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7:15-26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앞서 15:19 에서, ‘너희는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미리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주님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17:16)라고 성도의 정체성을 확실히 밝히시며 그 구별된 신분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요15:19-20). 성도는 예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로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이 이 세상에서 살아내신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목적이 뚜렷한 삶으로 이끌려가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20) 라고 성도의 운명적 십자가 삶을 제시하신다. 즉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과 같이, 주님도 성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자기부인과 자기죽음의 십자가 삶과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함을 얻게 하신다고 기도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17:18),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17).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거듭난 성도는 이제 당연히 하늘에 속한 자가 됨으로, 신분이 변하였고, 소속이 변하였고, 지향하는 가치와 세계관이 다르며, 인생의 목적과 소망이 오직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하는 하늘나라로 완전히 바뀌게 됨으로 세상과 구별된 십자가 삶을 실제로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과 생명과 진리로 받아먹으며, 알아듣고 이해하며, 믿음으로 진리가 되어 진리를 외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17:20)라고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이 뿌린 피의 씨앗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끝까지 확장됨을 미리 제시하여 주셨다.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는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 핍박과 고난과 죽음에 던져질 것임을 주님은 미리 제자들과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셨다.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10:17-18). 주님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될 때 그 환난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없애주거나 데려가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그러한 악에서 보존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
그리면 주님은 어떻게 성도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여 주시는가?
주님은 앞서 16장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로 인하여 미움과 핍박과 출회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라고 말씀하시고,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라고 성도가 이 세상 악한 세력에게 핍박과 고난을 당할 때, 그 당하는 환난을 거두어 주시거나 환난을 피하여 세상에서 데려가신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신다. 반대로 담대하라고 말씀하시며 악에게 당하나 그 악이 성도를 삼키지 못하도록 보전하여 주신다고 기도로 약속하신다.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 10: 5-23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속에 들여보내시면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이길 방법을 제시해 주시거나 전신 무장하여 가라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반대로 모든 것을 다 해제시키고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홀몸으로 연약하고 무력한 양으로 가라고 명하신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마10:9-10).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라고 명하신 것은,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이 세상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은과 금과 같은 물질에 의존하거나 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즉 육신을 위한 이 세상 재물과 악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바로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신다”(17:15)는 약속이다. 그리고 기적과 이적의 능력을 상징하는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도용하여 너희 자신을 자랑하고 이름을 높여 세상으로부터 숭배를 얻어내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말라는 것이며, 또한 세상 사람들이 열광하는 기적과 이적들을 행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말씀만을 전하라고 말씀하신다(마10:23). “두벌 옷이나 신도 가지고 가지 말라”라고 명하신 것은, 하나님이 입혀주신 은혜의 옷 위에 세상 옷을 덧입지 말라는 것이며, 오직 주님이 입혀주신 진리의 겉옷과 주님이 신겨주신 복음의 신발만 신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곳에 머물러 성령님이 주시는 복음의 말씀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다.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 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3).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 속으로 들여보내실 때, 사자로 범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것을 다 빼앗아 버리고 목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제일 연약한 양으로 세상 속에 들여보내신다고 말씀하신다.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양이 이리 속에 들어가게 되면 당연히 이리에게 찢기고 뜯기고 잡아먹히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10:17-18)라고 미리 당하게 되는 환난을 말씀해 주셨다. 즉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을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그 삶은, 순교의 삶으로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어(마10:17)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는 순교의 삶이며, 주님이 먼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의 삶을 살아내셨으며, 이제 제자들과 사도들과 우리도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그 양의 삶을 살아가게 됨을 미리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한마디로 세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력하게 세상에서 당하는 삶으로, 잡아먹혀 죽게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세상 권세를 무력하게 하는 세상을 이기는 삶이라는 역설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먼저 양의 삶으로 이 세상 이리에게 온갖 핍박과 고난과 멸시와 조롱을 당하시고 양으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인 우리 주님은 자신의 권세와 아버지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영생을 입혀주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도 예수그리스도의 양의 삶을 본받아 세상 속에서 양으로 살기에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것”(롬 8:36)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전 1:18)고 성도가 살아가게 되는 양의 삶과 구원과 영생이 임하는 십자가 권능을 제시하고 있다.
주님은 제자들을 양으로 세상 이리 속으로 들어 보내시면서 이리에게 찢기고 죽임을 당할 때 그러한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막아 주시거나, 그 환난을 피하기 위해 즉시 세상에서 데려가신다는 약속을 하시지 않으시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것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여 주신다”고 약속 하신다. 즉 양은 끝까지 양의 자리와 양의 신분을 지켜내는 것이 순결이며, 진리에 서는 것이며, 그렇게 양의 자리를 고수하여 양으로 죽는 것이 바로 뱀처럼 지혜로운 것이라는 말씀이다. ‘뱀처럼 지혜로워라’라는 말씀은,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다시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양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도록 지켜주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제자들을 남겨두면서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라고 아버지에게 간구하신 것이다. 비록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온 인류를 저주와 죽음에 빠뜨렸지만, 이제 주님이 십자가로 사단의 권세를 이김으로 다시는 그 뱀의 꼬임에 넘어가 양의 자리를 이탈하여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여 주시겠다는 주님의 의지적 약속이다.
