시며, 자신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시지 않으시는 또한 그럴 필요가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때문에 그분은 그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주에서 제한을 받거나 우주 안에 국한되지 않으시는 원인이 없이 스스로 있으시며, 모든 곳에, 모든 시간 속에 계시는 완전하신 분이시다. 이사야 40:28 "너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 이다" 왕상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3).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인격적인 분이시다
하나님은 피조물과 구별된 존귀하시며 거룩하시며 영광 그자체이시며, 긍휼과 자비와 온유와 인내와 용서로 사랑이 충만하신 지적이시며 도덕적인 분이시다. 그리하여 그분은 우리 인간 생활 속에 들어오셔서 자신을 “아버지”로 또는 “남편”으로 나타내셔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심을 보여주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무한한 능력으로, 섬세한 간섭과 배려로 보살펴주시고 인도하시고 굳게 지켜주시며, 한량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다윗은 찬양하고 있다.
시 139:1-10: 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2.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3.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5.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4).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사랑이시기에 사랑으로 현현하신다. 타락한 인간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셔서 사랑의 띠로 묶으셔서 우리와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는 화목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우리 죄인에게 내어주셨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인간의 육체를 입고 내려오신 하나님이시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첫째,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믿음으로 읽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믿음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는 서론도, 설명도, 변명도, 논리의 전개도, 설득도 없는 절대적인 진리의 선포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며 무한하시며 영원하시며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선하심과 진실하심이 불변하신 유일한 분이시기에, 피조물의 증거나 또한 그럴 필요가 전혀 없으신 창조주이시다. 인간이 아무리 무엇인가를 만들어 낸다고 하여도 생명만은 만들어 낼 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도,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 만물을 매일 눈앞에 생생하게 보고 있음에도, 하나님이 주신 숨을 쉬면서 은혜로 모든 창조물을 누리고 있음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존재성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의심하거나 판단하거나 논증하거나 거부한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자신을 조성하신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분의 창조를 거부한다하여도, 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만물을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며, 또한 심판하시며, 소멸하시며, 심으시며, 세우시는 독립적 주권으로 역사를 이끌고 가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시작과 끝이 없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심을 선포하신다.
출 3:14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라고 선언하신다.
렘 32:27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시 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행17:24-26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히7:3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서도 이르기를,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와 같이 시작이 없이 스스로 계신 영원하신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태초”라는 시간을 만 드셔서 시간 속에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태초”라고 선포한다. 즉 천지창조의 기원과 만물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는 절대적 진리의 선포이다. 하나님은 천지창조(6일의 창조)를 ‘하나님 자신의 보시기에 좋은,’ 완전하시고 완벽하게 만들어 놓으시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여 안식일에 들어가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보시기에 좋게" 완벽하게 창조하신 세상을 누리게 하셨다. 인간은 우주의 기원이나 세상의 시작이나, 창조를 본 적도, 참예한 적도 없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만들어 주신 물질세계를 누리는 대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진리를 믿으면 창세기 전부가 복음으로 열린다. 우주만물의 근원과 창조의 기원은 하나님이시며, 나는 아무것도 한건 없이 눈을 뜨자 천지만물이 이미 창조되어 내 눈 앞에 있었고, 나를 어머니의 뱃속에서 친히 눈, 코, 입, 귀, 팔, 다리, 오장육부를 그렇게도 완벽하게 조성하여 주시고 태어나게 하여 주셨기에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눈을 뜨자 나를 기르시는 부모가 있었고, 오직 은혜로 이 자연의 신비와 물질을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둘째, 창세기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증거하며 신학적으로 연구하며 고구학적으로 발구하여 증명하려는 모든 시도를 배제하는 선포이며 선언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천지창조를 보지도 않았고 참예하지도 않은 피조 된 인간이 어찌 무한하신 창조주를 판단하며 논쟁할 수가 있겠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시도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절대로 피조물인 인간에게 포착되어 해석되고 설명되고 증명되어 설득되고 인정되는 대상이 아니시다. 피조물은 창조주를 분석할 수도 인식할 수도 없다. 인간에게 입증 될 수도 또한 그런 필요도 없으신 만물을 초월하여 스스로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심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읽는 것이다.
셋째, 인간은 흙으로 지음을 받은 천한 지성과 지혜와 힘을 다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무한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분의 목적과 의도를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에게 인간 자신이 거처하는 지구 외에 하늘나라의 영역을 볼 수도 알 수도 없도록 제한하셨다. 극히 한정된 지식이기에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서도 알지 못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하여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없는 무지함 그 자체이다. 한줌의 티 끝에 불과한 존재가 어떻게 우주 만물을 해석할 수가 있으며, 어떻게 만물의 근원이시며 생명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 수가 있어서 함부로 판단하며 논쟁할 수가 있단 말인가!
롬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묘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 지어다”
렘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의 하는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사 64:8 여오화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를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넷째,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모든 곳에, 모든 시간에, 또한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여 계시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하늘나라에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시는 목적으로 “태초”라는 시간을 만드시고 시간 속에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천지창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심중하게, 세심하게, 아주 구체적으로, 영원히 변치 않는 성품을 따라 완전하게 완벽하게 단 한 번의 창조로 완성하셨다. 때문에 중도에서 멈추거나,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빼거나, 보탬이 없이, 오늘도 내일도 동일하게 창조원리의 법칙으로 운행되고 있다. 성경은 그 완벽하신 영원하신 실수 없으신, 점도 흠도 없으신, 공정하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을, 내 눈앞에 펼쳐진 천지만물을 통하여, 믿으라고 선포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래서 사도신경 첫 신앙고백이 바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니” 이다. 천지창조와 이 역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의도하시고 정하신 뜻이며, 그 하늘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묵시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의 시작으로 우리 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것이다. 즉 하늘의 묵시가 이 땅에 역사로 펼쳐진 것이다. 그리하여 창세기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요한 계시록에서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의 미래를 기록한, 즉 과거, 현재, 미래가 보장된 성경이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주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창세기에서 벌거벗은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요한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늘나라 영생을 사는 아들이 되었는지를 시작부터 미래의 완성까지 하나님은 말씀으로 보장하여 주신다. 창2:24~25 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찌로다 25 아담과 그 나내 두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24절에서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담은 인류의 최초 인간이기에 부모가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부모’ 라고 말하는 것은 하늘 아버지를 (부모) 떠나 이 땅에 내려오셔서 신부인 교회와 성도와 혼인을 하셔서 하나로 연합이 되시는 신랑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25절에서 벌거벗은 신부, 교회가 요한 계시록에서는 깨끗한 세마포 즉 어린양 예수의 옷을 입고 있고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와 혼인하여 한 몸을 이룬 하나님 자녀의 거룩한 완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계 19: 7~9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이와 같이 창세기에서 타락한 인간이 요한계시록에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신부로 완성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장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확신이며 언약이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히 11:6).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계획과 목적에 따라 역사를 시작하셨고, 진행하셨으며, 반드시 성취하시는 미래의 소망까지 완벽하게 완전하게 언약으로 기록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 세상 그 어떤 책에도 미래를 예측하거나 미래를 약속하는 기록은 없다.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창세기 시작부터 미래 요한 계시록 완성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언약으로 묶어놓으심으로 그분의 영원한 불변성과 신실하심과 우리에게 향한 영원한 사랑을 완전하게 나타내셨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사 하늘나라 모든 신령한 복을 쏟아부으시는 나의 미래가 보장된 하늘나라 영생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함께 창세기를 마음으로 읽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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