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4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3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4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의 신, 생명의 빛 (성령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생명이 없는 캄캄한 죽음으로 덮여 있을 때, 하나님의 신, 즉 성령 하나님께서 마치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땅에 있는 자기 새끼를 덮고 품는 뜻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을 품으시는 은혜와 사랑 안에서 생명의 창조가 말씀과 빛으로 시작된다. 사도 요한은 생명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다고 증언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3-4).
이와 같이 천지 창조는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시작하셨음을 계시한다. 즉 하나님의 영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인 땅을 품어주시는 은혜로 임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임하자 죽어 있었던 땅이 비로소 생명을 가지게 된다. 그 빛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본체이시며 생명이시며 진리 이심을 계시하여, 아직 창조가 일어나기 전에, 태양 발광체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영이 먼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을 품어주시는 은혜의 덮음과 빛의 임재로 천지가 그분의 말씀으로 살아난 것이다. 그 빛이 곧 예수님 자신이심을 선언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 8:12). 사도 요한은 그 빛이 곧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요 1: 3-5, 9-10), 이 세상은 ‘어둠’이며, 빛이 어둠을 비추고 있음에도 어둠이 빛을 깨닫지 못한다고 증거한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 3-5).
만물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빛이 이 땅에 임하자 어두움이 드러나고 그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고, 빛을 ‘낮’이라 칭하셨다. 사도 요한은 그 ‘빛’이 바로 만물을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 ‘어둠’이 바로 세상이며 인간의 마음 상태임을 증거한다.
요 1:1 -10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이와 같이 사도 요한은 복음의 서두를 창세기 첫 서두인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동일한 구조로 시작한다. 요한이 말하는 “태초”는 창조의 태초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천지가 창조되기 전, 영원 속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태초를 말하며,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하시게 시작과 끝이 없으신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증거한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태초’는 영원 전부터 하늘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루어 놓으신 하늘나라의 ‘묵시’이며, 그 묵시의 말씀이 이 땅에 펼쳐졌음을 강조하여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라고 증거한다. 그러므로 천지는 하나님의 구원사, 곧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역사이기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해 창조되고, 존재하고, 움직이고 있으며, 이 역사의 주권자는 예수그리스도이심을 강력하게 증거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라고 만물의 근원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으며, 우리와 함께 계셔서 각 사람의 어둠을 비추어주시는 빛이심을 선포한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요 1:9-10).
사도 바울이 증거하기를,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을 만물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을 지으셨습니다”(히1:2).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마 11:27),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며”(마 28:16),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요 5:22).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권세가 바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는”(요 3:36) 영생과 심판에 관한 권세라고 선언하신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증거하는 “태초”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빛으로 보내셔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과 동일하게, 육신을 입혀서 보이는 빛으로 보이는 말씀으로 ‘인자’로 이 세상에 보내 주셨으며, 이는 창세전 영원 속에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묵시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여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고 증거한다.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내려오셔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뿐인 죄인들 마음에 “각자에게 비추는 빛으로”(요 1:10) 직접 뚫고 들어오셔서 빛과 말씀으로 ‘혼돈’된 인간의 마음에 진리와 믿음을, ‘공허’한 마음에 은혜와 생명의 말씀을, ‘흑암’에 빛이 들어와 생명으로 살려내는 구원사역이 시작하였다고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를 창세기 서두와 같은 문맥으로 시작한 것이다. 즉 창세기 천지창조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임을 증거한다. 예수그리스도를 빛으로 보내주셔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인간의 육신을 입혀서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를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주신다는 복음의 선포이다. 만물을 빛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본체가 바로 성육신으로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그리스도이심을 요한이 복음서 첫 서두에서 증거하고 있다.
빛이 임하자 분리와 구별, 틀과 질서가 세워졌다
천지창조는 빛으로 시작하여 그 빛이 곧 생명이요 진리임을 드러내기 위해 나눔이라는 분리로 창조를 시작하신다.
