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45-57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알리니라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나사로의 부활을 본 사람들의 반응
믿는 사람 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그를 믿었으나
나사로가 죽어서 삼일 동안 무덤에 갇혀 있다가 다시 살아나 얼굴에 수건을 감은 채 무덤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죽음의 권세까지 깨뜨리시는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된다(11:45). 이 유대인들은 죽은 나사로의 일로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문하러 온 사람들이었다(11:19). 이들은 직접 자신들의 눈으로 썩어서 냄새가 나는 시체를 부활시킨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권능을 본 증인들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며, 더더욱 시체에 손도 대지도 접근도 하지 않고 무덤 밖에서 말씀으로 살려낸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생명의 기적임을 마음에 둔 자들이며, 그 기적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깨닫게 됨으로 예수님은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됨으로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에 기쁨으로 동참할 수있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기쁜 소식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천국으로 오셨을 때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고 영접하지도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천지의 창조 목적은 예수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진리와 생명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며, 때문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요 1:10-11). 그럼에도 피조물은 구원과 영생으로 오신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않더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며, 오직 당신이 택한 백성에게만 자신을 나타내어 보여주시고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천국의 비밀을 알아듣고 믿게 하시며 당신을 진심으로 소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0-17). 이들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이며’(엡 1:4), 구원받기로 예정된 자들이다(엡 1:5). 이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나사로 부활의 기적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민하게 되며,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 예수님이 곧 나의 구원자이시며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아보고 믿게 된다. 이는 오직 택함을 받은 자 안에서 발생되는 하나님께서 겨자씨로 심어놓은 작은 믿음에서 발휘되는 일이다.
하지만 선택에서 제외된 자들은 하나님이 그 영을 열어주지 아니하였기에 그들은 아무리 죽은 나사로가 부활하여 복음을 전한다고 하여도 듣지 않으며(눅 16:31), 아무리 많은 기적들을 경험하여도 기 기적과 표적들이 제시하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원과 영생을 읽어내지 못함으로 예수님의 천국복음이 오히려 이들에게는 멸망과 심판의 근거가 된다. 지금 본문에서도 나사로의 부활로 세 종류로 반응하는, 즉 믿는 자와 고자질하는 자와 대적하는 자로 갈리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육신의 탐욕으로 고자질하는 사악한 종교인
46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
무리 중 대부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탐심의 배를 채우는, 육신의 욕구를 충족하여 주는 물질적 메시아로 오인하고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힘을 얻어 자기들의 유익을 챙기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무리들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온통 자신들의 배만을 위한 그 사악함을 가시와 엉겅퀴와 길가와 돌짝으로 도저히 생명이 잉태될 수 없는 밭이라는 형태만 가진 황폐한 땅으로 묘사하신 것이다(마 13:3-23). 때문에 이들은 죽은 나사로를 말씀으로 살려내는 오직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부활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아도 별로 감탄하거나 감동하지 않으며, 오직 그 사건에서 자신들에게 얻어지는 이익만을 계수하며, 예수님이 누구신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은 오로지 탐심의 배를 채우는 재물이며 , 때문에 자신들이 챙겨가질 이익만 계산하는 두 마음을 가진 사악한 자들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이내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출세나 이익을 챙기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권력을 가진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고자질하고 아부하는 비열한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기 전까지 줄곧 제단에 두 신을 모시고 제사를 드렸다. 하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얻어내지 못한 것을 얻어내기 위한 풍요의 신 바알에게 드리는 제단이었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맘몬을 함께 섬긴 것이다. 