우리 주님이 도살당하는 어린 양으로 자신의 목숨을 세상 이리에게 내어주는 희생으로 악을 이기신 것과 같이, 성도도 주님이 주신 양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세상 이리들과 싸우기 위해 사자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양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어 양의 자리를 고수하여 세상 이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곧 악에서의 보존임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의로 인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의 삶으로 인하여, 세상에서는 미움과 핍박을 받게 되지만, 천국과 영생이 약속되어 있으며 반드시 겪어내야 하는 과정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미리 격려하여 주신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마 5:10-12).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구별된 자라는 특권으로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과 죽임을 당하게 되지만, 그것이야 말로 이 세상과 구별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며,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특권과 은총을 받은 증거라는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마5:14). 성도는 이 세상 악에 대하여 정죄하고, 이 세상의 실존이 바로 사망의 멸망이며, 이 세상 가치를 배설물로 여기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구원이라고 외치고 전파하게 됨으로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과 죽임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앞서 양의 삶을 살아내시고 그 양의 삶의 결국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셨다. 그분은 양으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라고 선포한 것이다.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 이리에게 맞고 찢기고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당하셔도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그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묵묵히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으로 세상 이리에게 능욕과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의 목자이신 그분이 먼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양으로 오셔서 양의 삶을 살아내셨기에 그분의 길을 걷게 되는 우리를 양이라 부르시며 십자가 삶을 제시하여 주신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마 10:16).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0-12).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그리면 주님이 말씀하신 악에서 보존하여 비둘기처럼 순결하며,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17:19)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주님은 제자들을 양으로 이리 속에 보내시면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똑 같은 내용으로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9)라고 성도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강조하신다. 우리는 노아 홍수의 사건에서 비둘기의 순결함을 읽을 수 있다. 홍수가 끝나갈 무렵 물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방주 안에서 노아가 첫 번째로 내어보낸 것은 까마귀였다. 그런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고 물 위를 날아 다녔다고 한다. 까마귀는 아직 먹이도 없고 발붙일 곳도 없는 창공에서 분명 죽은 시체를 뜯어먹고 살았기에 다시 노아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추악한 죄를 심판하기 위해 홍수로 쓸어버린 그 썩은 저주의 시체를 까마귀가 양식으로 먹은 것이다. 반면에 비둘기는 아직 물이 많아 정착할 곳과 양식이 없을 때 저주로 죽은 썩은 고기를 먹지 않고 다시 노아에게 돌아와 노아가 주는 깨끗한 식물을 먹으면서 자신의 삶을 노아에게 맡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둘기의 순결함이다.
그러므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은, 이 세상이 주는 썩은 고기를 먹지 말고 오직 목자가 주는 하늘의 신령한 양식인 진리의 말씀만을 먹음으로 순결함과 거룩함을 보존하라는 은유의 말씀이다. 이 세상 이리들은 죽은 시체들을 떡으로 포장하여 끝없이 먹으라고 유혹을 던지고 있다. 그때 그것을 덥석 집어먹는 까마귀가 되지 말고, 오직 목자가 주시는 진리의 말씀만 받아먹어 “진리로 거룩함을 얻으며”, 비둘기의 순결함을 지키도록 보존하여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이다. 양은 오직 목자가 인도하여 주시는 푸른 초장의 풀과 시냇물을 마셔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목자가 주는 양식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9)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성도는 비록 이리 속에서 살아가지만, 뱀의 지혜를 능가하여 다시는 양의 자리를 이탈하여 이리들과 맞서 싸우지도 말며, 또한 양들을 늑탈하기 위해 유혹으로 던져주는 썩은 고기를 먹지 말라는 뜻이다. 오직 목자가 주시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만 먹게 하여 거룩함과 순결함을 보존하여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7:18-19)의 진정한 의미이다.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이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시면서 이 세상에 남겨지는 제자들이 복음을 위해 장차 겪게 되는 온갖 환난과 핍박을 알고 계셨기에 아버지에게 그들을 보전해 달라는 간구를 하시면서 그 보전이 바로 아버지의 품안에서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임을 제시하신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17:11).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17:22). 주님은 또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제자들에게도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먼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은 아들이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희생이었으며, 그 십자가 구원의 성취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의 영광이 이 세상에 온전하게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제자들에게 영광을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께서 이제 제자들을 원치 않는 십자가 삶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철저한 순종과 자기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자로 반드시 완성하실 것이며, 이는 변경할 수 없는 제자들의 운명적 삶임을 미리 제시하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겪는 온갖 멸시와 천대와 핍박과 죽음을 감당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적으로 아버지와 항상 하나로 계시는 완전한 결합체로 살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항상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로 동행하셨기에 아버지의 뜻대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자들을 위한 구원을 온전히 성취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라고 완전한 하나를 이루시기를 간구하신 것이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야만이 제자들이 주님 안에서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세상이 주는 온갖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감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 삶이 바로 제자들에게 입혀지는 영광의 삶이며, 그 영광의 삶이 곧 그리스도와 하나로 연합되는 영생이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구원이 있을 수도 생명이 잉태될 수도 없다.