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 8-15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죄에 대하여 책망하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은 죄란 바로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규정하셨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이며 생명이며 진리이기 때문에 그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죄에서의 구원을 거절하는 것이며, 죽음에서 살아나는 생명을 거절하는 것이며, 스스로 자신이 짓은 죄의 대가로 지옥 불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 16:9)라고 확실한 정의를 내리셨다. ‘죄에 대한 책망’은, 성령님께서 먼저 죄를 꾸짖고 죄를 드러내어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촉구하심을 말한다. 그럼에도 성령의 책망을 거절하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고, 죄에 대한 형벌을 무시하며,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끝까지 믿지 않는다면 구원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주님은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라고 하셨고,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라고 말씀하셨다. ‘죄에 대한 책망’은 복음서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명백하게 알려주고 있다.
첫째는, 이 세상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책망이다. 참 빛이시며 참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 어둠에 갇혀있는 죄인을 구원하여 빛의 나라로 인도하시기 위해 빛으로 내려오셨다. 그럼에도 이 세상은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여”(요 3:19)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대적하였다. 또한 그렇게 목숨 걸고 율법과 제사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리던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자고한 유대인들마저 메시아이신 예수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으며(요 1:11), 오히려 대적하고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주신 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죄를 받는 가장 무서운 죄가 바로 구원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배척하는 죄이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 3:18).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나님을 찾거나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으며(롬 3:10-11), 구원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고로 전부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 이미 ‘심판을 받았다‘라고 완료 시제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성령의 사역은 이 세상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며, 그럼에도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일로 세상을 책망하신다.
두 번째로, 이 세상 중에 예수그리스도를 알지도 들어본 적도 없는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님이 먼저 죄를 책망하시며, 그 죄에 대한 심판을 깨닫게 하시며,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 죄인들의 심령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자백하여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시며,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주로 영접하게끔 인도하신다. 그렇게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함으로 하나님과 화해가 되는 의로운 일이 바로 성령님이 하시는 죄에 대한 책망이다. 사도행전 2:37-41에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죄를 책망하면서 회개로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기를 독촉하였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리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행 2:36-37).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유대인들이 죄에 대한 책망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리가 어짜할꼬”라고 외치는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가 임하였고, 삼천여명이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는 은혜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처럼 성령은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이 얼마나 큰 죄 인지를 깨닫는 회개를 독촉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며”(1:12), 그러므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함과 같다.
마지막으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깊이 숨겨져 있는 은밀한 죄까지도 하나하나 책망하시는 영적 싸움을 일으키신다. 성령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이며 왜 우리가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신다. 바울은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심’이 죄인지를 알지 못하였다(롬7:7)라고 말씀하고 있다. 탐심은 아직 사건으로 저지르지 않은 마음에 품고 있는 욕망이다. 인간은 본체가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며 자신에게 유익한 선택만을 추구하는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에 그 생각과 동기와 계획과 목적 등 모두가 탐심에서 출발하기에 아직 사건화되지 않고 마음에 품고 있어도 죄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마 5:27-28). 왜냐하면 죄인에게서 나오는 모든 생각과 판단과 선택이 오로지 나의 탐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주님은 인간의 외식과 패역함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겉으로는 선으로 의로 아무리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마23:27), ‘탐욕과 방탕과 불의’로 가득 찬(마23:25) 무덤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님은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죄악들을 책망하시며,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좌우에 낱선 예리한 검과 같이 내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히 4:12) 해부를 통하여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더러운 집착과 고집과 위선과 교만과 같은 악한 본성들을 끄집어내어 그 죄가 얼마나 추하고 더럽고 교활하고 음모적인지를 보여주고 그 죄를 분리시키는 징계와 환난을 겪게 하신다. 오직 나만을 사랑하는 육적 욕망과 탐심으로 살던 ‘자아’가 깨지고 부서지고 악한 습성들이 해체되어 결국 내 옛 죄인이 십자가에 못 박는 죽음을 겪게 하신다. 그리하여 주님은 사정없이 매몰찬 말씀을 하셨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9). 이 세상 것들이 이미 내 몸속에 깊이 침투하여 살이 되고 피가 되어 하나님이 내 마음에 들어올 틈이 없이 죄에 정복된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것들을 찍어 내버리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내 의지와 노력과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에 그분은 성령으로 검과 불로 들어와 끈질긴 죄의 근성들을 잘라내고 불로 태우는 죽음으로 인도하시며, 새사람으로 영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온전한 신부로 탄생시켜 주신다. 비록 잘려 나가는 죽음의 고통을 겪게 되지만 주님은 오히려 나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심으로 그것들이 나에게서 반드시 잘려나가야 새로운 피조물로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 그분의 나라에 영생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마귀에 속하여 마귀 행사를 하는 유대민족 즉 오늘날 교회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