하나님 외에 자신들의 유익에 해당되는 신이라면 그 신이 어떤 신이든 복주는 신이면 서슴없이 쫓고 섬기는 세상 재리에 잡혀 죄의 노예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결국은 곧 멸망임을 보여주셨다. 먼저 이스라엘이 망하고, 그 다음에 유다가 멸망하였고, 결국은 유대 민족이 나라를 잃고 흩어지게 되었으며 로마의 속국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조상과 같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목숨을 내 놓은 것같이 행동하였으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과 영광 얻기에 깊이 침투되어 있었으며,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지키고 공고히 하기 위해 로마제국과 타협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로마에게 넘겨주어 그들의 손을 빌어 죽인 것이다. 결국 이들도 70년 경 로마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였으니 어찌 망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재물의 노예가 되어 일상이 돈과 쾌락과 명예를 좇는 욕망에 잡혀 있다.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계수하는 인간에게 종교가 개입되면 곧 하나님을 자신들의 필요한 것들을 얻어내는 방패로 삼게 된다. 이들은 예수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기적으로 육신의 배를 채우는 이 세상 물질적 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를 쫓는 자들이기에 자신들의 누리고 있는 혜택이나 이익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거나 시험이 닥치면 이내 예수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적그리스도로 돌변하는 사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자신들의 이익과 자신들의 부족함을 예수님의 힘을 빌려 기적으로 채우기 위해 벌떼처럼 교회에 모여드는 큰 무리를 상징한다. 아무리 큰 예배당에 큰 무리가 모여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예수를 쫓는 생명을 잉태치 못하는 황폐한 무리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내면에는 오로지 자신들의 타산과 유익만을 계수하는 번영주의, 기복주의, 인본주의 등 다른 복음의 신앙관을 가진 자들로 교회 안에 넘치게 차 있다. 이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은 자신보다 더 강한 능력과 힘을 가진 신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이 세상 물질적 복을 얻어내기 위함이다. 5병2어의 사건에서 예수님이 하늘의 떡을 먹여주신 것은 그분이 바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양식이며, 장차 십자가 구원 성취로 하나님 백성에게 주어질 하늘의 영생을 설명하는 표적이었다. 그런데 그 기적으로 떡을 먹은 많은 군중들은 예수를 자신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는 육신의 떡으로 생각하고 떡 달라고 주님을 쫓아 다녔지만,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빵이 없게 되자 이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한패가 되어 음모에 가담하며, 예수님을 못 박으라고 외치는 사악함을 드러낸 것이다.
대적자들의 음모와 어둠의 주관자들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공회는 유대의 최고 법정이며, 공회의원들은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72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부활과 천사의 문제로 인하여 서로 반목하는 사이었으나(행 23:7~9) 예수를 모함하는 일에는 뜻을 같이 한 것이다. 즉 예수께서 행하신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들은 이내 손을 잡고 예수님을 대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바리새인들은 철저한 율법주의자들로 부활을 믿었고 천사도 영도 다 믿는 반면에,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주장했다(행 23:8). 사두개인들은 살다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내세를 부인하고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의 부귀를 누리는 삶을 추구하는 불신자들이었다. 그래서 율법을 철저히 믿는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 늘 충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이는데는 뜻을 모아 하나로 뭉친 것이다. 오늘날 WCC와 종교 다원주의를 외치고 주장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는가! 세대만 바뀌어 졌을뿐 신앙적 배교는 더욱 추악하고 더욱 부패하며, 아주 교활하며, 음모적인 방법으로 유일한 그리스도의 진리를 훼손시키는 음페된 전염병마냥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창궐함을 이 시대에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오로지 자신들의 유익과 영광과 자신들이 누리는 종교 기득권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하나로 뭉치기 위해 손을 잡는 것이며, 그 세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권력을 행사하려는 일치한 목표를 가진 자들이다. 즉 세계를 하나로 뭉쳐 하나님처럼 지배권과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한 바벨탑을 공공연하게 쌓고 있다는 것이다. 신세계 질서의 음모적 주장과 유사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들의 결국은 무너짐이다.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도시 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귀신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의 소굴이 되고, 더럽고 가증한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구나”(계 18:2).