창 1:4-8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를 빛으로 시작하신다. 그 빛은 태양 발광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체이신 생명의 빛이심을 계시한다. 빛이 있어야 생명이 시작되고, 모든 물체가 질서를 잡게 되고,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됨으로 정리가 된다. ‘공허와 혼돈과 흑암’에 빛이 내려오자 분리와 틀과 질서가 잡힌 것이다. 성경은 빛을 말씀이라 하시고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한다(요 1장, 8:12). ‘빛’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혼돈’을 주셨으며, ‘은혜’의 충만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공허’를 주셨으며, ‘영원한 생명’을 설명하시기 위해 먼저 ‘흑암’이라는 죽음의 상태를 있게 하셨다. 그리하여 빛이 임하자 먼저 틀과 질서가 세워지는 구별과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낮과 밤을 분리하여 빛과 어둠의 세계를 정하셨으며, 하늘과 땅을 분리하심으로 끝없는 위의 하늘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고, 끝이 닿는 아래의 땅을 인간의 거처로 정하심으로 처음부터 하늘나라와 이 세상을 분리하셨다. 그리고 장차 빛에 속한 자녀는 하늘나라로 들림을 받게 되고, 어둠에 속한 자들은 이 어둠의 지옥에 남겨지게 될 것임을 첫 창조에서 계시하셨다.
분리하시고 틀과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뒤덮인 땅을 정돈하시고 틀과 질서를 세우시는데 그 시작이 바로 나뉨과 분리였다. 첫 번째 하신 일은 빛과 어둠의 분리였다. 빛을 낮으로, 어둠을 밤으로 나누셔서 빛과 어둠이 한 공간에서 공존할 수 없도록 법칙을 세우셨다. 이는 빛에 속한 자녀와 어둠에 속한 자들은 반드시 거룩으로 분리되며 절대로 섞어 살 수 없다는 것을 계시한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는 하늘과 땅을 분리하심으로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하나님의 발판’(사 66:1)으로 정하심으로 천지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심을 계시한다. 즉 당신의 나라를 머리 윗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 두시고, 인간의 거처는 하나님의 발판인 땅으로 정하셨다. 그리고 바다와 육지를 가르심으로 죄인과 세상에 대한 물의 심판(노아 홍수 심판)과 구원받은 성도에게 장차 주어지는 새 땅을 계시록에서 제시하셨다. 즉 이 세상에 속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완전히 삭제되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충만한 하늘나라로 회복됨을 기록하고 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계 21: 23).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1-4). 그 빛의 대척점에 있는 어두움과 타락한 피조 세계는 이제 그 빛에 의해 심판의 과정을 겪게 되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충만한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기록하고 있다.
첫째 날: 빛과 어둠의 나눔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분리와 구별에서 시작된다. 만물을 서로 반대되는 두 영역으로 나뉘시고, 창조하셔서 서로 상대적이지만 조화와 일치를 이루시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전지하신 창조의 능력과 영광과 섭리를 만물을 통하여 나타내셨다. 먼저 빛과 어둠을 분리시키시고, 낮과 밤을 분리시키시고, 하늘과 땅을 분리시키시고, 바다와 육지를 분리시키시고, 서로 반대로 반응하며 영향을 주며 의존하며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데 목적을 두셨다. 그리고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의로우시며, 선이시며, 영광의 빛과 생명의 소유자 이심을 드려내시기 위해, 사단을 들어 쓰셔서 잠시 ‘흑암과 죽음’의 권세로 이 세상을 잡게 하셨다. 사단이라는 존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악역으로 쓰임을 받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만 움직이는 이용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과 뜻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며, 자신의 거룩하심과 의와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처음부터 당신에게 속한 자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심을 첫 창조에서 계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공존하게 하셨고, 바다와 육지를 공존하게 하셨다. 하지만 유독 첫째 날 나누신 빛과 어둠, 낮과 밤은 철저히 분리하시고 공존할 수 없게 하셨다. 