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1:1-2) 하나님의 복음 / 창세부터 구약에서 제시된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5. 4. 24. 09:58

롬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6~17).

하나님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와 능력이다. 이 복음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를 보내시겠다는 언약과 약속들을 기록한 구속사이다. 즉 창제 전부터 하늘나라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원 사역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언약과 약속들을 기록한 구원과 생명에 관한 진리의 말씀이며, 바로 아버지 사랑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40)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계시하는 구속사이기에 바울은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1:2)라고 명확하게 아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이다고 선포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창세전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계획하셨고, 묵시로 이루셨으며, 창세기 첫 서두에서 ‘빛’으로 임재 하셔서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는 능력으로 개시된다. 그리고 신약 요한복음에서 그 ‘빛’과 ‘말씀’이 곧 예수그리스도이시며,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 없이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증거하고 있다 (요 1:1-4). 사도 바울도 증거하기를,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계셨느니라” (골 1: 15-17). 만물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분 안에 있게 하신 것은, 창세전 하늘나라에서 뜻하시고 묵시로 이루어 놓으신 구원 사역을 이 땅에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를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는 십자가 복음은 창세전 하늘나라 묵시에서 이미 완성된 일이며,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 주 예수님이 다윗의 혈통으로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십자가 희생으로 성취하셨다. 삼위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이루셨기에 하나님의 복음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성경에서 어떻게 계시되는가?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천지창조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복음

창세전 묵시로 완성하신 구원의 뜻은 천지 창조로부터 우리에게 계시된다. 즉 하나님은 태초로부터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며, 창세전 계획하신 하늘나라의 실상을 이 땅에 나타내시며 자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기 위한 의도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존재하고 장악되고 있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사 43:7).

천지창조 전에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 질서가 없는 ‘혼돈’, 빛이 없는 ‘흑암’을 먼저 있게 하셨다. 그 의도는 하나님의 창조는 무에서 유로, 혼돈에서 질서로,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능력의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빠져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빛과 생명으로 충만한 당신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라고 선포한다. 창세전, 아직 빛이 임하기 전, 우주의 원시상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었으며,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 2)라고 하나님의 영이 먼저 운행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우주를 덮는 은혜의 형국으로 천지창조가 시작됨을 계시한다.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가 덮어지지 않으면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죽음의 상태, 없음의 상태임을 먼저 보여주심으로 이는 장차 죄와 죽음에 처해 있는 죄인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 임재 하셔서 생명으로 살려내시는 구원의 복음을 미리 계시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창조 기사의 복음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 1-4). 베드로도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미리 정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미리 정하셨고” (벧전1:20). 바울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엡 1:4-5)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천지창조 전부터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된 만물에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복음’을 담고 있다. 이 역사 자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이며,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과 약속들을 근거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과 섭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오직 빛과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빛과 생명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 땅에 먼저 죄를 상징하는 어둠과 공허와 죽음들을 있게 하셨으며, 이 세상은 온통 죄악으로 죽음이라는 종말로 달려가는 세상이며, 그럼에도 죄와 사망으로 던져진 이 세상 속에 당신의 택정함을 입은 백성들이 있으며, 그들에게만 은혜를 입혀 구원과 생명을 주시는 복음을 계시하셨다. 즉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진리를 멸망으로 정하여진 이 가시적인 세상 속에 감추어서 오직 당신에게 속한 자에게만 보여주시고 믿음을 주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당신의 품속에 넣어서 당신의 나라로 들어 올리신다. 그래서 복음이다. 이 복음을 창세전부터 감추어졌던 비밀, 하나님의 지혜라고 부른다 (롬 16:25-27).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전 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 1: 26) 함과 같이 하나님의 복음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내려온 비밀의 경륜이며, 비밀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1). 예를 들면,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동일한 하나님의 복음을 들었음에도 제자들은 깨닫고 믿음으로 구원과 영생을 받았으나, 바리새인들을 깨닫지 못하였고, 결국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스스로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즉 복음은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 (엡 1: 4)을 받은 자들에게만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밭에 숨겨진 보화의 비유에서 상세히 설명하여 주셨다.