창세기에서, 아직 천지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혼돈과 공허와 어둠’을 먼저 주셨다. 그리고 그 혼돈과 공허와 어둠으로 빛이 무엇이며 영원한 생명이 무엇이며 영광의 빛으로 충만한 하늘나라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시자 곧바로 인간에게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총칭인 ‘선악과나무’를 죄와 죽음의 상징으로 먼저 주셨다. 우리는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야 비로소 죄를 알게 됨으로 진정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심과 영광되심을 알아가게 되며, 그분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인내의 성품을 배우고 깨닫게 되며, 죽음을 통하여 비로소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됨으로 구원과 영생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오직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주신 것들이며,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믿음으로 구원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 모형으로, 몽학선생으로 잠시 주신 것이다. 즉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담아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설명하시기 위해 이 세상을 주셨음으로 이 세상은 잠시 동안 있는 모형과 허사이며, 멸망의 종말로 처음부터 정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세상 죄와 사망에 빠져있는 당신의 백성만을 빼내는 구원을 당신의 뜻과 의의 성취로 정하시고, 당신의 아들을 구원자로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자 이심이라”(마 1:21). 그리고 이 세상에 속한 ‘마귀의 후손’과 죄악 된 세상은 마지막 심판으로 멸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 13:1-27).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말이 그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는 거역하는 자는 마지막 날에 심판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때문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는 멸망으로 다가오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에 절대로 이 세상 어둠의 권세에 속할 수도 더더욱 하나라고 손을 잡을 수가 없는 절대적 진리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17:16). 땅과 하늘을 분리하신 것은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가 있기 때문이며, 낮과 밤을 분리하신 것은 빛에 속한 자와 어둠에 속한 자가 있기 때문이며, 아직 후손도 낳기 전에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분리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의 자식은 절대로 구별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나라 천국으로 마귀의 자식은 이 땅의 지옥으로 떨어지는 운명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와 이 땅에 속한 멸망의 자식들을 구별하여 ‘우리’ 와 ‘너희, 저희’로 갈라놓으셨다.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8:23); “너희는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라고 확실한 심판을 제시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 육신에 속한 마귀의 자식과, 오직 예수만이 진리이며 생명임을 부인하는 그 어떠한 종교와도 절대로 손을 잡을 수가 없다. 창조주가 갈라놓은 것을 인간이 합치겠다고 한다면 함께 멸망하는 지옥불이다. 즉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정해 놓으신 진리의 법칙이기에 인간은 그 법칙을 깰 수가 없으며, 이 세상은 멸망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세상 권세자와 손을 잡을 수도 하나가 될 수도 없는 진리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계 18:4)고 명하신다. 그런데 어찌 이 세상과 하나가 되어 통일을 이루겠다고 적그리스도와 손을 잡을 수가 있단 말인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이유
이들이 바로 세 번째 무리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하나님을 섬김다는 명의로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죽이려는 대적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의 사역 시작부터 예수님을 배척하고 멸시하고 거역하며, 자기들의 업적과 영광과 기득권을 빼앗아가는 위험한 인물로 인식하고 줄곧 대적하며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리하여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즉시 공회를 소집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회의를 하고, 죽이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이유를 본문에서 세 가지로 볼수 있다.
