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적 계시

로마서 (8: 4-8) [1]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다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2024. 4. 9. 02:59

롬 8: 4-8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공동번역)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4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향한 모든 심판을 아낌없이 몽땅 받으셔서 율법의 요구를 몽땅 이루어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죄와 율법에서 영원히 해방 받은 자유인으로 영을 좇아 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6-7). 즉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한 성도는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듭나 의롭다 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자이며, 하늘나라의 유업을 이어받은 아들이 되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그러므로 성도는 이제는 더는 이 세상 마귀의 종으로 육신을 좇아 육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하늘나라 원리를 좇아 사는 영적 존재가 되었으며, “그 영을 좇아 행하는” 거룩한 자녀에 합당한 자로 인도를 받는 의인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4절 공동번역).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19-20).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을 좇아 행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은 “그분 안에서 살며 (living), 움직이며 (moving), 존재함을 (being)”(행 17:28) 제시한다.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다 (4절)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들이 사는 죄악의 시궁창까지 내려오셔서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겪는 환난과 고생과 모든 모양의 수치와 조롱과 멸시와 배신과 찢김과 상함과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조금도 아낌이 없이 완전하게 받아내시고 저주의 십자가에 매달리는 희생으로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육신으로 보내셔서 인간의 모든 죄를 예수에게 전가시켜 육신에 죄를 정하시고, 죄인에게 향한 심판을 아들에게 몽땅 쏟아부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자신의 영으로 부활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더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따라 사는 영적 자녀로 거듭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로 하나가 된 성도는 이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살아가고 행하게 됨으로,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4절 공동번역)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육신이 돌아가실 때 마지막 말씀이 바로 “다 이루었다"라는 완전한 성취의 선포였다.

첫째,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의문의 계명을 완전히 이루셨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페하셨으니”(엡 2:15). 즉 인간이 육신이 연약하여 지킬 수 없는 법을 이루시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 하사”(롬 8:3), 죄로 정한 몸이 율법에 대해 완전히 죽었으므로(롬 7:4),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서는 율법의 모든 계명을 완전히 이루시는 동시에 우리에게는 율법이 페하시어,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이제는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자로 의롭게 여겨주셨다.

둘째, 창세전 하늘나라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구원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수천 년 동안 계시하신 십자가의 비밀과 모든 예언과 언약과 약속들을 완전히 온전히 다 이루어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눅 18:31) 라고 말씀하셨다.

셋째,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셔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저주와 죄가 영원히 철저히 죽었다. 히브리서 10: 10-14 에서 단번에 흘린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제사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라고 말한다. 그분이 흘린 피는 단 한 번의 제사로 온전하며 영원하시다. 오직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것을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나는 죄와 상관없는 자요, 다시는 죄가 나를 주관치 못 한다(롬 6: 14).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러므로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 지어다” (롬 6:10,11, 고전 15:22)라고 이제 영을 좇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었음을 선포한다.

넷째, “다 이루었다” 함과 동시에 성소 휘장이 찢어졌다. 이는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는 희생으로 율법의 요구를 몽땅 이루어 주셔서 화평을 이루어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자녀의 신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5),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7).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한 몸이 되었음을 바울은 제시해 주고 있다.

육신을 좇은 자는 육신의 일을 …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5-6절)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바울은 앞에 7장에서 내 육신 속에는 죄가 거하고 있어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도모함으로 선한 것이 없으며,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악을 행함으로,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게 됨으로(7:17-19,20),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7:24)라고 죽음의 완전한 절망을 외친다. 그럼으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8:6);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8:7);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않으며 (8:7); 전적으로 영적인 일에 무능하고 무지하고 불가능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8:8)라고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영적으로는 죽어있고, 육신은 살아서 죄의 종이 되어 스스로 사망의 구덩이를 파고 있음으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함과 같이 육신의 실체가 바로 죄와 사망임을 확실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6-8절)

