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5:13-18) [2]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며 /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3. 11. 9. 00:17

롬 5:13-18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바울은 첫 인간 아담이 범죄 함으로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 그 자체가 죄이며 때문에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5:13-14). 죄란 존재는 율법이 있기 전에 이미 세상에 존재하였으며, 이를 바울은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다”라고 말하고 있다(갈3:22). 그럼에도 율법을 주신 의도는 정죄와 심판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은혜를 개입시키기 위한 선하신 의도이며,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시기 위함임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결론은: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1)이다.

바울은 15절부터 마지막 21절까지 집요하게 아담 한 사람의 범죄를 5번이나 강조하고 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5:17새번역) 라고 재차 강조함으로, 이 세상 모든 인간은 죄인이며,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반드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믿는 믿음으로만이 생명에 이르게 되는 복음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즉 구원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탄생하여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사는 선물을 차고 넘치게 받았으며,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왕노릇 한다고 복음의 핵심을 점층적으로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15절: 아담의 범죄로 사망에 이르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생명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

16절: 아담의 범죄로 심판을 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인을 의롭게 여겨 주셨다.

17절: 아담의 범죄로 사망이 왕 노릇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

18절: 아담의 범죄로 정죄에 이르렀으나, 예수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19절: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되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의인이 되었다.

죄는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며, 사망이 왕 노릇 하였다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죄에 대한 사망의 형벌은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어 이 땅의 존재들은 그 누구도 사망의 심판을 피면할 수 없음으로 사망이 인류를 지배하고 있음을 바울은 “사망이 왕노릇 하였다”라고 말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차별 없이 동일한 죄인으로 사망에 놓여 있음으로,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5:14), 즉 이 땅에 속한 모든 육체는 죄 안에 갇힌 존재이며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 2:12). 율법을 모르고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이 짓은 죗값으로 심판을 받을 것이요, 율법을 알고 죄를 범한 자는 그 율법에 의해 정죄 당함으로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육체는 타락한 마귀의 본성으로 이미 ‘죄와 허물로 죽은’(엡 2:1)자로 태어나 죄만을 행하는 불의한 자로 몽땅 ‘죄인’으로 정죄 받아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라고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인간이 이 땅의 티끌로 육체를 입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하늘니라의 의와 선이 없기 때문에 육으로 행하는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없다고 성경 전체가 증명하고 있다. 육은 이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이 땅의 것들을 추구하는 탐심과 욕망과 정욕으로 이 땅의 썩어짐의 배설물들을 채워서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여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없음’임을 첫 사람 아담에게 선언하셨다(창 3:19). 비천한 흙을 입은 육은 나약하고 허무하고 무익함으로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거역하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고 말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 할뿐아니라 할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도 할 수 없느니라(롬 8:7-8).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라고 정확하게 육체의 본능적 죄성과 율법을 주신 의도를 지적하고 있다. 즉 율법을 통하여 인간들의 죄 된 상태가 바로 열린 무덤처럼 죄가 목구멍까지 차고 넘친 상태이며(롬3:10-20), 모태에서부터 전신에 차 있는 그 죄의 실체를 바라보고 인정하라는 기능으로 율법을 주셨다고 증거한다(롬 3:20, 갈 3:19). 그러므로 율법을 주신 의도는, 인간의 심히 부패하고 더럽고 추악하고 잔인한 죄악들을 낱낱이 폭로하여 완전한 죄인임을 철저히 깨닫고 인정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와 자비로 죄가 도말되는 십자가 은혜를 구하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5:17).

역사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아담의 후손들은 한 번도 죄를 멈춘 적이 없으며 오히려 더운 추악해지고 사악해지고 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아담의 첫 후손인 가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살인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역사가 바로 서로 살육하는 피의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타락한 속성을 따라 이루다 말할 수 없는 잔인과 파멸로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그리하여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극지에 도달한 타락과 죄악의 결국을 노아 홍수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으로 멸종당함을 보여주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 6:6-8).

 

인류 멸종에서 하나님은 오직 당신이 택한 노아 8식구만 구원하시고 선택에서 제외된 모든 인간의 결국이 바로 죄 때문에 멸망의 심판으로 종결 짓게 됨을 노아 홍수의 사건을 통하여 미리 경고로 똑똑히 보여 주셨으며, 그중 오직 택함을 받은 자만 은혜를 입혀 인류의 멸망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임을 무지개로 언약하셨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십자가로 성취하여 주셨으며, 오직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 이를 바울은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라고 복음의 핵심을 제시하고 있다.