‘밭에 감춰진 보화’의 비유 (마 13:44)에서 밭은 이 세상을 말하고, 보화는 천국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이 세상에 드러내어 모든 사람에게 보이는 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감추어져 오직 택함을 받은 자에게만 보여주시고 소유하게 하신다. 즉 천국의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소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국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는 자는 이때껏 자신의 열심으로 쌓아놓은 이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몽땅 버리는 그 대가로 생명의 보화를 얻게 됨을 말씀하신다. 이 비유에서 주님은 보화를 가진 밭주인을 무지하여 보화를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들로 묘사한다. 그들은 긴 역사 동안 자신들을 구원하여 주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고, 약속대로 메시아가 그들 앞에 나타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나타나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계시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극구 대적하고 핍박하여 죽이려는 음모까지 꾸미고 있었다. 반대로 그 밭에 숨겨져 있는 보화를 알아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전부를 다 버리고 그 보화를 소유한 자를 개처럼 취급받은 이방인으로 묘사한 것이다. 오직 그들에게만 복음을 알아듣고 메시아를 알아보는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복음을 소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후 생육 번성과 땅 정복과 다스리는 복을 언약하셨다. 그리고 그 풍성한 복은 오직 하나님 의존자로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유지되는 것으로 정 하셨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이 곧 생명이며 진리이며 능력이기 때문에 그분은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거역은 곧바로 생명력에서 끊어져나가는 죽음이다.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은혜 안에서 말씀에 대한 순종이 곧바로 영생임을 알게 하기 위해 ‘선악과’에 ‘먹지 말라’는 계명을 붙여 주셨다. 그리고 뱀의 유혹과 인간의 타락을 허락하심으로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적 존재가치를 나타내어 보여주고 깨닫게 하심으로 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늘나라의 왕국을 누리게 하기 위한데 있었다. 실상은 생명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주시기 위한 언약이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명을 어길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 비천한 티끝로 육을 입혀주셨다. 흙을 입은 육신은 실상이 아니기에 반드시 벗어져야 하므로 육신의 ‘죽음’이 선포된 것이다. 오직 영만이 영원한 실상이며 영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만이 신랑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영원한 나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그러므로 아담에게 내려진 “먹지 말라"라는 첫 계명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 순종과 불순종을 시험하기 위한, 또한 인간의 자유 선택에 따라 복을 혹은 심판을 주시기 위한 시험의 미끼가 아니다. 계명을 주신 의도는, 육신의 무익함과 실체를 깨닫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옆에 있는 생명나무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동시에 주셨다. 그러나 유독 선악과 실과만 먹지 말라는 계명을 붙이고, 그 외의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자유롭게 먹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흙을 입은 연약한 육은 유독 “먹지 말라"라고 명한 선악과나무의 실과에만 관심과 탐심을 가지고 되었고, 육의 본능을 따라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와는 아직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에 이미 육신의 본능을 따라 먹고 싶은 탐욕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으로 육적으로 혼적으로 지적으로 유혹을 받고 있었으며 죽을 것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다. 이것이 이 땅의 티끌로 육신을 입은 인간의 한계이며 실제 모습이다.

