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5:18-21) [2]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3. 11. 14. 00:32

롬 5:18-21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문자 그대로 죄를 짓도록 동기를 유발시켰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율법을 주신 목적이 죄를 깨닫게 함이라고 반복하여 강조한 바울 자신의 주장과 성경의 말씀과 충돌이 된다. 율법은 모든 인간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오직 당신이 택한 백성들에게만 주심으로, 첫째는 그 죄악의 심각성과 파멸성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긍휼을 구하는 회개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는 역할로 주신 것이며, 둘째는, 그렇게 고속도로 죄를 향해 달리는 패역한 인간들을 당장 심판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주홍같이 붉은 죄악으로 사망에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로 참아주시고, 매를 들어 깨우쳐 주시고, 오직 은혜로 그 죄악들을 덮어서 간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넘쳐흐르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 위함이며, 마지막으로 진정한 의도는 율법을 통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믿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하시기 위함이며,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의 범죄를 통하여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략임을 바울은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0-21).

바울은 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인가?

(1). 율법이 들어온 것은 인간 자체가 범죄를 더하는 죄 덩어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첫 사람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있었으며 선악과를 따 먹은 죄의 책임을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사단 뱀에게 전가시켰다. 이로보아 인간의 육에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애통함과 가난한 심령이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을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사 48:8),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라”(시 51:5)라고 육은 어머니 뱃속에서 형성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죄를 떠날 수 없는 철저한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육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거역하며 하나님처럼 행서 하려는 망상에 빠진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향하여서는 그 영이 죽고, 세상을 향하여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아'가 살아난 '마귀의 후손'들이다.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모든 간섭에 자신을 몽땅 맡기는 자기 부인의 자리로 내려갈 수가 없다. 인간의 죄성을 뼈저리게 파악한 바울의 말대로 육은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 3:10-15)함과 같이 철저하게 패역한 죄인이다.

이 땅의 티끌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육체에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영으로 받으시는 그 어떤 의도 선도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육의 행위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죄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망령된 미친 짓이라고 바울은 지적하고 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롬 2:23).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율법은 인간들의 죄 된 상태가 바로 열린 무덤처럼 죄가 목구멍까지 차고 넘친 상태이며, 그 열린 무덤에서 쏘다져 나오는 것은 오직 추악하고 사람을 죽이는 악독뿐이라는 것이다(롬3:13-18). 모태에서부터 전신에 차 있는 그 죄의 실체를 바라보라는 기능으로 율법을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율법이 인간에게 접촉되자 인간 내면에 숨겨져 있는 더럽고 추악한 모든 죄악들이 수면으로 떠올라 심히 죄 되게 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율법)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5:20).

모든 육체는 오직 이 땅의 것만을 추구하는 탐심을 품고 있으며 그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롬 7:7 공동번역). “나는 전에 율법이 없을 때에는 살았었는데 계명이 들어오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가져다 주어야 할 그 계명이 나에게 오히려 죽음을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롬 7:9-10). 바울은 율법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였을 때에는 자신의 의가 살아서 열심에 특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율법을 깨닫게 되자 그 행위의 열심이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이며, 자신의 의를 쌓는 망령된 어리석은 짓이며, 그러므로 자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배설물이며, ‘죄와 허물로 죽은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을 열심히 지킴으로 살았다고 인식하였는데, 그 행함이 오히려 죽음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롬 7:10). 그리하여 율법은 열심히 지키는 자에게는 “죄와 사망의 법”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극치에 달한 패역함과 불가능함과 무력함과 무지를 완전히 나타냄으로,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며”(롬 5:20), 목적은 철저한 죄인임을 보여주고 인정시키기 위함이며, 풍성한 은혜의 복음을 나타내는 역할로 주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0-21).

(2). 죄는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

“죄는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며”(5:13), 그 죄가 온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간다는 것을 노아 홍수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으로 똑똑히 보여주셨다. 그렇게 멸종당하는 심판을 받았음에도 인간은 온갖 사악하고 추악한 죄를 멈춘 적이 없었으며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5:13). 죄인으로 태어났기에 자신들이 얼마나 추악하고 사악하고 지독한 독사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신들의 불가능함과 무능함과 무지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신들의 유익을 챙기며, 가치를 매기며, 자존심을 세우며,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한다. “죄악 중에 출생하여” 온갖 죄악들을 다 행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사악하며 사망을 불러온다는 심각성을 깨닫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 인간이다. 즉 인간은 마음에 죄를 품고 있기에 매일 매순간 죄를 생각하고 조작하고 계획하며, 은밀하게 위장하고 포장하여 서로를 속이며, 불의한 죄악들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은밀한 속임수까지 만들어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한’ 철저한 죄인임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르기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 7). 육적 본능이 바로 자아 욕망과 탐심과 타락이며, 그 본능적 상태가 바로 열린 무덤이다. 이르기를,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3-18)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선포한 것이다.