표상! 왜 아담이 예수의 표상인가?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자의 표상이라

사도바울이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다’(5:14)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묵시대로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구원자로 보내주시기 위해 아담이라는 첫 사람을 만드시고, 아담의 범죄함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 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를 보여주시고 설명하여 주시시기 위해, 아담을 모형으로 표상으로 도구로 쓰셨다는 것이다. 이를 바울은 죄가 아담을 통하여 세상에 들어왔으며, 그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왔다고 말하고 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5:12).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생명에 이르게 됨을 나타내어 설명하여 주시기 위해 아담을 통하여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두셨다고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 즉 첫 인간 아담이 전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범하여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임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가 주신 당신의 자녀들을 품에 안고 십자가 구원을 이루어 주심으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입어 생명의 왕노릇 하고 있다고 복음을 제시한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5:17). 한마디로,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사망이 이 세상에서 왕노릇 한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으며, 그래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임을 제시한다.

아담이 예수님의 모형인 첫째 이유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주관하시는 만물과 인생을, 영원하신 당신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늘나라의 영생을 설명하시기 위해 잠시 모형으로 허사로 도구로 수단과 방법으로 존재하거나 쓰임 받는 존재로 정하셨으며, 때문에 영원한 실체가 나타나면 모형은 ‘없음’이고,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만이 ‘있음과 영원’임을 증거하고 삭제되는 것으로 정해 놓으셨음을 제시하여 아담을 모형으로 세웠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첫 인간 아담과 하와, 죄와 마귀를 상징하는 뱀, 죄와 죽음을 알게 하는 선악과나무, 그리고 믿음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이스라엘 민족, 인간의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마리아의 아들 예수의 육체까지도 모두가 실체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과 하늘나라 영생을 나타내시기 위해 도구로, 방법으로 수단으로, 모형으로, 형상으로, 표상으로 등장한 것임을 뜻한다. 피조물은 어디까지나 창조주 하나님과 하늘나라의 실체를 설명하고 증명하는 모형이고 허사이기에 실체가 나타나면 없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아담을 예수의 모형이라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은 첫 인간을 영원을 사는 영적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없음’을 상징하는 티끌, 가장 비천하고 무가치한 흙이라는 물질로 만드시고 잠시 사는 육적 목숨만 붙여주시고, 언제든지 나이와 상관없이 부르시면 티끌로 돌아가게 하심으로 생명은 하나님의 주관이심을 나타내셨다. 처음부터 금이나 은과 같은 귀중한 보물로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흙으로 짖으셨다는 것은, 인간의 인생이 얼마나 더럽고 비천하고 허무한지를 깨달으라는 것이며, 그렇지만 흙은 생명을 잉태하는 원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로 죽은 자이지만 예수 생명의 씨가 우리 안에 심겨져 있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로 하늘나라를 사는 영적 존재로 탄생할 수가 있었으며, 그것만이 실체이고 현실임을 나타내시기 위해 아담을 죄의 통로로, 또한 예수의 모형으로 들어 쓰신 것이다.

 

때문에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육은 무익하기에 하나님은 인간을 ‘진토’ ‘거름더미’(삼상2:8), 짐승, 물 한 방울, 흙, 티끌(사 40:15)로 묘사하셨으며, 바울은 이를 ‘죄와 허물로 죽었다’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은 ‘육은 무익하다’(요 6:63)라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의 대척점에 있는 이 땅에 속한 육신들을 ‘마귀의 자식, 독사의 새끼, 회칠한 무덤, 귀신들린 자, 개, 돼지, 이리’라고 부르셨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은 피조된 것들이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없음’이다. 그러므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영의 차원에서는 저주가 아니라 영생을 사는 십자가 구원의 복음이 약속된 축복이다. 흙으로 피조된 육이 죽어야만 이 영원을 사는 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로운 창조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네가 흙으로 다시 돌아가야 내 아들로 신부로 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복된 복음을 죽음으로 계시하여 주셨다. 그러므로 모형으로 만들어진 아담의 후손들은 반드시 육신의 죽음으로 삭제되고, 예수그리스도 생명 안에서 영생으로 거듭나는 것이 실체임을 제시하여 아담을 예수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 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5:21)

