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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0:25-37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제사장이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이와 같이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생각에는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을 섬기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 선행을 요구하는 도덕적 권면의 말씀이 아니다. 오히려 네가 바로 강도 만난 죽어가는 자이며 너에게는 반드시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시하는 말씀이다.  

비유의 출발은 율법적 질문: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10:25)

10:17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율법 교사와 부자 청년, 사람은 모두 율법을 지키고 있다는 자기 확신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신들의 율법 지킴이 충분하며, 이미 영생을 확보한 자임을 확인 받고 싶었다. 마가복음에서 나오는 청년은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지켜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니이까”( 19:20) 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율법 지킴에 부족함이 없다고 확신하였다. 마찬가지로, 누가복음에서 나오는 율법교사 또한 율법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믿었기에,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즉시 실행할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웃이 누구니이까”(29)라고 질문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율법의 강령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10:27) 입으로 외우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이 사랑해야 이웃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는 그가 이태까지 사랑한 대상은 하나님도 이웃도 아닌 자기 자신뿐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그는 율법을 지킨다는 외형적인 모양 가지고 있었지만, 율법이 가리키는 사랑의 본질과 영적 정신은 알지도 행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처럼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질문 자체가 이미 바리새적 세계관의 한계를 폭로한다. 그들의 세계관에서 영생은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로 획득할 있는 보상이었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가 아니라 거래였다.

 율법의 진의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율법의 진의를 알지 못함으로 율법을 영생을 얻는 도구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율법은 결코 인간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율법은 아래 있는 인간을 살려내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죽어 있는 인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율법은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길이 아니라, 인간이 얼마나 불의하며 거짓된지를 폭로하여 그리스도 외에는 소망이 없음을 깨닫게 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반복하여 선언한다.

  •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3:20)
  • 율법으로는 육체가 의롭다 함을 얻을 없음이라” ( 3:20)
  • 율법은 범법을 더하게 하려 함이라” ( 5:20)
  •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7:7)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었으니…”( 3:24)

자기 의를 세우려는 시도 :  율법사는 율법의 이와 같은 진의를 알지 못했다. 그는 율법을 가르치는 자였지만, 율법을 영생을 얻는 수단으로 인식하였고, 자신의 의를 세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예수님에게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0:25)라고 자신을 나타내는 행위를 추구하였고,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 10:29), 의도적으로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질문하였다. 질문의 본심은당신이 사랑의 범위를 정해 준다면, 내가 지킬 있는 선에서 사랑을 완성하여 의를 확증할 있지 않겠습니까?”이다. 이러한 질문은 그의 경건이 얼마나 외식적이며, 그의 신앙이 자신의 세우는데 열중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과연 네가 이웃을 사랑할 있는 자가 있는지 묻기 전에, ‘네가 어떤 존재인지 먼저 보아라는 뜻으로 강도만난자와 이웃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준 것이다. 너는 이웃을 구원할 있는 자가 아니라, 율법이라는 강도를 만나 지금 죽어가고 있는 자다. 너는 사랑을 실천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을 받아야만 살아날 있는 존재다를 가르쳐주기 위함이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누가 이웃인가 알고, “가서 행하라 율법적 행위를 가르치기 위한 말씀이 아니라, ‘너는 누구인가 폭로하시고, 율법 아래 죽어 있는 인간에게 은혜로 다가오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복음이다. 

비유의 전개

30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 예루살렘:  하나님의 임재, 성전, 율법, 언약의 중심
  • 여리고:  타락이후의 세상, 저주의 땅, 하나님을 떠난 영역
  • 강도:   율법과 죄와 사단의 권세가 결합된 총체적 억압을 상징한다.
  •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  율법 + 죄 + 사탄의 권세 아래 놓인 인간의 영적 상태를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이와 같이 죄는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어 사단의 지배아래 있게 한다. 율법은 인간의 죄를 철저히 폭로하고 드러냄으로, 인간 스스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한다. 사단 율법을 이용하여 인간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고발하며, 인간을 죄의 노예로 삼아 끊임없이 괴롭히고 파괴하여 죽음의 멸망으로 끌고 간다. 셋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작동하는 죽음의 연합 권세이다.