바울은 율법이 가입하여 죄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음에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죄에 죄를 더하여 스스로 멸망을 자초함으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롬 4:15)라고 말한다. 율법이 심판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신 법은 거룩하시고 의롭고 선하심으로(롬 7:12)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완성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이 죄 된 행위로 지켜서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선한 율법에 먹칠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율법에는 구원이 없음으로 율법이 가리키는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쓴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선한 율법을 악용하여 온갖 외식적 행위로 쌓아놓은 거짓된 의를 고수하기 위해 은혜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는 악행까지 가게 됨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한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숨겨져 있는 모든 죄악들을 몽땅 끄집어내어 철저한 악마성을 가진 죄인임을 폭로하여 죄를 더욱 죄 되게 함으로 전혀 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저주와 사망의 심판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임을 바울은 제시한 것이다(롬 3:19-20). 즉 인간 자체가 바로 죄 덩어리로 도저히 살 가망이 없음을 폭로하여 증명하는 역할로 율법이 가입한 것이며, 범죄를 더함으로 정죄와 심판의 대상임을 인정하게 하는 기능으로 주셨음을 제시한다. 그래서 율법을 받은 모세의 직분을 '정죄의 직분'(고후 3:9)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렇게 죄인이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어 정죄와 심판아래 놓여 있었기에, 예수님이 우리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율법의 심판을 받아내시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이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라고 말한 것이다.

(3). 율법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내려 주신 의롭고 선한 법이다

율법은 이 세상 온 인류에게 내려주신 법이 아니라, 오직 당신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내려 주셨다. 즉 율법은 이 세상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법이 아니며, 또한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짓는 도덕이나 윤리에 어긋나는 죄들을 금하기 위한 의도도 아니다. 율법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는"(5:13)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죄가 무엇이며, 그 죄의 심각성을 깨우쳐주셔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깨달음을 주심으로 그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으라는 몽학선생의 역할로 주셨기에, 바울은 율법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법(롬 7:12)이라고 제시한다. 율법은 절대로 지켜 행하여 의로운 자로 변신하라고 주신 법이 아니기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라고 아주 명백하게 확실하게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들이 죄라고 규정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와 같은 사람에게 짓는 죄에 대한 형벌은 율법 있기 전에도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을 만들어 죄를 정하고 벌을 주는 행위를 하여 왔다. 하지만 율법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해당됨으로 그 법의 궁극적인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함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믿어 오직 은혜로 구원을 입혀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배려였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을 2중적으로 말하고 있다. 첫째 – 죄와 사망의 법: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며”(5:20),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는”(롬 7:13) 의도로, 모든 인간은 철저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심각성을 증명하여 깨닫게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함이라”(롬 3:19), 즉 모두가 “사형에 해당되는”(롬1:32) 심판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도로 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 이라고 부른 것이다. 둘째 - 선한 법: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의 백성들에게만 죄를 깨닫는 율법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당신의 백성들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살려내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믿어 은혜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는(5:21) 복음을 주시기 위한 의도임을 제시한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롬 7:12)라고 말하는 것이다.

(4).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이 죄에 죄를 더하는 극치에 도달한 범죄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 율법으로 죄인의 정체성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애통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주신 신령한 법을 육으로 지켜 행하여 의인이 되겠다고 도전하며, 죄인이 의인 행세를 하는 온갖 가증한 범죄로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이다. 이르기를,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3-24). 율법과 제사를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마음과 그 속에 담아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힘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의를 세우는데 열심을 내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들을 열심히 행하여 왔다. 말씀하시기를,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느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1-1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율법지킴과 제사놀이를 악하다고 하시고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역겨워하셨으며, 그들을 향하여 멸망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소돔과 고모라’로 선언하셨다(사 1:10).

