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7:5-7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바울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는 복음의 확신을 주기 위해, 심도 있게 내면을 파고들어 “죄”와 “율법”을 가지고 대조적으로 은혜와 믿음의 복음을 변증하고 있다. 1-3장: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3-4장: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 5-6장: 옛사람 죄인은 예수와 합하여 함께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특히 6장과 7장에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율법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도 예수와 함께 죽었고, 장사를 지냈고, 무덤 속으로 들어갔으므로, 우리를 주관하던 죄와 법이 죽었다고 반복하여 강조한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6:4),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7:6). 성도는 이와 같이 죄와 법에 대하여는 철저히 죽은 자요, 예수 부활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영생”의 열매를 맺었다(6:22-23). 그럼에도 여전히 율법 저주 아래 묶여 있어 스스로 종 되기를 자처하며 복음을 멸시하고 곡해하는 자들이 있으니, 바울은 그들을 한탄하여, ~ 율법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을 주었는가? ~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가? ~ 율법을 지켜 행하여 생명을 얻었는가? ~ 율법이 쏘는 것이 죄와 사망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율법은 생명을 주는 은혜의 수단이 아니라, 죄와 사망에 이르는 법임을 변론하며 확증하기 위해 7장에서 집중적으로 ‘율법’, ‘계명’, ‘법’, ‘의문’이라는 문구를 거의 30회나 언급하면서 율법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우리가 육신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하나님은 처음부터 가장 비천한 흙을 택하셔서 육체를 만드시고,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을 거처로 정하셨으며, 타락한 속성을 따라 “가시와 엉겅퀴로”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와 땀으로 육신의 탐심을 채우는 죄를 쌓아서 사망에 이르게 하셨다. 그러므로 육신에는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그 어떤 선이란 아예 없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선포한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 영의 거룩함과 의로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드러내시고 이루시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이 세상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있게 하셨으며, 인간을 이 땅의 티끌로 만드시고, 육적 ‘자아’를 추구하는 본능으로 온갖 탐심을 이루어 악을 쌓아서 죽음으로 끝나게 하셨다. 때문에 인간의 육은 어미 뱃속에서 형성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철저한 죄인이며, “모태에서부터 패역한 자”(사 48:8)로 태어났으며, 오로지 육신의 탐심만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며, 자기가 신이 되어 하나님처럼 행서 하려는 망상과 욕망에 빠져 있다. 하나님을 향하여서는 그 영이 죽고, 세상을 향하여서는 육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아' 가 살아서 죄를 행하는 철저한 죄의 종으로 사는 '마귀의 후손'들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육적 탐심과 욕망에 대하여 “저회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3: 13-18),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 3:10) 라고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육신으로 사는 자는 죄의 대가를 지불하게 되며, 율법이 가입하여 죄에 대한 형벌을 요구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7: 5,10).
율법은 사람들의 사악한 죄악들을 몽땅 드러내어 그 죄가 얼마나 패역하며, 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반드시 ‘사망’으로 심판하시는지를 알게 하는 역할로 주셨기 때문에, 율법은 처음부터 죄를 극복하고, 억제하고, 다스려서 의를 세우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바울은 율법을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바울의 말대로 율법은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정죄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법이다. 처음부터 율법은 구원에 이르는 은혜의 수단이 아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율법 아래 나시게 하시고”(갈 4:4-5),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향한 율법의 정죄와 심판을 받아내셔서 우리를 율법에서 속량하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5).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정죄와 심판을 받아내셨다’는 것은, 율법이 죄를 없이 하거나 용서하거나 사하여 주거나 죄에서 구원하여 주는 기능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정죄와 심판을 받아내신 것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에게 쏟아지는 모든 저주와 심판을 받아내셔서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어 주셨다. 그리하여 마지막 선포는 “다 이루었다”이며, 동시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성소 휘장이 완전히 찢어진 것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엡 2:14-16).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자는 죄와 율법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율법이 쏘는 모든 저주와 정죄와 형벌이 철저히 제거됨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롭게 잉태하여 그리스도에게 함몰되는 하나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된 성도를 누가 정죄할 수 있겠는가! 이르기를,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7:6). 즉 율법을 이용하여 죄가 기승을 부려 결국 하나님까지 살해한 그 율법 시대는 철저하게 종지부를 찍었으므로, 이제는 오직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선포이다.