아담이 예수의 모형인 두 번째 이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라고 말씀하심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사람을 창조하시고, 함께 사람의 인생을 주관하실 것임을 미리 선포하셨다. 그 ‘사람’이라는 단수 안에는 예수를 모형 하는 남자와 성도를 모형 하는 여자가 한 몸으로 있었다. 남자와 여자를 객체로 따로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남자 안에 여자가 들어 있는 한 몸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아담’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그런데 그 사람 속에 하나로 있었던 여자가 남자에게서 빠져나와 객체로 홀로 존재하게 되자 뱀의 유혹을 받아 죄에 빠지게 된 것이다. 여자가 먼저 죽음이 선포된 선악과를 따 먹었고, 자신과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어 남편을 죽게 만든 것이다. 이를 바울은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 2:14)라고 남자 안에 있었던 여자가 객체가 되자 먼저 뱀의 유혹을 받아들여 뱀과 한 몸이 되었으며, 그 뱀에서 여자를 빼내기 위해 남자가 뱀이 되어 여자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뱀처럼 장대에 매달려 죽어야함으로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3-14)라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영생을 입게 됨을 말씀하셨다. 이를 바울은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객체가 되어 죄에 빠져 신랑이신 예수를 죽인 여자이지만,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있었으며(엡 1:4), 삼위일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에(창 1:26),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 수가 있었으며, 의롭다 여기심을 받아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하나로 연합을 이루는 존재로 회복된 것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그래서 아담은 오실 자 예수의 표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남자 아담이 (예수의 모형으로) 여자(성도)를 품고 있었기에 예수의 표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또한 죄인의 육을 입고 이 세상에서 죄인이 되어서 죽으셨기에 ‘둘째 아담’(고전 15:45-47) 이라고 부른 것이다.

우리 신랑이신 예수님이 여자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다시 하나로 연합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자리에서 이 세상 마구간과 같은 죄악 속으로 들어오신 것이며, 자신을 여자에게 먹이로 주시기 위해 구유에 눕힌 것이다. 하나님이신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조물과 연합을 이루시기 위해 죄와 사망 속으로 들어오셔서 죄인이 되셔서 죽으심으로 자신을 여자에게 완전히 내어주어 자신의 피와 살로 다시는 끊어낼 수 없는 영원한 신부로 혼인하여 주심을 하나님은 구약 호세아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여 주셨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 2:19-20). 이 세상 마귀 뱀과 끊임없이 간음하여 걸레처럼 추악하게 버려진 창녀와 영원한 혼인을 선포하신 것이다.

 

세상과 간음하는 창녀가 되어 죄와 사망에 갇혀 있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당신의 신부로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분이 우리와 똑 같은 육신을 입고 죄 아래 내려오셔서 온갖 조롱과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받으시고 모든 이에게 버려졌으며, 사랑하는 아버지와 제자들에게도 버려지는 고독 속에서 홀로 십자가를 지고 사망의 자리까지 가신 것이다. 육신을 입은 예수는 처절하게 버림을 받아야 함으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표적으로 오신 예수님의 육신이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야함을 제시하셨다. 그리하여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인자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십자가 죽으심을 제시하신 것이다. 표적으로 오신 예수의 육신이 죽어야 만이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아담이 예수의 표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는 세 번째 이유

아담의 후손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그리스도는 영이시기에 영으로는 육신의 죄를 짊어지시고 피를 흘리는 십자가를 질 수가 없음으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아기로 탄생하셨으며, 그 육체는 죄인의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으로 정죄 받아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 입은 죄인의 육체이기에 십자가에 못 박는 죽음으로 모든 죄를 완전히 철저히 도말하여 주셨다. 우리 주님이 죄인의 육신으로 오신 것은, 첫째는 우리 인간이 육이 연약하여 스스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롬 8:3)고 바울은 정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둘째, 그분이 육신으로 아브라함 자손의 대를 이어서 혈통으로는 다윗의 자손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자녀의 혈통으로 이어 주셨다. 바울이 이 비밀을 깨닫고 말하기를,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하려 하심이라”(갈 4:4,5).