유대인들에 대한 죄의 책망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광을 구하는 패역함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교훈을 배척하며 예수님에게로 나올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마귀에게 속하여 이 세상 영광을 추구하고 지키기 위함이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2).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5:40). 즉 자신들의 영광을 취하는 일에 집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예수님을 거절하고 영생까지 거절한 것이다. 주님은 자기 영광만을 구하는 유대인들의 특징을 ‘외식’으로 책망하시고 천하에 공포하심으로 모든 외식하는 자들에게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고 선포하셨다(마 23:13-33).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방탕하는 자여, 불법을 행하는 자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라는 아주 심각한 어조로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 초점이 자기 영광만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기 위한 ‘외식’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1). 사람에게 잘 보여 자기를 나타내는 거짓된 의로 자기 영광을 취하기 위한 ‘외식’에 대한 책망이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구제하는 일을 나팔을 불며 자랑하며(마6:2), 길거리에서 기도하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의로운 자로 나타내며,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눅18:11-12)고 종교 열심을 자랑하지만 실상은 ‘하루살이는 부정하다고 걸러내면서도 부정한 짐승인 낙타는 꿀꺽 삼키는’(마23:24) 탐욕의 위선자들이며,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경문을 넓게 하고 옷술을 크게 하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는(눅23:5-7) 전형적인 외식자들에게 향한 책망이다.
(2). 탐심과 방탕에 대한 책망이다. 그들은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세리와 창녀들을 죄인이라 정죄하고 자신들과 비교하여 도덕과 윤리적으로 깨끗한 의인으로 자칭하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탐욕과 방탕과 불의’로 가득 차 있으며(마23:25), 심지어 ‘부모에게 드려야 하는 고르반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다’(막7:11)고 갈취하는 자들이며,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며(눅16:14),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막12:40),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마23:27) 무덤과 같은 자들이며,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마23:16)라는 물질을 강요하는 규칙까지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성전보다 제물로 드려지는 금과 은에 욕심을 부리는 양들의 돈을 뜯어내는 절도요 강도들임을 책망하셨다.
(3). 진리를 왜곡하며 불법을 행하는 영혼을 죽이는 죄에 대한 책망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한 율법을 악용하여 사람의 교훈으로 가르치면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나누어주는 권위를 가진 자로 자칭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다른 이들을 ‘죄인’이라 정죄하여 영혼을 죽이며, 자신들만 들어가는 율법의 문을 지키기 위해 은혜로 오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성도를 대적하고 박해하여 죽이는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바로 양을 물어가고 헤치며,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삯꾼, 강도, 절도, 이리’(요10:10-12)이며,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마 23:15) 독사이며, 자신들의 영광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살인하는 최악으로 가게 됨으로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지옥의 심판을 선고하셨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성령님은 의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며, 그 책망이 바로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심으로 제자들이 주님을 다시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태초로부터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점도 흠도 없으신 “하나님의 의”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시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의‘를 성취하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심으로 이제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사역이 진실이며, 사실이며, 절대적 진리였음을 증거하신다는 의미로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주님이 이제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시지만,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심으로 그때 비로소 예수님은 진심으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참 아들이시며, 구약성경에서 언약하시고 예언하시고 계시하신 참 메시아이시며, 구원자 이심을 알게 될 것임을 가리켜 의에 대한 책망으로 말씀하셨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3-14). 