흙을 입은 육으로는 영생을 주시려고 바로 선악과 옆에 주신 생명나무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영의 생명은 육신으로는 보이지도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와는 오히려 죄와 죽음을 유발하는 선악과나무가 더욱 먹음직스러웠고 탐스럽고 지혜로워 보였다. 인간은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다는 것을 증거한 것이다. 우리의 혼은 주인 되시는 영의 인도와 말씀이 없으면 육의 정욕과 욕망대로 행함으로 육신을 ‘죄의 종’, ’마귀의 노예’(롬 6:16-20)라고 부른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6-8). 인간은 육이 연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어 선악과를 먹고 사망에 이르렀기에 흙을 입은 무익한 육을 벗고, 오직 믿음으로 은혜를 입어 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살 수 있는 생명나무를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직 죄에 삐지기도 전에 선악과나무를 주시고 ‘먹지 말라’는 계명을 먼저 주셨다. 만약 인간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면 ‘하지 말라’는 계명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계명을 주셨다는 것은, 그 법을 지킬 수 없을 경우 반드시 심판이 있음을 말하며, 실제로 땅의 티끌로 만들어진 연약한 육신을 입은 아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음으로 죄에 빠지게 되었고, 그 죄의 결과 죽음이라는 심판이 내려진 것이다. 첫 계명은 지키라고 주신 계명이 아니라, 육신으로는 지킬 수가 없음으로 이 세상 땅에서 태어난 육신은 반드시 벗어야 하는 죽음을 통과하여야 하며, 반드시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만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살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와 죽음에 빠진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다시 살리기 위해 죄 없는 한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하시고 그 양의 가죽으로 범죄 한 아담에게 옷을 지어 입히셨다. 이는 장차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희생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가 흘린 피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인간에게 내려진 지킬 수 없는 계명을 페하시고, 오직 은혜의 덮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입혀주실 것임을 언약하셨다. 그래서 하와를 ‘산자의 어미’라 칭하여 주셨다. 반드시 둘째 아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인간은 비로소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를 벗고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의 생명을 입게 됨을 나타내셨다. 첫째 아담을 주신 것은 둘째 아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구원과 영적 생명만이 영원하다는 복음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아벨의 희생제물에서 계시하신 하나님의 복음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자 이내 자신들의 실체를 알아보는 눈이 열리게 되었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라고 하신 하나님의 '선'을 수치로 인식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힘으로 그 수치를 가려보려는 헛된 수고와 저주의 고통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직 후손이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두 종류로, 즉 땅에 속한 ‘사단의 후손’과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를 ‘여자의 후손’이라 부르시고 이 둘을 완전히 분리하셨다. 이제부터의 역사는 이 두 부류로 구별되고 분리되며, 오직 창세전 택함을 받은 여자의 후손만 '없음'의 티끌에서 ‘있음’의 아들로 당신의 나라로 끌어올리시는 복음이 시작됨을 언약과 약속으로 제시하여 주셨다. 그리하여 타락한 아담에게 구원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구원의 언약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언으로 임한 것이다 (창 3:14-15). 그리고 그 구원의 복음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 주신 것이 바로 마귀의 후손인 가인이 하나님의 아들로 등장한 아벨을 죽이는 살해 사건이다.

여자의 후손으로 택함을 받은 ‘아벨’은, 이름 그대로 ‘없음’ ‘아무것도 아닌 자’로 태어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린 양이 되어 하나님께 제물로 받쳐진 예수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인은 처음부터 하나님 구원사역에 악역으로, 죄악을 상징하는 마귀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 태어났다. 하나님은 아담의 첫 후손에게 제사법을 주심으로 제사로 구원의 언약을 맺으심을 보여주셨다. 아벨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어린 양을 제물로 드렸으나 세상 가인에게 참수 당함으로 아벨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받쳐진 것이다. 이는 장차 예수님이 희생 제물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세상으로부터 멸시와 조롱과 핍박과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이 세상 죄인들에게 살해당하게 됨을 미리 보여주신 복음의 계시이다. 반대로, 가인은 처음부터 이 땅에 속한 마귀의 후손이었기에 그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제물은 가시와 엉겅퀴로 저주받은 이 땅의 소산, 즉 자신의 노력과 수고와 땀으로 힘써 거둔 육신의 배를 위한 소산물이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이 준비하여 놓으신 어린 양의 제물만 받으신다. 절대로 가시와 엉겅퀴로 저주받은 이 땅의 것들을, 즉 이 땅의 가시와 엉겅퀴와 방불한 죄인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받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 제사를 받으신 이유를 단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히 11:4). 여기에서 말하는 ‘믿음’은 아벨이 ‘믿어서’ ‘믿음이 있어서’라는 뜻이 아니다. 아벨이 드린 ‘예물’로 인하여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받은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예물로 정하여 놓으셨다. 때문에 아벨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번제할 어린 양" (창 22:8)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에 아벨이 드린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은 오직 어린 양의 제물만 받으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 제물’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제물만 받으시며, 오직 십자가 피의 공로만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신다는 복음이다. 그리하여 아벨은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예물을 드림으로 ‘그 예물에 의해’ 의로운 자로 인정 받은 것이다. 이는 성도는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희생 제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의 복음을 미리 계시하신 것이다. 이를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은 성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없음’에서 ‘있음’이 되어 영생으로 옮겨지며, 반면에 ‘있음’의 존재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이 땅에 속한 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노력으로 공허에 무엇인가를 채우며, 혼돈된 곳에 바벨탑 같은 것들을 열심히 쌓아서 자신들의 가치와 업적으로 하늘에 도달하겠다고 하지만, 그 결국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가시와 엉겅퀴로 멸망을 자초하게 됨을 가인의 후손들이 쌓은 바벨탑 사건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셨다.

