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26-28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나 의롭다 여김을 받은 그 순간부터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계서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에 합당한 모든 것을 가르치며, 기도와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며, 소망의 확신으로 인도하시는 보증으로, 모든 것이 혈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활로 역사하신다.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우리가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좌절과 환난과 시련과 고통을 겪을 때,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믿음을 잃지 않도록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도록 인도하시며, 순종하는 믿음으로 세워주시며, 위로와 격려와 권면과 책망과 징벌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며,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아갈 수 있도록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는 말씀이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사도 바울은 “탄식”에 대하여 앞에서 세 번씩이나 언급하고 있다. 1번째 탄식은 피조물의 탄식이다 (8;21-22). 피조물들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탄식을 제시한다. 2번째 탄식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탄식이다. 양자될 것 곧 몸의 구속을 바라는 탄식을 제시한다(롬 8:23). 3번째 탄식은 성령님의 탄식이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데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고 표현한다(8:26). 바울은 이외에 고린도 후서에서도 성도의 탄식을 말하고 있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4)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 5:2).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5)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 5:4).
“탄식”의 본 뜻은 신음이나 고통의 소리이지만, 바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탄식”은 그러한 한숨과 한탄과 고통을 초월하여 다가오는 새 하늘과 새 땅, 즉 육신의 썩어짐을 벗고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의 부활을 간절히 고대하는 소망의 탄식이다. 그 소망을 이루시기 위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중보이다. “말할 수 없는 탄식”은 우리 육이 연약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알지 못하거나 무시하거나 때로는 거역하고 대적하는 행악으로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는 육의 한계와 무지와 어리석음과 패역함에 대하여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오기를 인내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는 도우심의 역할을 말한다.
그리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간구하시는 것일까?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성령님의 역할과 간구에 대하여 상세히 진술하고 있다.
8: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 4절: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현대인 성경).
8:6절: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8:11절: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지배를 받습니다.”
8:13절: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통해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8:14절: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8:15절: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8:16절: 바로 그 성령님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거하십니다.
8:26절: 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8:27절: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1)- 우리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율법으로 오셔서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지킬 수 없는 율법의 심판을 자신의 육체로 십자가에서 몽땅 받아내시고 성취하여 주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여 주셨으며,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잉태시켜 주심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아래에 있어 은혜와 자유를 누림을 말한다.
(2)- 율법의 의를 성취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 자신에게 속한 영원한 신부로, 아버지의 아들로 회복시켜 예수를 소유하는 믿음으로 하나로 함몰되는 연합을 이루어주셨음을 말한다. 그리하여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과 생명임을 제시하셨다.
(3)-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잉태된 성도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특권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나의 모든 것을 맡기며 나의 마음을 토로하며, 또한 아버지는 나의 간구와 소원을 들어주시는 나를 그토록 사랑하심을 깨닫게 하신다.
(4)- 아버지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함께 하셔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그 뜻에 순종하여 거룩한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도록 말씀으로 가르치며, 깨닫게 하시며, 죄를 멀리하며, 거룩한 삶으로 진리에 서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며 간구하심을 제시한다.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8:27).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첫째, 구원의 탄식이다. 인간은 이 땅의 흙을 입은 나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이 땅의 것을 추구하며 육신의 편안과 물질과 쾌락을 좇는다. 필요 이상의 탐심과 끝없는 정욕과 욕망과 야망으로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다른 이들을 짓밟고 약탈하고 억압하고 힘과 권력으로 지배하는 세상 왕으로 살기를 원한다. 인간의 육은 날 때부터 죄의 노예가 되어 “죄의 범을 섬기는”(롬 7: 25) 자이며, 오로지 내 육신의 탐심을 채우는 ‘자아’를 세우는데 출발점을 두고 있다. 인간은 타락으로 그 영이 죽어 있기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마땅히 구하여야 하는 영적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심판과 죽음으로 정해 놓은 이 세상의 것들을 구한다. 자신의 탐심과 욕망의 배를 채우기 위해, 창조주 하나님을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짐승이나 기어다니는 동물 형상의 우상”(롬 1:23)으로 만들어 놓고 자신들이 원하는 가증한 것들, 더러운 것들, 역겨운 것들을 섬기며 구한다. 그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멸시하며, 심지어는 분노를 터뜨리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패역한 마음에서 입에서 행실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온갖 거짓과 추악과 독사와 같은 악독뿐이다. 이를 지켜보는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고통스러워하며, 그럼에도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탄식으로 간구하며, 참아주시는 성령님의 애통과 탄식은 이루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바울은 자신의 체험으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둘째, 거듭난 성도라 할지라도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참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보다는 내 육신이 원하는 탐심과 욕심으로 여전히 이 세상의 썩어짐을 간구하며 성령님의 음성과 책망을 무시함으로,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게 된다. 또한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특권을 이용하여 공로와 업적을 쌓아서 의인이라 자칭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려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육에서 나오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치 못하는 ‘배설물’ 과 같은 죄덩어리 뿐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열심히 ‘배설물’ 과 같은 공로와 업적들을 쌓아서 하나님처럼 행세하는 지도자들을 향하여 ‘마귀의 행사’ ‘회칠한 무덤’, 군대 귀신 들린 광인, 더러운 돼지,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개, 독사의 새끼라고 부르셨다. 인간의 본심은 열심히 죄를 찾아헤매며 즐기며 멸망에 치닫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진노의 심판을 자초한다. 그 본성이 극토록 타락함으로 마귀에게 종속되어 마음속에 이미 죄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그 삯은 사망이다. 이와 같이 타락한 자들을 위하여, 또는 그렇게 완전히 타락하지 않도록 그 영혼을 건지시기 위해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