율법 (계명)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첫 계명은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직 죄를 모르는 상태에서 죄를 범하기도 전에 먼저 ‘하지 말라’는 계명을 받았다. 계명을 주셨다는 것은, 그 법을 지킬 수 없을 경우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는 사망의 형벌이 먼저 선포된 것이다. 아직 아담과 하와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에 이미 육신의 본능을 따라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라는 계명으로 주신 선악과에 먹고 싶은 탐심과 지혜롭게 보이는 욕망으로 번민하고 있었으며, 사탄 뱀이 그 기회를 타서 계명을 가지고 죄로 유혹함으로 꼬임에 넘어가 하나님의 계명에 거역하는 죄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이를 바울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다”(7:5)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면,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란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 2장 17-24에서, ‘유대인’이라 칭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 자랑하며, 율법을 잘 지켜 행하였다고 자부하며,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하나님의 뜻도 알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잘 분간할 줄 아는 의로운 자라고 자칭하여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데, ‘너희가 바로 도적질하는 자들이며 간음하는 자들이며 우상숭배자들이며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이다’(롬 2:21-24)라고 단호하게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과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는 도구로 써먹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지적하는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7:5), 즉 인간이 하나님의 선한 법을 육신으로 행하는 행위로 받을 때에는, 죄가 법을 이용하여 인간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온갖 탐심과 욕망을 불러일으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한다는 말씀이다. 율법을 받아 율법을 열심히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고 자칭한 유대인들은 율법을 악용하여 율법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율법으로 주 예수그리스도를 죄인이라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천하에 악인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로 보아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얼마나 무서운 죄를 불러오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의 가르침을 잘 알아 율법을 지켜 행하였다고 자랑한 그들이 오히려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롬 2:23)고 지적한 것이다. 율법이 담고 있는 십자가 구원의 진리는 빼버리고, 율법을 지켜 행했다는 구실로 자신들을 지도자로 또는 선생으로 자칭하여 기득권을 세워 다른 이들을 통제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높여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갈취하는 도구로 둔갑시킨 것이다. 그리고 율법으로 연약한 자들의 잘못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참소하여 영혼을 죽이는 마귀 행사를 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유대 율법주의 행위를 “외식”으로 책망하시고 천하에 공포하시며, 모든 외식하는 율법주의자들에게 “너희에게 화가 있다”라고 일곱까지 화를 선포하셨다(마 23:13-33). 예수님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외식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방탕하는 자여, 불법을 행하는 자여’, 영혼을 죽이는 ‘절도요 강도요’, 마귀의 자식이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는 아주 강력한 어조로 책망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의 율법적 행함과 가르침의 초점이 오로지 자기 영광만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기 위한 ‘외식’에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마 23장).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우리가 육신으로 율법을 행할 때 우리 안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켜 죄의 정욕을 채워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하였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향하여 단호하게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7:6)라고 육신을 지배하던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성령의 지배를 받은 새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으라고 반복하여 외친 것이다. 그럼에도 너희가 여전히 남편 율법에 매여 있으면, 남편이 요구하는 것은 그 법을 지키기 위한 행위이기에 그 남편과 생산해 내는 것이 곧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이며, 그 행위는 타락한 죄인의 육신에서 나온 악이며(창 6:5), 선한 것이 없음으로 당연히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는다고 확실하게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갈이라는 율법을 만나서 생산해낸 것이 바로 사단의 후손을 상징하는 이스마엘이라는 죄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사라라는 은혜의 아내와 생산해낸 이삭은 언약의 아들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언약의 후손으로 오셔서 구원을 성취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입혀주신 믿음의 조상이다. 율법으로 만들어낸 후손들은 이 세상에서 육신이 원하는 온갖 탐심을 이루어 문명의 삶으로 발달하였지만 사무치는 죄악으로 그들이 맺는 열매는 영원한 사망일뿐이다. 하지만 언약의 자손 이삭의 후손들은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고난과 시험으로 핍박으로 도살당하는 양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만이 영원을 사는 하늘나라 영생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 몸에서 사망을 낳게 했다면, 왜 율법을 주셨는가? 그 의도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자녀로 택하시고, 율법을 주셨다. 그 목적과 의도는:
첫째,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며, 그분의 말씀이 곧 생명이시고 진리이시며, 때문에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곧 죄와 사망임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흠이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은 죄를 미워하시며 반드시 죄를 멸하시는 심판 주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며, 그럼에도 당신의 백성들의 끊임없는 범죄를 참아주시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용서하여 주시며, 당신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당신의 백성을 반드시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영생을 입혀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나타내시기 위한 의도로 주셨다고 말한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2-24). 그러므로 율법은, 인간 육체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곧 죄이며, 그 죄의 삯은 사망이며, 그러므로 죄인은 오로지 십자가 보혈의 피로만 은혜를 입어 율법의 심판에서 벗어나 생명을 얻게 됨을 알게 하기 위함임을 제시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둘째는, 인간은 죄로 그 영이 죽어 있는 상태이기에 육체의 실존과 본질적 죄악을 깨닫지 못한다. 가시와 엉겅퀴에서 태어난 인간은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 죄만을 생산하는 죄 덩어리라는 정체성을 알지 못한다. 