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존재하고 하나로 살아야만이 생명이 잉태되는 과실을 맺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이 항상 아버지와 하나로 계셨던 것과 같이 예수님 안에 제자들이 있고, 제자들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하나로 이 세상에서 어떠한 일을 당할지라도 아버지가 아들을 보전하신 것과 같이 우리 성도를 끝까지 보전하여 반드시 모든 것을 인내하고 견디어 내는 승리로 인도하실 것이며,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도록 진리로 세워주실 것임을 기도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약속하셨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와 같이 주님은 항상 주님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주님 안에 있어 하나인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함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도가 하나가 됨을 강조하셨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으로 추구하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바라는 소망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하나로 모아지며,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도 온전히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는 하나의 소망으로 함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하게 됨으로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라고 간구하신 것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 됨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들어가 하나로 합몰되는 영원한 연합을 기도하신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성도의 하나 됨이며, 그 하나 됨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한 형제가 됨으로 당신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임을 제시하신다. 그리하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반복하여 서로 사랑하라고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으로 주신 것이다. 성도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성과 다름을 받아들이고 주님이 우리의 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셨던 것과 같이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자기 부인으로 내려가 주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고 품어주는 것이다. 오직 사랑으로만이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주님은 오직 사랑으로 온전한 ‘하나’를 이루시기를 간구하신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23). 주님은 이제 십자가로 구원을 성취하심으로 땅 끝까지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이 아버지 품 안에 하나로 모이게 됨을 기도하신다. 이제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바로 창세 전부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랑하는 아들이었음을 알게 할 것이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온전한 하나를 이루실 것임을 기도하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으로 하나이신 것과 같이,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아들 안에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로 집어넣으시고 하나로 사랑하신다는 말씀이다. 이는 창세전에 이미 하늘나라에서 사랑으로 이루어 놓으신 아버지의 뜻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4), 즉 창세 전부터 주님은 아버지와 하나로 계신 사랑이시며, 영광이시며, 이제 십자가로 우리에게 나타내 주실 것임을 기도하신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요한이 선포하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아버지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우리에게 향한 사랑을 나타내시고 확증하셨으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셨다. 즉 당신의 십자가 구원 성취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가 하나가 되는 것이 곧 아버지께서 뜻하신 사랑이시며 주님이 받으실 영광임을 제시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죄인을 매달아 죽이는 저주를 상징한다. 세상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버리셔서 십자가에 매달게 하였다고 조롱하였다. 세상 가치관으로 볼 때, 주님은 아버지의 버림을 받아 저주의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죽임을 당하신 무력하고 연약한 패배자이며 세상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구원자로 알아볼 수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 수가 없으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독생자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선한 뜻을 알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희생양으로 십자가에 자신을 내 놓으셨다. 즉 우리를 얻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져 채찍에 찢기고 못에 찔려 만신창이가 되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으셨으며,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에게 향한 극치의 사랑을 성취하시고 확증하셨다. 우리가 당해야 할 그 죄의 고통과 수치를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담당하여 주심으로(사53:1-12) 우리를 영화로운 아들로, 신부로 낳아주신 것이다. 십자가의 희생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당신의 백성에게 전달되어 아버지를 알며, 아버지가 보내주신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이요 진리이요 생명이요 사랑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17:25)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으로 온갖 고통과 수치와 수모를 당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사랑의 현장이며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아버지는 십자가상에서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향한 사랑을 완벽하게 완전하게 드러내어 보여주시고 아들의 희생으로 영원히 하나가 되는 사랑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완전한 결합이 바로 십자가 사랑으로 나타나신 것이며, 그 사랑을 우리에게 입혀주심으로 오직 아들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17:26)라고 기도를 드린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된 존재이기에 그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절대적 의존적 존재가 된 것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각 사람에게 임하시는 그날에는 예수님이 아버지 안에 있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어 하나가 되어 영원을 살고 있음을 영으로 감지하며 실상으로 체험하게 될것임을 기도하신 것이다.
그렇게 주님과 하나가 된 자는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흘러주는 통로가 되어 메마른 땅을 적시어 생명이 태동되어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확장하게 됨을 알게하기 위하여 주님은 마지막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으로 새롭게 주신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즉 율법으로 주신 사랑의 계명은 처음부터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계명이었다. 하지만 율법의 모든 계명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하나가 됨으로 성령의 권능으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계명을 이루어 주심으로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이라 부르고 “서로 사랑하라”고 명하셨다. 즉 성도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의 사랑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이기에 이제 사랑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함몰됨으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14:20)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어 주님의 사랑을 땅 끝까지 흘려주는 통로가 됨으로 사랑의 계명을 지킨 자가 된 것이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 그 사랑은 이 세상을 토대로 한 인간적 사랑이 아니라, 생명을 태동시키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 예수님의 사랑이 성도의 복음전파를 타고 흘러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