종교적 강도: 율법을 이용해 스스로 목자 행세를 하며 자기 의와 권위를 세워 백성을 노예로 장악하려는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율법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통로의 역할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의 도구 전락시켰다. 목적은 양을 살리는 있지 않고, 양을 통제하고 이용하여 자기 종교 체계와 권위를 유지하는 있었다.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나보다 먼저 자는 도둑이요 강도니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10:8–10)라고 선언하셨다.왜냐하면, 이들은 율법을 통해 사람을 묶고 정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차단하고, 종교 권력을 휘둘러 사람을 수탈하며, 자기 의와 체계를 세우는 악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강도 짓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히 책망하셨다.

  •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 23:4)
  • 하나님 나라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 23:13)
  • 강도의 소굴”,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 21:13).

강도가 한 일: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0절) 

옷을 벗기고  하나님의 형상과 의의 박탈

 성경에서 영적 의미는 :  하나님의 형상, 정체성, , 구원을 상징한다. 

  • 창 1:26   :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 창 3:7    :  인간은 죄로 눈이 밝아지자 벗은 것을 수치로 여기고 무화과 나무 잎(율법)을 엮어 옷을 만들어 입었다 .
  • 창 3: 21 :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 입은 옷을 벗겨버리고, 친히 양을 잡아서 피 묻은 양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장차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직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미리 계시하셨다. 구원의 옷을 상징.
  • 슥 3:3–4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시면서 “내가 네 죄악을 제거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면서 여호수아에게 의의 옷을 입혀 주셨다. 사단의 고발과 하나님의 의의 옷.
  • 사  61:10 :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강도가 옷을 벗긴다는 것은, 인간에게 남아 있던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마저 박탈하고, 하나님 앞에 어떤 변명도, 소망도 남기지 않는 사단의 고발 사역 의미한다: “너는 죄인이다. 너는 수치뿐이다. 너는 하나님 앞에 없다라고 수시로 우리를 죄인으로 정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가로 막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흘림을 통하여 의의 옷을 입혀 주셨다( 3:24).

 때려율법적 정죄의 반복적 폭력

율법은 본래 죄를 드러내기 위한 거룩하고 선하고 의로운 법이다( 7:12). 그러나 인간은 특히 율법주의 자들은 율법을 구원의 사다리로 이용하고, 자기 의와 종교 체계를 세우는데 악용하며, 율법을 지켰다고 자칭하여 온갖 외식과 가식과 거짓으로 하나님을 속이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들을 가리켜 거짓 선지자, 양의 옷을 입고 노략질하는 이리’( 7:15)라고 책망하셨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법이 아니기 때문에, 결과는: 지킬 없는 반복되는 실패, 양심의 고발, 죄책감과 심판의 두려움, 자기 정죄와 다른 사람에게 향한 정죄가 폭력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바로때림이다. 즉 율법을 가지고 서로 고발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후려쳐 영혼을 짓누르는 몽둥이로용한 것이며, 채찍 아래 감시받는 노예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말한다:

  • 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고후 3:6)
  •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 3:10)
  • 율법은 죄와 사망의 ’( 8:2)
  •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 4:9; 4:3)

 “거의 죽은 채로 버리두고 갔더라” 영적 사망 상태

여기서  죽였다 말하지 않고, “거의 죽은 채로 버려두고 갔더라 표현한다. 이는 인간의 상태를 정확히 드러내는 표현이다 상태를 바울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2:1)라고, 육체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완전히 죽은 상태임을 밝힌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할 아니라, 오히려 그분을 배척하고 세상의 가증한 것들을 신으로 섬긴다. 이는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사단의 지배 아래 놓여 있으며, 결과 타락과 파괴와 멸망의 길로 끌려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도둑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하고…” ( 10:10)

강도 만난 자는타인 아니라우리.  강도 만난 자는 인간의 실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우리의 모형이. 인간은 사단과 죄와 율법의 권세 아래 갇혀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10:30) 상태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형상은 훼손되었고, 율법 아래서 정죄를 받으며, 심판 아래 놓여 있음으로 스스로는 결코 살아날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비유로 던지시는 핵심 질문은 누가 이웃이냐?” 아니라, “네가 누구인가?”이다. , “너는 이웃을 구원할 있는 자가 아니라, 바로 강도 만나 죽어가는 자다.”  비유는 인간이 선을 행하여 구원에 이를 있다는 착각이 아니라, 구원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등장

31-32 절:  마침 제사장이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이와 같이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  

예수님께서는 강도에게 맞아 벗겨지고 거의 죽어가는 곁을 지나가는 인물로, 율법에 무지한 자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율법의 최고 권위자들, 제사장과 레위인을 등장시키다. 이는 율법의 본질과 한계를 폭로하기 위한 의도적 배치이다.