구약 마지막 시대 말라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극도에 도달한 타락을 지적하셨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말 1:7-8). 이와 같은 그들의 그토록 패역한 율법지킴과 제사 놀이에 진노하셨다.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말 2:3). 즉 너희 얼굴에 짐승의 똥을 발라 너희 악행을 드러내어 망신당하게 하고 너희를 제하여 버리시겠다는 심판을 선고하신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패역한 율법 지킴과 가증스러운 제사와 가면을 쓴 종교 놀이에 더는 참을 수가 없으셔서 성전 문을 닫게 하심으로(말 1:10), 4000여년이 넘도록 지켜온 율법의 구약 전체가 율법으로 정죄당하고 심판받은 역사로 끝남으로 율법 지킴으로는 절대 구원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그럼에도 목이 굳은 이스라엘의 후손 유대인들은 신약에 와서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집요하게 율법과 제사지킴에 목숨을 걸고 있었다. 참 희생제물과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들 눈앞에 계셨음에도 회개하고 영접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사를 구실로 삼아 자신들의 야망을 채우는 정치적 소굴로 만들어 놓고 유익과 돈을 챙기는 성전 마당을 뒤엎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진노하셨다. 목이 굳은 그들은 심지어 율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죄인’이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간 것이다. 율법이 그들에게 주어지자 그 선하신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죽이는 독사가 된 것이다. 이를 바울은 율법이 그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어떤 유익을 준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죄에 죄를 더하는 계명이 되어 결국 그들이 받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은’(롬 2:12) 자들로 구원이 없음이 증명된 것이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나니”(갈 3:10).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며”(히 7:19),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롬 3:19-20),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갈 3:10) 라고 복음을 나타내시기 위해 철저한 죄인임을 드러내는 역할로 율법을 주셔서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정확하게 제시한 것이다. 즉 은혜의 복음을 땅 끝까지 넘치게 주시기 위해(5:20)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깨닫지 못하도록 눈과 귀를 막았으며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사 6:10, 44:18). 바울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지혜와 비밀을 맡은 자로서(고전 4:1) 그 비밀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5). 율법을 지켜 의로운 민족으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죄에 죄를 더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왔다.