셋째,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에게 직면한 영과 육의 싸움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갈등과 절망과 고통의 탄식이다. 성도는 성령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탄생하여 의롭다 칭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신분을 가지고 있다. 하늘에 시민권을 지니고 있는 성도는 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진리를 간구하지만, 육신은 여전히 이 세상 죄에 묶여 있기 때문에 바울의 고백과 같이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롬 7:15) 함과 같다. 내 육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죄를 원한다. 이를 바울은 ‘육체의 소욕’이라고 부르며 성령을 거스른다고 말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내 안에는 죄를 향한 소욕이 매 순간마다 성령을 거슬러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갈망하는 나를 대적함으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울부짖게 되는 성도를 위해 성령님도 함께 탄식하신다. 즉 영적 사람과 육적 사람과의 씨름, 내면적 충돌로 직면하는 갈등과 좌절로 곤고함을 부르짖는 탄식이다. 성령님은 성도의 내면적 싸움과 곤고를 공감하시고 동감하시기 때문에 우리 성도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신다’(8:26).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영적 존재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옛사람의 악한 습성과 행실이 점차적으로 파괴되고, 부서지고, 뽑혀서 ‘자아’가 죽는 십자가 삶으로 끌고 가는 성도의 탄식과, 이를 지켜보고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님의 탄식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임을 제시한다.
넷째,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과 의와 진리에 대하여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들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시고 질책하심으로 죄를 멀리하게 하시며, 거룩한 백성에 합당한 새사람의 창조를 일으키신다. 죄의 종으로 살던 그 옛사람의 습성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육의 탐심과 욕망을 이루는 악한 일에 다시 매혹되지 않도록, 절제하도록, 금하도록 성령님이 친히 도와주신다. 우리가 육체의 소욕대로 살지 않도록, 성령님의 가르침과 권면과 책망을 무시하고 멸시하지 않도록, 끝까지 타락하여 그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필사적으로 강권적으로 간구하신다. 그렇다고 하여 성령께서 우리가 반드시 져야 하는 일, 간구해야 하는 기도를 모두 대신하여 행한다는 뚯이 아니다. 그렇게 되다면 성령님이 우리를 위하여 탄식할 필요가 없이 그분이 그냥 대신해 주시면 되는 일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지만 우리를 대신할 수는 없으시다.
하지만 좌절과 절망과 위험에 빠져 있는 절박한 순간에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며, 우리가 마땅히 구하여야 할 기도를 도우시며, 말할 수 없는 탄식의 위로와 격려와 힘이 되어주신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방황하고 낙심하고 의심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원망할 때,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도록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며, 동시에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이해하고 참아주시며, 악인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이끌어주신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시로 성령님의 가르침과 권면과 책망과 소원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끈질긴 고집으로 대적한다. 그러한 우리 육신의 연약함과 죄의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육의 모습에 탄식하면서 인내하시며,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 안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기 위해 내 안에서 거처를 정하시고 우리의 일거일동을 관찰하시며 간섭하시며, 끊임없이 강권적으로 죄에서 불러내고, 끌어내고, 밀어내는 모든 시도와 방법을 사용하신다. 환난과 시험과 고난과 고통을 주어서라도 깨닫고 죄에서 돌이켜 멸망의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이루시는 성령님의 말 할 수 없는 탄식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원수에서 그리스도의 종으로 영생을 얻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구자로 서게 된 그 모든 선한 일들은 성령님의 끝없는 인도와 권능의 사역으로 이루어진 은혜이다(고전 15:10). 그 누구보다도 성령님의 능력의 사역을 깊이 체험한 바울이기에,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라고 자신의 체험을 말하며,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는 단 한 발자국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성령 하나님
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일이다
(1)-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시는 분이시다.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도우시는 성령을 “보혜사”로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과 성품과 신성과 권능을 지니시고 모든 계획과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과 의도가 하나이시기에,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구하는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도록, 합당하도록 역사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과 입술과 행동에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성령님의 의도를 확실히 밝혀준다. 즉 우리 안에서 협력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부르셨으며, 반드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로 하여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심으로(빌 2:13),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2)-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어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영으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영으로 역사하신다.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요 14: 18)라고 보혜사 성령님이 곧바로 자신이시며 영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함께 하심을 밝히 말씀하셨다.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 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17).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라고 예수님은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로 우리 안에 뚫고 들어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을 “우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영화로운 신부로, 영생을 사는 영적 존재로 만들어내심을 제시하신다.