  • 제사장성전, 제사, 속죄 제도의 중심 인물
  • 레위인율법 봉사와 거룩함을 담당한

그들은 율법을 가장 알고, 가장 철저히 지키며, 가장 열심히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 만난 죽어가는 앞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무능한 존재로 드러난다.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율법의 무능력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기록한다이는 그들이:

  • 사람이 강도에게 맞아 거의 죽은 상태임을 인식했고
  • 지금 도움을 주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으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제사장과 레위인의 도덕적 무정함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지킨 율법의 강령인, “이웃 사랑조차 진의를 알지 못하였다는 증거이며, 율법 자체에 생명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율법이 죽어가는 자를 보면서도 머물 없었던 것은: 

(1). 레위기 11~15장과 17~21, 율법에 따르면, 죽은 자나 흘리는 자를 만지면 부정하기에 만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의 권위자로서 흘리며 죽어가는 자를 보면서도 머물 수조차 없었다. (2). 율법은 생명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고 사망을 확증하는 죄와 사망의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 율법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6)
  • 생명에 이르게 계명이 도리어 나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 7:10)
  • 죄가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였느니라” ( 7:11)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2)

그러므로,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율법으로는 결코 죽은 자를 살릴 없다 증거하는 증인들이다. 그들은 율법을 알고,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으로 살아온 자들이었지만, 강도 만난 앞에서는 아무것도 없었고, 생명을 구하지 했고, 결국 보면서도 피하여 지나갔다. 율법으로는 구원이 없음을 증거하였으며, 이로써 오직생명의 성령의 ’,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생명임을 계시하고 증명하였다.  

사마리아인 등장해야만 했는가

33- 35절: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내어 주며 이르되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마리아인은 구원 불가한 자였다. 혈통이 섞인 민족으로 부정한 민족, 개와 돼지로 취급 받았으며, 하나님께 버림받은 민족으로,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하더라”( 4:9)라고 말한다. , 율법적 기준으로는 구원의 바깥에 있는 자였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율법 밖의 존재, 멸시받던 사마리아인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셨다. 이는 구원은 율법의 체계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듯,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 3:21). 사마리아인은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전혀 기대되지 않은 , 자격 없어 보이는 , 유대인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 전혀 다른 자리에서 자였다. 모습은 은혜의 본질 일치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목적과 동일하다. 그분은 율법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은혜로 오신 모든 인류의 구원자이시다(요 1:17). 이는 이사야가 예언한 바와 같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받았으며…” ( 53:3),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접하지 아니하였다” ( 1:11).

사마리아인과 은혜: 구원과 회복의 상징

사마리아인은 상처 입은 자를 길가에 두지 않고 보호와 돌봄을 제공하였다

1.  기름과 포도주 :  율법의 권위자 제사장과 레위인은 죽어가는 자를 보면서도 상처를 치유해 주는 대신 피하여 지나갔다. 이는 율법은 죄를 드러내지만 살릴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리하여 상처를 치유하고 살릴수 있는 기름과 포도주를 가지고 있는 사마리아인이 등장한 것이다.

  • 포도주: 언약의 피, 죄를 씻는 대속을 상징한다. 포도주가 상처에 부어진다는 것은, 강도 만난 자의 상태가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죄와 죽음 아래 놓인 상태이며,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그의 모든 죄가 씻김을 받아 구원에 이르고 생명이 회복되는 은혜를 계시한다.
  • 기름: 성령, 회복, 새 생명의 시작을 상징한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며, 죽은 영혼을 생명으로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생명력이다.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사 61:1)
  • 포도주 + 기름 : 둘이 함께 부어졌다는 것은, 십자가의 피 +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동시에 임함으로, 죄인이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아, 새 생명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는 완전한 구원을 계시한다.