즉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을 증거하시며,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주님이 주신 모든 말씀을 알아듣게 가르치시며, 영적 계시를 주어 장래의 일도 알게 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시며,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의 삶을 살아내게 된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직접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수없이 많은 능력과 이적들을 행하시며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셨고, 예수님 자신이 바로 아버지가 보내주신 아들이시며 메시아 이심을 증거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믿지도 영접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배척하고 비난하고 멸시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에게 신성 모독 죄, 성전 파괴죄, 안식일 범한 일로 “죄인”이라 규정하여 로마 법정에 고소하여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죽인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부활하심으로 모든 백성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으며,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천하에 드러내셨으며, 예수님이 바로 참 메시아 이심을 확증하셨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가셔서 우편에 앉아 이 세상을 주관하시며 이제 곧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은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6:1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 ‘다시 나를 보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그동안 육신으로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이제 육신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으로 다시 오실 것이며, 그때는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하나로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임을 약속하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14:16).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
의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설교에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 바로 ‘나로 인하여 받는 핍박’이므로 그 ‘의’가 바로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셨다. 즉 너희가 핍박을 받는 것은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상에서 끄집어내어 나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한 그 “의”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의 성취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 죽으심으로 구원의 의를 이루셨다. 그리고 그 성취하신 구원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기 위해 성령으로 친히 우리 안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당신의 영으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즉 ‘의인’으로 탄생시켜 주신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말미암아 은혜를 입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이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5-26).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 성취로 오직 믿는 자에게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은총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십자가 구원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시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하여지는 하나님의 의가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의를 믿지 않는 이 세상에 대하여 성령님은 책망하신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확실히 말씀하신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하라”(사 43:7),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역사는 절대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인간이 영광을 받는 인간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하여 너희를 만들었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은 피조물의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의 의와 영광만을 드러내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생명이심을 깨닫고 우리의 영원한 주가 되심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진리를 증거하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분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의 의를 설명하기 위해 세상이라는 물질적 창조가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오직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존재함으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적 존재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곧 멸망과 죽음임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요한은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에 오직 그분 안에서만 생명이 있다고 증거한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3-4).
성도는 이 가시적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배우고 깨닫고 믿고 소유하는 자로 운명되어 있다. 성도는 왜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 주시는 그분은 어떠한 분이시며, 어떻게 우리의 아버지와 신랑이 되시며, 우리에게 향한 그분의 참뜻은 무엇이며, 왜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믿어야만 구원에 이르게 되며,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이라는 심판을 받게 되는지, 등 이와 같은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일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며 이를 주님은 ‘의에 대한 책망’이라고 부르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16:13-15)라고 성령께서 자의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여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어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이심을 천하에 알리시고 증거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오직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성취하신 십자가 구원의 의만 받으신다. 그 의는, 인간의 그 어떤 것도 보탬이 없는 창세전 하나님이 뜻하신 계획이며, 오직 의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룰 수 있는 의이기에 그분 홀로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생명으로 구원의 의를 성취하셨다. 그리고 그 성취하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시기 위해 그분은 성령으로 친히 우리 안으로 뚫고 들어오셔서 당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시켜 의인이라고 인처 주신다.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19).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하나님의 의는 그 자체가 진리이며, 구원이며, 생명이며, 영존이며, 복의 근원이시기에 택함을 받은 성도는 그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갈증으로 구하게 하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와 영원히 굶주리지 않는 하늘의 양식으로 채워주신다.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의에 대한 성령의 책망