아직 태양과 달의 발광체가 창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낮과 밤, 빛과 어둠을 분리하시고 구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며, 이 세상 악을 상징하는 어둠과 공존하실 수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시며, 그러므로 오직 당신의 영광의 빛만 있고 어둠이나 밤이 없고 해나 달의 비침이 없는 영원한 빛의 나라로 완성됨을 계시록에서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계 21: 23-25).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릴 것입니다”(계 22:5 새번역).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빛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태양의 빛 아래 있어도 그 영적 상태는 칡 흙 같은 어둠이다. 예수그리스도 빛 안에 거하는 자는 이 세상 어둠에서 나왔기 때문에 “너희는 빛이다"라고 예수님은 선언하신다.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빛이기에 어둠과 공존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만일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되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으므로 걸려 넘어지느니라”(요 11:9,10). “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요 12:46). 즉 예수그리스도는 생명의 빛이시며, 때문에 빛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어둠의 세력 안에 있는 죽은 존재임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 6:14-16)라고 빛에 속한 자들은 이 세상 어둠과 분리된 빛으로 사는 자이며, 하지만 세상과 뒤엉켜 밤으로 살면 곧 멸망임을 제시한다.
둘째 날 : 궁창(하늘), 궁창 위의 물, 궁창 아래의 물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온통 물로 뒤덮인 혼돈의 상태를 윗 물층과 아래 물층으로 분리하시고, 그 중간에 ‘궁창’ 즉 하늘을 만드셨다. 그렇게 지구는 본래 윗물의 대기권이 있음으로 하여 물의 장벽이 태양 광선을 막아주는 역할과 충분한 수분과 정화로, 그때 당시 사람들의 수명은 500년- 900 년까지 노화가 없이 오래 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죄악이 세상을 오염시킴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대기권 위에 있었던 물의 장벽을 무너뜨려 40일 동안 땅에 쏟아지게 하심으로(창 7:17) 이 땅의 모든 생명을 홍수로 쓸어버리셨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전에,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여”(창 6:5) 탐심과 정욕과 욕망으로 육체가 원하는 온갖 죄악들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사람을 떠남으로 그들에게 심판이 내려짐을 미리 말씀하여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이 사람을 떠난 상태를 “육체”라고 말씀하시면서 육체의 수명을 120년으로 선언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하나님은 인간에게 그렇게도 자상하게 아름답게 보호하는 세심한 배려로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천지를 창조하여 주셔서 오래도록 누리기를 원하셨다. 다만 인간이 끊임없이 죄를 범함으로 스스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 주신 그 많은 복들을 파괴한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님은 노아와 같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의인’을 이 세상 ‘육체’와 분리시키시고 구별하여 구원하셔서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신다.
셋째 날 : 땅이라는 공간을 만드시고 그 땅에 식물을 있게 하신다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셋째 날에 온통 물로 뒤덮인 지구에 물을 한곳에 모아 묶어 놓고 바다라 하시고 땅을 솟게 만드셔서 땅과 바다를 갈리셨다. 하나님께서 바다의 물을 한곳에 묶어놓으시고 넘어오지 않도록 한계를 정하여 명령하심으로 오늘날까지 그 명령을 준행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누신 땅과 바다는 한 치 오차 없이 자기 위치를 지키고 있다. “바닷물이 태에서 나옴 같이 넘쳐흐를 때에 문으로 그것을 막은 자가 누구냐 그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의복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계한을 정하여 문과 빗장을 베풀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찌니라 하였었노라”(욥 38:8-11).