이와 같이 그분의 속죄 사역은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은혜로운 구원이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갈 1:4) 함과 같이 그분은 우리의 육을 입으시고 ‘인자’로 오셔서 우리의 죄악을 담당(사 53:6) 하여 주심으로 우리 육의 죄를 영원히 멸하시고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화평을 이루어 주셨다. 이르기를,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 죽으셨습니다. 곧 의인이 불의한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육으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셔서 여러분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벧전 3:18 새번역).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저주와 죄와 죽음에서 영원히 구원하여 주셨다. 히브리서 10: 10-14 에서 단번에 흘린 예수의 피는 “영원한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분이 흘린 피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완전하며 영원하시다. 오직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것을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죄인과 상관없는 자로 구원 받았으며, 다시는 죄가 나를 주관치 못 한다(롬 6: 14)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 지어다”(롬 6:10-11).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는 네 번째 이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와 성도가 어떻게 이 땅에서 아버지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완성되는 지를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삶으로 보여 주셨으며,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이요 생명이요 빛이요 진리이심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인자’의 삶으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님을 우리 성도의 표적이라고 말한 것이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1-12). 육신을 입고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메시아이시며 구원자이심을 나타내시고 증명하시기 위해 오신 표적이라는 말씀이다. 즉 ‘인자’로 오신 예수는 당신의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잠시 죄인의 육신을 입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형이며 실체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 ‘그 사람의 아들’ 이라고 부르셨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스도로 부활하셨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실상이라는 말씀이며,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이시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부활이다.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은 육신에 속한 죄의 사망이요, 예수 부활은 그리스도 영에 속한 새 생명, 성령의 법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첫째 것을(육신과 율법) 폐하심은 둘째 것을(성령과 생명) 세우려 하심이라"(히 10:9). 즉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6) 함과 같다. 그리하여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전 15:17), 즉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구원이라는 진리가 있을 수도, 생명이라는 영생이 있을 수도 없으며, 만약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끝나셨다면, 구원받은 증거가 없기에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생명과 소망이 없는 죽은 구원이며 하늘나라는 허사가 된다는 말씀이다. 십자가의 구원의 목적이 부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마 22:32)라고 예수님께서도 생명이 부활에 있음을 친히 가르쳐주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 라고 부르지 아니하시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 11;25)라고 부활의 진리를 선포하셨다. 죄로 죽은 인간을 다시 살리는 부활의 영이 내 안에서 새 생명을 잉태 시켜야 만이 나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으며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바울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 부르고, 아담을 오실 자 예수의 표상이라고 부른 것이며, 누가는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표적이라고 부른 것이다.

예를 들면, 누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할 때 (눅 3:38), 하나님 바로 밑에 아담을 예수님의 족보에 올려놓았다. 예수님의 족보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로 끝나는 것이기에 아담을 예수의 표상이라고 말한 것이다. 아담으로 시작한 예수님 족보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으며,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증명하는 동일한 목적으로 이 땅에서 태어났으며, 모두가 예수그리스도 생명 안에서 하나로 완성됨으로 예수님은 교회와 성도의 머리이시기에 바울은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부르며, 첫째 아담의 실패를 완전하게 완벽하게 회복시키는 구원을 이루어 주심으로 둘째 아담이라고 부른 것이다. 실상인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을 나타내기 위해 아담이 모형으로 창조됨으로 아담은 오실 자 예수의 표상이다. 예를 들면,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장자라고 부르셨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그 장자 12 지파를 예수님이 품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으로 함몰되어 하나가 되는 새 생명의 창조를 부활로 완성하셨다.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태어나는 연합으로 참 아들들로 완성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장자라고 부르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열둘을(12) 제자로 부르시는 것에서 구원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시기 위해 창조되고, 도구로 방법으로 모형으로 형상으로 표상으로 존재하거나 쓰임을 받는 것임을 제시한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5:17).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라는 마지막 이유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본체이신 영으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당신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로운 창조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바울은 창세전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 안에 하나로 있었기에(엡 1:4), 예수님의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있었던 옛 사람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예수님이 영으로 부활하실 때 우리의 영도 함께 부활하는 새 생명의 창조가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4-5).

 

예수그리스도를 내 신랑으로 맞이하고 오직 그분의 생명력으로 사는 연합은 먼저 나 옛 사람의 십자가 죽음을 전제하고 있다는 말씀이다. 그 옛사람 죄인의 몸이 반드시 죽어야 만이 아버지의 영원한 아들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연합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잉태된 영생하는 생명이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며 귀한 죽음이라고 성경은 거듭 말씀해 주고 있다(계 14:13).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

예수와 함께 내 옛사람 죄인이 십자가에서 철저히 죽었기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분의 영원한 신부로 부활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5:18). 그래서 아담은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며, 그래서 복음이다. 이 복음을 바울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제시하고 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미 창세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는 말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4-7). 아직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아직 인간이 죄를 짓기도 전에, 인간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바울은 영성으로 말하고 있다.