성령님은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잠재하고 있는 악한 것들을 검으로 끊어내고 불로 태워 하나님의 의에 합당한 자녀로 인도하는 내면적 영적 싸움을 일으키신다. 바로 하나님의 의로운 아들과 그리스도의 의로운 신부에 합당한 자로 세우기 위한 의의 책망이다. 우리가 실족하여 넘어지는 것은, 나 밖에 있는 악한 존재의 핍박보다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근성과 마귀의 음모적이고 매력적인 유혹과 시험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나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이며, 내가 원하는 욕망으로 살고 싶어 하며, 그것을 목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은 끊임없이 죄를 원한다. 그리하여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다”(롬 7:8)라고 고백하며, 내 안에는 매일 두 나라와 두 영이 서로 배척하며 싸운다고 말씀하고 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8-25). 내 안에는 분명 타고난 마귀의 속성과 습성과 악한 성품이 있으며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에 마귀와 싸운다고 하지만 실상은 그 마귀가 바로 ‘나’ 자신이며 독사와 같은 ‘자아’이다. 내 마음을 잡고 있는 그 마귀의 습성, 경향, 탐욕, 집착 등은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끊어내려고 참소하며 최후 발악을 하고 있기에 육신이 사는 동안 수시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직접 들어오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죄의 유혹과 시험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실수하고 넘어지고 실족하더라도 이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심으로 애통으로 회개하며, 다시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신다. 성도는 날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이 세상 것들이 성령의 책망과 말씀의 검으로 잘려 나가는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 삶으로 이끌려 가고 있다. 그렇게 성령의 내주와 능력으로 내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부풀어 오르는 밀가루 반죽처럼 날로 확장되어 진리와 사랑과 평강으로 채워져 감을 경험하게 된다. 분명 주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눅 9:23)라고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한번 지고 한번 죽는 것인데 왜 주님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하셨을까?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외치고 있다. 날마다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세상의 것들이 성령의 검으로 잘려나가는 세상을 향해 죽어가는 자기 부인을 매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성도는 이 세상 마귀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기 위해 수시로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죄의 유혹을 물리치도록 기도로 매달리게 하시며, 실수하고 넘어지더라도 이내 주님의 손을 붙들고 그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용서를 구하게 하신다. 그것이 바로 의에 대한 성령님의 의로운 책망이다. 성령 하나님은 나의 일생 동안 포기하거나 떠나지 아니하시고, 매일 동행하는 삶으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주심으로 믿음으로 진리에 서게 하시며, 항상 자신을 돌아보는 정결한 신부 단장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게 하신다. 하지만 성령님의 책망을 무시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내 죄의 유혹에 빠지게 되며, 훈계의 말씀에 무뎌지며, 자그마한 죄가 습관이 되어버리며, 큰 담으로 쌓여져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갈라놓게 됨으로 더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게 된다. 이것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은 없다.
그리하여 사도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라고 솔직한 고백을 주신 것이다.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는 것은 그만큼 나를 넘어뜨리려는 악한 영들이 한시도 쉼이 없이 마음을 혼미케 하여 실족하는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미 죄에서 구원받아 의롭다 함을 받은 성도는 다시 타락하여 영원한 사망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성도의 신앙생활은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히 12:4) 것임을 히브리서 기자는 말해주고 있다. 성령의 권능으로 피 흘리기까지 세상에 대해 죽는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만이 죄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 죄의 권세를 십자가 피 흘림으로 이기셨기 때문에 그분은 자신의 피 값으로 구원하신 당신의 백성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시며 그 죄에서 돌이켜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오는 회개를 촉구하신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9). 이보다 더 은혜로운 구원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이 은혜를 아는 성도가 어찌 성령의 책망을 무시하고 반복하여 주님이 그토록 미워하는 죄를 짓을 수가 있겠는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신다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 권세 잡은 마귀와 마귀에 속한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이 세상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았음을 확증하셨다. 주님이 다시 부활하심으로 죄인들 위에서 군림한 '공중 권세 잡은 자'(엡 2:2),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엡 6:12)인 사단의 세력이 더는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사망의 왕 노릇 못하게 심판을 받았다(히 2:14)는 확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사단의 머리를 치심으로(창 3:15) 이 세상은 이미 사형선고를 언도받았으며, 마지막 주님의 재림 때를 집행 날로 정해놓고 사단은 마지막 최후 발악으로 자기와 함께 멸망당할 자들을 삼키고 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 그리면 심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일차적으로, 심판은 천지와 인간 창조 전에 먼저 하늘나라에서 타락한 천사에 대한 심판에서 시작된다.
에스겔 28: 12-18 에서, 천사는 하나님이 지으신 하늘에 속한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로 그 용모와 지혜와 능력이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진 자”(벧후 2:4; 계 20:10)가 되었고, 하늘로부터 쫓겨나서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하는 자”(계 12:9)로 잠시 이 세상 ‘임금’이라는 악역을 맡아 죄와 죽음의 권세자로 인간의 마음을 잡는 마귀가 된 것이다. 창세기 3:14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람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라고 하셨고, 뱀에게는 “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 것이니라"라고 선포하심으로 인간의 육이 사단의 먹이가 되었음을 계시하셨다. 인간은 육이 사는 동안 종신토록 사단의 노예가 되어 고통과 괴롭힘으로 살다가 결국 사단에게 먹혀 죽음을 당하게 됨을 제시하셨다. 하지만 사단은 잠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악역으로 쓰임 받는 이용물이기 때문에 사단의 결국은 멸망의 심판이다.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니“(유1:6).