물과 바다, 땅이 담고 있는 영적 의미
성경에서 ‘뭍‘과 ’바다‘는 세례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은 노아 한 식구만 구원하시고 온 인류는 물로 심판하셨다. 그리고 출 애굽 후 직면한 홍해 바다에서 이스라엘은 둘로 쪼개진 홍해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애급 군대는 홍해 바다가 닫침으로 침몰당하는 심판을 받았다. 이와 같이 똑같은 물과 바다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모든 죄가 물과 바다에 던져지는 옛 죄인이 죽는 세례와 새사람으로 다시 살아 올라오는 구원이 되지만,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된 이 세상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과 멸망이 됨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 10:2)라고 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 계시록에서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완성을 바다가 물러가고 처음 창조된 하늘과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짐을 기록하고 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1).
좀 더 구체적으로 홍해와 요단강 건너는 사건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바다 물을 쪼개주심으로 물이 전혀 없는 “마른 땅”을 건넜다고 강조한다.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출 14:21).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입어서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건너간 것이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수 3:17). 홍해는 “마른 땅이 된” 것을 은혜로 걸어간 것이지만, 요단강은 이스라엘이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하여 여호수아 즉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마른 땅으로 행하여”, 즉 요단강이 아직 열리지도 않았고 강물이 흐르고 있을 때 ‘걸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발을 요단강에 담그는 믿음의 행함으로 요단강이 갈린 것이다.
바다를 마른 땅으로 걸어가는 사건은 이스라엘이 저주의 바다와 함께 옛사람 죄인이 죽는 세례를 거쳐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받아 ‘마른 땅’ 즉 새 땅으로 솟아 나오는 새 창조를 의미한다. 신약 요한복음에서, 저주의 바다에서 죽어야 할 죄인을 대신하여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물세례를 받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이 되어 저주의 물에서 죽으시고, 다시 우리를 품고 부활하여 주심으로 새 생명을 얻었음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죄인에게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이 땅에서 일어나게 하심으로 이 땅의 육신에 속한 자들의 종말을 확실히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태양이 아직 창조되기 전에, 인간이 있기 전에, 이 땅에 먼저 인간을 위한 모든 식물을 준비하여 주셨다
아직 태양을 만드시기 전에 생명을 나타내는 식물을 먼저 있게 하심으로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주관이심을 나타내셨다. 땅에 짐승들이 먹는 풀과 인간의 먹거리인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들을 땅에 뿌리를 박게 하셨다(창 1:11-12). 과학적으로는 태양의 광선이 있어야 식물이 자란다고 증명하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주관하시는 생명 자체이시기에 태양 발광체와 상관없이 인간과 동물을 위해 모든 식물들에게 생명을 주셔서 공허한 땅을 생명으로 채우셨다. 첫째 날 창조에서 임재한 빛은 태양빛과 같은 발광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인 생명의 빛이라는 것을 모든 식물의 탄생으로 증거하셨다. 그 빛은 만물을 소생케하는 생명의 빛임을 보여주시기 위해 아직 태양이 창조되기 전에 생명력을 상징하는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열매 맺는 과목들을 먼저 땅에 뿌리를 박게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들을 처음부터 각기 종류대로 분리하고 구별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순수성을 끝까지 유지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거룩하신 분이시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구별된 삶을 원하심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모세 오경을 통하여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섞는 것′임을 확실하게 제시하셨다. 즉 다른 종자들과 섞어져서 자신의 정체성, 본질을 희석시키는 ‘혼합’을 제일 싫어하심을 율법으로 명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과 둘째 날과 셋째 날까지 나누시고, 분리하시고, 구별하여 세우시는 질서들을 세우셨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선한 뜻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백성에게 알리고 깨닫게 하기 위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만물을 상대적으로 지으시고 합쳐서는 안 되는 것들을 분리시키시고 구별하셨다.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 빛에 속한 것과 어둠에 속한 것, 멸망할 것과 생명을 얻어야 할 것을 처음부터 나누어 분리시키시고, 하나님께서 나눈 것이 합쳐질 때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구약 전체가 너무나 확실하게 똑똑히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갈라놓으신 것은 절대 합쳐져서는 안 되며, 그것이 섞어졌을때 반드시 심판을 내리심을 이스라엘 역사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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