 

계시록에서도 죄가 아직 이 세상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가 이미 묵시 속에 먼저 있었고, 성도의 이름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예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계 13:8). 그러므로 아담은 이와 같은 하늘에서 완성된 묵시를 역사로 나타내기 위해 죄를 이 세상에 들여보내는 통로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이를 바울은 오실 자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다(5:14)라고 정확하게 제시한 것이며, 또한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름으로, 인류의 조상인 첫째 아담을 통하여 세우신 구원의 언약이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늘나라의 묵시를 이 세상에 나타내는 예수그리스도의 표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 언약 묵시 속에서 완성하신 구원의 뜻을 이 땅에서도 이루심으로 하나님 당신의 영광과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설명하시기 위해 아담을 통로로 도구로 사용하셔서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어 두셨다(갈 3:29).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선악과나무, 뱀의 유혹, 여자의 불순종,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죄가 온 세상에 들어온 것, 예수님이 죄인의 육신을 입고 인간 마리아의 몸을 빌려 아기로 탄생하신 것, 골고다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작성하시고 묵시로 이루시고 그 하늘의 묵시를 이 세상에 하나님의 역사로 확 펼쳐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첫 인간 아담이 대면한 선악과는 먹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순종과 불순종을 시험하기 위한 의도로 주신 것이 아니다. 또는 아담이 자유의지를 납용하여 잘못된 선택으로 금지된 과실을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침해가 되어 이 세상에 죽음이라는 심판을 내리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선택과 행함에 따라 축복과 심판을 행사하시는 피동적인 하나님이 되시며, 창세전 이루어놓으신 하나님의 뜻과 언약은 무산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의 선택에 따라 하나님은 수시로 자신의 계획과 뜻을 바꾸셔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여전히 이와 같은 잘못된 설교와 해석으로 선악과에 대하여 많은 곡해들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불순종을 아시면서도 선악과를 주시고 사단의 유혹을 허락하셔서 인간의 범죄를 묵인하신 하나님의 책임이 더 크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선악과를 따 먹은 불순종 때문에 죽음의 저주를 내리셨다면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이외 같이 육의 개념으로 인간의 시각과 추리와 상상과 인식 속에 집어넣고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원대하신 뜻, 창세전부터 우리를 위한 하늘의 뜻을 곡해하게 되며 진리의 말씀을 난도질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이루신 묵시의 각본대로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일으켜서 점진적으로 친절하게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여러 가지 모형으로 도구로 통로로 수단으로 방법으로 인간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나라를 보여주시고, 당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며, 실체로 체험하게 하시며, 영으로 실상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로운 창조를 일으켜 하나가 되는 증거를 주신다. 처음부터 하늘나라 묵시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선한 뜻을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셔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당신의 자녀들과 하나가 되어 영원을 사는 선한 의도를 나타내시기 위해 만물을 상대적으로 지으시고 서로 반대로 반응하며 영향을 주며 공존하게 하셨다.

 

그리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늘나라에서 정하신 선한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시는데(롬 8:28) 목적을 두셨기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라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나타내시고 이루시는데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이 주신 역할에 완전하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이는 피조 된 만물이 각자 자기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완수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데 완벽하기에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6번이나 매번 창조에서 반복하여 선포하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사람을 마지막 여섯째 날에 완전한 성인으로 만드시고 그 어떠한 과정을 걸치는 것이 없이 그 다음날 7곱째 날에 눈을 뜨자 곧바로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첫 사람 아담은 아무런 노력도 공력도 대가도 조건도 없이 오직 은혜의 덮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누린 자로 창조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세상과 역사는 하늘에서 묵시로 이루어 놓으신 영의 실상을 나타내고 드러내고 설명하여 소유하게 하시는데 목적을 두셨음을 성경은 반복하여 점층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타락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저주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회복되어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최상의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분이 주시는 영적 계시로, 그분이 주시는 믿음이라는 선물로, 말씀과 성령의 가르침으로 깨닫고 이해하며 실상으로 내 안에서 구원과 생명이 이루어지는 열매를 먹게 되는 은혜를 입는 것이다. 이르시기를:

사 46:10-11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