2.  주막에 데려감 : 교회 안에서의 보호와 돌봄, 쉼을 상징. 즉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상처 입은 자들이 회복되는 장소. 

3.  데나리온 지급 : 데나리온 하나는 하루 품삯이다. 데나리온은 여러 머물며 충분히 회복될 있는 완전한 금액       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회생으로 값을 지불하셔서 우리를 완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킴을 의미한다.

4.    돌아와 갚겠다” : 재림의 약속이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하신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 14:3). "돌아와 갚겠다"고 하신 말씀은 재림하실  주님의 말씀대로 행한 자에게 상 주실것임을 암시한다.

이와 같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에게 아주 선명하게 은혜의 복음을 제시한다. 강도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고, 은혜안에서 살아가는 새 생명으로 회복되었다. 오직 전적인 은혜이. 사마리아인이 등장해야만 했던 이유는, 구원이 결코 율법 안에서 나오지 않고, 오직 율법 밖에서 은혜로 임함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 — 복음적 해석

36  생각에는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말씀은 너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가서 행하라 율법적 행위를 강조하는 도덕 명령이 아니다. 반대로 율법의 행위로는 스스로를 의롭게 하지 못하며, 율법에 갇힌 인간은 죽어가는 , 강도에게 맞고 거의 죽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비유를 마치시고 질문하신다: “ 생각에는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 되겠느냐?” 핵심은 사마리아인처럼 행하라 아니라, “누가 너를 살려준 이웃인가?” 묻는다. 정답은 율법을 대표하는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멸시 받던 사마리아인이 자비를 베푼것이다. 이는 구원은 율법이 아닌 은혜로 주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하라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은혜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말씀이다. 내가 바로 너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며, 너는 나를 만나야만이 율법의 죽음에서 구원을 받을 있는 존재이며, 나를 믿고 나를 따르라는 은혜의 초청이다.

구원의 본질과 은혜

(1)  우리 인간의 실체: 우리는 누군가를 죽음에서 구원하여 생명을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수도, 또한 그러한 기능도 능력도 없는 죄인으로 태어났으며, 우리의 영적 실체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 2:1). 강도 만난 자와 방불한 존재이다. 모든 죄인은 '죄와 사망의 '( 8:2) 묶여 있는 구원을 받아야 사는 존재이지, 누군가를 살릴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2)  율법과 강도의 역할 : 예수님은 선한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자신을 선한 목자라 부르시고, 율법주의 자들을 절도, 강도, 삯꾼이라 부르셨다. "나보다 먼저 온자는 강도요 절도이며"( 10:8), 그들이 하는 일은 "양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10:10)라고 말씀하셨다. 은혜가 오시기 전에, 율법주의 자들은 율법을 악용하여 연약한 양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며,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며, 구원의 길을 차단하며, 자신들의 말에 거역하면 율법으로 죄인이라 판단하고 정죄하여 쫓아내거나 죽여 버리는, "벗기고 죽도록 때리는"악행들을 하고 있었.

(3)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 구원과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말미암아 아무런 조건도 자격도 없는 죄인에게 무상으로 입혀지는 은혜이다. 강도 만난 자와 같이 아무것도 없는 죽음의 상태에서, 나의 모든 것이 세상 강도에게 빼앗기고 털리고 맞아서 죽어가는 철저한 자기 부인의 죽음으로 내려가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 자리에 구원이 임한다는 은혜의 복음을 계시한다인간의 모든 힘과 노력과 의지가 박탈당하여 아무것도 없이 죽음에 처해 있을 , 주님이 친히 찾아와 주셔서 살려내신다는 불가항력적 은혜의 구원을 설명하시고 있다.

  •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2:17).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예수님이 죄악의 강도 굴에 있는 우리를 친히 찾아와 구원하시고, 그분 안에 새 생명으로 회복되는 은혜의 복음 보여준다. 인간의 노력과 공로와 무관하며, 오직 불가항력적 은혜로 우리를 세상 강도 굴에서 끄집어내어 주심으로 그분의 의로운 행함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는 복음이다. 십자가 구원의 의를 인정하고 믿으라는 초청이 바로 그렇게 행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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