(3)-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깨닫게 하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뜻에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하시기 위해 우리의 일상을 간섭하시고 주관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 회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회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 8).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 16: 24). 이것이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선을 이루시는 사역이시다. 하나님은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을 배우기를 요구하시며,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기를 원하시며, 거룩한 삶을 살아내게 하신다. 제자들이 주님께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물었을 때,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 6:28)라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성경 말씀이 제시하는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알고 깨닫고 거룩한 자녀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 이를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일이니라”(8:28)라고 성령님의 역할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말씀한 것이다.
(4)- 자신이 왕이 되어 자신을 주장하며 탐심과 욕망과 정욕대로 온갖 죄를 탐하며 행하던 자가 이제는 성령님의 강권적인 간섭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이 죽은 십자가 삶으로 끌러 가게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요 21:18)라고 육신이 원치 않는, 자신의 뜻을 거스른 반대의 삶으로 성령님이 끌고 가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내 육신이 원하는 삶은 나만을 사랑하고 나만을 위한 멸망과 죽음의 결국이기에 그 길을 가지 못하도록 간섭하시며, 하늘나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그 길이 바로 십자가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이다. 그 십자가의 길은 가시밭길이며, 이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와 조롱과 핍박을 받는 삶이며, 가난한 삶이며, 순교의 삶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심으로 제자들이 그 순교의 길을 간 것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여 철저한 자기 부인과 자기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다. 때문에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도 동일하게 우리 주님이 살아내신 십자가의 삶으로 우리를 끌고 가신다. 자신이 완전히 죽고 그 자리에 오직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일만 담고 있는 자, 즉 아버지의 통치에 완전히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 가는 일이 바로 이 땅에서 가시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일이며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5)- 성령 하나님은 영이시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입술과 손과 발을 통하여 자신의 사역을 나타내시며, 우리는 다만 그분의 도구와 통로일 뿐이다.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는 담대함을 주신다. 우리가 환난과 그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 권세 앞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선포하는 입술을 주장하신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0).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막 13:11). “사람이 너희를 회당과 정사 잡은 이와 권세 있는 이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 것을 열려치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눅 12:11-12).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계획하여 이루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님이 자신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기적과 같은 신비를 체험해 주거나 방언, 예언, 신유 등 은사를 체험하게 하는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이적으로 세상에서 힘과 능력을 과시하는 그런 눈에 보이는 현혹이 아니다. 기적과 은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성령 거듭남과 말씀으로 이어져야 한다. 즉 성령님의 권능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죽는 십자가 권능이며, 그 십자가 권능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셨다. 우리 옛사람 죄인이 완전히 십자가에 죽고 성령으로 새 생명이 탄생되는 생명의 권능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을 ‘생명의 법’이라고 하고, 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 (롬 8:2)고 말한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5-6).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포하셨다.
(6)-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절대적 의존자와 절대적 순종자로 살아야 하는 피조물이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으로 하나님을 밀어내고 자기가 신이 되어 자신을 위해 살며 탐심과 욕망으로 자신을 신으로 세우는 교만으로 스스로 진노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힘과 능력과 물질과 권세로 세상에서 머리가 되는 썩어짐의 왕 노릇을 도우시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왕으로 군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 임금에게 온각 멸시와 조롱과 매 맞음과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세상에 대하여 무력하게 도살장에 끌러 가는 양으로 완전히 자신을 세상에 내어주는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 죄를 멸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다시 성령으로 오셔서 하시는 일도 일관성을 가지고 일치하게 우리 안에 쌓여있는 세상 오물들을 ‘철저하게 뽑고 파괴하며 허물고 엎어 버리며 멸망시키는 것은 세우고 심기 위함이며’ (렘 31:28), 즉 내 안에 ‘나’로 무장되어 있는 것들을 죽이는 자기 부인과 하나님에게 향한 절대적 순종으로 이끌어 가신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8:28 새 번역).
주님의 성령사역과 제자들의 성령사역
주님도 하나님의 일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성령이 그분에게 임하셔야 하셨다(막 1:10, 요 1:32-33). 그분은 신이지만 죄인의 육을 입고 인간으로 오셨기에 성령이 임하셔서 온전히 성령이 인도하시는 일로 구원사역을 이루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라고 주님의 사역이 시종일관 성령님의 이끄심으로 이루어가셨음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먼저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강림을 기다리라고 명하셨다(행 1:4).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즉 하나님의 복음 전파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성령님이 우리를 통로로 삼아 성령님 스스로 하시는 일이시며, 때문에 성령님의 임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강조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주의 영이 뜻하는 일, 즉 인간의 생각과 의지와 모든 행위를 배제하여 오직 하나님 스스로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신다는 성령님의 주권을 제시하신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7) 함과 같이,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전 2:10)라고 바울은 말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