이르기를,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창 6:5), 즉 인간 마음 상태가 악하기 때문에 육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이며, 그 결국이 바로 멸종당하는 심판임을 노아 홍수의 사건으로 똑똑히 보여주셨음에도 인간은 깨닫지 못하였다. 인간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롬 1:28), 육신의 정욕을 따라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온갖 불의를 행하며, 타락한 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반항하며, 진리를 대적하며, 죄를 깨닫게 하는 선한 율법을 악용하여 외식적이고 거짓된 의를 세워 자신들의 이름을 높여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려는 악행으로 죄를 심히 죄 되게 한 것이다. 이를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롬 10:3)라고 말한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7:8), 즉 율법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선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으며"(롬 2:23), 때문에 ‘율법을 가지고도 죄를 지음으로 그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롬 2:12공동번역)라고 말한 것이다. 이를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사망이라는 열매를 맺게 하였다“(7:6)라고 말한 것이며,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 3:19).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 즉 범죄 한 것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어 심히 죄 됨을 알게 하여 철저한 죄인임을 인식하고 인정시키는 역할로 덧붙여진 것이며, 그럼으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잠시 주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율법은 오직 의인이시며 진리이시며, 법의 당사자이신 예수그리스도만이 완성하실 수 있으시며 또한 패하실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율법 아래 나시게 하셔서 율법의 종으로 묶여 있는 자들을 속량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갈 4:4-5)고 바울은 말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는 말씀 그대로 하나님 자신이 친히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으며, 동시에 우리에게는 율법을 폐기하여 주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였으니”(엡 2:15), 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 하였음이라”(롬 8: 1-2)이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율법이 인간에게 주어진 참 의도와 율법이 제시하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육신으로 받아서 육신으로 행할 때에는,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 육신 안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켜 육의 정욕을 채워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7:5)고 말한다. 그렇다고 하여 ‘율법이 죄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렇수 없다!’ (7:7)라고 변호한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의도로 주셨기에, ‘율법이 없었다면 내가 죄를 알지 못했을 것이고,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탐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7:7).
바울은 자신의 뼈저린 체험으로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 내면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제시한다. 바울이 율법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육신으로 받아들였을 때에는,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해 열심에 특심을 부렸으며, 마침내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빌 3:6)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에서 벗어나 은혜이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자, 그 끈질긴 율법적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의를 대항하는 불의이며, 육신의 탐심을 이루는 망령된 짓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범죄였으며, 그렇게 죄악이 극치에 도달하게 되자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원수로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더라는 것이다 (7:5, 10). 그리하여 바울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며”(롬 5:20), 목적은 완전한 절망과 철저한 죄인임을 보여주고 인정시킴으로, 풍성한 은혜의 복음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5:20-21)라고 그 죄가 율법을 이용하여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하자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쳐 그 모든 악한 죄악들을 덮어서 간과하시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알게 하고, 믿게 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셨다는 말씀이다.
모든 육체는 오직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쟁취하는 소유욕과 욕망에 굶주려 있다. 때문에 비록 탐심이 생래적으로 갖고 있는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성향이라 할지라도 그 탐심은 타락한 ‘자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절제될 수도 충족될 수도 없는 끝없는 욕망으로 작동하며,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나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고 경쟁과 싸움과 강탈을 일으키는 폭력이 됨으로 서로를 망가뜨리는 죄가 되고 사망이 됨을 제시한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약 1:14-15 공동번역). 이와 같이 인간은 끝없는 탐심으로 인하여 완고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밀어내며, 진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의에 대항하며, 자신이 자신을 주장하는 신으로 군립 하여 육신이 원하는 온갖 추악한 불의를 행하여 스스로 심판을 자초한다. 이르기를,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롬 1:18).
율법은 이와 같은 인간의 패역한 마음 상태를 완전히 드러내며, 탐심이 잉태하여 낳은 죄가 얼마나 악하고 추한지를 폭로하며, 그 탐심이 잉태한 죄가 장성하여 반드시 사망이라는 심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 인간은 율법을 받자 그 마음에 죄인임을 인정하는 애통으로 가난한 심령으로 내려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용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율법을 지켜 자신들의 의를 세워 하나님처럼 행세하려는 탐심과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이를 바울은 정확하게 '죄가 계명(율법)으로 기회를 틈타서 내 속에 온갖 탐심을 이루었다'(7:8)라고 말한 것이며, “우리가 육신의 지배를 받을 때에는 율법에 의해 일어난 죄의 욕망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여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다”(7:5 현대인 성경)라고 말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은 4000여 년 동안 멈춘 적이 없이 아주 열심히 줄기차게 이방 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였으며; 간음하지 말라고 명하였음에도 열심히 세상과 간음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도덕 질하지 말라고 명하였음에도 자기들의 구미에 따라 악용하고 도독 질하였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희생 제사를 드리지 말라고 하였음에도 열심히 양을 잡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탐심이라는 본능으로 육신의 욕구를 채우는 성향을 가지고 죄만을 생산하는 철저한 죄인임이 율법으로 증명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