첫째,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48)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목적이 바로 “모든 사람이 그를 믿는” 두려움이다. 즉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능력의 기적을 행하시며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믿게 되는 복음전파로 인하여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에 위험과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신 소경을 눈 뜨게 하시고, 귀먹은 자를 듣게 하시고, 문둥병 환자를 깨끗케 하시고, 각종 질병에 걸린 자들을 질병에서 풀어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어 자유케 하시며, 죽은 자를 살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들과 권능을 보면서 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예수님의 권능에 의심을 버리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참 아들이시며 메시아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좇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됨으로 대저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정해놓은 종교적 질서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한 것이며, 현재 향유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의 권력과 기득권이 무너짐에 두려워한 것이다. 자기들이 차지해야 할 존경과 권력, 사람들로부터의 인정과 추앙을 예수님이 다 가져갔다고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각종 질병에 걸린 자를 ‘죄인’으로 정죄한 것을 예수님이 기적으로 고쳐서 깨끗한 자로 자유한 자로 만들어 놓으셨으며, 이들이 죄인이라 정죄하고 배척하는 세리와 창녀와 같은 연약한 자들과 친구가 되어 주셨다. 이와 같이 자신들의 의도와 완전히 어긋나는 예수님의 사역이 이들의 종교적 위치와 권력을 유지하는데 커다란 방해와 위험이 되었기에 예수님을 눈에든 가시처럼 미워하고 증오하게 된다. 이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에게 향한 진실과 순종이 없었다. 하나님은 줄곧 이스라엘의 패역한 종교행위를 지적하시면서 이들이 드리는 무수한 제사와 제물을 기뻐하지도 받으시지도 않으시며(말1:10), 월삭과 안식일과 절기로 대회로 모이는 것도 더는 견디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셨다(사1:13, 호2: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라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 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패역한 종교의식과 가증스러운 제사와 가면을 쓴 종교 놀이에 더는 참을 수가 없었으며, 그리하여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를 보내셔서 성전문을 닫게 하심으로(말 1:10), 400여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기갈을 겪게하셨다.
자신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의 역할을 맡았다고 자고하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선한 목자와 양의 비유에서 이들을 절도, 강도, 삯꾼이라 부르신다. 절도, 강도, 삯꾼이란 말은, 자기의 소유가 아닌 다른 자의 소유를 도둑질하거나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가리킴으로 주님은 이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신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10:10),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10:12). 즉 절도, 강도, 삯꾼, 이리들은 다른 양들은 도덕 질하여 자기들의 지배를 받는 종으로 부린다. 이들은 연약한 양들을 잡아다가 자기들의 말만 듣는 자기들이 하라는 대로 하도록 억압하며,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며, 불법을 행하도록 유도하며, 자신들의 말에 거역하면 마음대로 죄인이라 판단하고 정죄하여 쫓아내거나 죽여 버리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가리켜 절도 강도라고 부른 것이다. 앞서 9장에서 바리새인들이 소경을 잡아다가 마음대로 심문하고 자기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도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이내 분노하여 권력으로 유대교 밖으로 쫓아 내버린(출교) 것이다. 그리고 스데반도 공회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과 똑 같이, 너희가 바로 의인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이라고 이들의 죄악을 폭로하고 진리를 외칠때 이내 스데반을 '종교 반역자'로 취급하고 돌을 던져 죽여버린 것이다.
둘째로,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48)
이들은 종교적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 뿐만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혜택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공회의 고민은 표적을 행한 예수를 군중들이 믿고 열광적으로 그를 따르게 되면 로마가 개입하여 군대를 보내 예루살렘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염려였다. 이들의 고민은 민족을 의식한 애국심이 아니라, 로마 황제로부터 인허 받은 공회 회원으로서의 기득권 뿐만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의 정치, 종교적 권력과 지배력이 상실 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예수님의 복음전파를 로마 정권에 대항하는 정치적인 반역 세력으로 뒤집어 씌우며, 마치 예수님의 복음 사역이 로마제국과 충돌을 일으키는 싸움으로, 즉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11:48)는 모독적이고 사악한 정치 사건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음모의 사람은 구원과 생명의 진리에는 관심이 없으며 예수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오직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으로 예수를 핍박하고, 진실을 억눌러 버리며, 거짓증거를 만드는 그야말로 마귀의 수법을 쓰고 있다. 이들은 ‘마귀의 자식들’이기에 마음속에 음모가 가득한 사악한 자들로 사단이 시키는 마귀 일을 행하는 독사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흠집 내고,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음로를 꾸미며, 죄를 뒤집어쓰게 하며, 비하하고 멸시하며, 박해하여 죽이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것으로 ‘안식일 범한’ 자로 몰아가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참 아들이시며 ‘하나님과 나는 하나’라고 진실을 선포하여도 이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몰아가고,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든 이들의 죄악을 폭로하며 ‘성전을 헐라’고 하자, ‘성전 모독죄’라고 정죄하며, 결국은 공회에서 서로 결탁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결의한 것이다.