두 번째로, 첫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여 죄를 범함으로 심판이 내려지는데 그 심판이 바로 저주와 죽음이었다. 아담의 죄로 이 세상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저주를 받음으로(창 3:18), 끝임없이 토해내는 죄를 쌓아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는 정죄와 죽음이라는 심판을 벌써 받은 것이다(창 3:19).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모든 인간은 아담의 타락으로 ‘죽음’이라는 심판을 받았고, 잠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죽음을 정해놓고 사는 것뿐이다. 인간은 땅의 티끌에서 난 존재이기에 그 본성이 밑바닥이며, 심히 더럽고 부패하고 강퍅하며, 자아에 굶주려 있다. 오로지 육신의 탐심을 이루며 자신의 이름을 높여 영광을 갈취하는 데에 사로잡혀 있기에, 하나님의 선한 말씀에 대적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거슬러 반항하며, 진리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여 버린 전적으로 타락한 패역한 자들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다.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0:12-14).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뜻 함을 받으리라"(막 9:48-49). 즉 모든 인간은 마귀의 권세에 속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말씀이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세 번째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내셨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 빠져있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으며, 우리의 모든 죄를 그에게 전가시키고, 그를 저주와 죽음의 사형 틀인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죄에 대한 심판을 아들에게 내리셨다. 신명기에서 죄를 범한 자는 나무에 매달라고 하셨고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 21: 22-23)라고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 앞에 부정함으로 저주를 받아 나무에 매달려 죽게 함으로 하나님은 반드시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그 죄의 대가는 죽음이며, 우리가 바로 그 형벌을 받아 그 저주의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제시하셨다. 그 영원한 죽음의 심판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즉 죄에 대한 심판을 독생자 예수에게 내리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원의 의를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신다. 하지만 끝까지 믿지 않는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죄인에게는 영원한 심판을 내리신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9:27]),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마지막으로, 그분은 이제 성령으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며, 십자가를 기준으로 하여 그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믿는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무죄로, 심판을 면한 자로 영생을 주실 것이며,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을 믿으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거절하고 배척하는 자는 불의한 죄인으로 심판 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선포하셨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아들을 믿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48).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12). 주님은 오른편 양으로 불리는 성도를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라고 창세로부터 성도를 위해 예비된 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왼편 염소를 향하여서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2)라고 십자가를 기준으로 영생을 받을 자와 심판을 받을 자를 분리하셨다. 이와 같이 이 세상과 죄에 대한 심판은 천지창조 때에 이미 시작된 것이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증거된 것이며(마 8:28-32, 막 1:23-26), 십자가로 확증된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서 온갖 귀신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복하여 쫓겨나가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심판이 이미 내려졌다는 증거이다. 예수님은 모든 악한 세력을 심판하시는 권세를 가지고 계셨으며(요 5:22, 27).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권세를 심판하시는 승리를 확보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영원한 심판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전히 끝날 것이다.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그 심판의 대상은 어떤 자들인가?
사도신경에서 “저리로서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심으로 성도에게는 ‘산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셨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 14:9). 하지만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속한 마귀의 자식들에게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시는’ 심판 주가 되셨으며, 반드시 모든 악을 제거하시는 최후 심판을 진행하신다. 주님은 심판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요 5:22)고 말씀하셨다. 즉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모든 피조물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며, 만물을 심판하시는 모든 권세를 아들에게 맡기셨다. 그 심판은 이 세상 임금과 이 세상 임금에게 속한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영원한 심판이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심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 속한 믿지 않는 ‘저들’이며, 말씀을 진리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며 거역하고 왜곡하는 ‘저들’이다. ‘저들은’ 자신의 이름을 높여 사람들로부터 숭배와 영광을 얻어내기 위해 탐심과 욕망으로 자기 확장과 실현을 도모하는 자들이며, 진리를 대적하는 마귀와 한 몸이 된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9),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롬 2:8).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불같은 형벌이 쏟아지며,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 종말에서 끄집어내어 당신의 나라로 들어 올리는 편 가름을 하신다는 말씀이다.