육신에 속한 자는 곧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이 떠난 그 상태가 바로 “육체”라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3). 하나님의 영이 떠남으로 ‘육체가 된’ 인간은 육신의 뿌리인 마음이 항상 악하여 육체가 원하는 탐심과 정욕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죄악들을 원하며 찾아다니며 즐기며 행함으로 전적으로 타락하여 스스로 사망의 멸망을 자초함을 노아 홍수의 심판에서 보여주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창 6:5-7). 하나님의 신이 떠나 육체가 된 인간은 오로지 죄만을 생산해 내는 완전한 죄인이며, 그 죄악이 차고 넘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불러일으켜 ‘사망’을 자초함으로, 하나님은 홍수의 심판으로 지면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을 몽땅 쓸어버려 ‘없음’으로 만드시고, 오직 택함을 받은 노아 8식구만 은혜를 입혀서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을 떠나 육체가 된 상태를 “죄와 허물로 죽었다”(엡 2:1), “사망이다”라고 선언한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은 모태로부터 죄인으로 형성하여 죄인으로 출생하면서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하기 때문에, 절대로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도 또한 생명의 말씀에 순종할 수도 굴복할 수도 없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사망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바로 마음이며”(렘 17:9),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 상태를 무덤으로 묘사하신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 27-28), 인간의 마음이 바로 무덤 안에 있는 썩은 시체와 같이 온갖 탐욕과 방탕과 음란과 외식과 불법과 더러운 것들로 가득함으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1~23). 이것이 “다 죄 아래 있는”(롬 3:9) 인간의 실체이다. 바울도 동일하게 인간의 실체를 열린 무덤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3-18).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2)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그 원인은 ‘모든 인간은 다 죄에 갇혀 있는 거짓된 존재이기’(롬 3:4,9)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 7-8)라고 그 육신의 생각과 하는 일이 오로지 죄일 뿐임을 확실하게 지적한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성경은 분명하게 선언한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영의 영원한 실상을 나타내시기 위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어 ‘없음’으로 만드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제시한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 43:7).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갈 3:22).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의를 드러내시기 위해 존재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들이 “나 있음”, “나 하나님처럼”의 행세로 자신을 세우면 그것이 곧 바울이 지적한 육신을 좇은 자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이며, 그 결국은 "사망이다"라는 말씀이다.

 

육신의 무익함과 불가능함

 

아직 천지가 창조되기도 전에 먼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창 1:2), 그 땅의 흙으로 인간의 육체가 만들어짐으로 “육의 무익함”(요 6:63)으로 영의 영원한 실상을 나타내셨으며, 아직 죄가 무엇인지를 알기도 전에 선악과나무를 먼저 주셔서 인간 타락을 허락하심으로, 타락한 육체의 결국이 곧 사망임을 드러내셨다. 육체의 뿌리인 ‘마음이 항상 악하고 거짓되고 부패함으로’(창 6:5, 렘 17:9), 아무리 절제하고 노력과 열심을 다 부린다고 하여도 타락한 아담 안에서 태어난 인간은 절대로 육체의 정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또한 육체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음으로 생명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이스라엘의 구약 역사가 증명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죄가 무엇이며 그 죄의 삯은 사망이다는 율법을 받았고, 율법을 지키려고 4000여 년 동안 시도하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율법을 지킬 수가 없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불러일으키는 구약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주셔서 육신에 모든 인간의 죄를 정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죄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아들에게 몽땅 쏟아부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여 주셨다(8:3).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자손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사랑의 결정체이신 예수 십자가 구원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가 묘사한 그대로 연약하고 볼품이 없는 모습으로 정확하게 오셨고, 여자에게서 사람으로 탄생하셨고, 마지막 선지자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증거하였음에도, 성경 말씀대로 그들 눈앞에 나타나셨음에도,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자로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그리스도를 멸시하고, 조롱하고, 핍박하고 대적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속한 육체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육체를 ‘물 한 방울, 티끌, 메뚜기, 짐승, 초개, 진토, 거름 더미’(사 40:15-17/ 사 40: 22-24/ 시 49:20/ 시 113:7)로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발에 묻은 먼지, 개, 돼지, 일곱 귀신 들린 자, 군대 귀신 들린 자'로 묘사하고,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라고 저주하셨다. 그리고 진리를 대적하는 인간의 추악한 실체와 결국이 어떤 것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시기 위해 광인에게서 나온 군대 귀신을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하시고 물에 빠져 몰살당하게 하신 것이다(마 8:28-34). 한마디로 인간의 마음 상태가 바로 2천 마리의 돼지가 들어있는 완전히 불가능한 죄악의 상태이며, 아무리 청빈의 삶으로 깨끗하게 소제하여 도덕과 윤리적으로 의롭다고 성화를 자칭하여도 귀신들린 상태에서 격발되어 나오는 것은 더 악한 죄로 더 많은 귀신들을 불러들여 완전한 마귀의 소굴로 만들어 심판의 근거를 쌓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마 12:38-45).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에게서 나오는 행위가 바로 마귀의 행사이며,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선고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 23:33).

그러므로 하나님은 절대로 세상에 포착당하지 않으시며, 이 세상 티끌을 입은 육체로는 절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일수도, 하늘나라를 포착할 수가 없다. 첫 인간 아담이 생명나무를 눈앞에 두고도 죽음이 선포된 선악과를 따 먹은 것과 같이,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음에도, 그가 행한 모든 기적과 표적들을 보고 경험하였음에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말씀을 들었고 보았음에도, 메시아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원수로 대적하고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여 버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살해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그 끔찍한 죄악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였으며,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제자들과 사도들과 충실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인간의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6-8절)는 정확한 결론이다. 이르기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다”(엡 2:3).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존재 자체가 바로 흙이며 티끌이며 생산하는 것이란 질려와 형극이요 가시와 엉겅퀴이며 스스로 죽음을 자초함으로 하나님은 육체의 결국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3:19)로 정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