셋째,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 하는도다” (50)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를 죽이는 길만이 이스라엘 민족이 로마 제국에 멸망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시한다. 공회는 가야바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죽이는 결의를 내린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의 극악무도한 악행과 외식을 마태복음 23장에서 일곱까지 화로 폭로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여’ 너희가 바로 우맹한 자요 불의한 자이며,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며”(마 23:25),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며”(마 23:27),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에 앉기를 좋아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는 것을 좋아하며’(눅23:5-7),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며(눅16:14),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막 12:40) 전형적인 외식 자들이라고 폭로하셨다. 이들은 예수님의 지적대로 하나님이 주신 선한 율법을 악용하여 사람의 교훈으로 가르치면서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구원을 나누어주는 권위를 가진 자로 자칭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연약한 자들을 ‘죄인’이라 정죄하고 판단하는 영혼을 죽이는 일들을 행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이들이 바로 ‘삯꾼’이며, 양을 물어가고 헤치는 절도이며(10:12),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10:10) 강도와 이리들임을 지적하셨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영광과 기득권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나님을 살인하는 살인강도까지 가게 됨으로 주님은 이들을 향하여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라고 지옥의 심판을 선고하셨다.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강퍅한 죄악을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폭로하였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않은 자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님]을 거역하되 너희 조상들이 행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행하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행 7:51-53). 오늘도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와 같이 음모와 모의로 아주 교활한 방법으로 기독교에 침투해 들어와 진리를 말살하려는 세력들이 너무나 난무하고 있다.
가야바의 예언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51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52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
예수님을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공회에서 총지휘를 맡은 대제사장 가야바로부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예언의 말이 나온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11:50). 비록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자기들의 종교 기득권과 정치적 권력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한 말이지만, 가야바가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가야바의 말을 통하여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11:51-52). 즉 하나님은 가야바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예수님 한 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될 것을 대제사장의 입을 통해 선포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11:53)함과 같이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공회에 의해 조직적으로 정치와 종교의 결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공회에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제의를 최종 결론으로 정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놀라운 비밀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원대한 뜻을 이루시기 위해 악한 자들을 그 악역으로 들어 쓰심을 성경 시작부터 확실히 보여주시고 있다. 이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하나의 뜻을 이루시는 목적으로 사단과 악한 것들을 들어 쓰시며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허락하에서 쓰임을 받는 이용물에 불과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역할에서 유대인은 잠시 악역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까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살인 역할을 하게 된다. 비록 겉으로 보면 악한 세력들이 역사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하나님은 사단의 존재와 악이라는 것들을 이용하셔서 우리에게 그분의 선과 의와 사랑과 구원과 생명과 그분의 나라를 설명하는 드라마를 역사로 펼쳐주신 것이다. 이는 하늘나라에서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정해놓으신 묵시이며, 그 묵시의 두루마리를 이 우주에 확 펼쳐주시는 방법으로 역사를 전개하시고 주관하시고 통치하신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나니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사 45:7)라고 하나님은 친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단이라는 악을 들어 쓰신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짐이는 제한된 시간과 영역에서만 활동하는 하나님께 종속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욥기에서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욥을 시험한 것을 볼 수 있다(욥 2:5-7). 그리고 예수님 광야 시험과 사역에서 사단의 존재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함을 읽을 수 있다 (마 4:10-11; 눅 11:14; 막 1:24-26; 마 12:22-28).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정하신 뜻대로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선과 동시에 악한 것들도 쓰셔서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데 목적을 두시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예레미야 18장 6-12 에서 토기장의 깨어진 오지병의 비유 등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기록하고 있다. 