첫째, 심판은 유대민족이 그리스도를 대적함으로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심판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벧전 4:17)라고 심판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민족으로부터 시작되어 이방 불신자들에게 옮겨짐을 말씀하고 있다. 구약 때부터 이스라엘은 수시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으며 그렇게 심판으로 구약이 막이 내린 것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구원을 약속받은 이스라엘은 줄곧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말씀에 불순종하며, 하나님을 배신하여 바알신과 같은 이방 신들을 줄기차게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선지자들을 보내주어 그들의 악행을 책망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선지자들을 멸시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악행을 범하였으며, 극도로 패역한 우상숭배로 수시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왔다. 주변국의 침략을 받았고, 노예로 끌려갔고,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어갔고, 예루살렘 성전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는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습 1:15),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극에 달하였음에도 그들은 전혀 깨닫지 못하였고 회개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패역한 죄악과 가증스러운 제사와 가면을 쓴 종교 놀이에 더는 참을 수가 없으셔서 마지막 말라기에서 성전 문을 닫게 하심으로(말 1:10) 구약이 심판으로 막이 내리게 된다.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2:3). 즉 너희가 행한 모든 일이 바로 ‘똥’과 같은 더러운 것들이기에 너희 얼굴에 똥을 발라 너희 악행을 천하에 드러내어 망신당하게 하고 너희를 제하여 버리시겠다는 무서운 진노였다.
그러한 조상들의 극도로 패역함을 그대로 물려받은 유대인들은 끝내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까지 핍박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악마 같은 사악함과 극악무도함을 알고 계셨기에 그들이 목숨 걸고 지키고 있는 “성전을 헐라”(요2:19)라고 외쳤으며, “너희 집이 황페하여 버린바 되라라”(마 23:38)라고 피할 수 없는 심판을 선고하셨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의와 영광을 추구하는 역할로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장소였으며 자신들의 유익과 돈을 챙기는 장사하는 강도의 소굴이 되었으며 유대인 지도자들의 정치적 소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 24:2) 함과 같이 불에 타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괴되었고, 겨우 성전 벽만 남아서 오늘날 유대인들이 찾고 있는 “통곡의 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구원자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극구 대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달라고 빌라도 앞에서 아우성을 치면서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리시오”(마 27:25 )라고 자기들 자손들의 피를 담보로 걸고 그리스도를 죽인 잔인무도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시작된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유대 인 120만 명이 기근과 불과 칼에 살육을 당하고 포로로 노예로 세상에 흩어진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예수를 죽인 잔인한 유대인”이라는 악명을 달고 있었기에 세계 각국에서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와 박해와 추방과 살육을 당하였다. 중세기에 십자군에 의한 유대인 학살과 독일에서 저질러진 600만 유대인 학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들 스스로 자초한 비참한 심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의 순간에도 그 중 택하신 남은 자들은 끝까지 보존하여 주신다.
둘째, 성도를 박해하고 죽이는 세상에 대한 심판이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진리를 외친다는 이유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이유로, 목 매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기도 하고, 경기장을 밝히는 횃불로 불태워지기도 하였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히 11: 35-38).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핍박이 닥쳐올 것임을 성경은 미리 말씀해 주고 있다. 기독교는 핍박과 순교자의 피의 씨앗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반드시 공의의 심판으로 ‘저들’에게 핍박당하고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신원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피를 ‘저들’의 손에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셨다(계 6:9-11).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계 19:2). 마지막 심판은 이 악한 세상 자체를 종결짓는 심판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를 배제한 이 세상과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그에게 종속된 믿지 않는 자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배교한 교화와 배교한 자들에 대한 종결의 심판이다. 하지만 성도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더디어 현실로 다가오는 최고의 영광과 영원한 혼인잔치로 들어가는 축복의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는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교만한 마음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 2:5). 고집이란, 자신의 죄에 대한 뉘우침과 자신이 바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죄를 자백하는 회개가 없이 심판의 날까지 끝까지 가는 독사와 같은 끈질긴 패역함을 말한다. 회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의 노예로 살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마귀의 자식으로 살기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자신의 자존심과 의와 존재가치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영생’을 거절하는 어리석은 무지와 교만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 1:8, 9).