노아 방주가 계시하는 하나님의 복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정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 하나님께서 이 땅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을 만큼 세상이 타락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이 세상에는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아는 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도 없었으며, 하나님 앞에 모두가 죄의 대가로 심판을 면치 못하는 멸망에 합당한 자들임을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물 심판은 어느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었으며 숨이 붙어있는 모든 혈육에 관한 심판이었다.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며 죄인들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용서와 긍휼과 자비와 인내의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120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방주를 짓게 하시고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와 심판을 전파하는 회개와 구원의 은혜 기간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노아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회개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으로”(창 6:5)함과 같이 그 죄가 날로 성행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드린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았다. 노아가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의로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지키는 신앙인으로 의롭게 살아서가 아니다. 하나님의 택정함을 입은 여자의 후손으로 구원의 언약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입혀졌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된 백성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다. 즉 노아는 가인의 후손이 아니라 구원의 언약을 받은 셋의 후손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자손을 위한 구원의 언약을 맺으셨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6:17-18). 즉 하나님은 오직 당신이 친히 택한 자와 구원의 언약을 맺는다고 말씀하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시 89:3). 그래서 복음이며 은혜이다.

이와 같이 노아는 조상 아담으로부터 약속받은 언약을 따라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믿음으로’ 심판의 경종을 믿고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창 6:22). 분명 “이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라고 단정을 내라고 있다. 그럼에도 노아를 의인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택함을 받은 구원의 언약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노아를 의인이라 칭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이르기를,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 6:8-9).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서 의인이요 완전한 자로 칭함을 받은 것이며, 이것이 노아의 족보라고 소개하고 있다. ‘노아의 족보’는 창세전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족보를 가리킨다. 노아가 의인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여자의 후손’이라는 족보에 구원의 언약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먼저 입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행위나 업적으로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약속 받은 구원의 족보, 즉 여자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혜를 먼저 입었으며, 때문에 노아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인도를 받아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택정함을 입어 은혜를 받은 ‘노아 족보’의 특권으로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된 노아의 복음 이야기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종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 11:7). 노아는 그의 족보로부터 약속받은 복음으로 구원받은 것이며 ‘믿음을 쫓는 의의 후사’가 된 것이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복음

노아 구원의 방주 복음은 출애굽기로 이어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으로 계시된다. 하나님의 택정함과 은혜를 입은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 안에서 온 인류가 멸망당하는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이며, 그 구원의 복음이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에게 입혀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택함을 받은 모세가 태어날 때 모든 히브리 사내아이들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히브리 사내아이들과 함께 저주의 물에 빠져 죽어야 하는 그 운명에서 모세만 방주에 넣어서 살려내신 것이다. 노아의 구원의 방주가 모세로 이어진 것이고 이스라엘로 이어진 것이다.

방주에서 건지심을 받은 모세는 이스라엘 지도자로 세워졌으며, 이스라엘이라는 거대한 민족을 애급에서 빼내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중보자로 서게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빼내시는데 마지막 애급을 떠날 때 유월절을 지내게 하셨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계시하는 구원의 절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심으로 죽음을 넘어가게 하셨다(출 12:13). 그 유월절 어린 양이 바로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이시다. 이는 장차 유월절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생명을 얻게 됨을 계시하신 복음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그 유월절 어린 양이시며,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말씀하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그 어린 양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구원받아 새 생명을 얻게 됨을 미리 말씀하셨다. 그렇게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백성들을 홍해에서 애급의 더러운 수치를 깨끗이 씻어내는 물세례를 주신 후, 오직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는 광야로 인도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그리고 점층적으로 좀 더 큰 화면으로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보여주셨다. 노아의 방주, 모세의 갈대 상자, 유월절, 출애굽 홍해 사건, 광야 40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