토기장 즉 하나님은 진흙으로 피조 된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자신의 뜻대로 주관하시며,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도 자신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결정하심을 말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출애굽 당시에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셔서 애급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10가지 기적들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는 영광을 보게 됨으로 모세를 따라 세상 애급을 탈출하게 된 것이다. 만약 바로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드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이스라엘은 애급 땅에 내리지는 10가지 재앙과 기적들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세를 따라 애급에서 탈출하는 일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인들의 강퍅한 마음과 완악한 고집이 없었더라면 이방인 우리에게 향한 구원의 복음이 온전히 전파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11:25). 하나님께서 이방인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며 영적 우둔함을 주셨다는 놀라운 비밀이다. 즉 지난 2000여 년간 유대민족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잘못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미리 계획하신 섭리였다는 비밀이다. 이에 바울은 비유를 들어 감람나무의 원가지가 잘려나갔고 그 자리에 돌 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이 접목되어 생명의 열매를 맺는 영적 풍성함을 제시하여,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었다"(롬 11:12)라고 아주 놀라운 비밀을 우리에게 제시하여 준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굳이 그해 공회 지도자로 있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의 ‘대속 죽음’을 선포하게 하시고, 유대인들을 대표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지시로 예수님을 공식적으로 붙잡아 로마군에게 넘겨주어 십자가를 지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대제사장 가야바와 공회의 음모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 곳곳에 흩어진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 하에서 일어난 것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 유월절의 양으로 오셔서 당신의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죄를 짊어지시고 유월절에 맞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함을 하나님은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입을 통해 예언하여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당 사장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게 하심으로 이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이들이 열심히 제사 들였던 유월절의 양이시며 참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장차 깨닫는 통회를 일으키기 위함이다. 즉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정하여 놓으신 이스라엘 남은 자들에게 다시 늦은 비와 같은 성령을 내려주심으로 회개하고 증인의 역할로 예수님을 증거하는 순교의 길로 다시 원가지로 접붙여 주시는 이들에게 향한 배려와 계략이었음을 계시록에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피하심
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 54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머무르시니라 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추악한 음모 앞에서 자신을 이제 기꺼이 내어주는 십자가 죽으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이 죄악과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셔야 하셨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 날부터 미친 광기로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하였다(11:53).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11:57). 예수님은 더 이상 예루살렘에서 공개적인 활동을 하실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유월절 명절을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는 예루살렘에 예수님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졌고 함정을 파놓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11:56-57). 그래서 예수님은 에브라임이라는 변두리의 한가한 동네에 들어가셔서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잠시 머무셨다(11:54).
예수님께서 피신한 이유는 유대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직 십자가에 달리실 그 구속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십자가를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셨다. 예수님은 험악한 분위기에서 한발 물러나서 이들과 맞서 싸우는 그 어떤 시도도 대항도 일으키지 않으셨다. 오직 십자가의 죽음으로만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온전히 순종으로 나아가셨으며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 지시기를 원하셨다. 또한 주님께서 피하신 이유는 제자들을 굳세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가까운 에브라임이란 곳에 머물면서 제자들과 함께 하심으로 이제 곧 다가올 유월절 양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땅에서 공생애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그 시간을 제자들에게 집중하며 제자들을 가르침으로 훗날 제자들이 십자가의 구속을 잘 이해하고 십자가의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서 진리가 다가오면 진리를 향하여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믿음의 백성과 진리를 배척하고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에 분리를 일으키켜 오직 당신의 백성만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빼내어 당신의 나라로 들어올리기 위함이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눅12:51). 즉 진리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와 비 진리에 속한 마귀의 자녀를 구별하시는 분리이다. 이는 창세기 첫 아담과 하와에게 선포하신 여자의 후손과 마귀의 후손과의 분리이다. 아직 후손도 태어나기 전부터 여자에게 태어날 구원의 백성과 이 세상 권세자 마귀의 후손으로 태어날 마귀에게 종속된 자들을 미리 분리시키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 편 가르기를 하여 당신의 백성을 이 세상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당신의 신부로 당신의 나라로 들어 올리시기 위해 오셨으며 십자가로 성취하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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