인내와 긍휼과 자비와 용서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주 충분한 일생 전체를 주셔서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죄를 깨닫고 그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촉구하시며 주 예수그리스도를 믿어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하신다. 즉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 죄를 자백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평생이라는 충분한 시간을 주셨으며, 수많은 기회와 충분한 증거를 주시며, 충분한 진리의 말씀을 주시며,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죄인을 부르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는데 의도를 둔 것이 아니다.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 12:47). 그분은 죄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죄를 용납할 수가 없음으로 그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서는 먼저 죄인을 죄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즉 죄를 분리시키는 ‘회개’를 촉구 하신다. 이는 오직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만 허락하신 은혜로운 회개이다. 육신이 죽은 후에는 영원한 심판이 있으니 다시는 죄인이 회개할 기회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그럼에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회개’를 거절하면, 그 죄를 끌어않고 하나로 사는 육신이 함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없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만 있는 빛의 나라이기에 회개치 않는 자가 빛 속에 들어가면 그 안에 있는 모든 악한 죄가 드러나는 흉칙함으로 빛을 견딜 수가 없어 스스로 자원하여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이다.
성도에게는 심판이 아니라 오직 구원과 영생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당신의 자녀를 이 세상 임금 마귀의 자식들과 철저히 구별하여 주셨다. 즉 이 세상 중에 창세전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있으니 이들은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이기에 이 세상 죄와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셨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할자 이심이라”(마 1:21). 예수님은 창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을 다 믿게 하여(행13:48) 당신의 나라로 끌어올리신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17:6-9). 이 세상 중에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진 당신의 백성은 당연히 아버지가 보내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게 되며,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믿고 영접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그분에게 속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오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니라”(요. 15:16)이다. 그러므로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며’(마 11:27), 이들이 바로 ‘창세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옙 1:4) 성도들이며, 이들만이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게 되는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며”, 이들에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13)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아 점도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의인’으로 탄생하여 그리스도와 함몰된 신부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의 공로로 죄에서 완전히 해방 받아 무죄 선고를 받은 의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신부를 죄인이라 정죄하거나 고소하거나 심판할 자가 없게 된 것이다. 십자가 구원이 성취되는 순간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은혜를 입은 아들이 되었고, 신부가 되어 아버지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갈 4:4-7). 아버지께서 독생자의 피와 생명으로 잉태한 우리를 그 누구도 ‘죄인’이라 정죄할 수도 심판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롬 8:34-39).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롬 8:16) 하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온전케 된 자를 다시 심판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임한 특권이며 은총의 선물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또 있겠는가!
성령이 오시면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예수님은 그동안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으면서도 장차 일어날 핍박과 죽음에 대하여서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16:4).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았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끊임없는 비난과 멸시와 핍박당함을 직접 목격해 왔기에(11:8) 굳이 예수님은 자신의 핍박에 대해 따로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떠나시면 그 핍박의 대상이 제자들에게로 옮겨가기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너희는 내가 이 세상에서 택하여 불렸기에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고 핍박하고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함으로”(12)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아직 육신에 속한 자로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성령이 오시면, 그때는 제자들이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영원히 함께 있어 모든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진리로 인도하실 것이며, 장래 일을 알게 되는 영적 계시를 받을 것임을 말씀하신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하시는 일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다. 성령께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시며, 예수님을 증거하시며, 예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시며, 설명하여 올바로 깨닫게 하여 진리로 인도하시며,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라고 말씀하신다. 즉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시기에(롬 8:9),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동일한 본질과 성품과 권능을 지니시고 일치하게 하나의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우리 안에서 사역하시기에 주님은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16:14)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14:20)라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이 한 하나님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거처를 함께 하실 것이며(14:23), 우리와 하나가 되는 연합을 이루실 것임을 제시하여 주셨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16:15). 이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와 성령님은 한 분이시기에 당연히 아버지의 모든 것은 아들의 것이며, 성령님은 아들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여 주시며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