율법은 인간 자신의 정체성과 죄를 깨닫게 하는 의도로 주셨으며(갈 3:19-20),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라고 확실히 제시하고 있다. 즉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다 더러운 걸레이며 거름더미와 같은 배설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지킬 수 없는 613가지의 상세한 조항들을 계명으로 주셨다. 그럼에도 지킬 수 있다고 열심을 부리며 하나님을 인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며 하나님의 창조 원리와 원대한 뜻을 거역하며 값없이 죄인에게 구원을 입혀주시는 은혜를 가로 막는 망령된 짓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4000여년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패역하여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들만 줄기차게 행하였다. 이방인들이 짓는 죄 위에,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며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첫 계명으로 명하였음에도 줄기차게 이방신들을 섬겨왔으며, 간음하지 말라고 명하셨음에도 끊임없이 세상과 간음하였으며, 희생 제사를 그만하라고 말씀하셨음에도 신약에 와서도 희생 제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열심히 희생 제사를 드렸으며, 살인하지 말라고 명하였음에도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들어오자 그 율법으로 더욱 사악한 죄악들을 범함으로, 그들에게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5:20) 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도 율법을 지켰다고 주장하는 그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 우맹이요, 소경들’이라 부르시고 그들의 외식을 일곱 가지 화로 선포하시고(마 23:1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심판을 선고하셨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사악한 죄악들을 철저히 폭로하셨다. 그들은 선택받은 민족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율법과 제사를 받은 것을 특권으로 자랑하며 우월성과 자존심을 세우며, 외식된 행위로 구원을 받은 구별된 족속이라 기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한 것이다. 그들은 율법이 제시하는 진리는 저버리고,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며 영혼을 죽이는 숨 막히는 외형적인 세부 규칙들과 유전들을 율법으로 만들어 놓고 율법을 지켰다고 거짓으로 자신들의 의를 내세워 사람들로부터 의인이라 칭함을 받아 영광과 기득권을 얻는 방패로 율법을 악용하였으며,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나누어주는 하나님처럼 행세하며, 가난하고 연약하고 소외되고 비천한 자들을 ‘죄인’이라 정죄하는 영혼을 죽이는 악행들을 행하며, 위선과 거짓 의와 교만을 자극하는 종교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바로 ‘삯꾼’이며, 양을 물어가고 헤치며(요10:12),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요10:10) 악한 자들이라고 정죄하신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며”(마 23:25),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마 23:27) 전형적인 외식 자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질하는’ 좀 먹는 벌레이며, 으뜸이 되고자 ‘세상과 간음하는’ 간음 자들이며, 군대 귀신들린 광인과 같이 쇠사슬로 묶여놔도 감당이 안 되는 목이 굳은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저주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지옥의 판결을 어떻게 피하겠느냐”(마 23:33). 사도 바울도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는”(롬 2:17) 너희가 사실은 도적질하는 자들이며, 간음하는 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이며,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이며, 이방인에게 하나님을 모독하게 하는 장본인이다(롬 2:21-24)라고 강력한 비난을 한 것이다. 자칭 율법을 지켜 행하였다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범한 자’로 낙인을 찍어버림으로, 율법이 가입하여 너희를 의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죄로 심히 죄 되게 하여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롬 2:12)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택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여, 율법과 제사를 받았다 하여, 그들이 지켜 행함으로 죄를 적게 짓고 의인으로 변한 일은 없었으며, 또한 구원에 이르는데 유익이 되는 일도 없었으며, 오히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었고, 그들의 마음이 돌같이 강퍅하여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게 하였다(롬4:15)라고 사정없이 질책한 것이다. 그야말로 율법이 그들에게는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을 살해하는 극도로 패역한 죄인으로 더는 가망이 없는 독사로 정죄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의 극치에 도달한 패역한 행위를 ‘마귀의 행사’라고 정죄하고,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 온갖 더러운 것들의 총집합인 ‘무덤’이며, 부정한 2천 마리의 돼지 떼가 들어가 있는 목이 굳은 쇠사슬로 묶어나도 감당이 안 되는 귀신들린 자들로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이르기를,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롬2:5)라고 도무지 알아 듣지도, 깨닫지도, 회개하지도 않는 고집으로 ‘불의’를 쌓아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옴을 선고한 것이다.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며”(롬 2:4), 극악무도한 악행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더욱 창궐하여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과 예수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며 죽이는 엄청난 죄악들로 스스로 심판의 근거를 쌓고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적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바로 율법에 속하여 ‘율법의 종노릇하는’ 저주 아래 있는 자들임을 반복하여 지적한 것이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갈 3:10-11). 그들에게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복음이 필요 없다면 구원의 약속은 페하여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4-15)라고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5:20),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롬 7:13)라고 지적한 것은:

첫째는, 율법은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회개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을 구하라는 의도로 가입한 것인데, 유대인들은 선하신 율법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아 영혼들을 죽이는 망령된 일들을 한 것이며, 자신들의 영광과 기득권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살인하는 ‘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강퍅한 죄악을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폭로하였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1-53). 세례 요한도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마 3:7-10) 라고 실상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며 이미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선고한 것이다. 율법을 받은 백성이라 자랑하면서 율법을 범하는 망령된 자부심에 대하여 바울은, ‘율법을 자랑하는 너희가 바로 율법을 범한 자들이며, 할레 당이라 자칭하는 너희가 바로 무할레 당이며, 유대인이라 자랑하는 너희는 유대인이 아니다’(롬 2:23-25)라고 못을 박은 것이다.

둘째는, 율법을 주셔서 유대인들의 ‘범죄를 더하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나타내어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주시기 위함이었으며, 유대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은혜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온 세상에 전파되는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한다.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기로 선택된 자들의 수를 채우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복음을 거절하게 하셨다는 놀라운 말씀이다. 즉 율법과 제사에 목숨을 걸도록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범죄를 더하게 만들어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게 함으로, 그들의 거절함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넘치도록 은혜를 쏟아주기 위함임을 제시한다(5:20).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롬 11:11-12). 첫째는, 그들의 만행과 실패를 통하여, 인간의 거짓된 어리석음과 무지와 무력함이 확인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과 용서와 인내와 자비와 긍휼하심과 의로우심이 천하에 드러남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신실하시며 진리이시며 구원과 생명이심이 증명된 것이다. 둘째는, 세상 끝까지 흩어져 있는 당신의 참 백성을 당신의 품안으로 끌어 모으시는 은혜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의 악행을 선으로 나타내셔서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고 충만함이 되었으니 “주의 말씀은 옳고 주의 심판은 정당하시다”(시3:4 / 롬 3:4)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예정 섭리를 “비밀”(롬 11:25)이라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